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5 금요성령집회 / 김상인 목사(움직이는 교회)
말씀 : 누가복음 10:1-3
제목 : 끝까지 사랑을 남기라!!
(3절)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오늘 밤 너무 잘 오셨습니다.
오늘 이 집회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마음 가운데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늘 귀한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가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주시는 김상인 목사님은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청년 사역자로 계시다가
2018년 6월 홍대에서 움직이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우리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전도자이십니다.
전도가 참 힘들다고 하는 이 시대, 그리고 전도하기가 더 힘들다라고 하는 우리 청년 세대에게
목사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셨는지를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에도 VIP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그 영혼 구령의 열정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움직이는 교회 김상인 목사입니다.
오늘 제가 함께 나누길 원하는 말씀의 제목은, [끝까지 사랑을 남기라]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여러분 끝까지 사랑해 보셨습니까? 그 기지는 바로 예수님인 줄 믿습니다.
오늘 세 가지를 통하여서 어떻게 제 안에도 다시금 영혼 구원의 전도의 불이 붙을 수 있을지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작년에 제가 개인적으로 조금 지치는 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소개해 주신 대로 2018년도에 홍대라는 지역에서 교회를 시작했고,
저희는, 저희 가족과 한두 명의 우리 지체들과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없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그전에는 제가 대형교회에 있었지만,
교회에서는 저를 분립해 주길 원하셨고, 그러나 제 마음 가운데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가고 싶었어요.
분립도 너무나 귀한 개척입니다. 그러나 분립하게 되면, 또 그들과 함께 동일한 목회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저를 선교사처럼 보내 주십시오. 네 열정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원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시고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는지 이 시간에 함께 좀 나누길 원하고,
그런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분을 붙여주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이제 2년 전에 홍대 교회를 분립했고, 작은 공동체지만 제가 다시 한번 또 개척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김포에서 두 번째 교회를 개척하는 그런 시즌 가운데 있습니다.
개척자의 삶, 또 전도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분, 고단할 때가 있더라고요. 작년이 좀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는 아는 것이 없다 보니까, 열정을 가지고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시작을 하려고 하니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때 저에게 주셨던 위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제사를 집례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집례하는 것은, 눈에 잘 보입니다.
레위기에 어떤 말씀이 있는가, "불을 꺼트리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기 6: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그 말씀이 사실 저를 시험 들게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최초의 불을 주셨어요. 제사장들에게 말씀을 보면
그런데 이 불을 아침마다 저녁마다 꺼트리지 말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저를 좀 시험 들게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최초의 불을 주셨어요.
그런데 이 불을 아침마다 저녁마다 "꺼트리지 말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캠핑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불을 안 꺼트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불은 꺼집니다. 꺼트리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계속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남들이 보이지 않지만, 이 제사를 집례하기 위해서 불을 꺼트리지 않는 하나님만 아시는 노력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말씀이 저에게 왔을 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시험이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 제가 좀 낙심이 되고 시험이 들었는가, 이 불을 내가 유지하고 있나?
하나님이 최초의 불을 나에게 주셨을 때, 그 불을 내가 유지하고 있을까?
너무나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바쁘게만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말씀을 쭉 보는데요.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 나옵니다.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합니다.(레위기 10:1)
'아,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불을 유지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불로 사역하는 건 아닐까?'
저 개인의 어떠한 고민들이 있었고, 한 3개월 이상 상당히 긴 시간이죠.
이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던 게 작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하여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나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이사야 42:3)
이 말씀이 얼마나 저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세 아이가 있는데, 고등학교 아들, 중학교 아들, 초등학교 4학년의 막내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 감사하게 폭풍의 두 아들 속에 그래도 미소를 가지고 살라고 딸을 허락하셨는데
제 딸은, 막내라 그런지 자기가 사랑을 받아야 되는 걸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생일 한 달 전부터 얘기합니다. 데코레이션은 어떻게 해주고, 어떻게 꾸며줘야 하고, 그걸 너무나 누리는 거예요.
생일 케익을 이렇게 준비를 당연히 해야겠죠. 오빠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미리 다 시켜요. 내 생일에 이걸 주문하고, 이걸 가지고 오고... 그런 아이인데, 그런 이미지가 생각이 났어요.
