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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한성백제왕성 조작 고발 조회수 3,000 돌파!!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리며, 이희진 박사 초청 세미나를 통해 궁금증을 확 풀기를 제안합니다.
딱선생 추천 12 조회 3,529 17.05.11 14:11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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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7.05.11 14:26

    첫댓글 운영진께서 이희진 박사 초청 강연회를 한번 기획해 보시기를 제안드립니다...이희진 박사 초청은 제가 주선하도록 하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7.05.11 14:54

    네 오히려 왕성의 위치는 하남 쪽이 더 근거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그러나 그것도 발굴 이후 주장되야 현실성이 있는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풍납토성이 왕성이 될 수 없는 근거들이 대거 출토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오히려 왕성의 근거로 위조하는 작업들이 계속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지역은 고구려, 신라도 점령했었기에 시기에 따라 이들 국가의 유적도 발굴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것을 모두 한성백제의 유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7.05.11 14:58

    네 그렇습니다...적어도 백제의 왕궁이 있는 왕성이라면 풍납, 몽촌토성과 같은 작은 규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의 제기하는 측의 주장입니다. 아울러 왕성은 강을 끼는 것이 좋으나 왕궁은 절대 강변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풍납, 몽촌토성 일대는 수해가 우려되는 지역입니다. 과연 권력의 핵심인 왕궁이 그런 수재 위협 아래 노출되었을까요? 문제는 왕성프로젝트를 주장하는 자들이 왕궁과 왕성의 개념정립 조차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흐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님께서는 역사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 여져지니 한번 책을 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17.05.15 00:05

    "사람과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우리는 지금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겁니다."

  • 17.05.15 01:31

    괴물들 ㅎㅎ재밋군요!!계속 집중할게요.

  • 17.06.10 00:33

    우리 역사를 뉴라이트 매국노자금으로 호의호식한 친일강단식민사학 나부랭이들이 재단한다는게 개탄스럽네요. 이희진 박사님같은 재야 역사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 17.06.14 22:47

    지지합니다. 이미 조선 고구려의 역사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부끄럽죠.

  • 17.06.16 09:51

    풍남토성은 제대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굴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풍납토성 지역 전체가 대규모 주거단지인 까닭에 이 지역이 백제 왕성으로 문화재 보존 지역이 되면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사실, 풍납토성의 경우, 발굴이 된 지역은 지극히 일부 지역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도 30~40년전에 밭이었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대도심이기 때문에 발굴 가능한 지역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 풍납토성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라 경주 수준의 문화재가 무더기로 출토 되었지요 양과 질 모두에서..

  • 작성자 17.06.16 22:35

    양은 많다면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적다면 적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주관적이라는 것이지요...책에도 언급이 됐지만 로마보다 폼페이에서 압도적으로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폼페이를 로마의 수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질적이라는 것은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일국의 왕성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이 있습니다. 신라 경주는 그 기본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나 풍납,몽촌토성은 뭐하나 갖춘 것이 없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당시 동북아 제국의 왕성은 공식이다시피 갖춰야만하는 요건들이 있었는데 소위 한성백제 유적지는 이것들이 없다는 것이지요.
    지하철 안이라 시간나는대로 요건들을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 17.06.20 00:58

    이희진 박사 저 '조작된 한성백제 왕궁'에서 인용합니다.(일부 편집) 160P
    '풍납토성을 왕성이라 주장하는 측은 이곳이 8%밖에 발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우선 8%라는 수치 자체를 절묘한 눈속임에 사용했다. -중략- 지난 20년 동안 여러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지역 중 상당수는 이른바 '시험발굴'지역이다. 이곳의 발굴면적은 얼마되지 않지만 주변지역까지 어떤 성격을 가진 곳인지 가늠해 보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다. 즉 이런 지역에서 왕궁이나 대형사찰같이 왕성의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면 주변의 일정한 넓이까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8%보다는 훨씬 넓은 지역을

  • 작성자 17.06.20 01:06

    발굴한 셈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8%라는 지역이 한곳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략- 사실 웬만했으면 그동안의 발굴을 통해 왕궁이나 대형 사찰같은 왕성의 증거 한 귀퉁이라도 걸렸을 것이고 확인은 몰라도 윤곽정도는 잡혔어야 정상이다.'

