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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 고리=구리 (예, 갈고리=갈구리) ※ 胎兒 ? | 구운옥패 : 陰 東下(고리) + 陽 東上(고리) | C자형용 : 陰龍(고리) + (고리)陽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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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고(구)리 - (句=고,구) | 1894-1895 청일전쟁 - 捉拿倭奸審問正法 (高麗義兵) - 大淸光緖 1 |
귀고리의 수행문화는 6천 년 전 “도소 남신상” 등의 인물상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귀고리에 대한 문헌은 [高麗史][李朝實錄]에서는 이식(耳飾) 이당(珥) 이환(耳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귀고리에 대한 수행문화는 사라지고 조선시대 때에는 귀를 뚫는 행위가 전면 금지되었다.
이유는 귀고리는 신체를 손상하는 것으로 불효하다거나 眞番朝鮮胡,高句麗胡(오랑캐=兀朗合)문화라는 것인데 참으로 無知蒙昧한 것이다. 현대의학은 귀를 뚫어서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미용과 건강유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 [符都誌] 마고성의 사람들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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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묘 (方位) | 여신상 (반가부좌) | 홍산문화 - 적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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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적성총 | 高(句)麗 - 주심포양식 高麗 - 다포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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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君 天符經 (확인검토 - 홍산문화) 高麗人 최치원 낙랑비서문 | 檀君朝鮮 (가림토) [檀君世紀] | 高(句)麗 전돌의 고유문자(가림토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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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比留文字 : 神代文字の一種である。 肥人書(くまびとのて)とも呼ぶ。 | [高麗史][樂章歌詞](한림별곡)(理語-가림다) 高句麗, 百濟, 新羅 문자(글) | [鷄林類事] - 高麗 소리(말) 天曰漢捺(천은 한날(하늘)이다) |
用途 - 阿比留文字による銘文が刻まれた石碑が宮崎県の円野神社、群馬県前橋市の三夜沢赤城神社にあり、また長野県安曇野市の道祖神にも刻まれている(本村の神代文字碑)。가림토문자 : 神殿에서 사용하던 글자로 추정 !
※ [李朝實錄]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9월 12일 신묘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예조에서 민속 노래의 가사를 채집 기록하는 법마련이 없음이 마땅치 않다고 아뢰다
今慣習鄕樂五十餘聲, 竝新羅、百濟、高〈句〉麗時民間俚語, 猶可想見當時政治得失, 足爲勸戒。
지금 관습 도감(慣習都監)의 향악(鄕樂) 50여 노래는 모두 신라·백제·고구려 때의 민간 속어[俚語]로서 오히려 그 당시의 정치의 잘잘못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족히 권장할 것과 경계할 것이 되옵는데
※〔日本書紀通證一〈彙言〉〕釋曰、問假名字誰人所㆑作、答師説、大藏省御書中有㆓肥人之字六七枚許㆒、其字皆用㆓假名㆒、或其字不㆑明、或乃川等字明見㆑之、若以㆑之爲㆑始歟。
松下氏曰、萬葉集云、肥人額髮結在ヒタヒカミユヘル染木綿ソメユウノ染心ソメシコヽロハ我忘哉ワレワスレメヤ、肥人者高麗人也、肥人傳㆓彼國字㆒、故稱㆑之歟、今西國人謂㆓文字異體㆒曰㆑書㆓肥後字㆒肥前肥後其國近㆓高麗㆒、又本朝書籍目録有㆓肥人書五卷㆒。
☞ 阿比留文字 : 神代文字の一種である。肥人書(くまびとのて)とも呼ぶ。신대문자는 高麗(高句麗)의 글자라는 뜻.
※ 홍산문화 유물과 유적 : 桓國-(倍達+震東方) - 朝鮮(고리국)-(北夫餘=高句麗)-南北國-高麗-朝鮮(고리국)-朝鮮(KOREA)
쉼표 두개 = 태극 : 高麗고리(句)다운 태아가 ㅇ아앙하고 ㄴ 나오고 ㄱ 기다가 人 서면서 人사랑의 人삶을 人살다가 (人)에 마리=북쪽=머리( ' )찍고 죽다네 (죽음 - 주검) !
밝은 해(日) - 점(日) 白 밝을 백
붉은 해(日) - 점(日) 白 붉을 백 (붉은 노을)
왕실에서 만든 작품 : 잉태된 아가 : 태아를 용으로 형상화하여 세상에 나오는 모습 그리고 승천하는 모습을 담은 것, 아닐까요 ?
