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一章 兩虎周遊
춘삼월.
대기는 생동하는 만물의 입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온 천지엔 하늘의 축복인 양 따스한 빛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호남(湖南)의 명산인 무릉산(武陵山)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방은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사형(師兄)! 이번에 만나게 될 사람은 누굽니까?”
갑작스레 들려 온 사제의 질문에 무릉의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玩賞)하고 있던 철단소(鐵旦昭)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철단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사랑스런 사제가 느닷없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자신의 비무 상대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비무.
자신이 겨루고 싶어 하는 인물이 나타나면 그는 뻔히 알고 있는 상대방의 신분을 물어 왔다.
철단소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지?”
“예?”
철단소는 능청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사제의 눈초리를 느끼며 파르스름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조각이 휘영청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어제 물어 보았을 때는 분명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철군악(鐵君岳)은 허리를 굽혀 발 앞에 있는 풀을 뜯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그냥……?”
“예, 사형이 말씀하셨잖아요. 이번에 겨루게 될 사람은 비검(飛劒)의 달인(達人)이라 그와 겨룬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요.”
“녀석……”
철단소는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걷고 있는 사제를 슬쩍 쳐다보았다. 조각처럼 강인해 보이는 옆모습이 투영되었다.
철단소는 느낄 수 있었다.
철군악은 자신에게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는 사형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내키지 않는 비무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철단소는 사제의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억지로 하는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철단소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싫어하는 것은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한데, 그가 자신을 위해 고집을 꺾은 것이다.
철단소는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사제가 노련한 철수비검(鐵袖飛劒)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악아!”
“예?”
“이번에 네가 싸우게 될 인물은 철수비검 나소렴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비검의 명수로, 신법이 매우 빠르고 손속이 날카로워 호남(湖南)에서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특히, 그가 단검(短劒)을 발출하는 것은 여태껏 누구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쾌속하기 이를 데 없다.”
철단소는 말을 끝내고 슬쩍 철군악을 쳐다보았다.
철군악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의 결전에 대비해 머릿속으로 대처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야……!’
철단소는 저런 사제를 만날 수 있게 해준 하늘에 감사드렸다.
그는 분명히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무(武)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특히, 끈기와 집념이 강해 한번 시도한 일은 기필코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철수비검이 난적(難敵)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철군악은 꼭 그를 상대할 방법을 찾고야 말 것이다.
철단소는 항상 철군악의 상대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정했고, 그때마다 철군악은 그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비무를 끝내곤 했었다.
철단소는 자랑스런 눈으로 사제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들었다.
‘앞으로 삼 년…… 삼 년만 지나면 무극칠절(無極七絶)을 완성할 수 있다.’
“사형……!”
철군악의 고함 소리에 철단소는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철군악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몇 번씩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겁니까?”
철단소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일은 아직까지 철군악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좋았다. 아니, 필요하다면 철군악은 영원히 모르는 것이 좋았다.
“하하! 그냥 잠시 옛일을 생각하느라고……”
“으휴……”
철군악은 철단소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철수비검이라는 사람의 무공 특징을 알 수 있나요?”
철단소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비검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부신답허(浮身踏虛)처럼 몸을 공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신법(身法)을 익히지 않았나 생각되는구나.”
“그의 외호에 철수(鐵袖)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그는 철수공(鐵袖功)도 익혔습니까?”
“글쎄…… 언뜻 들은 바로는 그의 삼대무공(三大武功) 중 하나가 바로 쇄벽철수(碎壁鐵袖)라고 그러는 것 같던데……”
철군악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검을 날리는 동작을 소매로 가릴 수도 있겠군요……”
그의 말은 모기 소리보다도 작았지만, 철단소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철단소는 다시 한 번 사제에게 감탄했다.
사실 그는 철수비검이 검을 날릴 때, 그 손짓을 자신의 커다란 소매로 교묘히 감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만큼은 일부러 철군악에게 알려 주지 않았는데,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 철수비검의 장단점을 알아 낸 것이다.
‘어쩌면……?’
