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1일 삼성화재 戰은 서브 리시브의 불안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상대 팀은 서브 리시브와 수비에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기에, 승리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경기를 포함해, 올 시즌 삼성화재 戰은 1승 4패가 되었고,
역대 삼일전 경기에서는 3년 연속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네요.
이 토록, 현대 및, 타 팀에서도 PO에서 그들과 맞대결을 꺼려하는 이유는
오늘의 경기에서와 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연습한 결과로 나타난 수비 집중력입니다.
올 시즌 삼성화재로 이적한 박철우선수도 "이곳은 오로지 배구 연습밖에 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죠.
또한, 최태웅선수의 경우도, 오로지 배구 연습만 하는 그를 보며 현대캐피탈 선수 및
코칭스탭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죠.
그들의 비결은 바로 꾸준한 연습이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유광우 선수의 경험의 계속 쌓이게 된다면, 지금 보다도 더욱더 강한 팀이 되겠지요.
그리고, 타 팀 선수들에 비해, 팬들에 대하는 그들의 예의바른 모습은 삼성화재만의 인성교육입니다.
선수시절, 현대캐피탈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었던, 임도헌 코치님의 사인입니다.
-버전업! 한자암기박사1,2 中에서-
삼성화재에서, 아니 우리나라 배구선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자랑하는 여오현 선수의 사인입니다.
V스페셜에서 홍익대학교 시절, 리베로로 전향하면서도, "나는, 단 한번도 리베로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라고 말했었죠. 적군이지만, 여오현 선수 정말 미워할 수 없습니다.
연봉과 효울성은 비례하지 않아
축구에서 베컴과 같이 650만 달러의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는 그 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례로 1995년 NBA 워싱턴 불리츠(현 워싱터 위저스)와 1억 500만 달러에 계약한 주완 하워드 선수는
당시 경기당 출장 시간이 NBA 4위, 필드슛 시도횟수는 3위였지만 평균득점은 10위에 불과했다.
이것은 하워드가 필드에서 뛰는 시간 대부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미국 유타대학의 경제학과 데이비드 베리 박사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승리점수(win score)’라는 새로운 통계기법을 개발했다.
농구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최우선 조건은 선수의 효율성이라는 그의 확신을 통계기법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는 승리요인을 알아내기 위한 계산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득점, 리바운드, 가로채기, 실책, 슛시도 등이
선수 효율성 평가의 핵심임을 알아냈다.
반면 개인파울, 프리드로, 블록슛, 어시스트 등은 앞의 요인과 비교해 50% 정도의 중요성 밖에 지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선수가 얻은 득점에 리바운드와 가로채기 횟수 전부 그리고 블록슛 횟수의 절반을 더한다.
이어 필드골 시도횟수와 실책횟수를 제하고 프리드로 횟수 및 개인파울 횟수의 절반도 뺀다.
이 같은 수치를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뛴 경기수로 나눈 다음 48을 곱하고 포지션별로 일정한 수를 제안 것이
바로 승리점수이다.
최종결과가 양수면 선수공헌도가 평균 이상, 음수면 평균 이하임을 의미한다.
Win score = PTS + REB + STL + ½BLK + ½AST – FGA - ½FTA – TO - ½PF
승리점수 = 득점수 + 리바운드수 + 가로채기수 + ½블록슛 + ½어시스트
– 필드골 시도횟수 – ½(프리드로 횟수) – 실책횟수 – ½(파울횟수)
이러한 평가기준은 막연히 득점에 의해서만 평가하던 것에 비해 좀더 객관성을 갖는 구체적인
여러 측면이 고려된 선수 평가기준이 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생활과 통계' 中에서-
현대캐피탈에서와 같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박철우 선수와,
LIG의 엄창섭 선수의 사인입니다.
