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게슈탈트심리치료의 정신-병리이론
개체의 모든 활동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게슈탈트의 형성과 해소는 환경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개체와 환경의 교류접촉은 접촉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접촉경계란 개체와 환경간의 경계를 의미한다. 경계는 움직이는 유동적인 것인데, 이는 두 개체를 분리시키면서 동시에 만나게 해준다.
인간에게도 각자 자신의 영역이 타인의 영역과 구분되는 경계가 있어야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다.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서로가 제대로 접촉할 수 없어, 성장에 장애가 생긴다. 건강한 개체는 환경과 교류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를 열어 받아들이고, 환경에서 해로운 것이 들어오면 경계를 닫음으로서 자신을 보호한다. 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유기적인 교류접촉이 차단되고, 심리적 생리적 혼란이 생겨 이것을 접촉경계혼란이라고 한다.
1. 접촉경계혼란은?
①개체와 환경과의 경계가 너무 단단하면 자양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②경계가 너무 불분명하면, 들어오는 해독을 막지 못하며,
③경계가 상실되면 개체의 정체감이 없어져 버린다.
접촉경계혼란은 개체와 환경의 유기적인 접촉을 방해하게 되어, 개체가 미해결과제를 쌓게 되어 환경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결국 정신병리 현상은 접촉경계혼란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이는 심리적 생리적장애란 미해결과제와 동일한 개념이다. 퍼얼스는 접촉경계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개체와 환경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둘 사이에 중간층 같은 것이 끼어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개체와 환경이 직접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현상을 마야maja라고 했는데,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것에 비유했다. 마야를 걷어버리면 우리에게 불현듯이 깨달음이 온다. 선입견에 빠져있거나, 과거에 집착하면서, 혹은 일어날 일을 걱정하면서 사는 마야의 삶을 벗어나야, 온전히 존재하는 세계와 제대로 접촉하게 된다. 접촉경계혼란으로 개체는 자신의 유기체에너지를 환경과 효과적으로 교류하고 접촉하는데 쓰지 못하고, 공상이나 환상 같은 무의미한 활동들에 분산시킨다. 접촉경계혼란이 심해지면 신체경계까지 흐려져 심리적인 불안을 허기로 잘못 지각하여 먹는 행위로 대처하기도 한다.
퍼얼스는 접촉경계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으로서 내사, 투사, 융합, 반전, 자의식을 들었고, 폴스터는 자의식을 빼고 편향을 추가시키면서 이들을 접촉경계혼란행동이라고 부른다. 어디까지나 진단체계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퍼얼스는 내사를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고, 투사를 하는 사람은 타인이 자기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타인에게 하며, 병적인 융합관계에 있는 사람은 누가 누구에게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반전을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하고 싶은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한다. 내사를 하는 사람은 타인을 자기 자신으로 잘못알고 있고, 투사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타인의 것으로 잘못지각하며, 융합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못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데, 반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두 부분으로 분열되어 있어, 자기 자신과 행동을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현상이므로 접촉경계혼란을 일으킨다.
2-게슈탈트심리치료의 정신-병리이론
1) 내사 - 개체는 환경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소화하고 동화시킴으로서 성장해나간다. 이는 치아공격성이라고 하는데, 음식의 일부를 파괴하여 신체의 일부로 동화시킨다. 삼킨 음식물은 그대로 남아 병을 일으킨다. 이는 주위의 관계에서 주장이나 가치관을 따져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체가 환경으로부터 개체의 공격성을 제지당하게 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동화되지 못한 즉 개체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악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이 되어 내사introjection이 된다.
개체는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인지하지 못하고, 내사된 것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물질을 파괴하고 소화하는데 사용하여야 할 공격성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여 자신을 괴롭히거나, 외부로 투사되어 편집증적 공포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얌전해라. 착하게 굴어라. 부모님께 순종해라. 성징부리지 마라.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남에게 동정 받지 마라. 얕보이지 마라. 함부로 나서지 마라. 등 대부분이 개체의 자율적인 행동을 억누르는 초자아의 명령으로 문화적인 영향이 많이 작용한다.
