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엔 평소보다 개봉영화를 더 많이 챙겨봤다. 아카데미 시즌이라 챙겨 봐야 할 영화가 많았고 사용기한이 임박한 맥스무비 예매권이 몇 장 남아있어서 빨리 써야했다. 작년에 영화 예매권 열장이 생겼는데 그게 12월 15일 부터 올 3월 15일까지 맥스무비에서 쓸 수 있는 예매권이었다. 황당한건 맥스무비는 동일 아이디로 같은 예매권을 4장 이상 등록할 수 없다는 자체 규정을 갖고 있다는것이다. 예매권 열장은 이벤트로 받은건데 예매처에 이런 등록 제한이 있어서 당황했다. 예매권으로 예매해도 포인트 적립이 되길래 처음엔 사실상 열한장의 예매권이나 마찬가지구나, 하며 좋아했는데 4장만 내 아이디로 예매와 적립이 가능했던것이다. 나머지 6장을 다른 아이디로 등록해야 해서 꽤 번거로웠다. 집안 식구 중 예매해 가면서 영화 보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당연히 맥스무비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온라인 예매처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디를 만들어 남은 예매권을 등록했는데 맥스무비의 또 하나의 규정은 숫자를 붙여서 아이디를 만들어야 한다는거다. 성가시긴 했지만 돈이나 매한가지인 예매권을 썩힐 순 없어서 등록했고 영화관을 자주 가니 한 달이면 다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론 나는 주마다 영화관을 가고 다 돈 주고 보지만 영화에 따라 예매처와 할인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주말, 주중 상관없이 아무 때나 쓸 수 있고 취소수수료도 안 드는 예매권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남은 6장의 예매권은 내 아이디로 예매하는것도 아니라서 포인트 적립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남은 예매권 사용은 가급적 자주 가기 힘든 씨네마테크에서 쓰는게 실용적일것이다. 그러다보니 예매권 활용이 계속 지체됐다. 공연 보러 가지 않는한 서울 갈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공연도 자주 보는 편이라 서울은 빈번하게 들르지만 공연 시간과 각 씨네마테크의 상영 일정을 공연 장소와 최대한 좁혀서 맞춰야지 시간 절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꼭 씨네마테크가 아니더라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예매권을 빨리 쓰고 싶었지만 걸리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영화를 혼자 볼 때는 주로 금요일 밤에 영화 두편을 몰아서 보는 편이다. 심야프로 한편, 그 전 프로 한편. 전에는 평일 날 이렇게 봤는데 새벽에 종영되는 영화를 보고 온 다음 날이면 파김치가 돼서 요즘은 자제한다. 돈 천원 아끼자고 용쓰는건 진작에 그만뒀다. 대신 심야 영화를 자주 보니 절약해서 보는 편이다. 조조영화는 보기도 힘들고 주차 문제도 걸려서 잘 이용을 안 한다. 동네에 상주한 롯데시네마를 주로 가는데 영화관 갈 때는 차를 끌고 간다. 동네 롯데시네마는 영화관 관객에게 3시간 무료이용권을 준다. 주차이용권이 3시간 제한이라 두편 보면 주차권을 두번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전에 3시간 넘는 영화나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보게 되면 주차시간 3시간을 맞추기가 곤란한데 어떻게 시간 계산 하냐고 영화관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며 책임 회피를 했다. 영화관 주변에 불법 주차할 만한 공간도 없다.
