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화팬들이 지난 겨울 심준석-문동주 원투펀치를 상상했습니다. 문동주는 우리팀이 됐고 올해 1차지명이 누구일지는 아직 모르나 어쨌든 팬들은 심준석이든 김서현이든 아니면 제3의 누구든, 문동주나 박준영 등과 더불어 미래의 선발진이 되길 바라겠죠. 수년 전 김민우가 입단할 때도 그런 기대를 했고요
이런 기대는 사실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유원상과 김혁민이 류현진과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주기를 기대하던 마음, (이름을 거론하기도 민망한 사례가 되었지만) 유창식이 무너진 팀의 구세주라 될거라고 기대하던 마음, 여기에 조지훈 최영환 성시헌 이승관 신지후 등에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습니까. 저 선수들만 기대대로 다 컸으면 우리는 5선발 아니라 10선발도 돌리겠지요
이런게 사실 최근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또 우리팀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죠. 매년 수많은 고교야구 스타들이 프로 문을 두드리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유니폼을 벗습니다.
기억의 추를 잠시 뒤로 돌려봅니다 송진우-한용덕-이상군 같은 투수들이 젊고 씩씩한데 정민철까지 튀어나왔던 90년대 중반 말입니다. 당시 한화는 92드래프트에서 지연규 93드래프트에서 구대성을 지명했습니다. 그 시절 중학생 1번선발은 1주일에 한번 나오던 '주간야구'라는 잡지에서 야구 정보를 얻었는데 저 선수들이 가세하면 만년 준우승팀의 한을 풀 것 같아서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구대성은 96년이 되어서, 지연규는 그것보다 더 늦게 팀에 도움이 됐죠. 노장진이라는 이름도 있었고요
'지연규랑 (94-95시절 기준) 구대성은 왜 정민철처럼 못할까?' 고민하던 그때 제 마음을 흔드는 이름이 또 나옵니다. 길배진이라는 대졸 투수입니다. 아마야구를 꼼꼼하게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대전고 출신이라고 하니 (정민철 동료니까) 왠지 잘 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길배진 이름을 연호해 본 기억이 저는 없네요. 몇년 뒤에는 북일고 출신 이성갑이 팀에 들어온대서 또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도 그냥저냥 마음 속으로 묻혔습니다.
신인 정민철의 임팩트와 이영우-송지만-임수민-홍원기 라인을 보면서 '젊은피의 힘'을 느낀 1번선발은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 19살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아마야구사랑' 같은 커뮤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동대문 가서 고교야구도 보고 다녔죠. 윤규진과 안영명 송창식에게 오랫동안 마음이 갔던 것도 2000년대 초중반 지명된 젊은 투수들 중에서 그래도 오랫동안 또 고생스럽게 공을 던져준 선수들이기 때문이고 '젊은피'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후 입단한 선수들이어서 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다 류현진에서 대박이 터진거고요
그런데 19살 선수들이 팀에 입단해서 잘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가 않죠. 이성갑 길배진 시대에도, 성시헌과 이승관의 시대에도 말입니다. 그저 변노와 문동주, 그리고 2023 입단 신인은 좀 다르길 바랄 수 밖에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대로 지명을 하지도 않았거든요. 이미 오래 전 얘기인데, 지금 같으면 팬들이 대노할 만한 일이 2004년에 벌어집니다. 당시 한화이글스는 (10명까지 지명 가능한) 2차지명에서 5면만 뽑고 6~10라운드는 그냥 패스합니다. 그리고 실제 계약은 4명만 했죠. 그때 한화가 지명 끝내고 그 이후 라운드에서 타팀에 지명받은 선수 중에는 롯데 전준우도 있었습니다.
유승안-한용덕 전 감독은 김은식씨가 지은 책 '한화이글스 때문에 산다'인터뷰에서 저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장종훈-한용덕 같은 연습생 출신 스타, 정민철처럼 상대적으로 주목 덜 받은 선수가 성공한 사례는 많은데 고액 1차지명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면서, (한화는) 저런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생각했거나 투자 대비 덜 나오니까 투자를 덜 하는 쪽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죠. 흙속의 진주 사례가 많았다면 하위 라운더도 열심히 모아서 그 진주를 찾았어야 했는데 아예 뽑아보지도 않았으니까. 구단의 그런 행태들이 지금의 비극을 만들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원래 드래프트가 10명 뽑아서 1명이나 2명만 건져도 성공이긴 하지만 이글스는 2000녀대 이후 드래프트 성공사례가 매우 드뭅니다. 80년대 초중반생 에이스급 몇 명이 고맙게도 팀에 와줬지만 그 사례들을 빼면 별로 내세울 게 없죠. 그 와중에 외국인 투수는 뽑는 족족 망했고 퓨쳐스 투자는 KBO 모든 팀을 통틀어 가장 늦었죠. 그 역사가 20년이 겹겹이 쌓였고 지금의 팀이 됐네요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의 플레이에 기대하고 내년을 기다리는 게 어떻게 보면 슬픕니다. 팀이 야구를 못하니까 팬들이 다른데서 희망을 찾는 느낌이 들어서요. 우리가 매일 이기면, 2위와의 게임차가 얼마나 벌어지는지 신경쓰고 한국시리즈 직행 매직넘버가 얼마나 남았는지 신경쓰는 팀 팬이었으면 덕수고에 누가 있고 서울고에 누가 있는지 왜 그렇게 열심히 찾아보겠습니까. 기껏해야 우리팀 1군에서 지금 누가 못하는지 정도만 신경 쓰겠죠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선수들이 내년 이후에는 팬들의 기대에 좀 더 어울리기를, 그래서 팬들이 유니폼을 아직 입지도 않은 아마추어 선수들 말고 우리팀 선수들의 모습과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15년 가까이 그것만 기다리기도 이제는 정말 지쳐서 말입니다.
첫댓글 최근에는 1군에 잘하는 선수가 적으니 더 신인들에게 기대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야잘잘이죠. 류현진 이후 냉정하게 야잘잘은 유창식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유창식조차 폭망 ㅠ 이글스 암흑기에 nc와 kt 신생구단 창단으로 그해 제일 잘하는 선수를 픽할 기회를 넘겨주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이글스 팜이죠. 그나마 최근 3년동안 주전급 선수들이 입단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부상없이 잘해주길 응원할 뿐입니다.
정민철 송진우 한용덕 장종훈 구대성 류현진 김태균 레전드죠
06년 이후로 이런 로또는 없네요
구단에서 2군 선수육성을 간과하는 바람에 이 사달을 겪고 있네요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무시하고 과거에만 집착한 결과로 10여년을 고통스럽게 지나오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