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의 초대
일 년에 한두 번은 서울을 다녀오는데 , 주로 KAL 비행기기를 탄다. 여행사를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지인의 덕분으로 좋은 자리를 얻는 편리도 있지만 , 업그레이드되는 마일레지 혜택도 신나고 , 또 서울까지 난 스톱 이란 시간의 단축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즈음은 성수기 , 비성수기 관계없이 한국행 비행기 좌석은 늘 만석이니. 여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KAL기 를 탈 때 마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미모의 스츄어데스들의 친절함과 써브하는 음식 중, 특히 비빔밥이 일미 이고, 우수한 편집으로 만든 기내잡지가 있어서 이다.
길을 떠나면 읽을거리가 길동무라는 생각으로 늘 책을 들고 다니는데, KAL 기 안에 꽂쳐 있는 기내잡지를 뒤적이노라고 들고 간 내 책을 펴보지 못하게 된다. 시원하고 고급스런 편집과 좋은 필자들의 수준 높은 글은 잡지로써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잡지다. 이 잡지는 나를 여행으로 초대해 주며 미지의 나라에 신비로운 베일을 살그머니 들어 올려준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머나먼 나라로 이끌어 주며 거기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만나게 한다. 또한 반가운 것은 깊고 그윽한 우리의 문화에 대한 눈을 열개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우리자신에게도 이렇듯 놀라움이거늘 낯선 외국인들의 눈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보일 것인가 KAL기를 타고 한국을 찾아오거나 또는 스쳐지나가기만 하는 외국인들에게 이 잡지는 그들의 마음을 한국으로 초대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허공을 달린다. 달리면서 산천의 모든 자연들을 볼 수 있다면 덜 지루 할 텐데 하는 마음은 천하를 발아래 굽어보면서 천리를 단숨에 날아간다는 축지법, 그 축지법을 상상하게 하며 한 걸음으로 태평양을 건너뛴다면 얼마나 도착시간이 빨라 질까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옷 벗은 마음으로 자유로운 상념에 잠긴다. 시행착오처럼 지나가버린 나의 삶에 대해서 뉘우침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은 저 아래 구름밭으로 던져 버린다.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편안하고 , 편안하니 감사하다. 그러나 문득 이 아득한 허공 속에서 나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이 은빛 날개를 가진 기체일 뿐이라는 자각에 가슴이 떨린다. 나의 생명이 속수무책으로 이 기체에 의지해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인데 그 한계성과 무의미성이 물체처럼 손에 잡힌다.
어느새 인가 저 아래 짙게 깔려있던 구름밭은 녹아 없어지고 이제는 푸르디푸른 창공에 구름 몇송이 만이 한가롭게 떠돌고 있다. 그 경관은 옷깃을 여미도록 경건하게 아름다우면서도 허공의 깊이는 더욱 아득해진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 그래, 이 비행기가 지금 나를 하늘 가운데 떠받치고 있듯이 이 광막한 허무 속에서 내 삶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 이 근원적인 질문 앞에 나는 아무런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목숨 한 가닥으로 심연위에 걸쳐있는 우리들의 인생이란 나그네로서 지구라는 혹성을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다. 까만 허공 속에서 한순간 빛났다가 스러지는 별똥별과 무엇이 다른가, 눈물 겨운 것은 인간은 언제나 심연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창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선 자리를 돌아보며 아득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다. 그것은 생명 자체 속에 있는 힘 때문인가 ,아니면 생명을 떠받들고 있는 어떤 힘 때문인가, 어디로 부터 온 힘이든 나는 그 힘 앞에 또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돌려 기내를 돌아본다. 더러는 잠을 자고 , 더러는 영화를 보고 있고, 더러는 음악을 듣고 있고 , 더러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고 , 더러는 잡지나 책을 뒤적이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인연이 있어서 나와 한 비행기를 타고 있을까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길게나 짧게나 나와 같이 운명의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동지 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나그네 길에서 만난 길동무들 , 비록 대화를 나누지 않은 그들이지만, 길동무들이기에 나는 마음으로 따뜻한 미소의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기내잡지를 펼쳐든다. 다음 행선지를 궁리하며 대학시절에 배운 보들레르의 [ 여행에의 초대 ] 란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보라 저 운하위에 / 잠들어 있는 배들을 / 방랑이 그들의 기질 / 너의 조그마한 욕망을 / 만족시키려 / 이 배들은 세계의 끝에서 몰려온다. / 저무는 태양은 / 들판, 운하, / 온 도시를 물들인다. / 히야씬스 빛깔과 황금빛으로 / 세계는 잠이 든다. / 뜨거운 황혼 속에, / 그곳은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 / 호사 , 고요 그리고 쾌락.
.” 여행에의 초대 “ 그것은 퇴색된 우리의 꿈을 되살려 주고 마음에서 세월의 때를 벗겨내 주는 일이다.
첫댓글 " 여행에의 초대 " ,
퇴색된 우리의 꿈을 되살려 주고
마음에서 세월의 때를 벗겨내 주는 일이다.
벌써 작년 봄의 일이 되었네요.
한국 수필을 다녀 온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비행기에 몸을 실고
구름위의 허공을 달리는듯합니다.
여행을 하는 듯 행복한 마음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가득한 자유같습니다.
저는 비행기 타는게 지루하고 갑갑해서 왠만하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바다를 건너야 하는 여행은 어쩔수 없이 항공편을 이용합니다.
구름위에 놓인 비행기안에서 새로운 생각과 감각을 일깨워주신 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여행으로의 초대
여행은 설레임이 앞서지만
걱정도 따라 나섭니다.
특히 비행기 여행은 가다가 내릴 수도 없기에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좌석을 창가로 예약을 하여
작은 창으로 보이는 변화를 흥미롭게 감사합니다.
창공을 날아가는 동안은 속세의 일들은 잊어버리고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여행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함없는 일상에서 탈출하게 하는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줍니다.
비록 몸은 한정된 공간, 비행기 안에 있지만
사색하시며 쓰신 수필의 창을 통하여, 인생과 우주의 진풍경을 따라갑니다.
시 구절처럼 한 곳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곳을 찾아 방랑하는 기질이 제 안에도 있나봅니다.
지난 주말 조카 결혼식이 있어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시간 반 거리에 소노마 라는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자연 풍경에 감탄하며 마음에는 작은 평온이 자리했습니다.
수필 제목만으로도 설레는 '여행에의 초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시원한 여름 되세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립니다.
다음 번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되면
'지나간 나의 삶에 대한 뉘우침이나 안타까움'을
구름밭에 다 던져 버리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여행에의 초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잠시동안 자동차 편으로 일상으로의 탈출만도 행복한데
비행기를 타고 어느곳인가를 향하여 떠난다면...
생각만해도 설레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이 다음에 하나님을 혹시 만나게 되면 당신이 지으신 어느어느곳을 다녀왔다고 얘기도 하고....
내년부터는 좀 더 여행할수있는 조건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