자기 것으로 동화시키지 못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내면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진정한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모른 채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데 익숙해져 피상적이고 판에 박힌 행동으로 깊은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흔히 조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하게 되어 타인의 것을 그냥 삼키려는 태도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더 의식하면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면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은 받지만, 내면세계는 축적된 미해결과제로 인해 분열되게 된다. 내사된 도덕적 명령들과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 ‘자기고문게임’에 빠지거나 내사된 것들을 타인에게 투사하고서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사는 타인과의 경계를 흐리게 하므로 접촉경계혼란을 초래하고 미해결과제를 증가시켜 개체를 부적응상태에 빠뜨린다.
퍼얼스는 신경증의 원인을 부모태도의 나쁜 측면과 동일시로 보았다. 좋은 측면은 쉽게 동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반하여, 나쁜 측면은 내사된 상태로 개체 속에 남아 개체의 통합성을 방해하여 장애를 일으킨다. 즉 나쁜 부모의 메시지가 자기 경계혼란을 일으켜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좋음과 나쁨은 어느 부모나 양면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어떻게 지각하고 받아들이느냐의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신경증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 대표적인 경계 장애이다. 치료란 어느 것이 자기이고, 어느 것이 자기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내사는 심리치료에서 되풀이해서 보이는 전형적인 사고나 행동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과 내사된 부분인지를 구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결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부모이미지 심기’를 강조한다.
부모나 사회의 부당한 요구와 기대로부터 결별하고, 자신의 경계를 확실히 느끼도록 해주는 것, 빈의자기법을 사용하여 못다 한 말을 시키는 것, 그때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 과거경험과 자신의 행동의 연계성을 자각시켜준다. 현재 사회에서 하는 행동이 과거 부모에게서 했던 행동과 연계성을 발견한다면, 부모 애정의 거부, 결별선언을 하도록 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집에서 쫓아내겠다. 다시는 안보겠다. 등의 말을 듣는 순간 신체감각을 자각시켜주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를 자각시켜 어린 시절 내사에 대해 더 이상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이때 부모와 결별작업은 버림받은 기분, 절망감으로 자살충동을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부모와의 애도작업’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상담자의 가치관이나 요구는 나쁜 내사를 ‘일시적으로 좋은 내사’로 대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부모의 내사보다 엄격한 내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개체의 추가적인 노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 투사 -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 감정 등을 타인의 것으로 지각하는 현상을 투사projection라 부른다. 자신이 타인에 대해 애정이나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타인이 자신에게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지각한다거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면서, 타인이 자기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이는 두려움으로 인해 책임소재를 타인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투사의 의미가 정신분석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현실왜곡이 병적으로 심각한 정도가 아니래도, 선택적 지각현상이 일어나면 투사로 본다. 창조적투사는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 대처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사용하는 행위와, 병적인 투사는 직면하기 힘든 자신의 내적인 욕구나 감정 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를 지칭하며, 보통은 후자를 말한다. 투사는 미움, 질투심, 분노감도 있지만, 부드러운 감정이나 자신감, 창조적에너지 등도 투사가 된다.
투사는 욕구가 좌절되는 것보다 고통을 덜 받게 되기 때문에 사용된다.
