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51편
* 한국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현)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
일관(一貫,
단 숨에 꿰뚫어라)
一貫千殊妙聰明
일관천수묘총명
森羅萬象都自己
삼라만상도자기
일념으로 망상을 천만번 끊어
부처님 법(佛法) 지혜를 얻으니
천지 우주(만물)의 모든 것이
일체 모두(諸法) 다 내 것이로다
– 나암(懶庵 보우)선사 –
"
선사(나암(懶庵 보우))는
금강산 마하연에서 내려와
안변 석왕사(釋旺寺)를 거쳐
은심암(隱心庵)에서
한 철(계절)을 보내고
함흥 서쪽에 있는
백운산 국계암(國鷄庵)에서
수년간 가행정진(可行精進)
하였다.
다시
호남(湖南)을 향하여
내려가다 병(病)을 얻어
천보산
회암사(淮岩寺)의
차안당(此岸堂)에서
사경(死境 생사경계)을
헤매던 끝에
일어나
오송(悟頌 열반송)을
지으셨다.
"
"
도산(道山,
성불도의 높은 산(깨달음))
以道名山意欲觀
이도명산의욕관
杖藜終日苦梯攀
장려종일고제반
行行叢見山眞面
행행총견산진면
雲自高飛水自湲
운자고비수자원
도(佛道)라고 이름 지은
산(山 깨달음)을 보고 싶어서
지팡이 짚고 하루 종일
고생 고생(苦生) 기어오르니
가고 또 가다가(行行)
홀연히 산의 참모습 보았노라.
구름 절로 높이 날고
개울 물 절로 졸졸 흐르네.
"
"
또한
선사(나암(懶庵 보우))는
봉은사의
주지 명곡대사가
인퇴(引退 이끌어 퇴임)하면서
주지(住持 사찰의 책임자)에
추천되었다.
선사(나암(懶庵 보우))는
조선시대 명종(明宗) 3년
12월 15일에 문정왕후로부터
한양 봉은사
주지(住持 사찰의 책임자)로
천거 임명(任命)받아
징부(徵赴)하였다.
"
"
선애(禪碍,
명상 참선의 장애(障碍))
心本虛明沒惹塵
심본허명몰야진
懷修鍊隔三千
재회수련격삼천
非臺古鏡光常照
비대고경광상조
無樹菩提體自圖
무수보제체자도
隱隱俯仰行坐裏
은은부앙행좌리
昭昭談笑視聽邊
소소담소시청변
迷人喚作精神會
미인환작정신회
識者還知最上禪
식자환지최상선
마음은 본래
허명(虛名 헛된 이름)한 것으로
티끌을 일으킴이 없는 것
도(道)를 닦는다는
생각을 함으로 3천(三千大天)의
사상(事像)이 가로 막힌다.
대(臺 현상 존재)가 없어도
고경(古鏡 옛 거울)의 눈부신
광명(光明 지혜)은 항상 비추고
나무(木 수풀 山林)는 없어도
보리(菩提)는 스스로 원만하다.
은거(隱居)하여
깊이 행(수행정진)하고 앉는
그 속 맑고 맑은 소리
또 보고 듣는데
미혹한 사람(사바중생)들은
이 것을 정신세계라 하지만
식자(識者)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최고(最高)의
선지(禪旨 선의 종지)이로다.
– 나암(懶庵 보우)선사 –
"
"
나암(懶庵)선사
보우(普雨,
1515~1565) 선사(禪師)는
조선 명종 때의
승려(僧侶 스님)로서
호는 허응당(虛應堂)
또는 나암(懶庵 뇌암)이다.
선사(보우대사)는
1530년
금강산 마하연암에 들어가
수도(入山修道)하다가
조선 명종의
모후(母侯 어머니)로
불심(佛心)이 깊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信任)을 얻어
1548년에
한양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그 후
선종(禪宗 선수행 종단)과
교종(敎宗 부처님 가르침)을
일으켜 부활시키고
문정왕후가
섭정(뒤에서 다스림)할 때
보우(普雨, 나암) 대사는
봉은사(奉恩寺)를
선종(禪宗)의 본산(本山)으로
삼았으며
봉선사(奉先寺)를
교종(敎宗)의 본산(本山)으로
삼았다.
이와 더불어
승과(僧科)를 부활시키고
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등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 부흥에
노력하였다.
후에
도대선사(都大禪師)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 부흥은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일시적인 부흥에 그치고
종막을 고하였다.
또한
보우(普雨, 나암) 대사도
문정왕후가 죽자
성리학
유림(선비)들의 기세에 밀려
승직(僧職)을 삭탈 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참형을
당하였다.
"
※
참고적으로
또 한분의 뇌암선사
남송(南宋) 때
뇌암정수(雷庵正受,
1146~1208) 선사가 지은
《가태보등록(伽泰普燈錄)》
이라는 책(冊, 書籍)에는
선사(禪師, 불조사)들 외에
왕공(王公), 거사(居士)에 관한
선화(禪話 일화)들도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 황제(皇帝)가
지은 게송(偈頌)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음의
본래 성품을 두고 지은
격조 높은 시(詩)이다.
“
橫邊十方 竪窮三際
횡변십방 수궁삼제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시방(十方世界)에 가득 차고
시간적(時間的)으로
삼세(三世 과거 현재 미래세)를
다한다.
"
라는 문장(文章, 經句)은
마음을 설명하는 말을
더욱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자세히 해석(解釋)해
놓은 것 같다.
중국의 송(宋) 나라
인종(仁宗) 황제(皇帝)는
젊었을 때부터
독서(讀書)를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한 왕(제왕)으로
알려졌다.
그(송나라 인종황제)가
책(冊, 書籍)을 하도 많이 읽어
창(窓) 밖에 있는 닭이
글 읽는 소리를 흉내 냈다 하여
계창(鷄窓)이라는
말이 생겼다.
"
라고 한다.
※
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