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후인 쥐박이대에 일본의 군함과 전투기가 다시 한국땅에
(서프라이즈 / 쳐죽일놈 / 2010-8-24 13:35)
MB, 일본 군함-전투기까지 끌어들이나
10월 부산 앞바다의 北선박 봉쇄훈련에 일본군 최초 참가
2010-08-24 12:57:58
정부가 오는 10월 부산항과 인근 해상에서 실시할 북한선박 해상차단 훈련에 해방이후 최초로 일본 자위대의 군함과 초계기까지 끌어들이려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4일 일본 정부가 오는 10월 한국이 실시할 예정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해상훈련에 호위함과 초계기 등의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가 북한의 무기수출 차단을 염두에 두고 국제사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한국이 주최하는 PSI 훈련에 해상자위대의 호위함과 PC3 초계기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이 이 훈련에 참여하게 되면 한국이 주관하는 PSI 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 보도와 맞물려, 국방부는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오는 10월 13~14일 이틀간 부산 인근 해상에서 PSI에 따른 해상 차단과 검색 훈련을 하기로 했다고 보고해, 정부가 이미 일본과 공동훈련에 합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훈련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 아.태지역의 PSI 참여국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지난달 25~27일 동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연합훈련에 일본 해상자위대 장교 4명이 미국함선에 옵저버 자격으로 탑승해 훈련상황을 파악토록 허용한 바 있다. 한미합동훈련에 일본 자위대가 비록 옵저버 자격이기는 하나 참가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어서, 야당이 반발하는 등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훈련 참관 차원을 넘어서 일본 자위대의 전함과 초계기가 정식으로 훈련에 참여하려 함에 따라 북한•중국의 강한 반발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이는 등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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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혼들의 피맺힌 원한을 반드시 풀어주어야 한다
과거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감행한 대규모의 집단학살만행들가운데는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도 있다.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경, 4 730t급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가 교또부 마이즈루항입구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m떨어진 수심 16m정도의 바다에서 3~4번의 요란한 폭발과 함께 두동강나면서 침몰되였다. 그 배에는 해방을 맞이하여 그립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기쁨을 안고 오른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 일본당국은 당시에 작성되였다고 하는 승선자명부에 따라 그 수를 3 735명이라고 발표하였는데 그 배에 탔던 조선사람들은 7 000~8 000명 혹은 1만 3 000명정도였다고 증언되였다.
그들은 강제로 일본땅에 끌려가 갖은 불행과 고통, 고역을 치르다가 요행 살아남은 조선사람들과 그 자녀들이였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조국해방인가.
꿈결에도 그려보던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부모처자들, 형제자매들과 만나게 되였다는 기쁨으로 하여 모두들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으며 흥분으로 가슴들먹이였다. 《조선해방 만세!》의 웨침과 감격의 환호성이 연신 터졌다.…
그러나 배를 폭발함으로써 그들을 모조리 죽일 흉계가 꾸며져있는줄은 그들가운데 누구도 몰랐다.
1945년 8월 22일 밤 10시, 혹가이도와 아오모리현의 군사기지건설장들에서 노예로동에 시달리였던 조선사람들을 태우고 아오모리현 오미나또의 군항을 떠난 《우끼시마마루》는 부산으로 간다고 하면서 일본의 서부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교또부 북부의 해군군항인 마이즈루항가까이에 이르러 그쪽으로 키를 돌렸다. 《물》을 싣겠다는것이였다.
갑자기 《쾅!》하는 요란한 폭음이 서너번 나면서 그와 함께 배가 두동강났다. 깨여진 선체짬으로 집체같은 바다물이 쓸어들어와 수천명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바다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으며 해방의 기쁨으로 들뜬 그 많은 사람들이 조국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검푸른 날바다에 가라앉고말았다.
그러면 그 폭발이 어떻게 되여 일어났는가.