폴스터 등은 투사가 내사의 영향에 의해 생긴다고 말한다. 개체에 내사된 가치관이나 도덕적 규범이 개체로 하여금 그의 특정한 욕구나 감정, 생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인의 것으로 지각함으로서 투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인관계갈등은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서 나타난다. 악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타인의 것으로 보는 것이 편하다. 예로 인종차별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위장하고 있을 수 있으며, 독재자를 타도하자고 하는 그 사람은 내면에 독재자의 성향이 꿈틀대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내사된 가치관 때문에 억압하고 있는데, 타인이 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제껏 억압해 온 자신의 충동이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나 행동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욕구나 행동경향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투사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심리를 근거로 해서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투사행위를 모르고 있을 때 발생한다. 자신의 악을 타인과 환경에 투사하여 싸우거나, 지신속의 잠재력과 창조적인 힘을 타인이나, 기타 외부대상에 투사해 버릴 때 생긴다. 융과 니이체는 개체로부터 수용되지 않은 인격의 부분을 ‘그림자’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투사는 개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견해를 흐리게 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저해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그림자를 외부에 투사하는 것은 자신인격의 한 부분을 적대적인 쪽에 남게 되고, 이렇게 한 소외된 그림자는 마침내 개체의 적이 되어 개체에게 보복을 가해온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를 자각하고 받아들여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게슈탈트심리치료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 욕구, 행동이 우리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이해할 때 좀 더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가면서 우리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갈(gestalten)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좋든 싫든 우리의 삶은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더 이상 병적인 투사에 의해 내적, 외부갈등과 대인갈등에 빠져들지 않고 실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투사는 자신의 유기체 욕구를 자각하고 접촉하며 해소하는 과정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접촉도 방해한다.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나의 생각, 나의 욕구로 상대편을 지각하게 만듦으로서 타인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 진정으로 타인을 만나려면 자신의 내부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억압된 생각이나 충동들과 접촉을 갖게 되어 차츰 화해를 하게 되고, 그러면 차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올바른 접촉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문제는 성격의 긍정적인 측면들과 관련해서 양극성의 부분들 중에 자신감, 따뜻함, 부드러움 같은 것들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거나 잘 접촉되지 않는 내담자가 자신의 이런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타인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에게 의존하려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즉 파트너에게 이런 현상을 보였을 때, 긍정적 속성을 투사하였기에 상대를 쫓아다닌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기에 얼마못가 실망과 짜증을 초래한다. 건전한 대인관계를 위해선 각자 자신의 내적측면들을 골고루 접촉하고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는 투사를 통하여 문화를 물려받아왔다. 어렵고 고통스런 사실을 직면하는 것보다 외부로 투사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그래도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사는 접촉경계혼란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천이므로 지금 여기에 깨어있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장애이므로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사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 접근법이 있는데,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지각과 거꾸로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내담자에게 내담자 자신이 상대를 미워한다고 구체적으로 이유를 들어 설명하게끔 시키는 것이다.
투사를 심하게 하는 내담자의 경우, 대개 자기 경계가 경직되어 있고, 타인과의 교류접촉이 별로 없으며, 피해의식도 많다. 이들은 자신감이 없고, 타인의 이목에 예민하며, 심한 방어를 보인다. 투사를 거두어들이고 타인과의 접촉을 강화시켜주기 위해서는 내담자와 신뢰감형성이 중요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내담자의 시각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3) 융합 - 융합confluence이란 밀접한 관계에 잇는 두 사람이 서로 간에 차이점이 없다고 느끼도록 합의함으로서 발생하는 접촉경계혼란이다. 마치 일심동체와 같은 것, 의존관계에 빠져 있다. 융합관계에 있는 사람은 태아와 어머니관계 처럼 서로 간에 경계가 없다. 마치 하나의 개체인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 이러한 관계를 깨트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위협으로 느낀다. 그들은 서로 간에 갈등이나 불일치도 용납하지 못한다.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포기하고 그대가로 얻은 안정을 깨트리려는 행위는 서로에 대한 암묵적인 계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분노와 짜증을 사게 된다. 퍼얼스는 죄책감과 짜증은 융합관계에 위협이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한다. 죄책감은 융합관계를 위반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으로 빚진 느낌이고, 짜증은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 쪽에서 내보이는 감정으로 빚갚기를 요구하는 분노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융합관계를 복원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하는 검정이다. 융합관계에 있는 사람은 서로 아무런 새로움도 없이 서로에게 매달려 진부하고 생기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융합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관계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자면 삶의 활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서로 간에 불일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는 중대한 위협을 초래하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위해 애를 쓰게 된다. 의견불일치가 생기면 그들은 의견조율이나 의견이 다르다는 데 합의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융합관계를 회복하거나 고립 속으로 도피하는 것 중 한 가지 행동을 한다.
융합관계를 복원시키고자 할 때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적합하게 하는 경우로,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되어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과 상대편을 설득하거나, 강요하거나, 협박하여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이다. 융합관계는 공허감이나 고독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고 유지되는 축면이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은 공포감이 있다. 그들은 개성과 주체성을 포기하고 타인과 합치는 것이 고독감과 공허감을 직면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보호받는 위치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보호하는 위치에 있지만, 서로 유기불안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융합관계를 체험한 내담자는 분리공포를 갖고 있고, 버림받고 고립상태에 있던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삼켜지는 공포를 갖고 있다.