이 케익이 있는데, 초를 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아이가 불게 하려면 이렇게 움직이려고 할 때, 이 초가 꺼질까 봐, 이 불이 꺼질까 봐 어떻게 하지요?
이렇게 손으로 조심조심하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이 마음을 주셨어요.
'상인아, 너는 네가 상한 갈대처럼 생각하고, 너는 네가 꺼져버린 등불처럼 느낄 수 있지만, 나는 그 희미한 불을 끄지 않고 있단다'
이걸 이렇게 두 손으로 주님이 이렇게, 이렇게 비바람을 맞아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 영혼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전도자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거절감을 느낄 때가 있고...
여러분, 혹시 이 전도의 시즌에 여러분이 품은 영혼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
거절감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 계십니까? 오늘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가질 때, 오히려 우리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이제 전도의 이 시즌이 왔을 때, "아, 나는 그 불이 꺼진 것 같애, 나는 이전만 못해, 나는 이런 것 같애"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배 가운데 무엇이 필요할까요? 성령의 바람이 불길 원합니다. 여러분, 작은 불도 불이에요. 불은 불입니다.
이전에 생각했을 때, 아 나는 참 큰 불이었는데. 여러분 이것이 아니지요.
작은 희미한 불도 불입니다. 중요한 건 성령의 바람이 오늘 이 예배 가운데 불기 시작할 때, 그 작은 불이 붙기 시작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끝까지 사랑을 남기기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정체성이라고 하는 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보내심을 받은 일상의 선교사다'라고 제가 한번 정의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인가? 여러분 선교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지요?
'선교'라는 말의 뜻은,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보내심]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신다고 여러분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 중에 크게 우리가 두 가지로 좀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나의 삶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부모님을 여러분이 선택하시진 않았지요.
또, 여러분의 성별을 여러분이 선택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여러분의 이름도 여러분이 선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여러분이 선택하신 영역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청년들이라면 직장도 대학도 여러분이 선택하셨을 수 있고,
결혼도 물론 주님이 인도하시지만, 여러분이 여러 가지의 조건과 함께 거기에 믿음을 얹어서 선택하시지 않았겠습니까?
때로는 교회 공동체도 여러분이 선택하셨을 수 있고,
또 여러분이 어떠한 이사를 하거나 어떤 도시를 옮길 때도 여러분이 선택하셨을 수 있지요.
정리한다면, 여러분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것들이 있고요. 여러분이 선택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시지요? 하나님이시라고 믿으십니까?
여러분, 믿으십니까? 이게 되게 중요한 부분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면,
그 주관하시고 있는 그 여러분의 삶을 일상이라고 표현한다면, 일상은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는 그런 공간 아니겠습니까?
그 일상으로 여러분을 [보내셨다]라고 믿으시나요? 아멘!
여러분의 가정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내신 게 아닌가요? 보내셨지요.. 여러분의 직장으로 보내셨지요? 아멘, 맞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 자녀들과 청년들이 있다면,
여러분이 선택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곳에 보내신 게 맞습니다.
여러분의 살고 있는 부평이란 도시기도 하고, 또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일 수 있죠.
그곳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내셨다라고 믿으십니까? 이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매우 중요한 질문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질문이 가능할까요? 아주 쉽게 생각하면 "왜?"입니다.
* 하나님, 저를 왜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나요?
* 하나님, 저를 왜 이 남편과 결혼하게 하셨나요?
* 하나님, 제가 왜 내 아내랑 결혼하게 하셨나요?
* 하나님, 저를 왜 이 교회 공동체로 부르셨나요?
* 하나님, 제가 왜 이 직장을 다니고 있나요?
* 하나님, 제가 왜 이 일들을 하고 있나요?
기타 등등....
여러분이 결정하신 것이든, 또 여러분이 선택하시지 않았든,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그곳에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보내신 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막 이렇게 흩으셨을까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 아니시죠.
우리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매우 중요한 전도자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연이라는 게 없지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하는,
이 "주관"이라고 하는 단어의 뜻은, [하나님은 뜻을 가지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의미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관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일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 여러분을 보내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보세요. 선교라는 말의 뜻이 보내심이라고 그랬지요.. "보내심을 받은 자"
그럼 요게 어떤 단어가 될까요? - "선교사"
선교사의 뜻은 뭡니까? - "보내심을 받은 자"
그러면 여러분은 일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 일상의 선교사예요.