올 시즌 서브리시브 최하위인 현대캐피탈에서 기회가 된다면 엄창섭선수의 영입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주상용 선수도 사인을 받을려고 했습니다만, 워낙 팬이 많아서, 사인을 받을 수 없었던 점, 양해바랍니다.
통닭집 사장이 부럽던 그때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도 멋진 출발을 꿈꾸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청소년팀 대표가 되고 싶었고,
올림픽을 거쳐 국가대표에 오르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댔습니다. 꿈을 향한 출발은 커녕 축구화를 계속 신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수원공고 3학년이던 1998년,
난 대학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했고 프로팀에서도 연거푸 테스트에서 낙방했습니다.
IMF 탓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육점도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습니다.
“너 대학 못 가면 뭐하고 살래?"
그럴 때마다 철없이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통닭집 사장이 될래요."
그때는 정말 통닭집 사장이 부러웠습니다.
당시 우리 정육점 옆집이 통닭집이었습니다.
길을 오가며 들여다보니 오후 늦게야 문을 여는 통닭집이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출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침마다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맘껏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맘껏 먹을 수도 있다는 어린 마음에 괜스레 통닭집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만큼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통닭집 사장을 생각했을 만큼 당시에
나는 축구를 그만둘 수도 있는 절박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해 4월 강릉에서 열린 금강대기 8강전 패배의 충격은 혹독하고 쓰렸습니다.
4강에 올라가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특기생 제도 때문에 우리는 이날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대학 문을 두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나는 승부차기를 실축했고, 우리는 지고 말았습니다.
동료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은 따갑다 못해 냉담했습니다.
가뜩이나 속상해하던 아버지는 다른 학부모들이 나를 '낙하산'이라고 비난하자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한참 싸우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버지는 밤새 술을 마시다 첫차를 타고 수원으로 떠났습니다.
한동안 내게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말라며 화를 풀지 못했습니다.
내가 낙하산이라고 시기와 질투를 받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난 국가 대표를 여러 명 배출한 축구 명문 정명고를 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라."는 이학종 감독의 조언을 듣고 수원공고를 권했습니다.
이 감독은 입학할 때부터 나를 아꼈습니다.
이 때문에 종종 감독의 편애를 받는다는 오해를 사곤 했는데 이 대회에서 결국 이 일이 불거진 것입니다.
고려대는 날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국대회 우승에 팀의 주축이었던 나는 대학 진학은 무난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무참히 깨졌습니다. 정말 어느 대학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K리그 직행할 생각으로 몇몃 구단 테스트 때 연습생으로 참가하기도 했지만,
"기술은 좀 있는데 체격이 왜소해서......"라는 똑같은 답만 되돌아왔습니다.
이미 대학 신입생 모집이 끝나가던 1998년 말에는 정말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명지대 김희태 감독이 구세주로 등장했습니다.
이미 축구부 인원은 다 찼지만 마침 테니스 부에 남아 있는 자리에 나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때도 아버지는 울었습니다. 명지대에 입학한 후 어둡기만 내 앞길에 빛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1월 수원공고를 졸업하기 전이었지만 명지대 축구부 선배들과 함께 훈련할 때였습니다.
우연찮게 울산에서 올림픽팀과 연습경기에 출전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올림픽팀에는 이동국, 이관우, 박진섭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날 경기에서 나는 마치 마술처럼 50미터 이상을 내달리며 다섯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습니다.
내가 잘했다기 보다는 수비수들이 내 앞길을 훤히 터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일이 잘되려니 이렇게 풀리는 걸까요? 이때 허정무 감독이 나를 눈여겨본 듯 합니다.
대학 신입생이던 1999년 봄. 축구부 숙소에 머물던 내게 김희태 감독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올림픽팀에 합류하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습니다. 김희태 감독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성아! 네가 대표팀에 뽑혔단다. 내일 울산으로 합류하란다. "
"감독님, 어느 대표팀 말씀이시죠? 청소년 대표팀이오?"
"아니, 허정무 감독님이 맡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이야."