치료초기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을 완성하는 게임을 시켜보면 내담자의 두려움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융합을 보이는 내담자는 “여러분이 저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와 같은 말을 하고, 삼킴을 당하는 공포감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이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건강한 융합은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는 현상으로 단체에서 자기 팀을 응원하는 경우이다. 반면 불건강한 융합은 알아차림과 접촉이 결여로 생생함과 흥미진진함 같은 것이 없다. 독립적인 개체가 상대편과 접촉하게 될 때, 개체는 즐거움과 슬픔, 고통 등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체험하게 된다. 진정한 접촉은 모험적이고 역동적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 열매는 생동감 있고, 창조적인 유기체의 삶으로 피어나게 된다.
문: 어떤 일로해서 죄책감이나 짜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 같이 죄책감이나 짜증을 느끼게 됩니까?
이러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한다면 죄책감이나 분노감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에 자신의 접촉영역을 확대할 방법을 강구해 보십시오.
융합은 경계선성격장애 환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욕구가 무엇인지,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치료는 경계를 그어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신의 욕구를 자각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가르치는 한편, 부족한 자신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내담자는 의존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아정체감이 약하기 때문에 지지치료를 해야 한다. 집단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적이거나 평가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줘야 한다. 상대편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질문으로, “지금 어떻게 느끼십니까?” “지금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내담자 자신이 유일하고 독특한 개체임을 느끼고, 타인과의 차이를 명확히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하는 연습이 된다.
치료 중에 내사된 메시지의 저항에 부딪히면, 대개 심한 죄책감을 느껴 좌절하여 독립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상담자는 인내를 가지고 내담자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이해해주는 동시에 재도전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4) 반전 - 반전retroflection은 개체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대하여 하고 싶은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 타인이 자기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행동을 스스로 자기에게 하는 것을 뜻한다. 즉 타인이나 환경과 작용하는 대신에 자신을 행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타인에게 화를 내는 대신에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타인으로부터 위로 받는 대신에 자위하는 것 등이다. 개체가 부모와 환경의 태도를 자신의 인격 속으로 내사하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때 개체는 내사로 인하여 내면세계가 두 부분으로 분열되어 한쪽은 행위자로, 다른 쪽은 피행위자로 되어 개체와 환경간의 갈등이 개체의 내부갈등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은 처음엔 의식적으로 행해지지만, 나중에는 차츰 습관화되어 마침내 무의식적으로 된다.
반전에서는 자신의 일부와 접촉하고 있을 뿐, 타인, 환경, 억압된 측면과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 반전을 보이는 내담자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함을 상실한다. 이런 사람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에 내적대화를 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접촉을 피한다. 나 자신에게 화난다. 나 자신이 부끄럽다. 나 자신을 달랜다. 자신을 스스로 통제해야만 한다. 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예로 다른 사람이 놀려서 화가 난 상태에서 분노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바보짓을 하면 안 돼! 실수하면 안 돼! 하면서, 놀려대는 사람들에게 대한 분노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서 자신의 공격적 충동을 통제한다. 반전은 이러한 행동이 반복됨으로서 형성된다. 이때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를 통제하여 내적인 긴장상태가 생긴다.
유기체의 에너지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한 부분은 밖으로 나가려는데 쓰이고, 다른 부분은 이를 붙드는데 투여된다. 내담자는 양쪽의 에너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신체근육의 긴장과 통증으로만 느낀다. 치료는 자신의 에너지가 신체적으로 변형되어 표출되고 있는 것을 자각시켜주고, 그 에너지를 접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체가 자신의 욕구를 억제함으로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성장과정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반전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유기체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반전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구나 충동을 통제하는 효과를 갖는 동시에 방향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해소하는 기능도 있다. 부모에게 화를 내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게 화풀이를 함으로서 부모로부터 처벌을 피할 수 있고, 자신을 벌함으로서 일종의 가학증적인 쾌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공격함으로서 타인을 공격하는 것보다 죄책감을 덜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어릴 때 돌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아이는, 타인으로부터 요구하는 대신에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 나선다. 이런 사람은 값비싼 옷과 자동차를 싸서 스스로를 ‘호강’시킨다. 나의 부모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어서 내적인 공허감을 지니고 산다. 이런 사람이 불행한 것은 세상 사람이 자기 엄마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검증해보지 않고, 또 믿으려하지 않고, 미리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해주지 않는 행동은 스스로에게도 허용하지 않고, 늘 자신을 감시하며, 유기체 욕구를 전적으로 억압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타인을 만지거나 애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의 몸도 만지지 않는다. 성적억압은 자위행위도 하지 않는다. 치료는 우선 자신과 친밀해지는 것부터 가르쳐야한다. 먼저 자위행위부터 가르친다.
