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7. 성인 배길관 충북대 명예교수
옛부터 동양인은 일상적인 자기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며 살았다고 한다. 유가는 聖人(성인) 또는 君子(군자)를, 불가는 부처(佛) 또는 如來(여래)를, 도가는 眞人(진인) 또는 道人(도인)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았으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유·불·선 삼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요 현세의 윤리적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聖人이란 완성된 인간 또는 완전한 인간을 이르는 말이다. 유교의 ‘聖’은 덕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聖人은 곧 成仁(성인) 즉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이를테면 인간으로서 천지처럼 만물을 사랑하여 그 덕이 천지와 일치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고, 그 덕이 다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賢人(현인)이라고 한다.
「주역」에 ‘고대의 성인은 깨어 있어 하늘의 이치에 응하고, 귀가 밝아 하늘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윤리와 천리가 일치하여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서 소통하는 天人合一(천인합일)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공자가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아가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하신 이른바 從心(종심)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 즉 현실적인 욕심에서 해방된 완전한 자유인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창조의 세계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절대적 단절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동양에서 말하는 하늘(天) 부처(佛) 신(神)은 초월성 즉 초인적인 힘이나 능력 또는 작용을 이르는 개념이며, 하늘이나 부처 또는 신의 속성이 사람의 마음에 실현된 것을 본성(性)이라고 하고, 그 본성에 천성 불성 신성이라는 초월적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하늘이나 부처 또는 신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나 부처 또는 신과 일치하는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동양 정신의 공통적인 신념이다.
「주역」에서는 天 地 人(천 지 인) 세 가지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뜻으로 三才(삼재)라고 함으로써 사람의 덕(德 : 능력)이 천지와 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맹자는 ‘하늘의 이치가 내 본성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내 마음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라는 인성관을 천명하여 天人合一(천인합일)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불가의 ‘卽心是佛(즉심시불),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에는 佛性(불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성인은 무욕의 인간이다. 공자의 殺身成仁(살신성인)이라는 말씀에서 살신은 몸(생명)에서 생기는 현실적인 욕심을 없앤다는 뜻이다. 석가모니가 일생 동안 수행하신 것은 오직 욕심 하나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채근담」에 ‘학문을 함에 뛰어나게 많이 공부함이 없어도 마음에서 物慾(물욕)만 제거하면 족히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라는 말씀이 있다.
공자는 溫故知新(온고지신)하는 학문을 통해서 성인의 경지에 이른 學聖(학성)이라고 하고, 석가는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은 覺聖(각성)이라고 하고, 예수는 기도 삼매에 들어 신의 계시를 받은 神聖(신성)이라고 한다. 공자 석가 예수는 求道(구도)의 길은 서로 달랐으나 모두 자기를 닦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 삼대 성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