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에서는 우리나라 명품섬 BEST10
거제내도는 2011년부터 2014(4년간) 국비 20억 지방비 5억 총 25억을 들여 명품섬으로 조성한다. 유형화 사업 (6개섬): 강화군 교동도 옹진군 이작도 당진군 난지도 거제도 내도 군산시 어청도 사천시 신수도 클러스터 사업(4개) ; 보령시 장고도권 여수시 개도권 서귀포시 가파도 통영시 연대도
한려해상국립공원 명품마을선정
~ 마을별 평균 5억 원 지원
2011년 8개 마을 2012년 4개마을 선정하여 함 마을당 5억을 들여 명품마을을 조성한다.
2011년 마을대상(4개): 한려해상 내도, 덕유산 구산, 다도해해상 상서, 월악산 골뫼골 2012년 마을대상(4개):한려해상 함목, 다도해해상 평촌ㆍ영산도, 소백산 버들밭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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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내도, 안섬. 모자섬, 낙타섬, 거북섬
면적: 0.256 ㎢ 해안선의 길이 3.9km 최고점 131m
인구: 8가구 15명 ( 왔다 갔다하는 집 4가구 합치면12가구)
주요건물: 내도초교 ( 펜션 건립으로 사라졌다. )
출항지: 구조라 선착장 입구
거제에서 숨겨진 비경은 어디일까? 아마 지심도, 공곶이, 내도일 것이다. 지심도는 1박2일 관계로 몇 년전부터 뜬 곳이고 하루에도 수십차례 유람선이 다니고, 공곶이는 사유지이며 차로 갈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가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곳이다. 내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그대로의 섬이었으나 2010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2011년부터 명품 섬과 명품마을로 선정하여 집중투자하여 새로운 섬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1년에 2,000여명 오든 관광객이 금년 들어 8월 한 달만 3,000여명 오는 명품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2013~2014년 2년에 걸쳐 12억이란 돈을 투입하여 나머지 마무리 공사를 한다고 하니 기대를 해 볼 수 밖에~~~.
내도 동백꽃에 매료되어 십여년전부터 이곳을 자주찾는다. 이근수, 유차봉, 조홍근 할아버지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고 몇몇 외지인이 있으나 대부분 토박이들이다. 혼자 사는 집이 4집이나 되며 빈집이 3곳이다. 몇 년전 최철성씨가 들어와 펜션을 짓고 유람선을 구입하고 하여 점점 변모해가고 있다.
메미태풍 때 (2003)다 사라진 부두와 선착장은 다시 복구했으며, 유람선 타는 선창은 휴게실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안내소가 자리 잡고 있다.
선착장에서부터 김명규-유차봉-안창만-이정금-조홍근-윤병운-유성기-방근대-조둘자-이근수-이효인 집들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으며 민박이라 붙여 있으나 실제는 유차봉, 방금대, 김명규씨만 민박을 하고 다른 집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대규모 펜션은 최철성씨가 한다.
민가에는 차가 갈 수 없기에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자주가는 이정금할머니댁을 찾았다.
‘할머니 민박이라 붙여 놓았네요. 올해 손님 좀 받았나요?’
‘뭐라고, 개 × 같은 새기들이 붙여 놓았는데 손님 한분도 못받았지... 늙었다고 와야지.’
‘다른 집은 요.’
‘몇 집 빼고는 간판만 붙여 놓았지. 손님은 없지 뭐’
‘그럼 어떻게 사세요’
‘국가에서 주는 9만 어원 가지고 입에 풀칠만 한다니까.’
‘ 방에 보니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네요. 보tkd비가 없나요.’
‘ 할아버지 죽고 나니 한 푼도 나에게 돌아오지 않네. 유공자이면 뭘해!
더 이상 말을 부치다가는 큰 망신을 당할 것 같애서. 답사에 나섰다.
