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仁者 其言也訒
인자(仁者)는 그 말하는 것을 조심한다.
司馬牛 問仁한대 子曰 仁者는 其言也訒 이니라.
(사마우 문인 자왈 인자 기언야인)
사마우(司馬牛)가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자(仁者)는 그 말함을 참아서 하는 것이다.” (顔淵 3)
인(訒)은 ‘말을 더듬는다’는 말인데, 말을 할 줄 몰라 더듬는 것이 아니라,
말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음을 뜻한다.
인자(仁者)는 마음이 보존되어 방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말이 마치 참는 바가 있어서 쉽게 발하지 않는 듯하니,
이는 그 덕(德)의 일단(一端)인 것이다.
부자(夫子)께서는 사마우(司馬牛)가 말이 많고 조급하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말씀해 주어서 그 이것[말] 에 삼가게 하신 것이니,
그렇다면 인(仁)을 하는 방법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曰 其言也이면 斯謂之仁矣乎잇가 子曰 爲之難하니 言之得無乎아
<사마우(司馬牛)가> 말하였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이 인(仁)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우(司馬牛)의 뜻은 인(仁)의 도(道)가 지극히 커서
단지 부자(夫子)의 말씀한 바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다시 이것으로써 말씀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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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君者 不憂不懼
군자란 근심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司馬牛 問君者한대 子曰 君者는 不憂不懼니라.
(사마우 문군자 자왈 군자 불우불구)
사마우가 군자에 대하여 묻자 군자란 근심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顔淵 4)
○晁氏 曰不憂不懼는 由乎德全而無疵라
故로 無入而不自得이오 非實有憂懼而强排遺之也라
조씨(晁氏)가 말하였다.
“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음은 덕(德)이 온전하고 하자가 없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들어가는 곳마다 자득(自得)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실제로 마음속에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면서 억지로 이것을 배척하여 보내는 것은 아니다.”
☞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역시 걱정이 많은 사마우의 단점을 지적함으로써 계발시키고 있다.
사마우는 군자의 마음가짐보다는 군자라는 칭호에 관심이 많으므로
군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설명한 공자의 말씀을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경솔하게 반문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인은 늘 걱정하지만 군자는 느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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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四海之內 皆兄弟也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될 것이다.
子夏曰 死生이 有命이오 富貴在天이라 四海之內 皆兄弟也
(자하왈 사생 유명 부귀재천 사해지내 개형제야)
(사마우가 묻자) 자하가 (공자에게서 듣고) 말하길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하며,
(남과 사귐에 공경과 예의를 다하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될 것이다. (顔淵 5)
명(命)은 태어나는 초기에 받은 것이니, 지금에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늘은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이가 없는데도 저절로 되는 것이니,
내가 기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다만 순히 받을 뿐이다.
군자(君子)가 공경(恭敬)하고 잃음이 없으며, 남과 더붊에 공손(恭遜)하고 예(禮)가 있으면
사해(四海)의 안이 다 형제(兄弟)이니, 군자(君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이미 천명(天命)을 편안히 여기고 또 마땅히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하시기를 ‘만일 몸가짐을 경(敬)으로써 하고 간단(間斷)하지 않으며,
사람을 접하기를 공손(恭遜)으로써 하고 절문(節文)이 있게 하면,
천하(天下)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형제와 같이 한다.’고 하신 것이다.
자하(子夏)는 사마우(司馬牛)의 근심을 풀어주고자 하여 이 부득이한 말을 한 것이니,
독자(讀者)들은 말로써 본의(本意)를 해치지 않는 것이 가(可)할 것이다.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자하(子夏)의 사해(四海)가 다 형제라는 말은 다만 사마우(司馬牛)의 뜻을 넓혀 주고자해서 한 말이니,
뜻은 원만하나 말은 막히는 것이다. 오직 성인(聖人)만은 이러한 병통이 없다.
또 자하(子夏)는 이것을 알았으되 아들의 상(喪)에 곡하여 실명(失明)하였으니,
이것은 사랑에 가리워서 이치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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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焉 可謂明也已矣
(침윤지참 부수지소불행언 가위명야이의)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자장문명 자왈 침윤지참 부수지소불행언 가위명야이의
침윤지참 부수지소불행언 가위원야이의) (안연 6)
자장이 현명함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물이 스며들어 적시듯 은근히 하는 참언이나 피부로 느껴질 듯이 절박하게 하는 하소연을
통찰하여 행하지 못하게 한다면 멀리 내다볼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늘 본마음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욕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면 따르지 않고 강렬한 하소연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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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足食 足兵 民信之矣 民無信不立
식량이 풍족하며 군비를 충족하게 하여 백성을 믿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子貢 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 信之矣. 民無信不立
(자공 문정 자왈 족식 족병 민 신지의 민무신불립)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식량을 풍족히 하며 군비를 충족하게 하여 백성을 믿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顔淵 7)
창고가 꽉 차있고, 무비(武備)가 닦여진 뒤에 교화가 행해져서
백성들이 나[위정자] 를 믿어 이반(離叛)하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子貢曰 必不得已而去인댄 於斯二者에 何先이리잇고
曰 去食이니 自古皆有死어니와 民無信不立이니라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해서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하니,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사람은 신의가 없으면 설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양식이 없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죽음이란 사람이 반드시 면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비록 살더라도 스스로 설 수가 없으니, 죽음이 편안함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을지언정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지 않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또한 차라리 죽더라도 나에게 신의를 잃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문(孔門)의 제자(弟子)가 묻기를 잘하여 곧바로 밑바닥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장(章)과 같은 것은 자공(子貢)이 아니면 질문하지 못했을 것이요,
성인(聖人)이 아니면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4. 駟不及舌
사마(四馬, 곧 잘 달리는 말)도 혓바닥은 따라잡지 못한다.