대학도 턱거리로 들어온 내가 청소년 대표도 아니고 올림픽 대표로 곧장 뽑히다니.
꿈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난 짐을 챙기기 위해 수원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미 내 전화를 받아 대표팀 발탁을 알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청바지 한 벌 못 사주고 고생시켰는데 이제는 어엿한 대표가 됐다."면서 울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는 날 대표팀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수원으로 되돌아가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신이 몽롱해져서 평소 눈 감고도 찾아갈 톨게이트를 지나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안용중학교로 전학했을 때 나를 지도했던 이덕철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성이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무조건 성공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성공할 거예요.’가 아니라 ‘무조건 성공해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건방지다고
꾸중했을 텐데 성실한 지성이가 그러니 믿어지더군요. 워낙 한결 같은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축구를 중도에 그만둘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한국에서 축구를 포기하면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축구를 포기한 선배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원공고에 입학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전국에는 내로라하는 선수가 즐비했습니다. 난 어디 가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잘한다는 생각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고 3때 금강대기에서 4강에 진출에 실패한 후에도 대학진학에 실패할까 봐 걱정하는 아버지를 위로했습니다.
“괜찮아요. 난 잘될 거예요.”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난 ‘지금 보이는 게 내 전부가 아니다.’
라는 말을 새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꿨습니다.
자기 최면이자 자기 암시였습니다. 만일 당시 내가 보여주었던 것만 인정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성장을 멈췄을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한창 욕을 먹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 일본의 몇 개 팀에서 언제든 받아준단다.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돌아가자.”고 말할 때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직 보여준 게 없잖아요. 갈 때 가더라도
전부를 보여준 다음에 가야죠.”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걸 보여주기 전까지는 아무리 욕을 먹고 맥주잔이 날아들어도
네덜란드에서 버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신에게 주문한 것들이 어느 순간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도 프로팀에도 못 갈 처지였던
내가 올림픽 대표와 국가 대표가 됐습니다. 나를 대표팀에 뽑아준 허정무 감독은 김희태 명지대 감독과
바둑을 두다 날 뽑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2년 초부터 한일월드컵 국가 대표 최종 선발 선수가 발표되던 5월까지 난 줄곤 언론에서
예상 탈락 1순위로 꼽혔습니다.
히딩크 감독 부임 후 단 한번도 빠짐없이 대표팀에 들어왔는데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귀포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최종명단이 발표되던 사흘간은 정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불안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예상 명단 기사 속에서 나의 미래는 비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는 당당히 엔트리에 뽑혔고,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로 월드컵을 치렀습니다.
허 감독이 날 바둑으로 뽑지 않았음을, 히등크 감독으로부터 내가 신뢰를 얻고 있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박지성 지음의 ‘나를 버리다’ 中에서-
위와 비슷한 우공이산을 소개합니다.
-만화로 쉽게 읽는 고사성어 中에서-
愚公移山 왜 꾸준한 노력을 할 수 없는 걸까?
꾸준히 쌓아온 작은 노력으로 큰일을 이룰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은 1945년에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우공이산 愚公移山’이라는 연설을 했다. ‘우공이산’이란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오쩌둥은 전 국민이 단결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건국이라는 어려운 사업을 반드시
이룩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우공이산’하면 마오쩌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명연설이었기 때문이리라.
‘우공이산’의 출전은 『열씨列氏 • 湯問篇』이다.
우공이산의 유래
옛날, 마을과 마을 사이를 가로막아 왕래하는데 큰 불편을 주는 높은 산이 둘 있었다.
산은 너무 높아서 무거운 짐을 지고 넘기에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기슭을 멀리 돌아서 두 마을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 중 우공愚公이라는 사람은 산을 골라 평평하게 만들면, 마을 간의 왕래가 아주 편해지고,
사람들의 생활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거의 아흔 살에 가까웠지만, 목표를 위해 홀로 묵묵히 산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늙은 우공의 터무니없는 계획을 비웃었지만,
우공은 거꾸로 그들을 어리석게 여기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산을 고르다가 죽어도 자식이 있으니, 그 자식은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또 자식을 낳는다.
