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De ipsa natura. sive de vi insita actionibusque creaturarum. 1698(De la nature en elle-même ou De la force inhérente aux choses créées et de leurs actions)
F. Duchesneau,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 1277. (P.2190.)
- Godefridus Guilielmus Leibnitius: 아래 라틴어 원문(De ipsa natura 1698), 참조
- 뒤세스노(François Duchesneau, 1943-) 캐나다 철학자. 몬트리올 대 교수, 라이프니츠 전공자.
** 이 작품 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De ipsa natura. sive de vi insita actionibusque creaturarum. 1698(De la nature en elle-même ou De la force inhérente aux choses créées et de leurs actions)에서는 자신의 동역학 이론으로 자연의 내적 활동을 설명했다고들 한다. 말하자면 당기고 미는 중력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생산, 창조)하는 능동적 힘의 활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하기에 이른다. 자연의 내적 활동을 말하게 되면, 신의 창조설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물론 라이프니츠는 이 내재성의 권능이 신이 먼저 만들어 놓은 방식과 양태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 미심쩍게 다루었던 자연(아페이론) 안에 능동적이고 자율적이 자발성이 있다는 사유에 까지 이르면, 라이프니츠는 르네상스를 벗어나 새로운 사유의 시대를 여는 셈이다.
그럼에도 라이프니츠는 충실한 크리스트교 신앙인이다. 신의 창조와 창조 속의 인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변신론을 쓰게 되고, 모나드론을 쓰게 되는 것은 신의 창조가 아름답고 착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모든 저술들에서는 라이프니츠는가 신앙을 해롭게 하는 데카르트주의에 반대했다고 한다. 라이프니츠 자신도 역능의 능동성을 수용하면 크리스트교 신앙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53PKH)
* 평자는 「궁극적 근원의 사물에 관하여(De rerum originatione radicali. 1697)」에서 “이런 근원(cette source, 샘)”(fons: 매우 플로티노스적인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 3번 반복된다. - 정확하게는 fonte라는 용어가 세 번 나온다)이란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번 원문(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1698))에서 한번 나오는 ‘흐르는 형이상학적 샘’(metaphysico fonte fluxisse)에 관한 표현은 앞선 논문의 연속으로 플로티노스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의 궁극적 근원에 대해 사물자체가 근원(기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생각일 수 있다. 즉 사물자체가 자기 활동한다는, 또는 자연이 그 자체로 능동적인 활동한다는 생각은 유일신앙의 독단으로부터 벗어날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작동하고 감내하는 권능(puissance d’agir et de pâtir)에 관한 개념은 스피노자에서 쓰인 작동하는 권능(potentia agenda ?)이란 용어가 본문 안에는 없지만 권능(potentia, 역능)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일 수 있지만),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스피노자의 사유를 불러온 것 같다.
게다가 ‘모나드’라는 용어가 이 평자의 ‘해제’에서 언급하기를, 이 개념 모나드가 이 논문에 앞서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궁극적 근원의 사물에 관하여(1697)」와 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1698) 사이에는 라이프니츠의 다작(多作)으로 보아 많은 논문들이 있었으리라. 그 논문들 중에 한 논문에서 ‘모나드’의 언급이 있었을 것이고, 이 해제에서는 그것[논문]을 소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53PKH)
참조: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 담론(1686)이래로 사물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실체들의 본성과 소통에 대한 새로운 체계, 또한 영혼과 신체 사이의 통합에 대한 새로운 체계(1695)」와 「궁극적 근원의 사물에 관하여(1697)」 다음에 나올 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De ipsa natura. sive de vi insita actionibusque creaturarum. 1698), 이 세편이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전환기인 것으로 보인다. 사물 또는 물체는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힘 또는 에너지가 능동성 또는 자발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로서 플라톤보다 플로티노스와 연관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피노자의 자연자체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53P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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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De ipsa natura. sive de vi insita actionibusque creaturarum. 1698(De la nature en elle-même ou De la force inhérente aux choses créées et de leurs actions)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슈투름(Johann Christoph Sturm, 1635–1703)과 [의사이며 해부학자인] 셸하머(Günther Christoph Schelhammer, 1649–1716) 사이의 논쟁의 경우에서, 라이프니츠(1646-1716)는 자신에 맞는 격률(la maxime)의 판본을 정의하고자 시도한다. 그 격률에 따르면, 모든 것은 자연 속에서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의 법칙들을 토대로 하여, [그는] 능동적 역능(la puissance, 권능) 보존의 원리를 자리잡게 한다. 게다가 기회원인론적[말브랑쉬류의] 가설에 반대하여, 창조된 사물들에 내재하는 법칙을 마치 형상처럼 즉 힘 또는 자연처럼 재현(표상)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 자연으로부터 시간 속에서 현상들의 개별적 계열들이 흘러나온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상상적 표상의 저편에 지성적인 개념(une notion intelligible)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다음을 내포한다. 즉 작동하고 감내하는[즉 능동적 수동적] 권능(puissance d’agir et de pâtir)은, 마치 행동의 연속적 근원(샘)처럼, 모든 개별적 실체로부터 구성적이다.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에게 고유한 자발성의 경험은 이런 추론을 보장해준다. 물체들의 자연적 관성[타성], 즉 질양에 의존하는 내재적인 수동성은, 받아들인 운동의 일정양 자체는 초기 현실태를 폭로하는데[드러내는데], [그때에] 행동[작용]의 능력은 질량에 첨가되어서, 질량의 결과는 물체들의 만남[충돌]에 따라 그리고 함축된 코나투스 또는 충력(les conatus ou impetus)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순수하게 수동적인 물질적 실체의 개념화에 반대하여, 라이프니츠는 모나드(la monade)(이 용어는 앞선 해에 나타났다)에 호소한다. 이 모나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영혼과 물질의 연관에 따라 해석되었다. 운동 뒤에, 변하는 노력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노력은 겉보기들[외관들]의 다양성에 대한 이유를 제공하도록 허락해 준다. 분간 불가능성의 원리들에 호소는 원자들과 빈것에 호소를 파괴한다. 그러한 공리들로부터 사람들은 자연철학을 생산하기를 희망할 수 있다. 그 자연 철학은 “형식주의(formalisme)”와 “물질주의(matérialisme)”의 화해를 이룬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조화를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철학이 데미우르고스 없이 이데아의 연역과 아페이론의 종합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러면 데모크리토스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시뮬라크르들의 정도의 차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시뮬라크르의 자기 발생의 을 생각하게 되면 발생 생물학이 도래할 것 같다. - 박홍규가 원인학에서 우주발생론으로 해석하려고 한 것은 아페이론의 특성에서 자율성을 인정한 것이리라. 그런데 자율성을 넘어서 자발성을 부여하면 벩송을 만나게 되는데, 박홍규는 벩송의 자발성을 아페이론에 부여하여 사유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53PKH)] (F. Duchesneau)
(3:09, 53PKH)
* 인명 **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 Στάγειρος)에서 탄생(플라톤 나이 4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6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왕의 시의(侍醫)였다.
O
1635 슈투름(Johann Christoph Sturm, 1635–1703), 톡일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1649 셸하머(Günther Christoph Schelhammer, 1649–1716), 독일 의사, 해부학 대학교수.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
(3:20, 53PKH)
책1646라이프1698자연자체.hwp
라틴어 원문은 이 파일 안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