학설 1)
굽은고리모양의 태아胎兒 - ㅇ 아앙 - 人 - ㄴ 나오다 - ㄱ 기다 - 人 서다 ====> 나중에 ㅇ위에 (')을 찍어 桓=한
☞ (東=木+日) : 桓=(木+天地:二+日) : 점있는 日(ㅇ)이 환(한)하게=밝게 비추는 형상
학설 2)
알(=안=원) 속의 태아(=고리와 유사) : 太極 형상 ☞ 김알지 : 금궤 안의 알
고리가 용의 형상을 한 것일 수도 - 人 → 아버지 → 王 : 天王(諸王)
桓(因)님=하느님 安巴堅 (女에서) 빠진 安안王 = AN BA JI AN - AN PA KING) 아버지 - 龍(王) : 龍이 수호신이면 天王
→ 君師父일체 (檀君+師+父親)
南
東(木日) 地文 (西)
(男)날다(人)날다(女) --> 神人 = 檀君 (山神祭 - 松솔가지 : 檀木=神木) 桓因 한인(님)=하느님 安巴堅 (ABAJIAN)
紅東白西---魚東肉西 ---> 朝鮮 : 해가 東, 어가 東 --> 해와달이 만나 하나를 이루다 ! 桓國 : 하늘나라 - 하늘과 대지의 나무에 걸린 해
(男)눕다(人)눕다(女) --> 仙人 = 檀君 (山神祭 - 松솔가지 : 檀木=神木) 桓因 한인(님)=하느님 安巴堅 (ABAJIAN)
東(木日) 天文 (西)
北
北極星
木 →ㅇ→日 →ㅇ→ 西
앏 남
(水)파란색(淸)
南
아래
(下)
ㅜ
地
(○ㅗ=오=右=五=正) ○ → 日 → ○ (○ㅚ=왼=左=誤=歪) ※ 참고 : 李 (오얏 니)
地
ㅗ
北
(上)
우에
山
산
(火)붉은색(赤)
北極星
※ 天上에서 地上을 내려다 보면서 느껴보세요 !!
※ 東(木에 걸쳐 있는 '해'가 기준이요, '해'를 보호하는 삶의 구조와 국가 체제로 되어 있습니다)
→ 동쪽방향에서 서쪽방향으로 옷을 두번 덮게 되어 있고, 서쪽 손이 동쪽 손을 감싸 안게 되어 있습니다.
→ 동쪽방향에는 기준되는 '人'이 있는 것이니, 일반적으로는 家長인 男性이 主로 있습니다.
참고 : 高句麗 안악3호분에서 천장 별자리 벽화(方位 및 星位 그리고 의미)
○ 桓國 : 木 + 三 (天地人) + (人 = 日) : 三太極 ☜ 파형문
⊙ 朝鮮 : 十 + 十 + (日月) + 魚 + 羊 : [山海經] 논리 학설 - 蚩尤(魚) + 黃帝(羊) [檀君世記] 古記云王儉父檀雄母熊氏王女
○ 고리 : 兒 + 二 (男性女) + (人 = 性) : 二太極 ☞ 性理學
※ 참고 : 嗣子 ☞ 여기를 눌러서 살펴 보세요 !
※ 참고 : 天象列次分野之圖 ☞ 여기를 눌러서 살펴 보세요 !
※ 四神圖 → 五神圖[포함 : 黃龍=黃帝] : 玉龍(桓雄상징물) + 玉熊(黃帝상징물) → 확인요청
→ [檀君世記] 古記云王儉父檀雄母熊氏王女
→ [漢書] (교사지郊祀志) 天神,貴者太一.太一佐曰五帝.古者天子以春秋祭太一東南郊
천신으로 귀하신 분이 태일이다. 태일의 보좌는 오제이다. 옛날에 천자는 매년 봄, 가을에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신에게 제사지냈다.