이렇게 이 작업을 계속할 사람은 끝이 없다.
하지만, 산은 지금보다 더 높아지지는 않을 터이니 언젠가는 평평해지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만물을 지배하는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높은 산을 옮겨주도록 두 명의 신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왜, 꾸준한 노력을 할 수 없는 걸까?
작은 노력을 거듭하면 먼 장래에 큰 성과가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즉각적인 결과를 바라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꾸준한 노력이 힘든 걸까? 이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탐색해 보자.
우선 예를 통해 살펴보자,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속담은 기하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막상 공부를 시작하자 너무 어려워 죽는 소리를 내던 이집트 왕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집트 왕이 기하학을 공부하는 좀 더 손쉬운 방법은 없느냐고 묻자,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 Euclid는 “왕이라 해도 꾸준히 하나하나 공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의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유클리드의 대답은 이치에 맞는 정론正論이기에
반론할 것도 없지만, 이집트 왕의 기분 또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해야만 한다니 너무 괴로운 일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세 사람이 함께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한 사람이 맥주라도 한잔 마시러 가지 않겠냐고
청했더니, 다른 한 사람이 “아니요, 전 맥주를 삼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를 묻자
건강검증을 받았더니 요산치(혈중 요산의 양)가 너무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이에 호응하듯 또 한 사람 역시
“저도 요산과 고혈압 때문에 못 마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처음에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말했던 사람이
“그렇습니까? 사실 저도 혈당치가 위험 수위라서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이 세 사람은 마치 치열한 전투를 함께 겪은 오랜 전우를 만난 듯이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선술집으로 가서
어떻게 하면 술을 끊지 않고 요산치를 낮출 수 있을지를 각자 갖고 있는 온갖 지식을 총동원해 이야기한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선술집 구석에서 마흔 살 먹은 남자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에는 대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머리로는 생활습관 병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일상생활 속에서 이른바 생활습관 병 대책을 실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의사의 조언을 꾸준히 지켜도 그 성과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요산치든 혈당치든 일년에 한 번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있는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완전 금연과 채식주의 등 지속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다가 결국 포기해 버리거나,
생활습관을 무리하게 바꿈으로써 도리어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은 인생의 즐거움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왕이든 마흔 살 먹은 세 남자든 머릿속으로는 싫은 것도 참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이를 실행하는 일이 어렵고,
따라서 고민은 끝이 없는 것이다.
성과가 보이느냐 아니냐가 요점
앞의 예들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꾸준한 노력이 가능한 것은 일종의 재능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지는 나약해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너무 단정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큰 목표에 좌절해 버리는 사람이라도 매일 조금씩 결과가 나타나는 노력은 훨씬 쉽지 않을까?