강박증상은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욕구나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자기의 부분과 이를 제지하려는 자기 부분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개체는 욕구를 표출시키려는 부분과 이를 억압하려는 부분으로 분열된다. 유기체의 억압의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이를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려고 하고, 내면의 다른 부분은 이를 위협으로 느끼기 때문에 계속 억압함으로서 내전상태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강박증상이다.
열등의식은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행동으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적인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퍼얼스는 자기교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열등의식이 개입될 때, 자신에 대한 평가기준이 타인에 대한 평가기준보다 더 높다. 이때 열등의식 배후에는 우월감이 있다는 것이다. 열등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대신에 타인을 평가하고 비난하게 시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열등감이 단순히 ‘자기학대게임’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실험을 계속하면 반전행동을 호전시킬 수 있다.
자기관찰은 자기가 관찰자와 관찰대상으로 나뉘어져 자기를 대상화시키는 것이다. 외부환경과 관계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과 관계함으로서 환경과 접촉하지 못하고 자기 속에 갇히게 된다. 자기관찰의 극단적인형태는 건강염려증 환자들이다. 자기관찰(자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대상적으로 관찰=분열)과 알아차림(자기가 분열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체험)은 구별해야 한다. 퍼얼스는 자기관찰이 어떤 물체를 불빛으로 비추는 것이라면, 알아차림은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죄책감은 퍼얼스는 투사된 분노감이라고 하고, 풀스터는 반전된 분노감이라고 했다. 폴스터는 개체는 자신을 양분시켜 행위자와 피행위자의 두 부분으로 분열되는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죄책감이라고 했다. 여기서 화를 내는 부분은 부모를 내사한 부분이고, 공격을 받는 쪽은 원래의 자기라고 볼 수 있다. 부모가 무섭기 때문에, 부모가 불쌍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향하는 데, 이때 체험되는 감정이 죄책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책감을 분노감의 반전이라고 보았다.
투사로 설명되는 것은 분노감을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이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억압하는 한편, 부모에게 투사하여 부모가 자기에게 분노하는 것으로 지각할 수 있다. 이때의 부모는 내사되어 있는 부모이며, 이러한 내사를 자신으로 착각하고 있으므로 결국 자기가 자신에게 분노하는 현상, 즉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개체는 죄책감을 느끼는데, 부모에게 꾸중을 들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죄책감은 투사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죄책감은 분노감이 투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만성두통이나 고혈압, 소화기장애, 호흡기장애 등의 정신신체질환들은 반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애이다. 울음을 참거나 분노감을 억압하거나 유기체의 자연스런 운동을 강제로 억압하면, 이것이 신체긴장으로 바뀌고, 그 결과 정신신체질환으로 나타난다.
인격무장은 긴장으로 전환되어 신체적 고통과 불편으로 나타나 반전을 하게 되면, 근육운동만 느껴질 뿐, 원래의 유기체욕구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빌헬름 라이히는 개체가 만성적인 반전을 하면 신체가 마치 딱딱한 갑옷처럼 되어 방어막을 형성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퍼얼스는 대부분의 반전은 분노감정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였다. 분노는 개체의 미해결감정의 하나로 이를 차단시켜 반전하면 수도관이 막힌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분노감정의 차단은 다른 정서가 형성되지도 표현되지도 못한다. 분노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미해결과제로 남아 개체가 다른 긍정적인 감정을 체험할 기회를 막아버린다.