☆ 참고 : 高句麗 고분벽화 - 천왕지신총(天王), 덕흥리고분(萬歲)
| ※ 朝鮮 소나무 진파리 고분보다 빠른 각저총(5세기-집안)씨름도의 신목(神木)도 소나무다. 장천 1호분에 그려진 신목도 소나무로 추정된다. 그리고 7세기 중반 퉁구 오회분 4호묘의 ‘농신과 수신’을 그린 장면에 나오는 나무도 소나무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진파리 고분 이전의 것은 추상적으로 표현된 반면, 6~7세기에 그려진 것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듯이 최근에 그린 듯 생생하다. 특히 진파리 4호분에는 등장하는 소나무는 두세 그루씩 무리지어 벽면을 채워서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각저총 소나무 신단수 좌우에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어요. 단군신화를 반영한 것이죠. 이 벽화로 인해 단군신화가 고구려에 전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의 신단수와 곰을 그린 그림이 또 있다. 장천1호분(5세기-집안) 그림에는 큰 나무 둥치에 굴이 있고 그 안에 곰이 있다. 진파리 1호분에는 소나무를 왜 현무를 그린 북벽에 배치했을 까요? 왜 그랬을까요? 사신도의 철학적 개념과 전통적인 신단수 개념이 결합했다고 볼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먼저 신단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죽은 왕의 영혼이 신단수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기를 바랐던 거죠. 그러니까 신단수는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 역할을 했던 거예요. 복희 팔괘도를 보면 북쪽에 숫자 1을 배당해요. 또한 북쪽은 12간지 중 자(子)를 배당하잖아요. 그곳이 생명이 시작되는 방위이기 때문이죠. 북극성(칠성)과도 연결. * 일본 왕실에서 금송(金松)을 신성시하는 것도 부여계와 관련 있다. 일본인들은 금송을 '고오야마키'라고 하는데, '고오야마키' 가지를 조상의 영전이나 제단에 봉헌하는 풍습이 있다. 백제 무령왕의 목관을 일본에서 수입한 금송으로 제작한 것도 부여계의 소나무 숭배와 무관하지 않다. * [後漢書] (高句麗) "고구려 사람들은 금은과 재물을 많이 들여 후하게 장사 지내고,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는다" (출처 : 경북방송) * 神檀樹 : 神人=仙人=檀君 : 솟대, 소나무, 솔, 제례의식에 솔가지 등 |
| ▲백두산문명의 상징, ‘천년단목’이 그려진 19세기 지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제공>)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한인, 한웅,단군의 삼성조 역사가 기록돼 있다. 한웅천왕의 신시 배달국은 한웅천왕이 한인의 지시를 받고 천부인 3개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정 신단수에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이 백두산 신단수 지도는 신시 배달국역사가 실제 였음을 말해준다. 김철수 교수(중원대학교)가「동북아의 백산신앙과 백두산」을 발표하였다. 김철수 교수는 “백산신앙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 동북아 창세역사 문화의 본원지이며 한민족의 소도제천의 본향”이라며 “이곳을 중심으로 환웅과 단군의 제천의례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백산신앙은 시간이 흘러 백두산의 소도를 본보기로 이곳 저곳에 소도가 세워졌는데 특히 바다 건너 일본열도로 전해져 일본의 백산신앙의 원류가 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한 산악신앙, 즉 백산신앙이 있었으며, 현재 일본전역을 통틀어 2700여곳에 달하는 백산이 있다. 이러한 백산에는 백산신사(시라야마히메 신사)가 세워져 백산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교수는 “이 신사의 주신은 고구려 신으로 알려진 구쿠리히메신이며 환웅의 숭배 흔적도 남아있다”며 “백산은 단순히 산의 정상부가 하얀 산이 아니라 백두산처럼 외경의 대상이었고 신성한 산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며, 쓰시마의 솟도신앙, 일본 신도의 히모로기 등은 백산신앙이 일본열도로 흘러들어간 증거로 볼 수 있다” 출처 : 백두산 신단수 지도 출현, 태백산 신시 역사 증명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
※ 日(解)빛 + 月(達)빛 + 星(辰)빛 - 阿斯達(양달=밝은땅 + 음달=어둔땅)
☆ 日(白) + 玉 → 皇帝복식은 해ㅅ빛 → 어의확장 하얗다
★ 月(黑) + 玉 →
※ 高句麗 수정궁(水晶城) [太平廣記] 扶桑國的王宮裡有座水晶城
→ 햇빛, 달빛, 별빛을 닮은 玉이 대표성을 띠는 문화재 (장식용 가능성) - ㅎ하늘과 상통 * 해와달과 별자리
→ 太廟에 있는 玉은 어둔빛을 감싸안은 채 잠든 문화재 (제례용 가능성) - ㅎ하늘과 상통 * 북극성과 별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