나는 입원 검사에서 ‘경도 비만’이라는 판정을 받을 후 100그램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디지털 체중계를
구입해 매일 체중을 재고 있다. 지금도 내 체중은 최종목표에 훨씬 못 미치지만,
과식으로 체중이 올라가면 즉시 알 수 있기에 운동량과 식사량에 꽤나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이집트 왕 역시 매일 조금씩이라고 해도 기하학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유클리드에게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산치와 혈당치를 가정에서
매일 손쉽게 측정할 수 있게 된다면, 생활습관병은 줄어들고 세 남자들도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즉, 꾸준한 노력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따라서 꾸준한 노력을 하고 싶다면 노력과 성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사례 한 가지를 들어 보겠다. ‘100칸 계산(0~9까지의 숫자 10개를 무작위로 가로 세로에 배치해 100개 칸을
만든 뒤 각각 교차하는 곳에 지정된 계산방법으로 답을 기입하는 계산 트레이닝-옮긴이)’이라고 부르는 계산
문제를, 시간을 재서 반복적으로 학습시키는 ‘가게야마(陰山)방법’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기초 실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반복해서 계산하는 작업 자체는 이집트 왕이 아니라도 지겨울 테지만,
표준적인 방법으로 계산의 정답률이라는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그때까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노력과 결과의
관련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시대에 빠른 계산 속도를 경쟁한다고
해도 별 쓸모가 없을 듯 보이지만, 정답에 이르는 계산 시간을 측정해줌으로써 이 방면에서도 노력과 성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계산 능력이 강화된다고 해도 이는 실력과는 별개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도 나는 구구단에는
자신이 없어서, 계산 능력이 그 사람의 논리적 사고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계산 능력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아도 다른 방면에서 실력이 신장된다는 설에는 찬성할 수
있다. 일단 노력과 성과의 관련성을 체감한다면, 계산 이외의 방면에서도 그와 같은 관련성을 찾아내기
쉬워진다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집중력’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재능은, 자신의 작은 노력에
대한 작은 성과라는 미세한 관련성을 확실하게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큰일을 이루기 위한 목표 설정 방법
남을 행동하게끔 만들려면 행동을 촉구하는 자극, 즉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노력하도록 만드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가망 없는 어려운 일을 목표로 앞으로 나아가라고만 해서는, 성공했을 때의 이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머지 않아 노력할 의욕이 시들어 버리는 법이다. 반대로 금방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하기 쉽고, 원대한
목표가 저 먼 곳에 있다고 해도 목표로 이어지는 바람직한 결과가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그것이 다음 노력을 촉구하는 인센티브가 되는 선 순환을 불러온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자신이 노력한 행동의 성과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그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인센티브를 효과적으로 부여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가케야마 방법에서는 일일이 ‘100칸 계산’을 하고 결과를 측정함으로써 성취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활습관병의 예방에도 성취감을 주는 검사법 • 치료법이 효과적일 테지만, 내 눈에는 아무래도 의료기관이
이런 일에 무심한 듯 보인다.
사실 이처럼 달성목표를 세분화하여 작은 행동이 작은 성과를 낳는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활용해 행동을
위한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전략은 경제의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전국으로 확산된 ‘1,000원 숍’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상품을 작게 나누어 단가를 1,000원에
맞춤으로써 자신의 손으로 상품 하나하나를 쇼핑 바구니에 넣을 때의 만족을 강조한 점에 있을 것이다.
1,000원 숍에서 10가지 상품을 구입한 사람이 똑 같은 물건을 한 꾸러미에 넣어 1만원에 판매하고 있는
점포에 갔다면, 과연 그 꾸러미를 살까? 일부러 손님에게 세세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닌텐도 게임보이 ‘포켓몬스터’가 발매된 이래, ‘포케몬’(포켓몬스터의 약칭-옮긴이)의 폭발적인 인기는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석권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각 나라의 사전에 포케몬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포케몬’ 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고,
이를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본 것은 1999년 무렵으로, 그것도 이탈리아에서였다.
아침에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본 것이다.
포케몬들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말한다. 포케몬은 이탈리아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고,
아이들은 포케몬 카드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포케몬들은 카드라고 해도 대충 세어 100종류 이상 되므로
이를 전부 모으려면 상당한 돈을 쏟아 붓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한 장씩 손에 넣을 때마다
아이들은 성취감을 맛보므로, 이 성취감이 계속 수집하게끔 만드는 인센티브가 되어 일단 모으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즉, 주인공을 만들 뿐 아니라 조금씩 성질이 다른 조역들을 많이 만들고,
더군다나 이들을 카드로 제작해 수집하게끔 하는 것이 거듭된 작은 노력으로 구매력을 더욱 환기하는
시스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포케몬 카드를 한꺼번에 묶어 판매해 버리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각종 컴퓨터 게임이 한 단계 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 테크닉을 응용한 것이다.