일본당국은 그것이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의하여 《우발적으로》일어난 《불가피한 사고》였다고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폭침사건은 일본정부의 의도적인 조선인학살계획에 따라 조직되고 집행된 대집단살인사건이였다.
패망후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일본땅의 곳곳에서 저지른 만행의 진상이 드러나는것을 막기 위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각종 비밀군사기지건설에 내몰았던 조선인로동자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그 비밀을 지키며 비인도적학대행위와 살인범죄의 진상도 영원히 묻어버리려고 한것이다.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집단수장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도 그 한 실례였던것이다.
일제가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을 일으킨 다른 하나의 목적은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침략전쟁에서 패전의 쓴맛을 보게 된 분풀이와 앙갚음을 수천명의 조선사람을 살해하는것으로 하려고 하였던것이다. 방송으로 나오는 《천황》의 무조건항복선언을 듣고 숱한 군국주의광신자들이 《황궁》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앉아 배를 갈라 자결하고있는 판국에 식민지노예에 불과하였던 조선사람들이 기쁨에 넘치다니, 고스란히 기쁨을 맛보게 해줘서는 안된다, 죽여버려야 한다, 이것이 인간증오사상이 꽉 들어차고 살인기질이 몸에 푹 밴 일제살인귀들의 심리였고 여기로부터 잔인한 살인흉계가 꾸며지게 되였다.
《우끼시마마루》사건- 이 대학살만행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라는것을 명백히 할수 있는 근거들은 많다.
그것은 우선 조선사람들을 노예처럼 학대하던 일본군이 갑자기 선심을 쓰며 고향에 보내준다면서 거의나 강제로 승선시킨 사실에서 찾아보게 된다. 평소에 조선사람들을 짐승취급하면서 그들에게도 그리운 고향과 혈육이 있다는것자체를 념두에 두지도 않던 일제악귀들이 그 삵의 웃음을 지으며 귀국의 배길을 열어준다고 나섰으니 이것은 아무모로 보나 도저히 정상적인 일로 여겨질수 없었다. 특히 당시로 말하면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되는 선박들의 운행이 중지되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선과 출항이 승인되고 무난하게 이루어졌다는데 바로 대학살참상의 계획적, 범죄적진상이 진하게 깔려있는것이다.
이 사건을 일본당국의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조작에 의하여 감행된 폭침사건으로 보는것은 다음으로 《우끼시마마루》가 놈들이 말했듯이 부산항으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폭침장소인 마이즈루항으로 항로를 정하고 떠났다는데 있다.
《우끼시마마루》의 이전 승조원의 증언에 의하면 오미나또항을 떠날 때 이 배에는 얼마되지 않는 연료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끼시마마루》가 애당초 부산항까지 갈 계획이 아니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부산항으로가 아니라 폭침장소인 마이즈루항까지 조선사람들을 실어가는것이 일본반동당국이 정하여준 이 배의 출항 및 항해계획이였던것이다. 폭발직전에 배에 탔던 일본놈들이 뽀트를 타고 급히 달아난 사실도 여기서의 폭침이 사전에 계획된것이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우끼시마마루》사건을 꾸며진 학살사건으로 보는것은 또한 배를 가라앉힌 폭발이 놈들이 말하듯이 기뢰에 의하여 일어난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하여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재일동포생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 일본놈들은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의하여 침몰되였다고 변명하였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당시 이곳 항구에는 1천t급 배들이 500여척이나 있으면서 때없이 항만을 드나들고있었는데 유독 우리 동포들이 탄 배만이 기뢰에 걸렸다는 그자들의 변명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것이였다.…》
또한 《우끼시마마루》에 탔던 피해생존자들의 회상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폭발은 기관실이 있는 배밑에서 일어났다.…
선실안에 있던 동포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갑판우로 올라오려고 무진애를 썼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때 갑판우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일본해군노릇을 하던 백모라는 사람이 갑판으로 뛰여나오더니 <일본놈들이 화약을 터뜨려 배를 가라앉게 하였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물속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
이때에야 우리는 일본놈들에게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러나 사람들의 아우성소리와 함께 배는 바다물속에 잠기고말았다.》
이 얼마나 치떨리는 인간백정질인가.
