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강알빈 수사가 분도식품 저장고에 있는 겔브소시지와 마늘소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인 수사 근무 영향 60년대부터 제조 시작.
인공 첨가물 안 넣고 대부분 과정 수작업
맛있다고 입소문 나 전국서 주문 이어져 수익금은 공익사업에
사찰에 가면 전통사찰 음식이 있듯 수도원이나 수녀원에도 고유의 음식이 있다. 수사나 수녀가 직접 채소나 과일 등을 재배해 판매하는 곳도 있다. 대구의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원에선 된장이나 메주를 만들어 판매하고, 마산 트라피스트수녀원에선 딸기나 무화과, 사과 등을 이용해 유기농 잼을 만들어 판매한다. 남양주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에선 배가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수사나 수녀가 직접 먹거리를 만들거나 판매하면 신뢰가 가고 안전하다는 믿음이 선다. 왜관에 있는 성 베네닉도 수도원(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1)이 운영하는 분도식품에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통독일식 소시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분도(芬道·향기로운 길)는 베네딕도의 한자를 차음한 것이다. 분도식품에서 만드는 소시지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09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수도원으로부터 2명의 수도자가 서울에 파견됐습니다. 이후 서울에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설립되고 교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왜관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은 6·25전쟁 중이던 52년에 설립됐습니다. 60년대쯤부터 소시지를 만들어 먹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강알빈 수사는 이곳 분도식품의 총 책임자다. 3년 전 공장을 확장해 현재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은 주 5일 근무에다 오후 6시 퇴근이다. 대부분의 과정이 수작업이라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다.
“지금은 이곳에 6명의 독일인 수사가 있으나 옛날엔 독일인 수사가 많았습니다. 수도원 안에서 돼지를 키우기도 했는데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으로 소시지를 만들어 먹었다고 해요. 옛날 우리나라의 시골마을에서도 돼지를 잡아 창자에 잡고기 등을 넣어 순대 같은 걸 해먹었잖아요. 지금처럼 공장까지 갖춰 하지는 않았고 김치를 담가 먹듯 조금씩 만들어 먹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 주문이 계속해 들어오자 공장까지 지었습니다.”
왜관 성 베네닉도 수도원에선 분도식품 이외에 교육 및 출판인쇄업, 유리 화공예실, 시청각연구회, 목공소, 양로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분도식품 역시 베네딕도 수도원에 딸린 하나의 사업체라고 보면 된다.
강 수사는 양호실, 주방, 농장 등지서 일하다 주방으로 발령받아 독일인 길 아돌프 수사를 만났다. 길 아돌프 수사는 목공분야 전문가로 소시지 마이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시지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돌프 수사로부터 소시지 만드는 기초지식을 터득한 강 수사는 독일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유학해 3년간 50가지 이상의 소시지를 제조하는 법을 배웠다.
“독일에선 마이스터가 있으면 수도원에서도 직접 돼지를 도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마이스터제도가 없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돼지고기는 전량 국산을 씁니다. 소시지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양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소시지 종류에 따라 양념을 다르게 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가져 온 레시피만으로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아요. 독일 것이 약간 짜다고 보면 됩니다.”
소금을 제외한 향신료와 결착제 등은 모두 독일에서 공수한 것을 쓰고 인공첨가물 같은 건 넣지 않는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소시지의 종류는 겔브소시지와 마늘소시지 등 두 가지다. 물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 큰 행사를 앞두고는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든다. 겔브는 독일어로 ‘노란색’이라는 뜻인데 정통독일식 수제소시지다. 식감이 부드럽고 향신료 냄새가 살짝 풍긴다. 독일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과 맛이 같아 ‘정통독일식’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다. 와인 안주용이나 샌드위치에 넣으면 좋다.
마늘소시지는 마늘 맛이 나는데 그리 진하진 않다. 후추, 채소 등을 넣어 겔브소시지에 비해 씹는 맛이 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어울린다.
소시지를 먹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우거나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식감이 더 좋다. 소시지 자체에서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기름을 두를 필요는 없다. 겔브소시지 800g, 마늘소시지 700g 가격은 2만원이다.
수도원의 근본정신이‘기도하고 일하라’이기 때문에 소시지 만드는 데만 전력을 기울일 수 없다. 소시지를 만들어 파는 수익금은 수도원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 의료 복지사업에 사용한다.
강 수사는 “수입이 목적이 아니라 선교를 위해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료를 엄선하고 위생에도 철저하게 신경을 씁니다. 또 수익을 내기 위해 불량첨가물 등을 쓰지 않습니다. 그건 먹고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요”라고 했다.
소시지는 서울 명동 매장(명동 가톨릭회관 106호)과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판매한다. 대구 삼덕성당 내 매장에서 판매를 하다 지금은 중단했다. 시중에 따로 매장을 내지는 않는다. 가톨릭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울릉도 독도를 제외하곤 택배가 가능하다. (054)971-2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