여러분, 이것을 인정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특별히 해외나 또 국내나 특별한 소명과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선교사님들이 계세요.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일상의 선교사인 줄 믿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전도자의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왜요? 왜 이 친구가 제 옆에 있지요?"
여러분, VIP를 우리가 못 찾을 때가 있어요.
왜 못 찾는지 아십니까? - 나하고 맞는 사람들을 찾기 때문이에요. 나하고 편한 사람들을 찾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질문을 해 보세요. 왜라는 질문을 하실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영혼들이 생각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요? -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걸 누굴 통해 하길 원하실까요? 여러분을 통해 하시길 원하신다라는 거예요.
이 정체성을 여러분이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자 이게 첫 번째예요.
요한복음 20장 21절의 말씀을 같이 한번 합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셨지요.
그리고 또 뭐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제자들을 보내셨듯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인 줄 믿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홍대라는 지역을 이렇게 왔어요. 청년들을 전도하고 싶고, 믿지 않는 영혼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집도 이사를 했고, 그런데, 그전에 이제 분당에 살다가 오니까요, 문화 충격이 너무 크더라고요.
이게 그냥 놀러 왔다가 집에 가는 그런 도시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때 제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 도시의 선교사로 부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뭘 할 수 있다고요? - 질문을 할 수 있다고 그랬지요. 하나님께 질문했어요. "하나님, 저를 왜 보내셨어요?"
"하나님, 제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죠? 뭘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주님이 두 번째로, 저에게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10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누가복음 10장 31-35절의 말씀을 제가 천천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강도 당한 자가 있었습니다. 강도를 당했어요. 도움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침"이라는 표현이 무슨 표현인가, 여러분 드라마틱한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데, "마침" 사람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 레위인과 제사장이었다는 거예요. 레위인과 제사장이 이 강도 만난 자를 봤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보고 어떻게 하죠? - '피하여 지나갔다'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성경의 번역을 보면, 보고 반대편으로 피하여 지나갔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 말은 뭘까요? 지금 내가 시간이 없다는 거죠. 내가 너를 응대할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의 반대말이 뭘까요? 맞습니다. 무관심인 거예요. 지금 강도 만난 자가 사랑할 대상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레위인과 제사장이 지나가서 뭘 했을까요? 레위인과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뭐지요? - 예배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저에게 이 말씀을 주셨어요. "하나님 왜요?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 맞는데, 여러분을 여러분의 일상으로 보내신 것이 맞는데,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상인아, 레위인도 지나가고 제사장도 지나가는데 너는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레위인과 제사장이 지나가서 하는 일은 예배입니다. 예배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쳤을 겁니다.
오늘 하루도 수많은 영혼들을 지나쳤어요. 왜 지나치는지 아십니까? 내가 사랑해야 될 영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수준이 안 맞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나하고 뭔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고,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강도 당한 자와 같을 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도자의 심장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 여러분 믿으십니까? 경험하셨습니까? 그렇게 사랑하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지나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냥 여러분을 지나치시나요?
그런데 왜 우리는 지나치고 있을까요? 주님이 이걸 말씀하셨어요.
저는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이 홍대라는 도시에서 누구를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대상을 말씀하셨어요.
제가 원래 교회를 개척하려고 해서 '처치 플랜팅'을 했습니다.
그건 뭐였냐면, 홍대 이대 연대 서강대 명지대까지 제가 지도를 그리고요.
기도하면서, 캠퍼스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 청년들을 제자화해서 로컬 안에 있는 지역 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들어갈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뭘 말씀하셨는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대상을 말씀하셨어요.
그 대상이 누구였는가, 홍대에 놀러오는 청년들을 지나치지 말래요.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 그냥 밤늦게 새벽에 놀러 왔다가 놀러 가는 친구들인데
여기에 사는 친구들도 아닌데, 이 친구들하고 제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데 주님이 저에게 너무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려고 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알기 때문이에요.
내가 이 친구를 사랑해야 되는 거, 이 영혼을 사랑해야 되는 거 아는데, 왜 기도하지 않는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홍대에 놀러오는 애들이요. 늘 술 취해 있는 아이들이요.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제가 이들과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가고 싶었어요. 아니요. 계속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개척을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했어요. 그런데 주님이 그 모습을 너무나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이 지나가는 걸 못 봤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못 봤을까요? 못 볼 수가 없지요..
