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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손길
참고말씀: 삼상20:3; 왕상19:2-4; 대하26:16; 욥23:10; 시21:1,2; 32:4; 50:15; 90:10; 119:71,107; 사1:25; 48:10; 64:8; 요14:13; 갈4:19; 히9:27; 약5:13; 계2:5
읽을말씀: 전7:14; 삿10:9
주제말씀: 삿10: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첫째, 인생에 두 종류의 날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런데 한번뿐인 이 인생은 참으로 변화무쌍합니다. 변수도 많고요. 모세의 증언처럼 수고와 슬픔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뿐인 인생을 어찌 살아가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인생 속에서도 낙오하거나 좌초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습니까?
먼저, 인생에 어떤 날들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어떤 날들이 있습니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7:14 상)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즉 인생에는 두 종류의 날이 있음을 깨닫고,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이 날들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병행 또는 교차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이 두 날을 병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전7:14 중) 무슨 말입니까? 인생에는 항상 오르막만 있거나 항상 내리막만 있지 않으며, 오르막을 만났더라도 언제든지 내리막을 만날 수 있고, 내리막을 만났다가도 다시 오르막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시로 교차하는 일정한 사이클(cycle)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점부터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각각의 상황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대처가 늦거나 잘못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계속되는 오르막일 때 자칫 자만에 빠질 수 있고,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26:16)
갑작스러운 내리막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하며,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2-4)
계속되는 내리막으로 인해 깊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삼상20:3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인생에 두 종류의 날이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즉 우리의 인생에는 항상 오르막만 있거나 항상 내리막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수시로 교차하는 일정한 사이클이 존재함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계속되는 오르막에 자만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내리막으로 인해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으며, 계속되는 내리막으로 인해 깊은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바랍니다.
둘째, 찬송과 기도로 반응해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7:14 상)
인생에 두 가지 날이 있음을 알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각각의 날에 적절히 반응해야 합니다.
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전7:14 상) /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하) 누구를 기뻐해야 합니까?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기뻐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형통하게 하신 일들입니다. 누구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까? 믿음의 사람, 곧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입니다. 이 같은 기쁨은 결국 응당 무엇으로 표출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셀라).”(시21:1,2)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형통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기를 바라고, 또한 우리에게 이런 형통한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기뻐하고 찬송하기 바랍니다.
2)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되돌아보아야 합니까?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7:14 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곤고한 날들을 허락하신 이유와 고난의 이유를 되돌아보고, 또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는 무엇으로 연결되어야 합니까? 기도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상) 어째서입니까? 형통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특별히 고난의 때에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즉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행하시며,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특별히 더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기 바랍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적기임을 깨닫고 그분 앞에 더욱 납작이 엎드리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셋째, 고난도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고 인내해야 합니다!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10:9)
각각의 날에 적절히 반응하되, 특별히 고난이 무엇임을 알고 인내해야 합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시32:4 상) /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시38:2 하)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생각하곤 합니까? ‘형통한 날만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래서인지 형통한 날에는 곧잘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곤고한 날 역시 하나님의 손길임이 분명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 가운데서 늘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48:10)
이는 무엇을 통해 더 분명해집니까? ‘곤고’(히, 야차르)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의 곤고(困苦)가 심하였더라.”(삿10:9 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누르다, 압착하다’는 의미로써, 토기장이가 토기를 빚기 위해 흙을 압착하고 주무르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질그릇에 사용될 좋은 흙덩이를 구해다가 반죽하는 일일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반죽이 잘되면 그만큼 좋은 그릇을 얻게 되지만, 반대로 반죽이 엉성하면 할수록 그 만큼 좋은 그릇을 얻기는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죽할 때는 다소 번거롭고 고생스럽더라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대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잘 으깨어야 합니다. 즉 반복해서 흙을 압착하고 주무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10:9 하)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연단을 위해서도 무엇을 즐겨 사용해야 합니까? 고난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인격 등을 단련하시되 곤고한 날을 통해 반죽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고난의 연속입니까? 주의 손이 주야로 우리를 짓누르시는 것 같습니까? (시32:4) 그렇더라도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죽이시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시기 위함이며,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119:107)
우리를 깨뜨리고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그릇으로 빚으시기 위함이며,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이신 것이니이다.”(사64:8 하) 우리를 버리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기 위함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물론 지금으로써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 동안’ ‘어떤 식으로’ ‘어떤 그릇으로’ 빚어 가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순금(純金)과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다른 불순물이나 혼합물이 하나도 남지 않은 정금(正金) 말입니다. “내가 또 네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사1:25)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고난도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곤고함은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손길임을 알고 잘 인내하고 있습니까?
【목포주안교회】 수요저녁예배 LIVE (21.04.14)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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