우울증도 반전된 분노감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울증환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분노나 불만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반전시킴으로서, 죄책감에 빠지고 우울하게 된다. 이러한 반전이 심해지면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데, 자살은 개체가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자신에게 향함으로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반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며, 항상 병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관찰자와 피관찰자로 나누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체가 적개심을 통제하고, 자신감을 통제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상황에 따라 욕구의 직접적인 표출이 불이익,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도, 개체가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건강한 심리작용이다. 다만 만성화되고, 무의식적으로 되어, 개체의 의식적인 통제를 벗어나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될 때 병적이라고 하겠다. 반전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5) 자의식egotism - 개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타인의 반응을 의식하고 관찰하는 현상 때문에 생긴다. 자신의 행동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의식을 통하여 모든 것이 지나치게 계산되고 의식화될 때, 개체의 행동은 자연스러움이 없어지고 인위적이 된다. 관찰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타인과 접촉도 못하고,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해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을 병적으로 관찰하며 긴장상태에 산다. 자의식이 많은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지만, 거부당할까 두려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의식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의 욕구에 의해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당황해서 매우 불안해지고, 신체적으로 심한 긴장을 느낀다. 대인공포증도 대표적인 예이다. 타인이 볼 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자신의 행동이나 신체증상에 신경을 쓰며,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과도한 걱정을 한다.
자의식은 자신의 자애적욕구를 의식하고 있지만, 이를 행동을 통해 표출하지 않고 제지함으로서 갈등상황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다. 자의식은 반전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으로 개체가 자신의 주의에서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나, 분노를 느끼는 대상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향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행동을 억제하여 엉거주춤하여 어색해지고, 자신의 어색해진 모습을 알아차리고 의식할 때 생기는 의식 상태로, 이때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 욕구나 감정은 억압되지도, 투사되지도, 행동으로 옮겨지지도 못해 의식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자의식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타인이 받아들이기 곤란한 요구를 할 때, 잘라 거절하지 못하면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과 알아차림의 구별은 예로 어떤 사람이 춤을 출 때, 마음과 몸, 음악이 하나 되어 통합적으로 체험되어야 하는데, 춤추는 파트너나 구경꾼들을 의식하여 온전히 음악에 몰입하지 못하면, 알아차림은 사라지고 자의식에 빠진다. 자의식은 무언가 억제되어 표현되지 않은 것이 있고, 따라서 미해결과제가 있는데 반해, 알아차림에서는 미해결과제가 없다. 개체가 타인에게 투사하기에는 너무 많이 자각하고 있어 불가능하다. 이러한 충동은 중간층에 머물러 접촉경계혼란을 일으킨다. 이때 개체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투사된 검열 때문이다.
검열이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못한지 검사를 해보고, 바람직한 행동은 하도록 내보내고, 그렇지 못한 것은 행동화 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투사된 검열이란 자신 속에 존재하는 검열을 타인이 자기에게 갖는 생각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즉 자신의 검열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가치판단을 타인에게 투사한 것이다. 설령 타인이 나의 행동을 나쁘게 본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을 나쁘게 보지 않고, 검열하지 않으면 자의식은 생기지 않는다. 자연스러움과 자발성이 결여된다.
사실 살아가면서 자의식은 불가피하고, 가치가 있는 측면도 있다. 자의식이 전혀 없다면 일을 서둘러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고, 그 결과 개체가 성장하는데 방해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나칠 때 문제가 된다. 자의식은 자신이 낭패를 당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고, 타인으로부터 배척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은 개체에게 새로운 경험을 허용하지 않아, 권태와 고독에 휩싸이게 되어, 이를 피하기 위해 알콜이나 마약으로 도피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점잖은 신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구축한 분석의 세계 속에 도피해서 산다.
자의식은 백일몽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공상적인 세계로 도피하는 점에서 비슷하다. 백일몽을 많이 꾸는 사람일수록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순간이 오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자의식에 빠진다.
자의식치료를 위해서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구나 감정, 관심 등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이를 다시 말이나 행동, 예술행위 등으로 표현하게 해주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환경자각 쪽으로 전환시켜주는 것,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 행동의 관심을 외부활동이나 일에 열정을 기울이고 심취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잊어버려 에너지의 흐름이 정상화되어 억압된 미해결과제가 해소된다. 결국 내담자가 타인의 관심의 초점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지나친 자애적욕구를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지나친 자애적욕구가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만들고 자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심한 내담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들을 찾아내어 해결을 보려는 욕심을 낸다. 과도한 자애적 욕구와 자기집착은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거부당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지나친 ‘’완벽한 준비로 ‘문제해결’에 집착함으로서 자연스러운 환경과의 접촉을 하지 못하게 된다.