명품섬으로 선정되어 내려온 돈으로 도로포장을 하고 있다. 바위 옆에 도로 안내판이 있고 그 옆에 꽃이 있다. 남해안 섬지방에 주로 자생하는 머귀나무이다. 빨간 꽃이 아름다우며 열매는 탱자나무 열매인 것 같다. 나이드신 노인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먹나무 열매, 보리똥나무 열매, 꿩밥(춘란꽃) 등이 있었으나 남획꾼들에 의해 지금은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리고 염소를 방사하여 꽃이란 꽃은 씨가 말랐다고 한다. 한 두 마리씩 방사된 염소는 작년에 20여 마리 잡고 아직 40여 마리가 남아 있으나 올해 내로 다 잡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섬에 비해 야생화가 거의 없다. 조둘자 집앞 작은 고추밭은 옛날 내도초등학교의 가건물이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소롯길이 있는데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이효인씨집인데 잘 단장되어 있으나 사람은 상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집 밑으로 가면 100년 된 무궁화나무가 나온다.
신문에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래된 나무라고 대서특필했으나 내가 보기로는 그리 오래된 나무 같지도 않고, 품종도 전통 무궁화인 아사달 계통이나 배달계도 아닌 원예품종으로 개량된 흰겹꽃이다. 식물의 수령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측정법을 동원해야 하나 논밭주변이나 주택 주변에 있는 식물은 거름성분이 많은 토양이기 때문에 야산보다는 두 배이상 긁어진다. 고로 130년산 무궁화가 아닌 50~80년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무궁화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금지구역으로 정해져 있다. 무궁화의 역사는 고조선시대 ~신라시대부터 가꾸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제감점기 (1910~1945)에 조선 말살 정책에 의해 무궁화 말살 정책을 펴, 우리나라 우수 무궁화는 거의 멸종되었다. 그리고 자기 들이 좋아하는 벚나무를 심게 되었다.
조금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희망전망대’이다. 이곳에서는 구조라 수정봉과 학동에서 해금강가는 국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병산과 노자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한편의 그림 같다. 이곳에 그 유명한 야고가 있는 곳이다. 야고와 같이 입이 없는 식물은 난(蘭) 종류이나 야고나 개종용, 초종용, 오리나무더부살이 등이 있다. 이곳에 안내판을 세웠으면~~~.
학동 해금강 앞바다를 보며 산길을 걷는다. 저 멀리 해금강가는 유람선과 낚시하려 가는 쾌속정이 있다금씩 흰물살을 내여 선을 끗고 달린다.
탐방로를 따라 가다 보면 잘록한 목이 나온다. 이곳을 삼만미모가지라 하며 해변가를 삼만미개라 하며 해변에는 자갈이 100여미터 깔려 있어 해수욕하기는 좋으나 물이 보이질 않는다. 이곳은 2년전 누드촬영대회를 한 곳이다. 삼만미모가지는 벤치도 있고 그늘이 있어 쉬기에는 좋으나 소나무 군락지 아래에 왕모시풀이 점령하고 있어 꽃밭으로 개조했으면 하고 바램을 가져본다. 김해 부산 대전에서 온 관광객이 제법 많다.
대전에서 온 관광객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1인당 33,000원이며 중식과 석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곳이 어떠느냐고 물어보니 그제 그렇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러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산과 들과 바다를 다니며 일상속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연인길 삼거리에서 신선대전망대로 향한다. 이곳은 몇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동쪽바다절백에서 불어오는 갈바람은 찌는 듯한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족하다. 이곳 이름을 ‘갈바람 소리길’이라 붙였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소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식물이 보인다. 담쟁이덩굴, 송악, 모람 등이 노송(老松)과 어우러진 한폭 의 그림을 만든다. 조금 오르면 그 옆에 작은 봉우리가 있다. 이곳을 ‘딩면’이라하며 이 산을 딩면산이라 한다. 몇 년전 까지만 하여도 이곳 제일 높은 곳 바위틈에 구실잣밤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썩어문드러져 바위 절벽에 걸터앉아 있다. 몇발가니 외도를 바라보는 벤치가 있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상의를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 가져온 김밥을 먹으면서 삼림욕을 하니 정말 상쾌유쾌하다.
조금 내려가니 바위 절벽위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바로 앞이 외도이고 오른쪽으로 해금강 왼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곳 주변의 바닷가에는 바다 동굴이 있는데 가재강정 진강정 등이 있으며 작은배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다음 기회가 되면 한번 답사하고 쉽다.