도움이 필요한데,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이 지나가서 자기들끼리 예배하고 있는 그곳에 가고 싶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강도 만난 자라면 가시겠습니까?
이게 우리의 현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랬다라는 겁니다.
한 번은 저희 초기에 아프리카 친구들이 저희 교회에 있었어요. "아, 그들을 지나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한국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거예요. 제가 사과를 하고, 여러분 한국이 얼마나 인종차별이 심한지 아십니까?
오히려 백인들이나 화이트칼라 그들에게는 굽신거릴 수 있어요. 그러나 동남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너무 무시하더라고요.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친구가 신천지를 다니는 거예요. 제가 얘기했어요. '그 친구 데리고 와라'
너무 충격적인 얘기를 저한테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야기했는데, 신천지인지 알아요. 그런데 교회보다 낫대요.'
이게 현실이에요. 여러분, 제가 홍대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지금 신천지에 들어가고 있는지 여러분 아시죠. 이제는..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전도합니다.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전도를 어떻게 하는가?
모든 걸 쏟아요. 그들은 지나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나쳐요.
말씀을 계속 보겠습니다.(눅 10:33-35)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이게 저에게 중요한 말씀이 됐어요.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지나치지 말래요.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 - 저는 이 말씀을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놨어요. 리셋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사역 계획 다 내려놨어요. 그냥 이 말씀만 똑같이 따라 했어요.
※ 지나치지 않는 거예요. 그 다음에 어떻게 했다? -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갔대요
여러분, 가까이 가면 뭐가 보일까요? 필요가 보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지나침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가잖아요. 그들의 필요가 보입니다. 필요가 보였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 그 필요를 채워준 거예요.
36절과 37절을 여러분이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누가 너의 이웃이냐?" -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해라]
이게 요한복음 말씀으로 오면,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만 가지고,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 그것은 종교입니다. 신앙이 아닐 수 있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주님의 사랑만을 원하고 있는 건 반쪽짜리예요.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해라"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벽이 있다면, 이 벽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요?
우리가 사랑해야 될 이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할 만한 사람들만을 선택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준이 되어서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 내가 사랑하지 말아야 될 사람을 선택하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이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의 기준이 돼야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지요.
바울은 죄인 중의 죄인이고, 괴수 중의 괴수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는데, 그 누구도 의인이 될 수 없는데, 어느덧 우리가 의인의 자리에 있으면, 전도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요? - 우리는 의인이고, 이들은 죄인이니까..
그게 아니죠. 우리도 죄인이었고, 이들도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저에게 주셨을 때, 제가 홍대라는 도시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가까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프로젝트를 띄웠어요. "도시의 필요가 우리의 비전이다."
그러니까 나의 비전이 이젠 사역이 아니다. 가까이 가서 소수의 청년들과 함께
여기 보시면 빨간색, 이 리어카 같은 게 뭐냐면 캠핑 장비들입니다.
왜 그랬냐면, 다음 사진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한 명의 조선족 여자아이가 저희 교회에 오게 됐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매일매일 클럽을 다니는 친구였어요.
감사하게 제가 이 지리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얘기하는 거예요.
"목사님, 청년들이 매일매일 클럽을 오는데, 이런 것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그렇구나!" - 그러니까 직접 가까이 가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들의 필요가 뭔지...
그런데, 이 아이가 집이 없는 거예요. 조선족 여자 아이인데, 부모님은 중국에 있고 또 지방에 있고...
20대 초인데, 아르바이트도 하기 어렵고..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던 마음,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가까이 갔더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집이었어요. 그래서 이 아이를 위해서 숙소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너무 놀라운 건 이 아이를 시작으로 공동 숙소가 세 곳이나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청년들이 매일매일 예배했고, 많은 중독들이 끊어지고 회복되고, 그중에 네 명은 지금 저희 교회 사역자입니다.
전도사 두 명, 간사 두 명, 물론 3~4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지나치지 않을 때 일하십니다. 아멘!
다음 사진 보여주시겠어요. 제가 처음에 새벽에 이렇게 나갔더니, 10대들이 있더라고요. 청소년들이 있었어요.