치료의 부작용은 내담자가 완벽하게(자각하고, 표현하고, 유기체적 삶)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게슈탈트치료가 내담자를 옭아매는 틀이 되어 그들을 구속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어떠한 이론도 그 자체로서 완전할 수 없으며, 이론의 가치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지침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론에 매달리는 것도 완벽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치료의 완결단계에서 현실적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에 매달리거나 완벽을 기하려고 할 때는 내담자의 불안을 수용하는 동시에 서서히 현실과 접촉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게슈탈트치료에서는 자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명상기법은 내담자의 과잉통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과 자연, 우주와의 관련성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무한대의 공간과 무한연속의 시간을 명상해봄으로서 자아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명상을 통하여 자신 속에서 갇혀있던 자의식에서 벗어나 무한한 세계로 자신이 확대되며,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체험한다.
치료의 종결단계에서는 자아를 놓아버리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만나고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상과 하나가 되어보는 연습, 자아를 버리고, 무심한 상태에서 사물을 보고, 듣고, 느끼며 접촉하는 것이다. 게슈탈트치료에서는 저항, 거부, 도전하는 것을 많이 강조한다. 한편으로 체념하고 그만하면 됐다고 자족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체는 충분한 만족감을 가지면 자기집착과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게슈탈트의 완결이란 어떤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서 그것들을 일단락 짓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체험을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족함으로서 그 체험을 완결 짓는 것이다.
6) 편향deflection - 환경과의 접촉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결과가 예상될 때,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환경과의 접촉을 피해버리거나, 자신의 감각을 둔화시켜버림으로서 환경과의 접촉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예는 말을 장황하게 하거나, 초점을 흩트리는 것, 상대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웃어버리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맴도는 것, 자신의 생각을 차단시키는 것 등이다.
개체는 편향을 사용함으로서 만일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좌절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현재 존재하는 고통을 덜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향이 습관적이 되면 개체는 타인이나 환경으로부터 고립되며, 삶의 활력과 생동력이 감소되어 무기력해지게 된다. 개체는 심리적 갈등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편향시킴으로서 부정적인 감정은 덜 느끼게 되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감정도 차단되어 버리므로 편향을 통해 삶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알아차림과 접촉을 차단하는 면에서 편향은 반전과 유사하다. 반전은 신체현상을 수반함으로서 관찰 가능한 외현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편향은 감각적인 기제를 통해 지각을 차단하거나 추상적, 개념적사고 작용으로 나타나므로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잘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편향도 자세히 살펴보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든지,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사용한다. 등의 특징적인 행동이 있다.
편향은 개체가 불안, 죄책, 갈등, 긴장 등 여러 가지 부적인 심리상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적응기제의 하나이다. 그 중 불안의 방어는 개체가 체험하는 다양한 종류의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에 총체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없는 흥분, 억제된 흥분에너지라고 퍼얼스는 말했다. 개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나 감정을 느낄 때, 흥분에너지가 동원되지만, 개체는 그 순간 흥분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초래되는 좌절상황을 예상해 호흡을 멈춤으로서 흥분을 억제하게 되는데, 그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따라서 불안이란 해소되지 못한 흥분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다. 편향은 불안을 막는 방법으로 흥분에너지 자체를 피해버리거나, 둔화시키는 책략을 택한 것이다. 즉 흥분에너지 자체가 줄어듦으로서 해소되지 않은 흥분에너지가 적고, 따라서 불안이 덜 느껴지는 것이다. 그 대가는 삶의 활기와 생생함이 사라져 덤덤해진다. 그러면
바른 해결책은 무엇인가? 개체가 미래를 생각지 않고 지금 여기에 충실히 몰입할 수 있다면 흥분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되고, 불안은 체험되지 않는다. 퍼얼스는 불안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간격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내담자의 불안과 갈등상황을 마치 그것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처럼 상상하면서 ‘시연’해 보도록 시켜 불안을 극복하게 한다.