날씨가 좋지 못하여 사진은 그만두고 돌아나왔다. 이제는 삼만미 모가지에서 오른쪽 둘레길을 걷는다. 하늘도 막혀버린 동백숲길을 걷노라니 이상한 식물이 다가 온다. 붓순나무다. 붓순나무란 무슨 뜻일까?
울릉도나 제주도에 자생하는 마가목은 싹이 나오는 모양이 말의 이빨처럼 튼튼하게 생겼다하여 마아목(馬牙木)이 변한 마가목이라 하고, 붓순나무는 순이 나오는 모양이 붓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호랑버들은 겨울눈의 모양이 호랑이 눈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몇 발작 걸으니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이 새심전망대이다. 이 전망대 바닷가를 샛담이라 하는데 거기서 이름을 차용한 것 같다. 서이말등대가 눈앞에 보인다. 조금 걸어오니 샛담새미가는 길이 보인다. 이곳에는 몇 년까지만 하여도 식수원을 사용했던 곳이다. 바닷가로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으나 길이 좋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 그냥 둘레길을 따라 내려오니 쉼터가 있다.
바닷밑을 내려보니 절경이다.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도 보이고 큰바위 얼굴처럼 생진 바위도 보인다. 유차봉씨의 말에 의하면 몇차레의 태풍 때문에 아름다운 바위 조각은 산산히 부셔지고 지금은 그 형체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면 내도명품길 동쪽입구다. 이곳 주변에는 곰피(쇠미역)가 지천을 갈려있다. 쓴맛이 나고 뻑세어서 먹기는 곤란하나 전복먹이로는 일품이라고 한다.
바닷가 옆에는 내도펜션이 있다. 몇 년 전에 지어진 이곳은 내도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운동장 옆에는 패총(조개무지)이 있고, 후육무문토기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 편션 앞에는 자갈이 갈려 있고 파도가 치면 양쪽에서 부딪쳐 하늘을 쏫구친다. 이곳을 서무치(서목치)라 하며 서목치와 공곶이 사이의 바다를 서묵도라 한다. 배가 정박하는 선창은 매미태 풍때 산산이 부셔졌으나 지금은 말끔히 복되어 휴게실과 편의점 그리고 안내소가 있다.
저 머언 옛날 원시인들이 살다가 간 자리에 150년전 최씨 성을 가진 일가족이 입도한 것이 근대 내도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도 살았다고 하며 1960~70년대 함참 잘나가던 때는 33가구 130여명이 살았으며 초등학교 학생도 32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국근대화의 물결이 휘물이치던 1970녀대부터 한두사람식 빠져나가 지금은 8가구 15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봄이면 섬 전체가 동백으로 장식하며 바닷가에 나가면 지천으로 깔린 해산물, 저녁이 되면 고기잡으려 나가 불락 ,농어, 혹돔, 감성돔, 돌돔 등을 한손에 들고 대문을 들어설 때는 어느 누가 부럽지 않았으나 지금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니 정말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부터 내도 개발바람이 불어 작년부터 수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나 일부주민은 혜택이 되나 나이들고 병들은 촌노들은 한숨만이 내쉬고 있다. 다 같이 공존할수 길이 있었으면 하고 바램을 가져본다.
