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역사의 전환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여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 겨레의 꿈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남북관계는 순간의 상황에 대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는 안되고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한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21세기 민족 번영의 시대를 우리의 힘으로 개척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해서 한걸음 전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였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세계인들은 한반도를 분쟁지역이 아닌 평화를 향한 희망의 지역으로 여길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 가운데 하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한 것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무엇보다도 실천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남북의 정상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 사이에서 몇차례 합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615 남북 공동선언은 남북의 정상이 직접 서명을 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남북 합의와는 달리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남과 북이 교류를 증대시키고, 이산가족의 맺힌 한을 풀어주며, 끊어진 철도를 연결시키면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과정은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민족의 번영을 이루는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지 17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본다면 6.15 공동선언의 많은 내용들이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관점에서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한반도 통일이 아시아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고, 동시에 통일을 위한 국제적인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남북이 공존해서 살 수 있는 연습과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통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준비가 없이 맞이하는 통일은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평화운동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덕목을 키우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소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남북의 사람 사이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이 오랫동안 각각의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것들을 서로 용납하고 관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용과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8.15 때 평양에서 열린 통일축전으로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남대화는 남북대화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남남대화를 위해서는 자기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북이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통일의 길은 멀어집니다. 마음속의 미움을 지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없는 '나'는 존재가 불가능하듯이 우리 사회내부에서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상임의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민화협 상임의장을 맡으면서 남과 북 사이에 화해를 이루고, 한편으로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대화를 통해서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민화협에는 지난 시절 함께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던 다양한 회원단체들이 참여해서 머리를 맞대고 민족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민화협이 추구하는 남남대화는 새로운 실험이고, 우리의 이러한 실험은 통일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 가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남남대화를 꾸준히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민화협 활동을 하면서 8.15 통일대축전 이후 불거진 '남남갈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평양 통일축전에 대해서 의견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원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평양행사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다양하게 드러나고 이를 잘 통합해가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것은 이런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를 남남갈등이라고 단정하는데서 비롯하는 점이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문제는 생각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생각에 기초해서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공존의 원리입니다. 우리 사회는 생각이 다른 집단들 사이에서 다른 생각에도 불구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의식이나 관행이 부족합니다.
생각의 차이를 파고들어 갈등을 고착시키고 부추킬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 관행과 의식을 고치는 것,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 관용이 넘치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길입니다. 또한 다름을 인정하는 연습이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훌륭한 길이 될 것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다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