오로지 수십 시간을 투자해 도전을 계속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게임 형식으로는 상당한 마니아 밖에는
게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적당히 하면 적당히 단계가 올라가는 시스템이라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큰 성취감을 낳기 때문에 게임에 몹시 서툴러도 그만둘 수 없게 된다. 이런 효과에 따라 자동적으로 다양한
고객층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매출을 올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복권에는 고액의 1등 상금 뿐 아니라 소액의 상금도 있다. 2005년 연말 점보복권의
1등 상금은 20억 원이었지만, 가장 적은 상금액은 6등의 3,000원이었다. 1등은 좀처럼 당첨되지 않지만,
6등은 10장에 1장 비율로 당첨되므로 자주 당첨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순수하게 확률과 기대치만을
생각하면 상금의 등급을 여러 개 만드는 일은 별 의미가 없지만, 사람이란 당첨이 너무 안 되면 계속할
의욕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이와 대조적인 것이 축구복권이다. 현재 축구 복권에는 복권의 6등에 해당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축구복권을 해도 당첨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축구복권은 2001년에 대대적인 광고와 더불어 도입되긴
했지만, 해 다마 구매자 수가 감소해 운영경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도박은 도박판
주인이 초과 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이 오랜 학문적 상식이며, 그런 이유로 도박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의 축구복권은 여기에 학술적으로 귀중한 예외 사례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다양한 곳에서 ‘포인트 제’가 도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구매 금액에 따라 포인트가 누적되고 이 포인트가 많이
쌓이면 돈으로 바꾸거나 상품과 바꾸어 주는 시스템이다. 여기서도 구매 금액이 적더라도 포인트가 착실하게
조금씩 쌓여간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계속 각인시켜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구매할 때마다 받는 영수증 따위에 지금까지의 누적포인트와 이번에 얻은 포인트가 자동으로 인쇄되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곳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합리적인 목표 설정이 필수
물론 작은 노력고가 그에 상응하는 작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성과가 누적된 결과,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한 후 움직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강제로 만들었다면, 그 목표는 오히려 학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의욕은 금방 꺾이게 된다. 매일 꾸준히 사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건강도구나
미용식품 광고에 놀라울 정도로 차이가 나는 ‘사용전’과 ’사용후’ 사전이 언제나 따라붙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탑승 거리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고, 이 포인트로 무료 항공권이나, 그
밖의 특전과 교환 할 수 있는 제도이다. 비행기 탑승 뿐 아니라 신용카드와 제휴해 쇼핑을 하면 포인트가 쌓이는 시스템도 있다. 원래 마일리지 프로그램이란 출장 등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기회가 많은 우량 고객들을 자사 비행기로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무료 국제항공권을 받게 되면 아주 큰 특전이지만, 초기 마일리지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빈번하게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마일리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각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여기에도 경쟁이 붙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일상에서 쇼핑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도록 되었다.
결과적으로 비행기를 이용할 기회가 없는 사람이라도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잇는 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 결과, 자주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마일리지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일리지 프로그램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착실하게 결과가 나오는 시스템이므로 이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반드시 제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중에는 비수기에 저렴한
항공권으로 장거리 루트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포인트를 적립하는 열혈인도 있다고 한다.
저렴한 장거리 루트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경유를 위해 장시간의 비행을 강요당하고 불편한
환승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한다는 관점에서는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마일리지 포인트를 적립하는데 열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같은 값에 비행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좋은
기회인 것이다. 포인트를 쌓기 위해서 장시간의 비행을 감행하는 행위를 ‘수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행에 정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비싼 운임이라도 비행기를 이용하는 우량고객을 유치한다는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므로, 항공사 입장에서 수행자의 증가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꾸준히 하는 것은 힘이 된다. 그러나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작은 목표를 세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꿈은 끄게, 목표는 세분해서.
-고사성어로 배우는 경제학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