그나마 3시간이라도 무료 주차 이용권을 주는게 어디랴. 심야 영화를 보고 오는 이유가 한번에 영화 두편을 몰아 봐서 시간 절약, 경비 절약을 하기 위한것이 우선적으로 작용하지만 주차 이용 때문에 선호하기도 한다. 영화 한편 보고 출차하고 곧바로 다시 주차권을 뽑는 일은 여간 바보같은게 아니다. 그래서 전에는 그냥 주차권만 뽑아서 확인 도장을 받았는데 최근에 이 영화관 주차장 관리하는 위탁기관이 바뀌어서 이제는 그렇게 못한다. 그러나 자정에 주차장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퇴근하기 때문에 심야 영화 보면 출차 안 하고 연달아 영화 볼 수 있다. 조조영화 보러 가서 영화 두편을 몰아 보게 되면 출차를 두번 해야 하지만 심야에 영화 보러 가면 출차를 한번만 해도 된다. 그리고 주말의 행복이 정오까지 늘어지게 잘 수 있는게 아닌가. 아침 댓바람부터 영화 보려고 기상하긴 싫다.
보통 주말엔 새벽까지 밀린dvd를 보기 때문에 조조관람은 엄두가 안 난다. 평일 심야에 영화 보는 날은 동네 영화관에서 멤버스 시사회가 있는 날이다. 보통 월요일 저녁 8시나 화요일 저녁 8시에 시사회가 한다. 한달에 평균 두편씩 시사회 상영을 하는데 동네 영화관을 하도 많이 가서 8개관인 동네 영화관 좌석배치도도 다 외웠다. 다음 주에도 시사회가 있어서 겸사겸사 영화 한편을 추가 예매했다. [맨 온 렛지]까지 본다. 이번 주말에 [세이프 하우스]와 [디스 민즈 워]를 보면 거의 다 보는 셈이다. 이런식으로 안 봐도 될 것 같은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이 많다. 거기서 의외의 발견을 할 때도 많아서 정말 아니다 싶은 작품이 아니라면 거리낌없이 흡수한다.
심야영화를 자주 보기 때문에 예매권 사용이 더 더뎌졌다. 9천원짜리 주말 영화표까지도 예매할 수 있는 예매권을 엉뚱하게 6천원짜리 심야영화 관람으로 낭비할 순 없었다. 거기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맥스무비, 예스24, 인터파크, 컬쳐인KB에서 개봉 영화 할인권을 자주 뿌리기 때문에 할인권 있는 영화는 유료로 예매했고 할인권을 일체 구할 수 없는 영화만 예매권을 사용했다. 이 중 맥스무비가 할인권을 가장 자주, 많이 뿌린다. 지금도 [철의 여인]2,000원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맥스무비는 매일 한번 이상은 꼭 들어가서 이벤트 페이지를 확인한다. 전에는 인터파크가 할인권을 자주 제공했는데 요즘은 뜸하다. 롯데시네마 VIP쿠폰도 기한 넘기기 전에 사용해야 했다. 이런저런 우선순위가 늘 변동돼서 석 달 동안 영화관에서 숱하게 영화를 봤는데도 예매권 열장을 다 쓰는데는 예매권 기한 만료 19일 남겨두고 겨우 처리했다.
전에는 롯데시네마에서 7,000포인트 쌓이면 곧바로 포인트를 사용해 영화 한편을 봤는데 요즘은 할인권과 예매권 사용하느냐고 계속 적립만 해서 현재 21,000포인트가 넘게 쌓였다. 멀티플랙스 포인트 활용 인심이 가장 후한 곳이 롯데시네마다. 타 멀티플랙스는 8,000포인트가 쌓아야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다. 영화관 주말가는 금요일부터 적용되지만 메가박스와 달리 롯데시네마는 금요일까지는 포인트로 영화 보는게 가능하다. CGV는 작년에 CJ one으로 포인트 통합이 되고 나서는 주말, 주중 상관 없이 천원 단위로 포인트를 쓸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CJ one으로 통합되기 전과 달리 영화 관람 포인트 적립률이 5프로로 삭감됐다. 더 짜증 나는건 타행 예매처에서 예매하면 자리 지정도 안 된다는것이다. 메가박스나 롯데시네마는 웬만한 지점은 타행 예매처러도 지정 예매이다.