철단소는 의미 심장한 눈으로 철군악을 바라보며 다시 상념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 * *
철수비검 나소렴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을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근 한 시진에 걸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나소렴은 자신의 애병(愛兵)인 탈혼인(奪魂刃)을 손질했다.
요사(妖邪)스러운 빛을 흘리며 자신의 손길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는 애병의 감촉을 느끼자 나소렴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충분히 그자를 꺾을 수 있다. 그 동안 너무 겁을 먹고 있었어. 그자만 꺾으면 나의 위명은 사해오호(四海五湖)를 찬란히 뒤덮을 것이다.’
나소렴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열두 자루의 탈혼인을 바라보자 새록새록 자신감이 솟는 것을 느꼈다.
탈혼인은 모두 열두 자루의 쇳조각이었다.
일반의 단검(短劒)과는 달리 손잡이가 없는 대신 날의 반대쪽에 모두 아홉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가는 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실은 질기디 질긴 천잠사(天蠶絲)로 만들어진 것으로, 바로 이것을 이용해 탈혼인을 회수하거나 조정할 수 있었다.
일단 탈혼인을 전개하면 아홉 개의 구멍에서 사람의 혼백을 빼놓을 듯한 기이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그 소리에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묘한 힘과 공력(功力)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어 웬만한 고수라도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고 우왕좌왕하다가 패하고 만다.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탈혼비검술(奪魂飛劒術) 외에도 비장의 한 수가 있지 않는가?
“흐음……!”
나소렴은 차가운 애병의 촉감을 음미하며 스르르 두 눈을 감았다.
탈혼인이 그의 무릎에서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 * *
무릉산 기슭에 보면 하나의 아담한 장원이 나온다.
이름도 없는 조그마한 장원이지만, 주위에 사는 사람 중 그것이 누구의 장원인지 모르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강호의 호걸인 철수비검 나소렴, 이 장원이 바로 그의 거처인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장원은 제법 규모가 있어 보였다.
담의 높이는 일 장(丈) 가량 되었고 둘레는 못 되어도 백 장이 넘어 보였다.
철단소와 철군악은 바로 그 장원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철군악은 장원을 한참 바라보다가 얼굴 가득 염려스런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형! 그가 순순히 우리의 도전을 받아 줄까요?”
철단소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이렇게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동안 철단소와 철군악은 별의별 사람을 다 보았다.
이름이 자자한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이 비무를 회피하기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숱하
게 겪었다.
병을 핑계대거나 비무하기로 한 날짜에 자리를 피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하나, 어떤 자들은 자객(刺客)이나 암수(暗手)를 써서 그들 사형제를 없애려고까지 했다.
그 동안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겪은 철군악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 철단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아주 담담했다.
“그는 호걸이다. 결코 비겁하게 승부를 회피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행이군요.”
철군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삐걱거리며 대문이 열리더니 그 속에서 쭈글쭈글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뉘시우?”
“예, 저희는 나(羅) 대협(大俠)을 만나 뵈러 온 사람입니다.”
“주인 어른을요……?”
노인은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철단소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통보를 하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일다경(一茶更) 정도 흐르자 다시 대문이 열리며 예의 노인이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노인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철단소 일행에게 매우 정중하게 행동했다.
노인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하나의 아담한 정자(亭子)였다.
철단소와 철군악이 나타나자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인물이 일어나며 정중히 포권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본인이 나(羅) 모(某)입니다.”
번쩍이는 안광(眼光)에 장중한 태도.
역시 그는 호걸의 기상을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철단소도 나소렴의 남자다운 모습에 호감을 느꼈는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주 포권했다.
“대명이 자자한 나 대협을 뵙게 되어 커다란 영광입니다. 본인은 철단소라 하고 이쪽은 제 사제인 철군악이라 합니다.”
“아! 예, 반갑소이다. 자! 우선 먼 길을 오셨을 테니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들은 간단한 수인사가 끝나자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소렴은 자리에 앉자마자 번쩍이는 눈으로 철단소를 살펴보았다.
