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마지막 날들, 1556년 7월
끝까지 바쁜 사람
1556년 초에는 이냐시오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이는 자신의 고통을 감추려고 애썼지만 그이를 알고 있던 사람 말에 따르면 그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담석증이 훨씬 더 지속적으로 발병했고 미열까지 추가되었다. 더는 미사를 드릴 수가 없었고, 몇 시간 안 되는 수면 시간마저 여러 가지 육체적 질병으로 방해를 받았으며 식사도 침대에서 했다. 그이는 고통이 좀 잦아드는 날 오후 늦은 시간에 몇 시간씩 일을 하며 수많은 문제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 문제들 중에는 실론 섬Ceylon의 배교, 터키의 위협, 프로테스탄트계 문제, 일부 회헌 개정, 회헌 실행 문제, 재정적 위기, 환자 간호, 독일 관구 설립, 가톨릭교회로 복귀한 영국 문제, 예루살렘을 위한 대학 문제 들이 있었다. 그이는 여러 대륙에 있는 예수회 회원들에게 보낼 편지를 받아 적게 하는 일을 계속했다. 생애의 이 마지막 몇 달 동안 편지 7백여 통을 받아 적게 했다. 마지막 편지는 죽기 팔일 전 날짜로 되어 있었다. 그이는 그날 이후 즉시 의사를 만나기를 요청했다. 사실 그 의사는 라이네즈와 로마에 있는 다른 병든 예수회 회원들을 더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냐시오의 건강은 예기치 못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로마에서 그이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여러 편지에서는 놀라움과 충격의 감정은 물론 감쪽같이 속았다는 감정까지도 읽을 수 있다. ‘참 성인聖人’이라 불렸던 그이는, 공동체 형제들이 그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사이 동료들을 떠나갔던 것이다.
‘나의 죽음이 가까웠다’
로마는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이런 고통에다 한 술 더 떠 한 의사가 통상적인 치료 처방을 했다. 즉 이냐시오의 방 창문을 모두 단단히 닫고 담요를 잔뜩 덮어 주라고 했다. 환자를 돌볼 때 대단히 온화한 간호사였던 이냐시오는 가장 잘 순명하는 환자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이는 평소보다 땀을 훨씬 더 많이 흘려서 몸이 더 쇠약해졌다. 다른 의사가 치료법을 바꾸었을 때쯤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7월 30일 오후 4시, 이냐시오는 폴랑코를 불러, 교황 바오로 4세에게 가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여 세상 삶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리라는 놀라운 임무를 부여했다. 또 자신과 라이네즈를 교황이 축복해주기를 청했다. 그이의 이 마지막 요청에는, 자신을 냉대와 의구심으로 대한 바오로 4세가 자신에게는 교회의 대표자였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번만은 이냐시오도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항상 말을 신중하게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기 쉬운 잔뜩 긴장한 말로 요청 내용을 강조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죽는 것밖에는 없을 만큼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폴랑코는 그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냐시오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편 배달원이 바로 그날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어 있어서 폴랑코는 발송해야 할 커다란 소포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폴랑코는 이냐시오에게 다음 날 그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좋을 것 같고 그것도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세요.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당신 손에 맡깁니다.’ 환자의 이런 이상한 말을 폴랑코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의사와도 상담을 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안심하고 이냐시오의 요청을 다음 날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이냐시오는 조용히 체념한 상태로 죽음 앞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다. 1550년에 그이는 어떤 사람에게 죽음을 맞게 된다는 생각만 해도 무한히 기쁘고 영적으로 위안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막상 실제로 죽음이 다가오자 그이는 자신의 감정을 침묵으로 감추었다. 그이는 그저 자신을 하느님과 교황의 손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뜻에 내맡겼다. 그이는 자신의 뜻과 원의를 버렸다. 밤중에 이냐시오의 옆 침대에 있었던 열다섯 살 수사 간호사는 이냐시오의 몸이 약간 흔들리고 나서 조용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이가 반복한 한 마디는 ‘오, 하느님! 예수님’이었다. 그것이 간절한 기원과 최대한의 의탁과 희망의 표현이었다.