그렇다고 CGV가 임의로 지정해 준 좌석이 좋은것도 아니다. 타행 예매처 지정석이 별도로 할당돼 있어서 아무리 빨리 예매해도 D열 아니면 E열 끄트머리 석만 준다. 여러 CGV에서 타행 예매처로 영화를 예매해 봤는데 항상 좌석 열이 비슷했다. 영화관 좌석에서 D열이나 E열을 앉으면 약간 고개를 들고 봐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더욱이 내가 CGV를 꺼려하는건 영화표가 마음에 안 들어서다. 영화 표를 모으진 않지만 영화 보기 전 후 몇 시간 동안은 소지하고 있는데 CGV영화표는 일반 영수증 표처럼 발급 돼서 가지고 있기 불편하다. 영화표는 다 버리지만 영화 보자마자 버리는건 아니고 가방에 쟁여두고 있다가 한참 지나고 난 뒤에 쓰레기통에 버리곤 한다. CGV영화표를 가방에 넣으면 가지런히 정리가 안 된다. 모름지기 영화관 표는 직사각형 모양의 빳빳한 재질이어야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타 영화관과 차별화를 의식해서 그런건지 종이값을 아끼기 위해 그런건지는 몰라도 CGV는 한 사람 예매했건 두 사람 예매했건 표가 인원수대로 나오지 않고 인원 상관없이 한장에 몰려 나와서 더 싫다. 무비꼴라쥬 갈 일이 없으면 되도록 피하는게 CGV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 보이즈 않는 위험 3D - 롯데시네마에서만 쓸 수 있는 3D영화 1+1쿠폰으로 친구랑 봤다. [스타워즈]시리즈는 어릴 때 4편 보고 별 재미를 못 느껴서 남은 시리즈 5편은 안 봤다. 워낙 유명한 시리즈라 봐야할 것 같긴 한데 시기를 놓쳐서 관람이 부담스러웠다. 5편을 언제 다 챙겨보나. 4편도 의무감으로 본거다. 울궈먹기의 달인인 조지 루카스가 과거 리마스터 개봉으로 재미 본 [스타워즈]시리즈를 이제는 3D로 변환해 매년 선보인다고 하는데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조지 루카스 영감의 장삿속은 얄밉지만 개봉관에서 [스타워즈]시리즈를 연대기 별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3D를 싫어하지만 에피소드1이라서 안경 끼고 보는 걸 감수한거다.
3D변환은 실망스럽다. 조지 루카스는 원근감을 중시했다고 하는데 작년에 재개봉한 [라이온 킹3D]만도 못하다. [라이온 킹]도 튀어나오는 효과보단 원근감에 힘을 실었는데 [트렌스포머3]3D보다도 3D효과가 좋았었다. 조지 루카스 영화가 기술력에선 진일보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기대를 했는데 도입부 오프닝을 제외하면 거의 3D효과가 안난다. 영화의 백미인 레이싱 장면에서조차도 3D효과가 미비하다. 에피소드1은 [스타워즈]시리즈 중 가장 이야기가 허술하고 최악이란 평을 받고 있는데 개봉한지 12년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 본 나 같은 관객이 보기에도 내용이 엉성하고 유치했다. 형편없었다. 갈등과 위기의 해결방식이 너무 안일하다. 기술적인 부분은 지금 봐도 낡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충분히 적응됐고 분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탈리 포트만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외모가 영화상으론 정말 구분이 안 됐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나탈리 포트만이 한 화면에 잡히는 장면에서 나탈리 포트만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는데 키이라 나이틀리일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치코와 리타 - 이게 실사 영화였다면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것이다. 만화임에도 여주인공이 어찌나 육감적이던지 굉장히 매력적이고 야했다. [어페어 투 리멤버]를 연상시키는 헐리우드 클래식 멜로드라마를 표방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내용보단 음악이 좋았다. 내용은 상투적이고 뻔하다. 비극으로 끝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결말이 너무 비현실적인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나이든 관객들에겐 이 둘의 사랑이야기가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부분이 더 큰가보다. 내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은 후반부에서 내내 훌쩍거리면서 봤다. 오랜만에 씨네큐브 광화문에 가서 관람했다. 예술영화의 흥행기준인 관객 동원 1만명을 돌파해서 지금까지 장기 상영하고 있다.
