비장한 각오를 품고 전보다 더 철저해 보이는 계획을 짜낸 후 포커룸에 도착하여 나와의 약속을 지키자 다짐하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집으로 부터 고민스런 연락이 왔다. 월세 사는 곳의 집주인이 그간 나의 불성실 했던 월세 연체 때문이겠지만 그의 지인이 월세 입주를 희망
하기에 바로 집수리를 해야 한다며 일주일 안에 집을 빼 달라 했고 적어도 삼사일 안에는 이사갈 곳을 구해야 했기에 월세 보증금 등에 최소한
3만 페소가 필요 했는데 천천히 조심하여 게임을 하다가는 그 요청을 이행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게임을 시작했을때 마침
일본인 두명이 나보다는 잘하는 영어였지만 구면인 듯한 필리핀 사람에게 거슬리는 톤으로 계속 떠들며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그의 옆에 다른
일본인 일행도 가세하여 앉았는데 비포 플랍에 배팅도 300페소씩 제법 하고 컨벳도 치는데 게임 스텍이 적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첫 시작의 좌우명이 '상유만이천 미생불사' 인데 일본인 두명이 자리를 채우고 앉은것은 피하지 말아야 될 운명이고 한일전에는 절대 질 수 없다.'
생각했다. 더불어 이사 비용 또한 절실했기에 타이밍이 그러해 보였다. 1,500칲 시작한것에 1,500을 추가해 작심삼일 나와의 약속은 일단
깨고 잃더라도 내 포커의 주특기인 감각형 개포커를 잠시 달려 보기로 마음 먹었다. 손목에 금장을 하고 머리에 노란색 물을 들인 좀전의 일본인이
비포 플랍에 3백 칲으로 먼저 도발했다. 금팔찌는 임진년에 조선에서 약탈해 간 금이 아닐까 상상했다. 내 포지션은 딜러 버튼에 가까웠고 몇명이
앞서 콜했지만 애써 제쳐두고 무늬가 다른 9와 4 옵슛으로 올인을 박아 도발했다. 일본인 플레이어들은 예전에 기억하기로 AA, KK, QQ이 아니면
심장이 약해서 내가 한것과 같은 큰벳을 만나면 떨면서 고민만 오래 할 뿐 꺽는것을 여러번 보았었다. 예상대로 노란일본은 나를 째려 본 후
카드를 엎었다. 비록 3백페소 뿐이지만 통쾌했다. '하하하' 하지만 똥겁 나게도 그의 뒤에 중국인처럼 보이는 이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2천 넘는
칲을 콜해왔다. 포커를 잘 친다고 자칭 소문이 난 한국인 레귤러가 그 다음다음 자리에 칲을 많이 이기며 유투브를 보다가 힐끗 날 보는데 내 올인이
지게되면 창피스럽고 사실 내 카드가 홀덤에서는 쓰레기 타입이라 불편했다. 딜러의 손동작으로 플랍 다섯장이 열리는것은 보지 않고 올인콜 한
중국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순간순간 표정은 왠지 어둡다. 그가 먼저 카드 오픈은 아닌데 카드를 열어 보였고 AJ 다이아몬드였다. 열린 플랍을
살펴보니 에이스나 J, 다이아몬드도 없었으며 내카드 4가 맞아 있음에 우연히 이겼다. 내가 가진 칲에 비하여 많이 먹었다. 최초 3백 벳했던
일본인이 높은 페어 9, 9 정도를 들었던지 옆 필리피노에게 궁시렁 대며 침통해 했다. 중국도 노란일본도 꺽어 재낀 셈이다. 얼마 후 검은 자켓을
입은 일본인이 다른 사람의 작은 배팅에 레이즈하여 1,200을 놓고서 상대방 들을 주시하는 모습이 꼭 AK라는 인식을 깊게 주었다. 내 카드는
뻔할 뻔자 2와 7 역시 쓰레기 카드였는데 마침 나무 모양 스페이드가 같은 그림이라 부가 기대치도 있기에 까짓거 올인했다. 다들 카드를 접고
검은일본은 표정이 눈물 날 듯하며 의심이 포커룸 천장을 뚫을 듯했다. 의심 하는게 당연하다. 내가 그저 50블라인드를 콜하고 리레이즈 올인했으니
리딩 할 요소가 적다. 그가 좀전의 노란일본에 대한 내 블러프 기억 때문에 체감상 한시간은 생각하다가 결국 콜하고 말았지만 중국에게서 이긴
칲만큼 퍼주고 다시 도발 해도 되기에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다. 플랍에 신기하게도 스페이드가 세장 깔려 플러쉬가 완성 되었지만 리버 마지막
카드에 같은 무늬 한장이 더 나오게되어 낮은 7하이 플러쉬가 불안했는데 그가 불안이 역려한 표정으로 보여준 카드는 JJ 원페어였을 뿐 두장 모두
빨간색이었다. 또 이겼다. 검은잠바는 재차 5천을 리바이인 했고 쉼없이 떠들던 노란일본과 검은일본은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계속 게임에 집중했다.