  • 작성자 17.06.20 01:17

    상게서 80P 이후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건물 복원모형이라고 되어있는 이 모형이 한성백제의 왕이 의식을 치른 건물의 기본구조인 것이다. 고대국가 왕실의 중요한 의식을 치를만한 건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허름한 오두막에 불과하다. 이는 "한성백제는 제대로 된 고대국가가 아니었다."라고 홍보하는 꼴이다. 그런 백제가 고구려의 라이벌이었다니, 고구려의 얼굴에도 먹칠하는 꼴이다. 얼핏 보아도 사람 모형 세개만 들어가도 꽉차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좁다. 사실 이는 모형이나 그림을 잘못 그려서 좁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 모형의 기반이 된 이르납 '육각형집' 자체가 보통 23평 정도 되는 넓이이니, 이를 바탕으로 복원된

  • 작성자 17.06.20 01:32

    모형이나 그림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한성백제의 중요의식을 치른 육각형 집 복원모형의 사진을 보자. 지붕구조가 초가와 기와 이중으로 되어있는 참으로 기묘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기형적 구조가 탄생했을까? 풍납토성에서 대량의 기와가 발견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점이 이곳을 한성백제왕성이라 밀어 붙이는 근거가 되어왔다. "문제는 풍납토성 안에서 발견되는 건물 중에 기와를 올려 놓을만한 구조를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성백제를 주장하는 측에서 섭외한 건축학자는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각형 건물은 토대를 다지고 기단을 쌓고 기둥을 올린 제대로 된 궁궐식 건물이

  • 작성자 17.06.20 01:32

    아닌,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여섯개의 기둥을 둘레에 펼쳐 벽체를 세운 후 지붕을 지탱하는 소위 굴립식 건물인 것이다. 이는 도저히 구조상 기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복원을 담당한 건축학자는 결국 주변에 짚을 둘러서 초가를 만들고 가운데에 형식상 기와를 얹는 기상천외의 상상의 건물을 만들고 말았다.(역사왜곡 정도가 아니라 역사를 창작하는 수준...ㅉㅉㅉ) 그래서 이 장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굴립식 건물이 최고 기술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니 한성백제의 발전단계가 일본 야요이 수준이라고 해야 할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 작성자 17.06.20 01:37

    이런 측면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이 중국 남경사범대학 소속 왕지고라는 교수의 발표문이다.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 유적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도성이 된 시기는 물론 성의 규모 등에서 풍납토성은 동시대 중국의 2대 고도인 육조의 건강성 및 한위시대의 낙양성과 동일 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으며, 심지어 고구려 후기의 왕도인 평양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백제의 위상이 깎여내려졌으며,,,"근초고왕 이전의 백제는 아직 삼국의 오나 진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실력과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지하다시피 고구려 건국 초기 그 세력은 겨우 중국 동북 길림성의 혼강 유역에 불과하여 환인현 경내에 도읍을 하고

  • 작성자 17.06.20 01:45

    4세기 초에 이르러 겨우 낙랑을 점령하고 한반도 북부까지 발전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신생 정권으로..." 이렇게 덩달아 고구려까지 도매급으로 깎아내려지면서 동북공정의 빌미를 주게 되었으니, 진정 중국학자들도 이곳이 백제의 왕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애초에 내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갉아먹으며 치부하고 권력을 누린 자들인지라 새삼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과 일본에 도매급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과연 그들의 마음이 따갑기나 할까요?(이건 제 생각)

  • 17.06.25 14:42

    시바르사끼들...
    빨리 통일이 되어서 저런 쓰레기 역사학자들 쓸어버리고 민족 자주성을 회복해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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