스롤란 마이러브 - 에이즈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볼 수 있다. 다른 영화들에서 에이즈는 요한계시록 만큼이나 무시무시하지만 이 영화에선 남녀사이의 관계개선을 제공하는 도구적 소재일 뿐이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관심을 가진 데이빗 크로스가 주연한 작품이라 봤다. 영화보단 데이빗 크로스의 연기가 더 좋았다. 영어도 많이 늘었다. 아직 어리니 헐리우드에서의 가능성을 타진해서 보다 다양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로스페이스를 처음 가봤는데 아담해서 좋았다.
하울링 - 그래도 100만은 넘었다니 송강호는 [푸른소금]으로 구긴 체면은 살렸다. 손익분기점 돌파는 힘들것이다. 늑대개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소재가 그동안 국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재다 보니 신선한건 있었다. 유하 감독의 한계가 전작인 [쌍화점]에 이어 더욱 더 분명해졌다. [하울링]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유하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원래는 시집 읽기를 즐기지만 직업 감독이다 보니 의무감으로 소재 발굴 차원에서 소설을 읽는다고 한다. [하울링]도 일본의 노나미 아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것이다. 본인이 작품을 쓰기보단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영화로 변환시키는데 골몰하고 있다는건데 차라리 영화사 고용 감독으로 활동하는게 낫지 않을까?
영화는 둘쑥날쑥거린다. 어떤 부분에선 집중이 잘 되고 어떤 부분은 아리송하다. 장면과 장면이 자연스럽게 붙지가 않는다. 전개는 거칠고 늑대개 살인과 또 다른 연쇄살인의 상관관계도 겉돌기만 하다. 그리고 이나영이 분한 여형사가 너무 능력이 없다. 한대 맞으면 곧바로 고꾸라지고 그렇다고 머리가 명석한것도 아니다. 대체 왜 강력반에서 개고생을 자처하는지 알 수가 없다. 늑대개 살인이라는 소재보단 여자 형사가 남자들 세계인 강력반에서 성차별 당하고 무시 당하는 현실적인 묘사가 더 인상적이다. 실제로 서울에서도 강력반에서 일하는 여형사가 10명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감당도 못하는 늑대개 살인사건을 다루지 말고 내면 묘사가 돋보이는 여성 형사 영화를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 유하가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잘 담아낸다. 전반적으로 배우들 연기가 늑대개보다도 못했다. 한 마디로 개만도 못한 연기. 이 작품에 나오는 늑대개 시라소니는 [조선명탐정]에도 출연한 개다. 눈빛 연기가 강렬하다. 잘 안가는 동네CGV에서 봤는데 상영관이 마음에 들었다.
더 그레이 - 강변CGV에서 봤다. [자전거 탄 소년]과 [아티스트]를 강변CGV 무비꼴라쥬 관에서 친구랑 보기로 약속했고 나는 2시간 먼저 도착해 [더 그레이]를 봤다. 맥스무비에서 2천원 할인쿠폰을 주길래 싼 맛에 가벼운 마음으로 본건데 의외로 묵직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늑대 나온다. 전 날 [하울링]에 이어 연속으로 늑대 나오는 영화를 봤다. 생각보다 호러 강도가 세서 보는 내내 긴장했다. 결말은 허무하지만 그 전까지 사실적인 인물과 배경 묘사가 훌륭하다. 당연히 CG와 스튜디오 촬영 위주로 제작됐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현장 촬영이었다고 한다. 아내를 잃은 리암 니슨의 배역이 실제 아내를 잃은 리암 니슨과 겹쳐 보여 그가 아내를 그리워하는 연기는 연기로 보이지가 않았다. 올 상반기에 관람한 의외의 수작. [A특공대]만든 감독이 만들어서 큰 기대 안 했는데 수준 높은 웰메이드 스릴러였다. 특히 모든걸 다 놓아버리고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디아즈의 결단을 보여줄 때 영화는 철학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자전거 탄 소년 - 벨기에 영화는 처음 봤다. 이 영화 관람을 계기로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들을 몽땅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보기 전에 이미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에 대한 느낌이 좋아서 많이 찾아봤었다. 벨기에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문화적 괴리감이 많이 느껴진 영화다. 주말 위탁모를 맡은 여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자전거 탄 소년]을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까지 돌보고 결국은 거두는데 그 이유가 전혀 설명이 안 돼 있어서 의아했다. 이건 생략이 아니라 누락이다. 주인공 애가 하는 짓이 너무 밉상이라 얄미웠다. 소년의 아버지로 나오는 제레미 레니아가 궁금해서 본것도 있었다.
