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11 영사詠史 1 조이조수嘲二釣叟 두 낚시질하던 늙은이를 조롱하다
풍우소소불조기風雨蕭蕭拂釣磯 바람 소소하게 낚시터에 부딪치는데
위천어조식망기渭川魚鳥識忘機 위천渭川의 고기와 새들 망기忘機를 알았노라.
여하로작풍운장如何老作風雲將 어찌하여 늘그막에 풍운 일으키는 장수 되어서
종사이제아채미終使夷齊餓采薇 내는 백이伯夷·숙제叔齊 굶어 고사리 캐게 했나?
(위의 것은 여망呂望을 읊은 것이다)
비바람 쓸쓸하게 낚시터를 스칠 때
위수의 고기와 새는 망기한 줄 알았네
어쩌자고 늘그막에 풍운 모는 장수 되어
끝내 백이와 숙제 고사리 캐다 죽게 했나
►영사詠史 역사상歷史上의 事實을 읊은 시가詩歌의 한 체體.
►비웃을 조嘲 조롱嘲弄하다. 비웃다. 지저귀다
►이조수二釣叟 두 낚시하는 늙은이는 강태공姜太公과 엄광嚴光
►소소蕭蕭 적막하고 조용함.
►‘떨칠 불, 도울 필拂’ 떨치다. 사악邪惡함을 털다
►물가 기磯, 여울. 낚시터
►풍운風雲 응양鷹揚으로 된 곳도 있음.
►망기忘機 세속世俗에 일어나는 欲念을 잊는 것.
李白의 시에 “태취군역락態醉君亦樂 도연공망기陶然共忘機”라 하였다.
●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이백李白
종남산에서 내려와 곡사산인의 집에 들렀다가 묵으며 술을 마시다
모종벽산하暮從碧山下 해질 무렵 푸른 산을 내려오니
산월수인귀山月隨人歸 달도 나를 따라 산을 내려오네
각고소내경卻顧所來徑 문득 지나온 길 돌아보니
창창횡취미蒼蒼橫翠微 짙푸른 산기운이 비껴 있구나
상휴급전가相攜及田家 주인만나 손잡고 그의 집에 다다르니
동치개형비童稚開荊扉 어린 아이가 사립문을 열어주네
녹죽입유경綠竹入幽徑 푸른 대나무 사이 그윽한 길로 들어서니
청나불항의靑蘿拂行衣 짙푸른 담쟁이 나그네 옷에 감기네.
환언득소게歡言得所憩 즐거운 이야기는 휴식이 되고
미주료공휘美酒聊共揮 맛난 술 함께 남김없이 마시네
장가음송풍長歌吟松風 오래도록 송풍곡松風曲 부르니
곡진하성희曲盡河星稀 가락이 다하니 별들도 드물구나
아취군복락我醉君復樂 나도 취하고 그대도 즐거우니
도연공망기陶然共忘機 거나하여 속세를 모두 잊었노라
►장미 미薇 장미薔薇. 고비(여러해살이 양치식물)
►여망呂望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강태공姜太公.
이 시는 두 낚시질하는 늙은이 가운데 하나인 강태공姜太公을 놀리면서 지은 풍자시諷刺詩이다.
쓸쓸히 비바람이 부는 낚시터에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 주변의 물고기와 새들은
강태공이 세속적 욕망을 잊은 줄 알고 강태공 주변에서 노닐고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노년에 용맹한 장수 되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하였는가?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의하면
김열경金悅卿 낙천불우落拓不遇 시문극고詩文極高
김시습이 낙척 불우하였으나 시문은 매우 고상하였다.
서달성徐達成 상일요치嘗一邀致 출강태공조어도出姜太公釣魚圖
서거정이 일찍이 그를 맞이하여 강태공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여 주며
청제請題 증서일절운卽書一絶云
제화시를 청하자 곧 다음과 같은 시를 써 주었다.