평범한 죽음
7월 31일 동이 트고 공동체가 처음 방문했을 때 이냐시오가 임종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을 알았다. 폴랑코는 미루었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 나가 교황 축복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냐시오는 일곱 시쯤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이는 죽음의 모든 장신구가 제거된 죽음을 맞았다. 그이는 홀로 죽었다. 극적 장면도 없었고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동료들도 없었다. 총대리를 지명하여 부르지도, 회헌을 마무리 짓지도, 축복을 베풀거나 마지막 조언을 하지도 않았으며, 황홀경이나 기적, 성사, 교황 축복, 영혼을 위한 임종기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홀로 떠나갔다. 그이는 한 증인이 깜짝 놀라서 언급했듯이 그야말로 ‘평범하게’ 죽었다. 그이의 사체를 부검하니 돌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그이가 드러내지 않은 고통에 대한 이 말없는 증거들이 간, 신장, 폐 그리고 심지어 주 동맥 가운데 하나에서도 나타났다. 그리고 그이의 발! 괴테의 발은 처녀의 발만큼이나 섬세하고 아름다웠지만, 이냐시오의 발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다녔던 그 수많은 유럽의 길에서 굳어진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의 길을 ‘홀로 걸어서’ 갔던 그 순례자다.
희망이라는 보고
4세기 후에도 그이의 영혼에 대한 부검은 끝나지 않았다. 주검의 안면상顔面像, 서둘러 만든 사후死後 초상화, 작은 육신의 매장 의식, 총회와 문제점들, 미래의 시복과 시성 과정, 베르니니의 작품인 ‘로마의 예수 성당’에 있는 아름다운 제대, 대학들의 발전과 선교활동, 교황 바오로 4세의 계획과 왕들과 군주들의 계획, 장엄한 로욜라의 대성당, 예수회가 받는 찬사와 시련 ― 이 모든 것은 이냐시오 뒤에 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이는 사람들에게 전염성 있는 열정과 삶의 양식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이를 인도하셨고 모든 것을 성취하셨음을 확신하는 희망이라는 보고寶庫를 유산으로 남겼다. 다시 말해, 이냐시오는 예수회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 이냐시오는 전염성 있는 열정과 삶의 양식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이를 인도하셨고 모든 것을 성취하셨음에 대한 확신을 유산으로 남겼다.
―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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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님, 그동안 <홀로 걸어서>를 통해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함께 느끼면서 자신의 삶도 함께 성찰하셨지요. 자신이 "참 무던히도 노력하고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예수회만이 이냐시오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유산은 아니다.이냐시오는 시대와 장소와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영성, 바로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유산으로 남기고 공동체 형제들이 그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사이에 동료들을 떠나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활동을 체험하고 어떻게 적절히 응답하는지를 가르쳐 주었고 그것은 전염성이 있어 나에게 까지 영향을 끼치나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외로웠던 날들과 나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홀로 걸어서'의 긴 영적여정을 마친다.
패랭이꽃님, 패랭이꽃의 꽃말은 순애, 순결한 사랑, 신중, 대담이라는데 꽃도 예뻐서 보는 이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렇듯 파랭이꽃님도 1, 2차 독서모임에서 함께 하신 분들과 마음으로 기쁨을 나누셨습니다. 이냐시오 성인께서 항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셨듯 그렇게 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냐시오의 죽음을 나는 미리 읽고 앞을 공부했다. 조용히 체념한 상태로 죽음 앞에 홀로 남은 이냐시오에게서 아주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고 준비된 그분과의 오롯한 시간을 나는 유심히 본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누구에게? 자식에게? 아니면 사람들에게? 모두 다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기억되고 싶으면 착한 사람이었다고?