아티스트 - 예매 당시 인터파크에서 1인 2매 예매용으로 8천원 할인 쿠폰을 매일 200명씩 일주일 동안 제공했다. 덕분에 굉장히 저렴하게 예매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트로피는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에게 갈거라고 예상됐지만 분위기가 금세 역전됐다. 이변이 없는한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뎅에게 남우주연상이 갈 것 같다. 마크 월버그가 무슨 심보인지 그저께 이번 아카데미 후보 결과를 누설했는데 마크 월버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남우주연상은 장 뒤자르댕이다. 칸에서도 [아티스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 뒤자르뎅의 연기는 확실히 유쾌했고 감동적이었다. 그의 환한 미소와 페이소스는 진 켈리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나 무성영화를 봤지 이렇게 개봉관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무성영화를 본다는것이 짜릿했다. 컬러로 촬영하고 흑백으로 변환한 작품이다. 무성영화 시대에 활약한 무성영화배우의 애환을 유성영화로 넘어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무성영화 기법에 녹여낸 전개방식이 독특하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영화관을 제외하면 국내 영화관에서 스탠다드 화면 비율을 구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기법을 노골적으로 흉내낸 영화니 당연히 화면비율이 4:3 스탠다드 비율이다. 영화관에서도 4:3화면비율로 틀어준다. 다행이 국내 영화관에서도 스탠다드 화면비율이 제대로 투사되는데 이게 가능했던것은 이 작품이 4:3화면비율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워너 영화사 타이틀이 뜰 때는 와이드스크린이다. 그 뒤에 본 영화가 시작되면 4:3화면비율로 바뀌는데 아마도 레터박스와 같은 기법으로 종횡비를 구분한것같다. 평론가들이 환장할만한 영화라서 아카데미 작품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평론가들이 호들갑 떨만한 영화긴 하다.
액트 오브 밸러 : 최정예 특수부대 - 미해군 홍보영화. 이 영화 보고 미해군에 지원할 미국 애들 많을것같다. 홍보영화 맞다. 미해군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영화다. 무기, 전술법은 물론이고 실제 네이비씰 대원들까지도 가명으로 출연했다. 제작비가 1,200만불로 저예산 영화지만 미해군에서 지원해줬기 때문에 그 정도 든거지 지원 못 받았으면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평균제작비는 들었을거다. 이야기보단 작전에, 전술법에 더 집중한 영화다. 각종 테러의 위협에서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최정예 특수부대의 활약이 멋지게는 나온다. 이들 대원들의 노력으로 오사마 빈 라덴도 잡았다고 하니 이쯤 돼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올만도 하다. 현재 오바마가 미해군에 쏟는 관심도 지대하다.
실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도입부에 자막이 뜨는데 에피소드보단 작전과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다. 아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거다. 남자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영화이고 볼만한 장면도 많고 긴장도 된다. 내용과 캐릭터가 좀 더 보강됐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것이다. 시사회로 본건데 영화의 취지가 너무 노골적이라 마지막 장면에선 코웃음이 나왔다. 내가 질색하는 류의 영화 중 하나다. 지난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애들한텐 이런 영화가 잘 먹히나 보다.