단정한 오관(五觀)에 별로 크지 않은 체구. 눈빛에는 어떠한 신광(神光)도 흐르지 않았지만, 나소렴은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진정한 무도(武道)가 무엇인지 아는 절정고수가 분명했다.
무엇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안정된 눈빛과 물 흐르듯 담담한 태도를 본다면 그가 얼마만큼의 수양을 쌓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이는 채 사십도 안 돼 보이는데……!’
이런 사람은 둘 중의 하나였다.
무공을 아예 모르든가, 아니면……
나소렴은 눈길을 돌려 철단소의 옆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청년, 철군악을 바라보았다.
‘정말 강인한 인상이군……!’
그 또한 철단소에 뒤지지 않았다.
남자다운 기상이 물씬 풍기는 얼굴에 육(六) 척(尺)이 훨씬 넘어 보이는 장신(長身).
거기다가 한눈에 보아도 균형이 딱 잡힌 체구는 흡사 맹수의 제왕인 맹호(猛虎)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 덜렁대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또한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 결코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묵묵히 앉아 차를 마시던 철단소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나 대협! 제가 갑자기 비무를 요청해 매우 당황하셨지요?”
“아니오. 무인이라면 누가 도전을 해도 마땅히 그것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소이까?”
철단소는 나소렴의 당당한 태도에 절로 호감이 일었다.
요새는 진정으로 무도(武道)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저 무를 자신의 영달과 명예를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데, 나소렴의 태도와 어조를 보면 무인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철단소는 나소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 대협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니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번에 저와 나 대협과의 비무는 없었던 걸로 하고 대신 여기 있는 제 사제(師弟)에게 한 수 가르침을 내려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음……!”
나소렴은 잠시 침음했다.
정녕 뜻밖의 말이었다.
그로서는 강적(强敵)이 비무 요청을 철회하니 달가운 일이었지만, 철군악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만약 그에게 패하기라도 한다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나,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소렴은 곧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그럼 언제쯤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시작하지요.”
나소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그들은 정자에서 십여 장 떨어진 연무장(鍊武場)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무장은 너비가 삼십여 장에 이르는 제법 커다란 공지(空地)였다.
연무장에 이르자 철군악이 정중하게 포권했다.
“한 수 가르침을 바랍니다.”
“조심하게.”
나소렴은 짧막하게 말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보통 때는 호걸풍의 사람 좋은 인상이었지만, 일단 비무가 시작되자 눈에서 전광(電光)과도 같은 싸늘한 안광(眼光)이 뿜어져 나오며 상대를 위압했다.
철군악은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리고는 동자배불(童子拜佛)의 일식으로 상대에게 경의를 표했다.
‘흐음……!’
나소렴은 내심 침음했다.
그냥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단 검을 잡고 나자 상대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잃을 수도 있다!’
나소렴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상대를 경시하던 마음을 버리고 동등한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소렴은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자 슬며시 애병을 만져 보았다.
탈혼인의 싸늘한 감촉이 온몸을 타고 흐르자 불안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대신 가슴 한구석에서 자신감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나소렴은 짧막한 기합을 토해 내며 몸을 움직였다.
“타앗!”
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허깨비처럼 옆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삼십 년 이상을 갈고 닦아 온 부신종(浮身淙)이라는 극고의 신법이었다.
그는 부신종으로 허깨비처럼 몸을 이동시킨 후 슬쩍 어깨를 흔들었다.
씨아앙!
혼을 갉아먹을 듯한 기이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며 두 개의 빛줄기가 철군악의 상체와 하체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것은 두 자루의 단검이었는데, 날아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철군악의 몸은 여지없이 꿰뚫릴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단검에서 나는 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나소렴은 처음부터 탈혼비검술(奪魂飛劒術)을 펼치고 있는 것이 철군악의 몸이 영락없이 꼬치 신세가 될 것처럼 보일 때,
윽!
돌연 그의 몸이 옆으로 슬쩍 비켜나는 것이 아닌가?
그의 동작은 특별히 빠르거나 현묘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시기 적절하여 간단히 두 자루의 탈혼인을 피해 낼 수 있었다.