그렇지만 한 가지. 그래. 그 사람은 크리스챤이었다고 기억되고 싶다. 천주학쟁이였다는 그런 말을 나는 들을 수 있을까?
이런 것도 다 부질없고, 나는 죽을 때 이냐시오처럼 '오, 하느님, 예수님!'하면서 죽고 싶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보리빵님, '오, 하느님, 예수님!', 이냐시오 성인을 그토록 닮고 싶으신 보리빵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때 행복을 느끼시겠습니다. 멋진 갈무리도 기대합니다. 조만간에 만나서 서로 기쁨과 행복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축하드리고요, 고맙습니다.
이냐시오가 남긴 예수회. 그 예수회를 통해서 그의 영신수련이 내게까지 전해졌다. 그에게 주신 은총이 500년이란 시간과 머나먼 길을 넘어 나에게까지 전해지도록 섭리하신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신 하느님, 그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천국에 있는 내게 전해지길 기대해 보며 독서를 마칩니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이렇게 음미하며 하느님께서 제 삶에 어떤 은총을 베푸셨는지를 돌아보며 읽을 수 있게 이 장을 마련하고 이끌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Christina님, 하느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순례길을 따라 "홀로" 걸었던 시간을 통해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깊이 깨닫게 되셨군요. Christina님의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갈무리도 정성으로 해 보세요. 그리고 조만간 함께 만나 그간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며 함께 희망을 쏘아봅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걸어서 그분의 마지막 죽음에 이른 지금 나도 먼 길을 걸어온 느낌이다. 마지막 죽음 아무 극적인 일도 없었고 동료도 울어주는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외롭게 끝까지 주님께 의탁하시며 돌아가신 성인,어쩌면 그분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거 같다. 죽음에서 그분의 삶이 느껴진다. 외롭고 고독하고 그렇지만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닮고 싶어한분.나도 그리 살고싶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닮고 싶어했다고. 그분의 삶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눈을 감으면 하늘을 처다보며 하염없이 눈물흘리시는 모습이 보이는듯 하다. 나도 그 열정을 사랑을 닮고싶다.
우주성님, 이냐시오 성인께서 걸으셨던 순례길을 따라 걸으면서 우주성님 자신을 성찰하셨던 모든 시간이 하느님과 함께 하셨던 시간이지요. 이냐시오 성인의 열정과 사랑을 닮고자 하는 우주성님의 마음도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것이지요. 멀리 계시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우리는 가까이 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유익한 갈무리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사랑으로 살았던 사람.
어떤 어렵고 힘든 일도 주님 안에서 풀며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사랑이 많고 따뜻한 사람.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와는 너무 다름을 아는 사람.
그래서 <아무것도 없이 홀로 떠나갔다.> 그렇게 떠나고 싶다.
처음 시작할 때는 쉽게 잘 따라갈 줄 알았는데 세상사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성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어, 밤이면 책상머리에 앉아 나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 몇년간 나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서 받은 상처를 여기서 위로받으며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끌어 주신 신부님, 함께 댓글 달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독서모임 님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흐르는 눈물로 나를
칭찬합니다. 고맙다. 포기하지 않아서. 참 잘했구나.
