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저 천 마디의 말보다도
그대 영혼에 기쁨을 주는
단 한 마디의 말이
보다 낫거니.
출처: 법구경 100
옹달샘의 물:
가치에 대한
가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쉬운 표현으론
귀함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함이지요.
일반인들은
그냥 편하게 받아들일 내용이지만
반야심경이나 선禪 불교 전통에 따라
수련하는 이들은
현상에 대한 분별과 판단을
극히 싫어합니다.
그들이 학습한 바에 의하면
견성은
경계가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치를 논함은
경계를 논함이기에
자신들의 길과 맞지 않다 여깁니다.
표면적 논리에선
타당한 듯 하나
그들은
견성의 경계 사라짐을
이성의 논리로 풀려하고 있으며
이성에 갇혀있기에
결코 견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계의 사라짐은
인식 차원의 전환으로써
펼쳐집니다.
이성과는
다른 차원을 열어야 하지요.
반야심경은
수련자들이 지향하고
또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차원에 대한
성격을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그 차원만으로 세상을 살려하고
살아야 한다 여김은
아직 견성을 전혀 모르는
명확한 방증입니다.
인간현상은
다양한 차원의 스펙트럼을 지녔습니다.
닦음에서 비판하는 것은
경계가 발생하는 차원에만 갇히는
현상입니다.
부분에 쏠려있는 불균형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닦음은
경계 없음과
경계가 펼치는 가치의 드라마를
함께 향유함을 지향합니다.
가치에 대한 가치를 모른다 함은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뜻입니다.
눈 앞에 떨어진
경제적 문제에 매몰되기에
왜 자신에게 재화가 필요한 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한 고민이 희박합니다.
운이 좋아 재화가 모이면
병원비와 향락 외에
특별히 소비할 곳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모르며
그저
생체 유지에 전념하는 차원이지요.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생체 차원보다는
조금 더 확장된 차원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자기 존재의 이유를
들여다 보아야 하지요.
무엇을 위해
숨을 쉬고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이성이 작동하는 인간이라면
목표와 방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런 행위를
'철학' 이라 합니다.
만난 적도 없는 어려운 이름의
이상한 사람들의 얘기를
답습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지요.
직면한 환경에 대해
스스로 사고함이 철학입니다.
5살 아이도 철학할 수 있고
철학하는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50이 되어도
언론과 유튜버가 던져주는 기준 외엔
판단 능력이 없는
어른들이 대부분인 현실입니다.
타인의 얘기에 귀를 닫으라는
뜻이 아니라
외부 정보를 스스로 고찰하는
자기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성품에 종속되면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을 얻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은
답이 있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방향과 가치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불안과 두려움과 외로움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가치를 안다함은
설렘을 경험할 수 있는 기본 조건입니다.
귀함을
안다는 뜻이지요.
설렘과 충족이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에서
접하는
고양된 설렘과 충족의 현상입니다.
개념과 기억의 차원에서
주로 지낸다면
아름다움이
곧 퇴색되는 이유이지요.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현상이 아니며
가치와 귀함에 대한 안목을
장착하고
설렘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확장하는 시스템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철학은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입니다.
건너 공간에서 찾아든 빛
가린 장막 설레임 더하고
푸른 사각 전하는 이야기
촘촘히 엮어본 미지의 꿈.
..240703小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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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小野의 옹달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를 철학이라 하니
소야(小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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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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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붓다의 선심으로
우주법계중생 지구촌사람 모두함께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현산김봉현 합장 ㅅㅎㅅ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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