앞으로 많은 시설물이 들어서고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훼손이 걱정이 된다. 자 연을 품에 안고 두둥실 떠 있는 자연보존의 메카 내도가 영원히 자연모습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2012년8월26일 자연를 사랑하는 동백이 한마디 (flower & photoholic )
❋ 내도 관광지
내도초교 |
1962년 개교하여 1998년 폐교된 학교로 바다와 접해있어 정말로 축구를 하면 축구공이 바다로 빠진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내도 학교를 빌려 펜션으로 바뀌는 바람에 그 흔적도 찾기 힘들다. |
서무(서목치) |
내도초교 앞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파도가 양쪽에서 밀려오면서 갈매기들도 쉬어가는 곳으로 몽돌로 되어 있어 간단한 물놀이도 가능하다. |
식물 상 |
2005년 ‘내도 자원식물상 연구’에 의하면 81종이 살고 있으며 우점종 식물은 해송,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이며 기타 육박나무, 생달나무, 까마귀쪽나무 등 난대 상록수림을 볼 수 있고 털머위와 큰천남성 군락지어서 장관을 이룬다. 그 외 거의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아 자연탐사지로 적격이다 |
낚시터 |
곳곳에 갯바위 낚시가 가능하고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잡힌다. 때만 잘 맞추면 선창에서도 볼락과 감성돔 숭어 등을 잡을 수 있다. |
해산물 |
간조 때 바다가 드러나면 자연산 멍게, 고동, 굴, 해삼을 잡을 수 있고 자연산 돌미역과 해조류를 채취할 수 있다. |
유적 |
내도 초교 부근에는 선사시대 유물인 패총과 석기시대 토기들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내도초등학교 운동장 지금도 확인 가능) |
사진촬영지 |
-민가 제일 윗집에서 동백꽃을 포인트로 서목치와 공고지를 넣고 한 컷 -억새군락지에서 억새를 깔고 바다의 정치망과 갈매기, 그리고 유람선을 배 경 삼아 한 컷. -넙적 바위에서 외도와 해금강을 배경 삼아 한 컷. -외도가 빤히 보이는 동백숲에서 동백사진 한장 -외도 마주보이는 곳에서 낚시하는 사람과 큰 바위 얼굴을 배경삼아 한 컷 -바위 절벽에 놀고 있는 염소 한 컷. |
내도 탕방로 |
2009년 “옛길복원”사업으로 1.8km의 탑방로를 개설하여 거제도에서 자연이 잘 보존된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난대 활엽수림 탐사 및 공곶이 서이말등대, 외도, 해금강 등 조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
❋내도 가는 길 : 구조라 해변 입구 내도 선착장
❋ 내도 도선 선비 및 운항표
구조라 |
내도 |
비고 |
09:00 |
09:30 |
-대인 10,000원 -소인 5,000원(초등)
문의처: 055-681-1624 010-6888-1624 |
11:00 |
11:30 | |
13:00 |
13:30 | |
15:00 |
15:30 | |
17:00 |
18:00 |
☎ 펜션 및 민박
1 |
내도펜션 |
011-864-0028 |
최철성 |
2 |
무궁화 민박 |
055-682-1103/ 011-844-0875 |
최옥선 |
3 |
은행나무 민박 |
055-681-7797/011-830-6339 |
유차봉 |
4 |
대나무 민박 |
055-681-1164 |
이정금 |
5 |
팔손이 민박 |
055-681-8296/010-6681-8292 |
안창만 |
6 |
동백나무 민박 |
055-681-1042/ |
반봉금 |
7 |
누릅나무 민박 |
055-681-1043/ 010-9454-1043 |
방금열 |
8 |
내도민박 |
011-557-9255 |
윤병운 |
9 |
감나무 민박 |
055-681-1044/ 010-8907-1043 |
방금대 |
10 |
포구나무 민박 |
055-681-1069/ 010-8643-2002 |
조둘자 |
11 |
후박나무 민박 |
055-681-9088/ 010-9144-9088 |
이호인 |
12 |
내도안내센터 |
010-6888-1624(한려해상국립공원) |
김명규 |
☎내도 설화 ( 옛이야기)
이야기1, 토시판대의 유래
토시판대란 목넘 해수욕장 부근에 보모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처녀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인데요. 옛날 이곳에서 내도에 놀러온 처녀가 이곳에서 빠져죽어 그 흔백을 모시던 곳이다. 방금대(71)씨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이 어릴때 이곳에 와서 토시 낀 여자 옷을 꺼내어 보고 했다곤 하네요.
섬처녀는 아니고 외지인으로 죽고난후에 혼백을 달래기 위해 이곳 목넘해수욕장 부근 보모바위 사이에 죽은 처녀의 토시낀 옷을 너어 놓고 제를 지내고 혼백을 달랬다고 함.
일할 때 팔소매를 가뜬하게 하고 그것이 해지거나 더러워지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매 위에 덧끼는 물건.