제가 물어봤어요. "여기서 뭐하니?" 금요일 밤을 새워야 된대요.
그래야 토요일날 차 없는 거리를 할 때, 자기들이 춤을 출 수가 있대요.
가까이 가서 물어봤어요. "뭐가 필요하니?"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목사님, 춥고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제가 뭘 했는가, 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했습니다.
제가 재정이 없어서 강원도까지 가서 전기발전기를 사오고 이들이 춥다고 하니까,
중고가게에서 이렇게 캠핑 장비들을 사고 그래서 그냥 이게 길거리예요. 길거리에서 이들이 있는 시간에...
제가 움직이는 교회잖아요. 움직이는 교회가 돼서 그들에게 간 거예요. 가서 그들의 필요를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함께 했어요. 매주 함께 했어요. 매주 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기 시작해요. 이곳이 어느날 교회가 되었어요.
다음 사진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홍대 근처에는 클럽이 밀집해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었던 마음은 무엇인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고 했잖아요. 지나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 지역이 조금 우범지대예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좀 위험할 수도 있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주신 마음이 있어서 저희가 보통 금요일 열한 시 정도에 기도하고 나가면
이제 금요일 밤을 새고, 진짜 철야를 하지요. 밤을 새고 한 새벽 5시까지 2년 넘게 매주 했어요.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자 영상을 하나 좀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가?
가까이 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시작했어요. 한 3개월 정도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 그랬냐,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인가 방향성이 이렇게 나가고 있다라는 걸 제가 경험하게 된 거예요.
너희가 이 복음을 못 받아들여? 그러면 아쉽다. 어쩔 수 없지.. 그게 아니지요.
여러분, 겸손이라고 하는 빌립보서 2장에 나와있는 말씀의 겸손은 뭘까요?
그는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어요.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어요.
이 말은 뭘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의 기준에서 어떤 것들을 섬길 수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요. '아, 내가 할 만큼 했어. 내가 이만큼 한 거야.'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계셨는가, 우리보다 낮아져서 우리를 높이신 게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내 기준에서 그들보다 낮아지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기준보다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거리로 나갔던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3개월 정도는 저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어요. 우리 스텝들에게도 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그들보다 낮아지는 마음이 필요했으니요.
자 그랬더니, 듣게 되는 거예요. 저희가 말을 안 하니까 그들이 말하는 걸 듣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질문하셨고, 그의 삶을 들어 주셨습니다.
듣기 시작했어요. 이 청년들이 왜 이 새벽에...
여러분 제주도부터 시작해서요. 지방 모든 우리나라 전국에서 몰려오더라고요. 그렇게 놀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 참 이 아이들이 왜 저렇게 사나?'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아직 이들이 예수님을 몰라서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또 우리가 지나치고 있다면, 수많은 영혼들을 놓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아직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기 시작했어요. 매주 똑같은 장소에 저희가 같은 시간대에 나와서
지금같이 추운 날씨면 손난로를 그냥 주지 않았어요. 가장 따뜻하게 흔들어서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들부터 챙겨줬어요.
간식 따뜻한 걸 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을 끓여줬어요.
그리고 이해하고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술을 깰 수 있는 숙취 해소에 좋은 음료들을 주기 시작했고,
따뜻한 차를 주기 시작했고, 그들이 토를 하면 닦아주고, 위험하면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들이 알기 시작한 거예요. 이건 그냥 매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저희가 교회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베드로전서 3장 15절의 말씀을 같이 한번 합독하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여러분, 이 말씀이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 번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제 우리가 이걸 매주 하니까요? 물어오기 시작했어요.
"교회죠?" - 이제 부인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교회다" 그런데 제가 항상 새벽마다 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을 했는가,
교회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고, 제가 클럽 사장인 줄 알았대요. 대부분이 다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뭔가 그냥 이벤트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무슨 홍보를 안 하는데 이 친구들이 3개월 이상 지켜본 거예요.
그러면서 '아, 뭔가 다르다' - 여러분, 이 짧은 시간에 나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복음이 - 수십 명 단위가 아니에요. 모든 청년들이 대부분 다 술 취해 있어요. 마음이 다 열려 있어요.
정말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복음이 잘 전해지게 하실까?
저에게 물어봐요. - "이거 왜 해요? 교회죠?"