棘子成이 曰 君子는 質而已矣니 何以文爲리오
(극자성왈 군자 질이이의 하이문위)
극자성(棘子成)이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질(質) 뿐이니, 문(文)을 어디에 쓰겠는가?”
(顔淵 8)
사람은 바탕 곧 마음이 착하면 되었지
겉으로 치장하고 공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극자성은 위나라 대부 질이니, 당시 사람들이 문이 이긴(꾸미는 것을 우선시하는) 고로 이 말을 함이라.
子貢이 曰惜乎라 夫子之說이 君子也나 駟不及舌이로다
(자공왈 석호 부자지설 군자야 사불급설)
자공이 가로대 애석하다. 그 사람의 군자에 대한 설명은
사마(四馬, 곧 잘 달리는 말)도 혓바닥은 따라잡지 못한다.
* 여기서 夫子는 벼슬하는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극자성을 가리킴.
사람이 착하면 된다는 것은 군자다운 말이지만,
質이면 그만이지 文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란 것이다.
말 한번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함부로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됨을 경계한 말이다.
駟不及舌(사불급설), 곧 대부의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이 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 달리는 말이라도 실수한 혀를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번 말을 내뱉으면 그것은 사마보다 더 급히 달려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으니
말함에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자성의 말이 이에 군자의 뜻이나 그러나
말이 혀에서 나오면 사마가 능히 좇지 못하니 또한 그 실언을 애석히 여기는 말이라.
205. 文猶質也며 質猶文也
(문유질야 질유문야)
문이 질과 같으며 질이 문과 같다.
文猶質也며 質猶文也니 虎豹之鞟이 猶犬羊之鞟이니라
문이 질과 같으며 질이 문과 같으니 범.표범의 털 없는 가죽은 개.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으니라. (안연 8-2)
문과 질이 같다는 것은 마음씨도 아름다워야 하고 또 공부도 많이 하여야 하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같은 것이다.
극자성의 말대로라면 가죽을 벗겨놓은 범과 표범과 개와 양을 분간할 수 없다는 뜻인데
겉가죽인 무늬를 벗겨놓는다고 하여 군자와 소인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鞟 : 가죽 곽
극자성이 말하기를, "군자는 본바탕만 좋으면 되지 굳이 문(文)을 무엇에 쓰겠는가?"라고 하자
자공이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대부가 그렇게 이야기하다니, 말은 한 번 뱉으면 사두마차로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신중하게 하여야 합니다.
본바탕이 꾸밈과 같고 꾸밈이 본바탕과 같으니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꾸밈이 중요하지 않다면]
털을 제거한 호랑이 표범이나 털을 제거한 개 양의 가죽과 다를 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극자성은 군자의 품격은 본바탕이 중요하고 문채(文采), 즉 꾸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공은 본바탕과 꾸밈이 둘 다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반대하는 말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본바탕을 중히 여기기도 하고, 꾸밈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본바탕과 꾸밈이 조화를 이뤄야 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206.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이 살기를 바라다가 미워할 때에는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 欲其生 惡之 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주충신 사의 숭덕야 애지 욕기생 오지 욕기사 기욕기생 우욕기사 시혹야)]
(안연 10)
충신를 주장하며 의에 옮김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때네는 죽기를 바라나니,
이미 살기를 바라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이 이것이 미혹이다.
자장(子張)이 어떻게 덕(德)을 높이고 미혹(迷惑)을 제거하느냐고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충성과 신실을 기본으로 삼고 행위가 예에 부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덕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이 살기를 바라다가 미워할 때에는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바로 이것이 미혹됨이다.”
충실과 신의를 중심으로 삼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방법이다.
사랑할 때는 오래 살기를 바라다가 미워지게 되면 죽기를 바라는데,
같은 사람에 대해 오래 살기를 바라다가 다시 죽기를 바란다면 이것이 바로 미혹이다.
207. 子曰 君君臣臣父父子子니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
(제공경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顔淵 11).
이것은 인륜(人倫)의 큰 법(法)이요, 정사(政事)의 근본(根本)이다.
이때에 경공(景公)은 정권(政權)을 잃어서 대부(大夫)인 진씨(陳氏)가 나라에 은혜를 후하게 베풀었으며
경공(景公)은 또 안에 총애하는 여자가 많아서 태자(太子)를 세우지 않아,
군신간(君臣間)과 부자간(父子間) 모두에 다 그 도(道)를 잃고 있었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이것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楊氏 曰君之所以君과 臣之所以臣과 父之所以父와 子之所以子는 是必有道矣어늘
景公이 知善夫子之言하고 而不知反求其所以然하니 蓋悅而不繹者니 齊之所以卒於亂也니라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임금이 임금이 된 소이(所以)와 신하가 신하된 소이(所以)와
아버지가 아버지된 소이(所以)와 자식이 자식된 소이(所以)는 반드시 도(道)가 있는 것이다.
경공(景公)은 부자(夫子)의 말씀을 좋게 여길 줄 알았으나 그 소이연(所以然)을 되찾을 줄은 알지 못하였으니,
그 말을 기뻐하기만 하고 뜻을 깊이 연역하지 않은 자이다.
제(齊)나라는 이 때문에 난(亂)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