우먼 인 블랙 - 수잔 힐의 동명 소설 [우먼 인 블랙]은 원작 출간 후 드라마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특히 연극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웨스트엔드에선 20년 넘게 장기 공연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영화는 다니엘 레드클리프의 첫 성인 연기 신고작이다. 다니엘 레드클리프가 주인공을 맡기엔 너무 어린감이 있었다. [해리 포터]로 굳어진 이미지도 문제지만 배우가 너무 어려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다섯살배기 아이를 키우며 우울증에 빠진 남자의 비극이 잘 와닿지 않는다. 연기 자체는 나무랄데 없었다. 연극보단 덜 무섭다. 연극은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는 파파프러덕션의 레파토리인데 진짜 무서웠다. 연극은 무대극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연극적 장치가 현란한데 영화는 비교적 단순하게 간다. 연극과 많이 다르지만 으스스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묘사는 근사하다. 모든것이 봉합되는 영화의 결말은 연극보다 싱겁다.
신과 인간 - 마지막으로 남은 예매권으로 본 영화다. 다음 주에 [러브픽션]보고 예매권 땡처리를 하려고 했더니만 화요일에 [러브 픽션] 시사회가 있다. 3월 15일 전까지 개봉 영화는 많지만 신경쓰기 싫어서 무리해서 사용했다. 다 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아트하우스 모모를 처음 가봤다. 이대 안에 있는 영화관인데 이정표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찾는데 약간 헤맸다. 내 옆에 아저씨 관객이 한 명 앉았는데 씻지를 않았는지 냄새가 고약했다. 옆자리에 앉아있기가 고역이었다. [엘리자벳]을 보고 이대까지 간거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건 아니다. 그런데 웬만한 개봉 영화를 다 봐버려서 도무지 볼 영화가 없었다. 시간대도 맞춰야 하는데 개봉관이 많지 않은 예술영화가 일반 개봉관에서 틀어지는 영화들보다 퐁당퐁당 상영이 더 심하다. [신과 인간]은 지난 달 개봉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영화였었다. 내용이 주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루한 영화지만 위기와 고난 앞에서 똑같은 인간이라는걸 보여주는 수도사들의 불안과 공포가 섬세하게 그려졌고 후반에 최후의 식사를 할 때의 배우들 연기가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오페라의 유령 : 25주년 특별 공연 - 콘서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공연 실황물도 아닌 어중간한 성격 때문에 호감은 안 갔지만 그래도 [오페라의 유령]이니 지나칠 수가 없어서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는 실황물이었다. 3시간 가까이 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집중이 잘 됐다. [오페라의 유령]만큼이나 매끈하게 만들어진 공연 실황물이 많은데 [오페라의 유령]만큼 시간이 후딱 가는 경우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거 모르고 빠져들어 봤다. 이게 작품의 힘인지 촬영과 편집의 승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실황물은 기력 빠진 노인네가 준비한 최후의 카드지만 그럼에도 너무 잘 만든 작품이라서 실황물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다. 보고 나면 웨버의 뛰어난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국내 상영이 잡힌것만으로도 다행이었는데 기껏해야 2주 상영하고 내려갈 줄 알았던 실황물이 두달 넘게 상영하며 실황물 극장판 상영의 기록을 세웠으니 놀랍다. [오페라의 유령]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든 국내에선 실패하는 일이 없다는것을 다시 한번 증명시킨 경우가 됐다. 뮤지컬 실황물의 가능성을 입증시킨 작품으로 또 하나의 정표를 세웠다.