otill님, 쉽지 않은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셨네요.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세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잘 해내셨습니다.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여정이었기에 행복한 독서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순례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느님께 받은 위로가 앞으로의 삶에 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갈무리도 잘 해 보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냐시오는 예수회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성인께서 그야말로 평범하게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모습은, 생전에'가난한 순례자'로 살아오셨던 모습 그대로셨습니다.그토록 거룩하고 위대하게 사셨건만 끝까지 사랑안에서 하느님과 동료에게 온전히 내맡긴 겸허함과 가난함으로 가신 모습에 숙연함의 먹먹한 눈물이 났습니다. 넉달여만에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 오면서 이렇게 사랑하게 되다니,그분의 길에 열망 가득해지다니. 하느님과 성인께 감사드리며,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그리스도인',아니면 성인을 본받아 예수님만을 남기고서입니다. +성인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마뤼님, 사랑하게 되고 열망에 가득하게 되셨으니 과연 행복한 독서가 맞나 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순례길을 '홀로' 따라 걸으며 하느님께 위로 받고 자신을 성찰하고 함께 참여한 회원들과 나누었던 시간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갈무리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500여년 전 저 먼 나라에서 오직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길을 '홀로 걸어서' 갔던 아냐시오 성인을 시공을 초월하여 독서모임 분들과 만나 ' 함께 걸어서'로 이어져 이제 그분의 유산을 마음에 품고 내게 큰 감동과 친근함으로 다가오신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순례의 길을 새롭게 시작하려한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 온유한 사랑'으로 기억되고싶다. '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살고자 했던 사람'으로 ,,.
나도 임종 때 이냐시오 성인처럼 '오, 하느님,! 예수님을 반복하고 싶다. 지금부터 자주 반복해야겠다.
제비꽃님,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으셨던 이냐시오 성인께서 이제 제비꽃님의 삶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온유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살고자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그 마음이 제비꽃님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갈무리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홀로 걸어서" 자신의 길을 갔던 순례자 이냐시오, 그이는 홀로 죽었다. 극적 장면도 없었고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동료들도 없이, 그야말로 평범하게....희망이라는 보고 예수회를 유산으로 남기고... 나는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었다. 그리고 온유하고 누구라도 다가와서 말을 건낼 수 있는 편안한 이로 기억되고 싶다. "홀로 걸어서"의 여정에 독서 모임 가족들과 함께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고맙습니다.
마누엘님, '참으로 하느님을 믿었던 신앙인, 온유하고 누구라도 다가와서 말을 건낼 수 있는 편안한 이'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누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현실적 사랑이 마누엘님에게 삶의 지혜가 되기를 빕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 드리며, 고맙습니다.
이냐시오는 홀로였지만 하느님과 늘 함께 하였고
마지막 임종시 자신을 냉대와 의구심으로 대했던 교황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축복을 청하므로 자신은 교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고히 한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께로의 믿음과 신뢰(임종시 오 하느님!예수님)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순명을 소흘리 하지 않은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이었고 예수회의 창시자요 세상을 떠나셨지만 오늘도 내 가슴안에 살아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안내해주시는 영원한 스승이시다
나는 하느님으로 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깊이 아는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나 자신(이웃)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다
복숭화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나 자신(이웃)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매 장마다 성찰을 해야 하고, 그 성찰 내용을 짧은 댓글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힘드셨지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려는 모습을 하느님께서도 격려하시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축하 드리며, 고맙습니다.
지신의 길을 '홀로 걸어서'갔던 순례자가 아무것도 없이 홀로 떠나갔다. 그이는 자신의 뜻과 원의를 버렸다...그저 자신을 하느님께, 또 다른 이들의 뜻에 내맡기고...
이 책을 통해, 성인의 순례를 저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특히 인간적인 친밀함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인 '보편적인 선'을 향한 여정을 기도로 청합니다. 저도..하느님의 사랑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매 장마다 눈물로 통회하고 감사하는... 정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형제, 자매님들과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abstinence님, 참으로 진지하고 충실한 태도로 이냐시오 성인의 순례길을 따라 걸으셨지요. "정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그이는 홀로 죽었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떠나갔다.
정말 그럴까요. 이냐시오 성인이 반복한 말을 되새겨 봅니다. '오, 하느님! 예수님'
성인곁에는 하느님과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저도 마지막날에 오, 하느님, 예수님하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마지막까지 옆에 계시고 바라봐 주시는 하느님을 온전히 맞아들이며...
이런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런 장을 펴주신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냐시오는 홀로 걸어갔지만 저희들을 기도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갈릴리호수님, "성인 곁에는 하느님과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맞습니다. 갈릴리호수님도 성인처럼 살고 싶다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축하 드리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