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68]아름다운 사람(18)-제주올레길 서명숙
‘제주 2년살이’를 “로망”이라고 노래부르던 둘째동생 부부가, 마침내 그 여정을 끝내고 제주를 떠나며 오늘(4월 3일) 받았다는 <제주올레 완주증서>를 찍어 가족단톡방에 올렸다. 보람되고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경의를 표한다. 나로서도 제주 올레길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437km 27코스를 다 걸었다는 증빙이 필요한 패스포트가 있다는 것은 아시리라. 그 패스포트에 코스별 인증도장을 모두 다 찍어야 완주증서를 받을 수 있다. 나도 아내와 함께 거의 절반은 걸었는데, 언제나 다 걷고 이렇게 ‘아름다운’ 완주증서를 받을 수 있을까? 혹시 이 증서 하나도 못받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앞섰다.
우리 국민에게 ‘국토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제주 올레길’(올레는 고샅이나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은 2000년대초 제주 출신의 한 여성이 만든 ‘절묘한’ 워킹로드working road이다. 제주를 가보신 분들은 누구라도 서너 코스는 걸어보셨으리라. 그냥 걷기만 해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올레길, 437km는 1000리도 넘는다. 우리는 왜 이 길을 힘들게 걸으며 열광하는가?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걷고 있으면 마음이 어느새 편안해지고 사회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이사장 서명숙씨는 누구인가? 그 이름 석 자가 지금은 제법 알려졌지만, 90년대 서울에서 이미 유명한 언론인이었다. <시사저널> 정치부 기자를 거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시사인> 편집위원이기도 한 그녀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배낭 하나만 메고 산티아고길을 꼬박 걸으며, 그토록 싫어서 떠나온 고향 제주를 줄곧 생각했다고 한다.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토박이인 동생(서동철)과 제주 올레길 개척에 불철주야 몰빵, 1차 완성한 올레길이 오늘날 27코스로까지 확대 발전된 것이다(우도, 마라도에 이어 추자도까지). 길 안내판 ‘간세’과 나무 등에 매단 리본을 아시리라. 일본 큐슈, 몽골에도 올레길 간세가 수출되어, 외국에서 보는 간세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문화수출의 진수眞髓는 이런 것이거늘.
여성이 아닌 한 인간의 집념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그의 최종목표는 우리나라의 길이 세계자연유산에 오르는 것이라 한다. 그는 지난해 제주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여성지도자상과 국민훈장 동백장도 받았다. 박사학위를 수여한 이유를 읽어보자. “제주올레를 통한 제주어와 제주의 독자적인 문화 소개/제주의 생활과 문화 관련 저술·강연 활동을 통해 국민들과 여행객들이 제주도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제주의 역사 및 문화 활성화에 공헌했다” 그렇다. 애향심과 애국심의 발로가 이렇게 혁혁한 업적을 쌓은 것이다. 처음 그 뜻을 세우고, 오직 실천의 길로 나선 그의 여정이, 거룩하다. 그러니 그를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전라도닷컴> 서울 정모(정기독자모임) 등 서너 곳의 모임에서 자치동갑일 그와 수인사를 나누긴 했어도, 그는 아마도 무명의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제나 배낭차림의 수수한 옷차림, 말하자면 시골 농사짓는 아줌마 모습이 떠오르지만, 꼭 있어야 할 모임이나 자리에는 그가 꼭 있었다. <전라도닷컴> 만인독자위원회에 나와 같은 위원으로 있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 그와 언제 '막걸리 한 잔'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인생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런 날이 금방이라도 올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꼭 만나게 마련이라는 믿음으로 충만하기에. 하하.
그로 인해 해파랑길(동해안) 남파랑길(남해안) 서파랑길(서해안)도 속속 탄생하지 않았던가. 아아, 전국의 지도를 살펴 보시라. 쌈지길, 마실길, 옛길, 무슨 길, 무슨 길 등, 전국이 아름다운 길, 길, 길들로 넘쳐난다. 걷지 않으면 좀이 쑤셔 못견딜만큼,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DMZ길도 걷고 개마고원까지 가는 길도 걸어야 하리라. 그리만 된다면 못추는 춤인들 왜 못출 것인가. 그러니, 올레길을 그저 흔해 빠진 ‘힐링’이라는 말로 쉽게 풀이하지 않으면 좋겠다. 올레길은 사랑의 길이고, 행복의 길이자 인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걷자! 걷자!! 그리고 또 걷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