드믄드믄 나를 노려보는것이 눈에 보였다. 내가 원하던 일이다. 십오분 가량 지났을때 내손에 최고의 원페어 AA두장이 왔을때 레이즈 하지 않고
단지 블라인드 50을 콜했다. 때마침 검은일본이 300 레이즈 했고 그것에 대해 내가 블러프 치는것 처럼 2천을 리레이즈 했을때 검은일본 앞의
노란일본이 물끄러미 대기 하다가 주저 없이 "올인.!" 말하기에 심히 반가웠다. 최초 300 친 검은일본은 당연히 꺽을것이라 생각했는데 잠시 주저
하더니 그도 올인하는데 '무엇을 들었단 말인가.!' 지들끼리 일본어로 무어라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데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눈치로 리딩해
보길 아마도 나를 칭하며 '우리 둘 중에 한사람은 저 놈의 카드를 이길거야.!' 말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플랍 카드가 열렸다. 투페어를 블락하는 33이
5를 동반해 열리고 턴과 리버는 7과 8로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노란일본이 카드를 열었다. 달걀 두개 같은 QQ "와아.!" 구경꾼들이 일제히 나이스
핸드라고 축하해 주었다. 검은일본이 '너 그걸 들었냐.? 말을 하지.!' 하는 듯 말하며 상황은 거짓말 같이 KK 를 보여 주었다. "와아.! 와아.!"
사람들은 더한 축하를 그에게 보냈다. 일본은 아직까지 천왕이 존재하는 킹덤이라 그런지 K 페어와 Q 페어를 나란히 가진 그들의 모양새가 마치
호모 커플처럼 보였다. 나는 전란의 의병들이 AA와 비슷한 죽창을 뾰족히 깍아 왜군의 조총부대와 맞서 심장을 겨누었을지도 모를 선조들을 상기했다.
내 손안에 두개의 죽창은 그들 커플을 '쿡, 쿡' 하 듯 찔러 죽였다. 그들은 나에게 나이스라는 축하 한마디 없이 손을 붙잡 듯 붙어서 테이블을 떠나며
노란일본이 나를 보며 영어로 물었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니.?" 떠나는 그에게 나는 유창한 일본어 사투리로 나즈막히 답했다. "도꾸또느 한꾸따이다네"
그들에게 이긴것을 밑천으로 그날 살살 더 싸워서 이사 비용을 확보했다.
작심 삼일전
마닐라의 한 포커룸 블라인드는 25/50페소 미니멈 바이인이 1천페소이고 맥시멈 바이인이 5천 페소였다. 내 계획은 1,500페소를 바이인 하여
적지만 500페소 정도를 규칙적인 블라인드와 좋은 카드를 보기 위해 사용한것을 보충하고 세번을 싸울 수있는 4,500페소를 두 파트로 나누어
총 1만 페소이고 여섯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번째 바이인은 평균 4천 가량을 이기면 캐쉬 아웃하고 한시간 후 다시 새로운 게임을 할수 있었다.