"어, 맞어"
"왜 해요?" - "예수님 때문에 하지.."
"예수님이 누구예요?"
그럼 자리에서 복음을 영접하고요. 한번 타락해 보겠다고 놀러왔던 청년들이 여러분, 거기서 저한테 안수기도 받고...
상상이 안 가시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제가 다 여기서 나눌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가서 그들의 필요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우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클럽 사장님이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하고, 신앙을 다시 한번 한 명 한 명들이 고백하기 시작하고,
그 길거리에서 술 취해 있었지만, 그 아이들이 찬양을 하기 시작해요. 어렸을 때 교회 다닌 기억이 있대요. 너무 교회를 오래 떠난 거예요.
한 번도 누구에게 나누지 못했던 상처들을 저희에게 나누기 시작하고, 저희가 길거리지만 기도해 주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교회 안에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가고 있는 자가 없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제가 어떠한 도전을 드리고 싶은가, "여러분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라는 표현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복음이라고 하는 그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이 있으신가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죠?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됐어요.
누가 붙여준 별명입니까? - 믿지 않는 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고 '쟤네 그리스도인이야'
우리 스스로가 부여한 말이 아니었어요.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교회 안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너희끼리 예배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가 누구냐라는 거예요. 정말 우리가 싸워야 될 진짜의 삶은
여러분의 일상 가운데 여러분의 아이들이 물어봐야지요. 그 속마음에 관한 이유를 물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직장 동료가 물어봐야지요.
때로는 VIP를 찾기도 해야 되지만, 여러분의 일상에 함께 매일같이 보는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물어봐야지요.
"너 어떻게 살기 때문에 이런 거야? 너가 가지고 있는 그 기쁨이 뭐야?"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 그리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라"
여러분, 이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 쉽지 않은 도전인 것을 제가 알아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마땅한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끝까지 사랑을 남기라"
그림 하나를 보여 주시겠어요. 이 그림이 저에게 큰 돌파가 되었습니다.
여기, 이리들이 있고요. 양이 있어요. 그럼 이리들 사이의 양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상상하신 대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두렵고 상처받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또 여러분이 여러분의 일상에서 선교사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복음 전도자로서의 우리 일상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 내가 그리스인이라는 것들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손해 봐야 할 것 같고,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 같고,
여러 가지 우리에게 어려운 지점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의 말씀을 정리한다면,
하나님이 저를 일상의 선교사로 교회 개척자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질문했어요. "하나님, 저를 왜요?"
두 번째,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치지 말아라!"
"주님, 저에게 강도 만난 자가 누군데요?" - 홍대에 놀러오는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제가 생각해 보지 않은 대상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가까이 가라!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한 번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벤트는 쉽습니다. 어디, 국내 선교 가고, 해외 선교 가고...
여러분, 제가 그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청년들 사역을 오래 하다 보니까, 국내 선교 가고 해외 선교 가면 딴 아이예요.
그냥 한국에서는 못하는데, 전도훈련 받고 제3국으로 가면 너무 잘해요. 그런데 돌아오면 못 하겠대요.
일상은 그만큼 힘든 거 아니겠습니까?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 같은 거예요. '이리들 사이'..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제 홍대에 있을 때도 몇 번 쫓겨나기도 했어요. 길거리에서
아니 참 감사한 건, 저희를 지켜줬던 것이 클럽에서 일하는 친구들이었어요.
때로는 경찰이 와서 저희를 어떻게 하려고 하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이 분들은 건들면 안 되는 분이라고'
그럼에도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의 삶이 있으시겠지요. 저는 교회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배신도 당하고...
이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네 목회자에게도 여러분 실망하시겠지만, 목사님들도 성도들을 통해 실망합니다.
제가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겠지만, 때로는 누군가 저한테 '이리 같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환경에 딱 놓여 있을 때, 더 앞으로 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탁 막히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너무 중요한 말씀을 주셨어요.
(눅 10:2-3)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저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리들 가운데 어린 양은 너무 지치는 거잖아요. 너무 무섭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여러분 전도자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나? 나는 훈련이 없나?'
저는 제가 이리들을 때려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들을 때려 잡는 게 전도라고 생각한 거예요.
능력을 구했어요. "하나님, 저에게 능력을 좀 주세요." 그런데 안 먹히는 거예요. 그 순간 좌절이 오는 거예요.