나소렴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어깨를 흔들었다.
씨이잉!
이번에는 모두 여섯 개의 탈혼인이 철군악의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탈혼비검술의 절초인 육마참인(六魔斬人)이었다.
이 초식은 비단 쾌속할 뿐 아니라 상대방은 시전자가 어디를 노리는지 알 수 없어 허둥거리기만 하다가 목숨을 잃는 절강(絶强)의 무공이었다.
여섯 개의 단검이 요요(妖妖)로운 광채를 토해 내며 빛살처럼 다가들자 철군악이 처음으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당! 땅!땅!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짧막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헉!”
그 광경을 본 나소렴은 헛바람이 빠지는 듯한 신음 소리를 토해 내며 눈을 부릅떴다.
철군악이 일일이 검을 움직여 여섯 개의 비검(飛劒)을 모두 쳐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소렴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화살처럼 빠른 속도의 단검을 눈 깜짝할 새에 동시에 여섯 개씩이나 쳐낼 수 있는 젊은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여섯 개의 단검이 어디로 갈지는 자신밖에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여섯 개의 단검을 간단히 쳐낸 것이다.
나소렴은 어이가 없었지만, 무작정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더니 천잠사를 이용해 회수한 탈혼인을 모두 던져 냈다.
끼아아앙!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열두 자루의 단검이 허공을 가득 수놓았다.
단검은 제각기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떤 것들은 그 속도가 매우 느릿느릿했고 또 어떤 것들은 번개가 무색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탈혼비검술의 절초인 비검회선(飛劒廻線)이었다. 이 초식은 비단 단검 각각의 속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회선(廻線)의 묘용이 있어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고수라도 목숨을 잃고야 마는 나소렴 최고의 절예였다.
나소렴은 단검을 모두 날린 후 번개처럼 몸을 움직여 철군악에게 다가가며 양쪽 소매를 힘차게 휘둘렀다.
꽈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그의 소매로부터 매서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비장(秘藏)의 절기(絶技)로 생각하는 쇄벽철수(碎壁鐵袖)였다.
쇄벽철수는 극성으로 익히게 되면 한 자가 넘는 비석을 두부 으깨듯이 부술 수 있는 무공이다.
나소렴은 철군악이 제아무리 검의 달인이라 해도 이번 한 수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나소렴의 입가에 막 희미한 미소가 얹어졌을 때, 돌연 철군악이 검을 종횡으로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맑은 검명(劒鳴)이 허공 가득 울려 퍼지며, 가공할 기세로 날아가던 열두 자루의 탈혼인이 마치
벽에 부딪힌 듯 거세게 튕겨져 나왔다.
동시에 나소렴은 자신이 혼신의 힘으로 내뻗은 쇄벽철수가 무언가 강력한 힘과 맞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꽈꽈꽝!
천번지복(天飜地覆)의 굉음과 함께 가슴을 쇠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던 나소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해 내고 말았다.
“우욱!”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흐릿한 시야로 철군악의 무표정한 얼굴이 들어왔다.
‘내가 패하다니……!’
나소렴은 절망에 빠져 허탈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이제껏 힘들여 쌓아 온 명예가 한 순간에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멍하니 있는 나소렴의 귓가로 철군악의 담담한 음성이 들려 온 것은 그때였다.
“잘 배웠습니다.”
나소렴은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자…… 자네가 펼친 검법의 이름이 무엇인가?”
“검막밀밀(劒幕密密)입니다.”
“검막밀밀……? 그래, 정말 이름 그대로였어……!”
철군악과 철단소는 잠시 나소렴을 응시하더니 이내 포권을 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모습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 각, 이 각……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나소렴은 아직도 자신이 패한 것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듯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도 나소렴은 마치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 * *
“마지막에 펼친 검막밀밀은 아주 훌륭했다.”
“뭘요……”
“……”
“……”
“흡천십이검(吸天十二劒)은 이제 완전히 익혔느냐?”
“예.”
“음……! 그러면 내일부터는 광해삼식(狂海三式)을 익히도록 하자.”
“예, 사형!”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