첫번째 실패하면 두세번째는 매우 타이트 한 플레이를 하여 앞서 실패한 본전을 찾는데 열중했고 복구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세번 이겨 12,000 가량을 달성하면 이긴 6천은 1,500씩 네번 잃더라도 본전 찾기 게임이 필요 없이 사용하여 1~2만 이길 수있는 장시간
플레이를 계획 했으며 그것이 다 지더라도 6천의 일당은 챙길 수있다. 최초 4천 세번 게임은 당연히 출발 뱅크롤이 적어 여러 카드를 버려야 하고
테이블 안에서 내 숏스텍은 찌질해 보이겠지만 참아야 했다. 숏스텍 바이인의 장점은 지더라도 적어서 비교적 복구가 쉽다. 그간 되짚어 보기에
처음 한 두번 바이인이 지면 겨우 본전을 찾거나 불리한 상황이다 보니 조금 이겨도 오히려 더 이기려 하다가 재차 잃는 경우가 많았으며 소득
없이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는데 잃은것이 적으면 본전을 찾기도 쉬워지고 그렇게 하는것은 오랜 경험 끝에 좋은 결과로 생각 되었다. 한일전이
있은 후 내 방법이 맞는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적더라도 하루하루 지지 않고 이겼다. 대략 삼일에 한번 정도는 1차전 세번을 성공하여 2차전에
2만 가까운 성과를 내었고 2차전이 성공하고 2,500을 네번 사용하는 3만 이상 이기기 3차전 계획을 가졌는데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성공했다.
2~3차 전의 최고 장점은 많이 먹어 보겠다는 욕심 플레이를 충족했고 지더라도 1차전의 플랜이 있었기에 이전에 올인을 반복했던 일이 두렵지 않았다.
호텔고문 오가 단지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질문을 하기에 설명해 줄때 다소 답답 하기도 했지만 그 대화들은 나와의 약속이기에 본의 아니게 오가
옆에서 감독관이 되므로 내 허튼짓을 많이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하루 1만 정도 이긴것에 그치는 날이 삼사일이고 2~3만이 이기는 날이 이삼일
이어서 일주일 평균 10만페소를 달성 할수 있었다. 최대한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인근의 택시 10분거리 99호텔 프로모션이 480페소였고 로컬 음식이
100페소 정도로 두명이서 세끼이면 600페소와 밥만 먹고는 살수 없으니 음료 따위가 500 정도이며 교통비가 왕복 300 이라서 하루 경비는 모두
2,500 남짓이었다. 다만 고문 오가 몸집이 돼지라서 쿠바오 호텔 단칸 침대가 매우 좁았으므로 2주차 부터는 포커에 조금 이겨 방을 두개 잡았고
오가 출정 시간에 항상 늦게 나오는것이 답답했지만 그마저도 하루 계획을 점검해 보는 시간으로 가졌으니 모두다 긍정이다. 얼마 후 포커룸과
가까운 투배드 호텔 1,300페소 짜리를 찾아 5일씩 결제하여 지내니 교통비가 줄어 비용이 비슷하고 포커 캐쉬아웃 타임에 잠시 누워 쉴수 있으니
생활은 훨씬 호전 되었고 일주일 두번 이상은 맛있는 한식당을 이용하여 체력 또한 푸근해진것 같았다. 한달여에 걸쳐 30만 페소가 넘었을때 고문
오도 그간 배운 술책으로 포커 게임에 욕심을 내었고 뱅크롤을 뚝떼어 10만을 쥐어 주었으나 포커에서 족보가 좋은 스트레이트나 플러쉬 드로우
비젼카드 플레이가 많아 그의 10만은 계속 줄어 들어 쫄쫄이가 되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겜블은 내자신과 약속이 깨지면 결국 도박이고
결과는 올인이다. 고문 오의 게임 머니가 줄어 감에 따라 눈에 보이게 살이 빠져 다이어트가 되는것을 볼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두달여 고군분투에 50만 페소가 넘었을때 게임 뱅크롤은 넉넉해 보였지만 1~3차전 바이인 금액을 500페소씩 늘려 조금 더 이기는 정도였다.
돈이 많다고 게임에 많이 이기는것은 절대 아니었다. 많이 이기려면 반대로 많이 나가는 함정이 분명히 존재 하기에 잃게되면 복구하려다 시간을
다 보내게 되고 기름을 바른 미끄럼틀에 추락하게 된다. 내가 계속 이겨 나가는것을 주시한 포커룸 직원들이 하이롤 포커 테이블 참여를 계속
부추겼지만 거절했다. 하이롤은 테이블 수도 적고 많이 이길수 있음에 반대로 많이 잃을 수 있으며 그곳은 장시간 게임이 열리지 않으므로 요점을
말하자면 굵고 짧은 함정이었다. 나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함정을 파는 겜블러가 되고 싶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마닐라 가면, ( 최종 방문이 코로나 전 입니다). 포커게임 하고 싶네요( 피쉬라 소액으로). 저는 잡식성이라 다 합니다.( 카지노에 있는건 다함. 머쉰까지, 심지어는 탁구공 튀는거 까지). 다음회차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