이렇게 엄청나게 집단수장만행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기뢰에 의한 《불가피한 사고》로 매듭지으려고 획책하였던 일제는 이 살인사건자체를 영원한 비밀에 묻어버리려고 하였다.
배가 폭발할 때 겨우 살아남은 얼마안되는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간신히 뭍에 와닿자 일제는 마치나 그들을 위하는척 하면서 마이즈루항의 일본해군숙소에 수용하였다. 그 진짜목적은 그들 피해생존자들이 외부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차단하려는데 있었다.
그런데 여기 숙소라는데서도 새로운 살인음모가 꾸며졌다.
다음날 숙소안의 증기탕크가 갑자기 폭발한것이다.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폭발로 5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목숨이나 겨우 붙어있는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었다.
후에 밝혀졌지만 일제는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저들의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날것이 두려워 그들모두를 마저 죽이려고 이런 잔인한 짓을 또다시 했던것이다.
력대 일본정부가 비밀에 붙여오던 과거의 죄악들이 계속 드러나고있는 가운데 《우끼시마마루》사건으로 무참하게 죽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본의 이런 악독한 처사가 또다시 공개됨으로써 사람들의 격분을 더더욱 자아내게 하였다.
2001년 교또지방재판소는 일제패망후 귀국하는 수천명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우끼시마마루》폭파사건에 대한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며 정부가 피해생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할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은 이에 대하여 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수십년세월이 지났는데도 그와 같은 판결이 계속 나오고있는 사실은 일본이 아직 과거청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있다는것을 랭정하게 상기시켜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이 판결에도 의연 등을 돌려대고있다.
이 사건뿐아니라 일제가 감행한 모든 조선인집단살륙만행은 절대로 부정할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이 과거의 죄악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죄할 대신 그것을 부인하고 외곡하며 지어 공공연히 정당화해나서기까지 하는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며 2중의 범죄이다.
일본반동들은 사소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과거범죄에 대한 반성도 사죄도 배상도 한사코 회피하고있으며 조선을 또다시 가로타고앉아 우리 민족을 또다시 노예로 만들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의 헛된 꿈을 이루어보려고 침략의 기회만을 엿보고있다.
일본이 이렇게까지 놀아대고있는 배경에는 남조선괴뢰당국의 친일사대매국행위와도 밀접히 관련되여있다.
현 남조선집권패당은 저들의 살길을 사대와 외세의존에서 찾으면서 일본반동들과 한짝이 되여 반공화국압살책동에 광분하고있다.일본의 독도강탈행위에 대해서도 일본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먼산 바라보듯 하고있으며 조선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는 미국상전의 망언에도 항변은커녕 그것이 《공식명칭》이라고 얼토당토않는 궤변을 늘어놓고있다.
력사를 부정하고 민족을 우롱하는 일본반동들과 남조선괴뢰패당의 책동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다고 해도 우리 겨레는 일제의 극악무도한 살륙만행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인간백정들에 의해 집단수장된 령혼들의 피맺힌 원한을 반드시 풀어주고야말것이다.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첫댓글 일제와 미제는 이미 카쓰라테프트조약으로 한반도 식민지화를 결정하였지요. 그런 주제에 일제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었느니 하며 `점령군`이란 명분으로 아직도 이 땅에서의 지배권을 쥐고 있습니다. 무기장사치들의 만행은 끝나야 합니다. 힘에는 힘 외교에는 외교로 명백하게 대응하고 심판 해야 할 것입니다.
얼빠진 얼간이를 뽑아 놓고 그로부터 알아챙겨야할 우리몫을 챙길줄 알아야 하거늘 도대체 정신을 잃고 허둥대는 국민들...도대체 얼마나 당해야 정신을 차릴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