토시판대: 토시 ( 덧옷)+판대 너른 곳 즉 토시를 낀 여인이 죽은 곳
이야기2, 외도 총각 섬과 내도 처녀 섬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안섬(처녀섬)은 옛날부터 지금 그 자리에 다소돗이 지나가는 물고기와 섬들을 보며 지내고 있었는데, 대마도 가까이에서 바람기 날리며 이리저리 떠덜던 외도(총각 섬)가 구조라 마을 앞에 있는 내도(처녀 섬)이 예쁘단 이야기를 듣고 큰 기대를 가지고 만나보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밤낮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떠와 해금강ㅇ 옆을 지나 저 앞을 보니 처녀섬인 내도가 이야기 듣던대로 예쁜 모습이라 달려왔다. 그 때 내도에 살고 있던 과부 아지매가 총각 섬이 헐레벌덕 떠오는 것을 보고 놀라 “총각 섬이 떠 온다”고 크게 고함을 치자, 깜짝놀란 총각섬이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수백만년 동안 내도 처녀섬만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내도 분교와 염소 사연>
~1970년도 한 신문에 보도된 사연~
새벽을 사는 사람들 낙도 일군 섬마을 선생님 이정남씨
낙도일군 섬마을선생님 이정남씨, 전교생을 이끌고 수업이 끝나면 중학교 갈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염소 키우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침 햇살 사이로 까만 염소를 안고 돌담 둘러친 학교를 나서는 꼬마들의 모습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문짝도 없는 교문기둥, 바로 그 아래 계단까지 파도가 넘실대는 구조라 초등학교 내도분교. 이 외로운 섬마을 학교에 염소를 키우며 뭍에서 공부할 꿈에 부푼 꼬마들이 있다. 그 개구쟁이들의 꿈은 차라리 안쓰럽기 조차 하지만 새해 아침을 맞아 더욱 벅차기만 하다.
경남의 큰 섬 거제도 남동쪽 바닷가의 일운면 구조라리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4km, 바다위에 외로이 떠 있는 내도의 아침이 오면 온 동네 꼬마들이 분교장으로 우르르 달음질쳐 온다. 13평 좁다란 축사 문을 열면 음메 음메 까만 염소 떼들이 다투어 튀쳐 나온다. 염소새끼들을 안고 끌며 10살 안팎의 섬마을 머슴애와 가시내들이 이정남 교사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아침 8시 풀을 먹인 꼬마들이 염소를 산등성이에 매 둔 채 산을 내려온다. 놀이터가 없는 꼬마들은 더러는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점심을 그냥 굶은 채 분교장을 뛰논다. 오후 3시 다시 산정에 오른 꼬마들은 제각기 자기 염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먹이고 한 아름 풀을 뜯어 하산한다. 오후 5시경 갯가를 따라 줄지어 교문을 들어서면 일일이 이교사의 검사를 받는다. 염소배가 부른지, 풀을 넉넉히 뜯어왔는지...
“어제 염소 한 마리를 팔아 8천8백원을 벌었심더.”
줄지어 차례를 지키던 사육부장이 입을 떼자 낯선 사람을 흘끔거려 쳐다보던 꼬마들이 다투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 놈은 새기를 벤지 한 달아 됐서예.”
“요놈은 집 염소와 그저께 상을 붙였심더(교미).”
“내꺼도 예”
학생 수 모두 28명의 내도 분교, 6보식 수업을 할 수 없어 1,3,5학년만 있는 이 색다른 미니학교가 염소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이교사가 온 이후이다. 분교로 온지 두 달 만에 이 교사가 염소사육 얘기를 꺼냈을 때 분교는 다행히 자매결연을 주월맹호부대 제3309부대와 아저씨들이 매월20달러씩 보내준 성금 6만원이 적립되었다. 이 돈으로 수학여행갈 꿈에 부풀었던 꼬마들은 실망은 컸다. ‘공부나 할 일이지, 원’ ‘아닌, 수학여행은 어떡허고’ 설득에 나선 이교사가 일일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 자세한 계획서를 내밀었고 더러는 술까지 사며 도움을 청하였다.