'아, 나는 능력이 없구나, 나는 믿음이 없나? 나는 훈련이 덜 됐나?' 급기야 '괜히 사임했나? 괜히 교회 개척한다고 나왔나?'
그때 주님이 주신 말씀이 "상인아, 내가 이 말씀을 통해 네가 도전하길 원한다." 이 말씀이 저에게 생수와 같았어요.
자 뭐라고 돼 있냐면, 저를 한 번 따라해 볼까요..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보내다]라는 단어가 들어오십니까?
※ [내가 너희를 보냈대요..]
그런데 어떻게 보내는가? -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이 보냈대요
그러면 이게 틀렸다는 거예요? 맞다라는 거예요? 맞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이 환경이 내가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됐어요. 내가 훈련이 없고, 믿음이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왜요? - 이리들 사이에서 자꾸 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상인아, 그건 믿음이 없는 게 아니야. 훈련이 안 된 게 아니야. 내가 너를 그렇게 보낸 거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여러분, 그러면 이 질문을 이 말씀을 해결해야 됩니다. 저는 질문했어요. "하나님 왜요?"
왜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이 제자들을 보내시고, 저를 보내셨고, 여러분을 보내신 거예요?
여러분의 가정으로, 직장과 캠퍼스와 도시로 여러분을 그렇게 보내셨대요.
제가 이걸 고민했어요. 이 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리고 깨닫게 된 게 있어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봐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으로 존재하셨더라고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요. 그런데 십자가 앞에서 그 능력을 쓰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자들이 볼 땐 너무나 무기력하게 잡히셨고, 맞으셨고, 수치를 당하셨고,
급기야 죽임을 당하셨어요. 물과 피를 쏟으셨어요. 이리들에게, 이리들 가운데 어린 양으로 존재하셔서 죽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으로 존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거예요.
아! 이게 이러한 말이구나!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논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한 가지를 끝까지 하셨어요. 힘을 쓰시지 않았어요. 이리들 사이에 그냥 어린 양으로 존재하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를 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인가, 저를 따라 해 봅시다. "끝까지, 끝까지 사랑을 남기셨다"
무기력해 보일 수 있고 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해 버렸어요. 아니 예수님을 팔기까지 했어요. 그걸 예수님이 모르시지 않았다고요.
예수님이 하신 건 뭐예요? 그 이리들 가운데 어린 양으로 존재하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은, 끝까지 사랑을 남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또한 이리 중의 한 사람이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처음부터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셨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린 양으로 존재하신 거예요.
하나님이신 그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어린 양으로 존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끝까지 사랑을 남기셨습니다. 그 남겨진 사랑이 예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단어로 설명할 때 '묻다'라는 단어가 있고 '물들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흘리면 음식이 [묻는] 거예요.
그러나 [물들다]라고 하는 건 뭐예요? 한 번의 사건이 아니에요. 음식이 묻는 건 한 번으로 일어날 수 있어요.
여러분,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남겨진 사랑이 우리를 물들었고],
이제는 그 사랑 앞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우리가 받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이기는 게 아니에요. 정복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때리고 힘으로 제압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무엇입니까? "끝까지 사랑을 남기는 것!"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일상에서 끝까지 사랑을 남겨보는 거예요.
여러분, 에스겔 33장의 말씀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에스겔 33:30-33)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여러분, 이것입니다. 응할 때가 있어요. "응할 때에는 그들 가운데 한 선지자가 있었음을 알리라"
여러분, 에스겔의 삶은 참 힘들었어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에스겔아, 응할 때가 있을 거야." "응할 때에는 그들 가운데 한 선지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거야!"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사랑을 남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아멘!
제가 여러분의 가정에 살 수 없고, 제가 여러분의 직장에 다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곳에 보내셨다라는 증거입니다. 그곳에는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는 VIP가 내가 사랑할 만하고 내가 편한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 그것을 제한하는 건 아니지만, 기도하기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강도 당한 자가 누구입니까? 제가 바로 그런 자였는데, 제가 강도를 당했던 자였는데,
주님이 저를 지나치시지 않았는데, 그럼 나의 일상에 주님이 필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바람이에요.
※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 가까이 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십시오.
※ 끝까지 사랑을 남기십시오.
※ 그때 주님이 일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