(‧‧‧‧‧‧)
달성묵연량구왈達成默然良久曰
서거정이 묵묵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자지시子之詩 오지죄인야吾之罪案也
‘그대의 시는 곧 나의 죄안을 밝힌 문건이오.’
하여 서거정徐居正의 요청으로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한명회韓明澮가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고
<병자록丙子錄>에는 권람權擥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나 보지 못하고
벽에 걸린 조어도釣魚圖를 보고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김시습은 강태공姜太公의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강태공을 한명회韓明澮나 서거정徐居正에 백이와 숙제를 世祖에게 희생당한
死六臣과 자신 같은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제화시題畵詩이지만 역사적 인물인 강태공을 소재로 死六臣 사건을 풍자諷刺한 것이다.
/조선시대 한시읽기(上) 원주용 교수
동강강상조연파桐江江上釣煙波 동강桐江 강 위의 안개 낀 물결에 낚시질하니
생계소조일단사生計蕭條一短蓑 생계는 쓸쓸하여 하나의 짧은 도롱이뿐 일레.
한가약무성상동漢家若無星象動 한漢나라에 별[星]이 동하는 일 없었다면
천추정불루완명千秋定不累完名 수 천년 동안 진정코 완전한 이름에 누累가 없었으리.
(위의 것은 엄광嚴光을 읊은 것이다)
동강의 강가에서 아지랑이 핀 물결을 낚으니
생계는 보잘 것 없이 하나의 짧은 도롱이뿐.
한나라 왕실에 만약 별자리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천년 뒤에 정히 완전한 이름에 누는 없었을 텐데.
►엄광嚴光 한漢나라를 중흥한 광무제光武帝의 옛 친구.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동강桐江에서 찾아내어 불러서 서울에 와서
광무제와 한 방에서 자다가 엄광의 발이 황제의 배 위에 놓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이튿날 관상감觀象監에서
“객성客星이 황제皇帝의 별인 자미성紫微星을 가깝게 침범 했읍니다.”고 아뢰니
황제는 “옛 친구와 같이 잤던 것이니 그런 걱정할 것 없다”고 하였다.
그 후 엄광은 끝내 동강桐江으로 돌아 가버렸다.
강 태공姜太公이 周나라를 도운 공은 크지만
상商나라 세상에서 그것을 본다면 의리가 西山의 백이·숙제와 비교되지 못하고
자릉子陵이 한漢나라 황제를 떠나간 것은 절조로 보면 높지만
한나라에서 본다면 충성이 운대雲臺만 못한 것이다.
아아! 은殷나라가 無道함을 당하여 天命은 비록 갔고
인심은 비록 떠나갔다 하더라도 태공은 하나의 商나라 백성이니
어찌 차마 성이 다른 異姓을 도와서
그 임금을 죽일 수 있겠는가?
왕망王莽의 난亂을 당하여 火德의 운명이 이미 기울었지만
광무光武가 웅혼雄渾의 도량度量으로 역적을 죽이고
백성을 구하여 한漢나라를 광복光復하려 하는데
자릉이 구구한 절조로 아무 것도 아닌 듯 돌아갔으니
어찌 그 몸만을 깨끗이 하려고 그 질서를 어지럽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태공이 한 일은 능히 주나라의 王業을 도왔지만
임금과 신하의 큰 의리는 온전하게 하지 못하였고
자릉이 간 것은 광무光武의 큰 것은 능히 성취시켰지만
한漢나라 운명의 중흥中興을 돕지는 못했으니
굴자屈子의 이른바
“밝아도 비치지 못하는 바가 있고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고 한 것이 과연 믿어진다.
►운대雲臺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功臣 28명의 초상肖像을 걸어둔 곳.
내도화이십팔장어남궁운乃圖畵二十八將於南宮雲臺
28명을 그리어 南宮 雲臺에 걸어두었다/<후한서後漢書>
►화덕火德 오행五行으로 歷代 帝國을 표현하는데 “한漢나라는 火德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굴자屈子 굴원屈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