2월 매서운 겨울바람을 안고 축사를 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벽돌을 나르고 슬레이트 지붕을 이는 손은 부르텄지만 선생님을 돕는다고 나선 꼬마들을 볼 때마다 이 교사는 ‘ 저 어린 것들을 꼭 뭍의 중학교에 보내기를’다짐했다. 벽돌이 모자라고 슬레이트가 짧으면 봉급을 털었다. 지난 9월부터 맹호부대에서 보내오던 성금마저 중단됨으로써 빚진 3만5천원은 그대로 남았다.
4월15일 마침내 염소 10마리를 샀다. 꼬마들의 열성도 대단했다. 자기가 맡은 염소를 더 먹이려고 오후 5시 반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꼬마가 있어 섬을 찾아 헤매기도 했고, 고삐를 놓친 염소를 찾아 꼬마들과 함께 밤ㄴ세워 온 섬을 뒤지기도 했다. 그 동안 염소는 늘어 어느새 암놈 19마리에 수놈이 20마리, 이제 3웛이 오면 상금학년에 2마리씩 돌아 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5학년에는 중학 진학 입학금이, 3학년엔 중학 입학금과 중1년 동안 공납금이, 1학년은 중학입학금과 중3년 동안의 공납금이, 그리고 3년 후에는 완전자립학교에의 꿈이 이제 영글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 130명, 어른들의 학력이랬자 중졸이 한 사람 뿐이고 논한 뙈기 없는 메마른 땅이라 주식이라곤 보리와 옥수수 밖에 없다.
분교가 설치된 데도 애달픈 사연이 있다.
전마선을 노 저어 건너 다시 2시간 이상 산길을 돌아 등교하던 꼬마들이 10년 전 어느 겨울날 전마선을 타고 섬을 돌아오다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노를 저어 주던 만삭의 마을 아낙네가 익사했다. 그 참혹한 현실이 오늘의 분교를 있게 했던 것이다. 20평 교실에 책상이 열넷, 칸막이 사이에 임시교실에는 책상이 넷, 지난봄 어느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종일 이 교사와 꼬마들이 바다 말을 뜯어 팔아 공동구입한 학용품을 지금도 쓰고 있는 가난한 이 낙도 분교에 이제 꿈은 심어졌다. 10년 전 1회 졸업생 2명이 동아일보가 모아준 성금으로 중학을 마친 이래 꿈도 꾸지 못했던 뭍으로의 진학 꿈이...
“실은 외딴곳에서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가을 부산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도움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애들이 차를 보고 도망치는가 하면 용두산공원에 내려다보이는 한 초등학교를 보고 부산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저 학교에 다니느냐고 묻더군요. 정말 이 애들을 뭍에 보내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우선 전마선이라도 한척 있었으면...
낙도를 지원한 이유를 묻자 이 교사는 안경알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후략~~~
이런 사연을 갖고 있는 염소는 근자에 와서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 내도에서 염소를 방목하여 그 개체수가 늘어나자 먹을 것이 없어 겨울철이면 풀뿌리와 나무뿌리는 물론 나무껍질까지 벗겨 놓고, 농사철에는 각종 농작물을 송두리 채 뜯어먹어 골치 꺼리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도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볼 수가 없다. 주민들은 빨리 염소를 없애야 하는데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푸념을 한다.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며, 볼락이 통통 튀며 해삼 미역이 넘실거리는 처녀림의 섬으로 한번 떠나보는 것도~]
내도의 민박현황
앞쪽이 내도 뒷쪽이 해금강
구름처럼 몰려드는 명품섬, 내도
새로 단장한 내도 안내소
섬 앞쪽에 물이 부딪히는 곳, 서무치(서목치)
뿔난 큰바위 얼굴
해수욕장을 지키는 물개바위??/
내가 자주 찾는 이정금 할머니의 부군 조수용
내도를 지키는 아낙네들~~~
지금은 사라진 내도초등학교
펜션 운동장이 조개무덤이 있는 자리
수령이 130이나 된다고 하는 무궁화
억세의 기생식물 '야고'
억센 파도와 사기는 갯사초
좀처럼 보기 힘든 '자리공'이라는 야생화
독특한 꽃을 가진 머귀나무
첫댓글 와! 상세한 내용 정말 유용하게 보았습니다.
명품 길 만들기전 가 보았는데 선생님 글을 읽으니 다시 한번 더 가 보고 싶어집니다.
잘보았습니다, 언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