흥분은 알아차림과 접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알아차림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것도 흥분이 있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유기체의 활동에너지인 흥분을 지각하는 것이고, 접촉은 이러한 에너지를 받아들여 행동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흥분은 불안을 초래할 수 없기 때문에 편향을 사용하여 흥분을 억제하거나 마비시킨다. 결국 흥분을 줄임으로서 삶의 생기와 활력을 줄여, 권태와 무력감, 공허감과 우울감에 빠진다. 게슈탈트치료에서는 흥분을 인생의 가장 훌륭한 가치로 찬양하고 격려하므로 편향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집단상담의 초기에는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 심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투사와 편향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방어 작용은 일시적일 때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자기조정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방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치료시에는 방어를 지적하고 직면시켜야 한다. 편향을 심하게 하는 내담자에게는 질문이나 요구, 도발, 간청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흥분에너지를 접촉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말을 장황하게는, 간결한 문장을 쓰게끔, 지적으로 사소하게 보이도록 하는 내담자에게는 느끼는 감정을 물어보게 하여, 자신의 감정에 직면하도록 해준다. 편향을 보이는 내담자는 신체감각 도 억압하고 있어 다음과 같은 지시문으로 신체지각을 높여 준다.
3. 신체지각을 높이는 방법
당신의 신체감각에 온전히 집중하시오. 당신의 주의를 온몸으로 고루 보내십시오. 빨리 이완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당신의 신체감각을 느껴보십시오. 고통스러운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 피하지 말고, 느껴보십시오, 이 연습을 통하여 당신은 차츰 당신의 감각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당신은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져서 고통과 기쁨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4. 여섯 종류의 접촉경계유형에 대해 알아보았다.
각각의 접촉경계혼란장애들은 서로 기능적이고 과정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제각기 구분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접촉경계혼란들은 개체가 자기경계가 혼란되어 자신과 환경과의 알아차림이 중간층에 머물면서 환상과 공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접촉경계혼란을 극복하면 개체는 유기체의 현실을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잘 접촉을 통하여 성장변화가 된다. 폴스터는 접촉경계혼란이나 경계장애라는 말 대신에 ‘자기조정기제self regulatory mechanism’라는 말을 선호하였다. 즉
유기체는 자신의 정상적인 반응능력을 넘어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 처하게 되면 스스로 조정능력을 동원하여 그 상황에 대처하는데, 그때 나타나는 반응방식이 바로 내사나 투사, 융합, 반전, 편향 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단을 동원하여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학습방법이다. 더 나은 창조적인 대응방식은 나중에 뒤따른다고, 내담자가 치료 상황에서 보이는 저항행동도 대부분은 자기조정능력을 동원한 최선의 행동이었으므로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6가지의 접촉경계혼란도 내담자의 특정행동을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게슈탈트치료자들은 과정중심의 평가를 하는데, 접촉경계혼란 개념을 토대로 내담자가 갖는 접촉의 질을 분석 평가한다. 그들의 경계는 튼튼한지, 경계의 혼란이 있는지, 있으면 어떤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지, 외부환경과의 접촉에 기꺼이 응하는지, 거부당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타인과 접촉을 하는지, 접촉을 회피하고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접촉을 철회하는 순간은 언제이고, 어떤 상황에서인지 등을 점검한다. 결론적으로 접촉경계혼란의 개념을 임상진단체계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를 내담자의 현재 어려움을 이해하고, 치료적 방향을 수립하고, 치료효과를 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5. 펄즈의 분열적 성격
우리는 '현재' 이것을 하면서 '미래' 저것을 생각하고 '과거' 그것을 느낀다. 이는, (분열적 성격) - 생산적이지 않다. 뒷북치는 인생이다. 지금 여기에 있어라(here & now). 해야 할일은 지금하고 떠오른 생각은 여기서 해결하라. '지금 하고'에 걸리고 '해야 할일'에 걸리는 것이 분열이다. 미래에 가 있다는 것은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떠오를 때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이 났구나,'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도록 주시한다. 그리고 바라보고 지워준다. delete버튼을 눌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