디센던트 - 조지 클루니가 연기 변신을 한 작품인데 연기는 좋았다. 그러나 역시나 탈이라면 조지 클루니가 워낙에 비현실적으로 멋지게 늙어서 영화 속 위기에 빠진 중산층 가장의 고단함이 현실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의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인 모양인데 외부인이 보기엔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하와이 주민들의 일상사가 그런 화보와도 같은 모습 속에서도 진지하고 눈물겹게 그려졌다. 인간이 처한 곤경은 때와 장소 구분없이 똑같다는걸 말해주는 영화다. 조지 클루니가 명연기를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오스카는 장 뒤자르댕이 받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선 조지 클루니 만큼이나 장녀로 나오는 쉐일린 우드리의 연기도 좋다. 쉐일린 우드리도 [디센던트]르 다수의 조연상을 석권했다. 오스카 후보에 오를 만한 호연이었는데 후보선정에서 미끌어졌다.
철의 여인 -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것으로 알려진 마가렛 대처의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싸이코로 그렸다. 미친것과 치매는 차이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 노년에 이른 대처는 심각하게 미쳐있다. 영화는 가볍다. 모처럼만에 만들어진 대처 전기 영화를 이런식으로 주관도 없이 경박하게 그려낸것이 유감이다. 혹평이 많아서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아쉽다. 대처 전기물이 이미 몇 편 나와 있다면 또 하나의 대처 전기 영화로 받아들이기가 편하겠는데 [철의 여인]이 거의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데 대처의 정치 인생을 단순히 일과 가정이라는 양자택일 정도로 좁혀놔서 대처가 처한 고독과 모순이 희미하다. 지나친 자료화면 활용도 게으르다. 돈 들어가고 촬영하기 힘들 만한 장면은 전부 자료화면으로 대체했다. t.v재현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하지 않나.
언제고 또 다른 대처 전기물은 만들어 질테지만 과연 비교불가능한 호연을 펼친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넘어설 배우가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봐야할 유일한 이유는 메릴 스트립의 명연기 때문이다. 완벽한 모사를 요란하고 과시적으로 보여줘서 연기 보는 맛이 상당하다. 마치 이래도 오스카를 안 줄래? 하며 뻐기는것 같다. 이번엔 제발 메릴 스트립 좀 물먹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피의 선택]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지 29년이 지났다. 데뷔 초기에 두번의 오스카를 받고 그 뒤 29년 동안 13번이 올랐다. 지금까지 오른 횟수는 17번이나 된다. 역대 최고다. 캐서린 헵번 노미네이션 14번 기록은 엎은지 오래다. 현재 바이올라 데이비스 아니면 메릴 스트립으로 좁혀지고 있는데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유력해 보인다.
워 호스 - 말 나오는 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이 없어서 기대는 안 했지만 데이빗 크로스도 나오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니 볼 필요성이 있었다. 데이빗 크로스는 12분 나오고 만다. 다행이 그 12분 동안 만은 주인공이다. 고전 영화 양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평범하고 잔잔하며 무난했다. 과대평가 받은 것 같다. 무난하다는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아마 몇 번을 되돌려 봤을 때 그 진가를 더욱 더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공이 깊은 영화니 만큼 추후에 다시 본다면 그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들 착한 사람들만 나오는 작품이라 전장을 배경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임에도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는 거의 없다. 마지막 석양이 지는 장면에서 말과 주인공 가족이 해후하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첫댓글 좀전에 아카데미 시상식 끝부분만 봤어요. 메릴스트립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어요. 주차권 질문에 책임회피한 직원, 눈빛연기가 강렬한 개 부분에서 풉 웃었습니다. 영화 많이 보시네요.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행이 메릴 여사가 받았더군요. 또 물먹을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아카데미 노땅 회원들이 시상식 전날 마크 월버그 폭로전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아닌 메릴 스트립에 준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기도 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스타워즈때의 포트먼과 나이틀리는 정말 쌍동이 같죠. 작은화면에선 정말 구분이 안가서 큰화면에서 구분해볼려고 꽤 노력했었네요.ㅋㅋ 분장해놓으면 촬영장에 쫓아온 부모님들도 구분못했다는 믿지못할 후일담도 있으니까요. 나름 스타워즈 팬이긴하지만 에피소드 1,2는 봐주기 힘든 영화긴한데 고생하셨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