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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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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북한산을 속살까지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노고산(’18.10.27)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48 18.11.12 07: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산(老姑山, 487m)

 

산행일 : ‘18. 10. 27()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과 양주시 장흥면 일원

 

산행코스 : 흥국사한북정맥 능선삼막골 갈림길정상임도군부대 철조망헬기장장포교(교현리)72사단 앞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경기도 고양시(덕양구 지축동)와 양주시(장흥면)에 걸쳐 있는 노고산(老姑山)한북정맥의 마룻금에 놓여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북한산에서 상장능선을 통해 연결된다. 북한산의 산줄기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산세(山勢)는 영 딴판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골산(骨山)으로 이루어진 북한산과는 달리 제대로 된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陸山)인 것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이 한강을 향해 암봉(岩峯)으로 기운차게 달려 왔다면 노고산은 임진강 강구(江口)에 육봉(肉峯)으로 차분하게 내려앉았다고 보면 되겠다. 때문에 산행 내내 걷기 딱 좋은 흙길을 걷게 된다. 보드라운 흙길에는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하지가 않다. 거기다 경사까지도 완만하여 오르내리는데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는다.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고산의 백미(白眉)는 조망이라 할 수 있겠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그 속살을 여과 없이 내보여 주기 때문이다.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조망까지 즐길 수 있으니 가족산행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흥국사 주차장(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산 40-11)

모처럼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산을 찾았다. 아니 하도 가깝다보니 아예 승용차를 이용했다. 통일로(1번 국도)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다 은평뉴타운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북한산로를 따른다. 입곡삼거리(은평구 진관동)에서는 왼편이다. 잠시 후 흥국사입구버스정류장이 보이면 좌회전하여 지곡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흥국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끄트머리에 흥국사가 있다. 차량은 절 앞에 만들어놓은 널따란 주차장에 주차시키면 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 환승정류장에서 의정부행 34번 버스를 타고가다 흥국사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 배차간격이 10~15분으로 길지는 않으나 주말에는 번잡하므로 가급적 불광동기점에서 가까운 곳에서 승차하는 것이 자리 잡기에 유리하다. 서울역에서 송추까지 왕복하는 704번 버스도 있으니 참조한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흥국사(興國寺)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신라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원효가 북한산에서 수행하다가 약사여래를 만난 곳에 흥성암(興聖庵)이라는 절을 지은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원효는 본전에 약사여래를 봉안하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난 곳이라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는 뜻에서 흥성(興聖)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오랫동안 사찰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다가 조선 숙종 12년인 1686년에 중창하면서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조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인 소녕원(昭寧園)에 다녀오던 길에 이 절에 들렀다가, 직접 지은 시를 편액(扁額)으로 만들어 내리고 숙빈 최씨의 원찰(願刹)로 삼으면서 영조와 정조 대에 크게 발전했다. 영조가 하룻밤 머문 후 절 이름이 흥국사로 바뀌었으며, 절이 자리 잡은 산도 원래 이름인 한미산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이 절에는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3)와 괘불(掛佛,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9), 약사전(藥師殿,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7), 나한전(羅漢殿, 향토유적 제34),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4) 등의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불교체험 템플스테이도 진행하고 있다.



일주문(一柱門)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어서 긴 계단을 오르자 불이문(不二門)이 중생을 맞는다. ‘불이(不二)’란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난 지금 불국토(佛國土), 즉 부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세계로 들어가는 셈이다.



불이문을 통과하면 대방(大房)’이 나온다. 흥국사의 대방은 정토 염불 사상이 크게 성행하던 근대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염불 수행 공간과 누ㆍ승방ㆍ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추고 대웅전을 실제적ㆍ상징적 불단으로 삼아 염불 수행을 하도록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불이문이란 명칭이 가능했던가 보다. 불이문을 지나면 곧바로 금당(金堂)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금당이란 게 본디 가람의 중심으로 본존불을 안치하는 전당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흥국사 대방은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근대적 건축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는 등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형식과 공간 구성 및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2호로 지정되어 있다. ! 본전(本殿)으로 보이는 약사전(藥師殿)은 대방의 뒤에 위치하고 있으니 참조한다.




종루의 앞은 고양시에서 보호수(고양 32)로 지정한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았다. 수령(樹齡)450년이라니 원효가 지은 천년고찰(千年古刹)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절의 역사가 무척 오래 되었다는 사연을 알려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산길은 삼성각(三聖閣)의 왼편에서 열린다. 입구에 북한산 전망대숲 명상 길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이 길은 한북정맥의 마룻금으로 연결되지만 접점(接點)이 윤형철조망으로 막혀있다. 만일 억지로 넘어가는 행위가 미안한 사람들이라면 흥국사 주차장의 오른편에서 들머리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계단을 오르면 시야를 트기 위해선지 주변의 수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덕분에 북한산의 우람한 바위봉우리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조금 전에 보았던 북한산 전망대는 이곳을 두고 한 말이었던가 보다.




주변에 가슴에 담아둘만한 내용의 팻말이 매달려 있어 옮겨본다. ‘다투고 싸우면 평생 가도 끝이 없다. 용서만이 모든 다툼과 원한을 끝내게 한다. 내가 타인을 용서할 때 세상도 나를 용서한다.’ 방금 전 이 코스가 숲 명상 길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름에 걸맞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법구경법구 비유경’, ‘불유교경’, ‘숫타니 파타등에서 따온 금과옥조를 적은 팻말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명상(冥想)하기 딱 좋은 글귀들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다잡으며 글귀들을 읽어가다 능선으로 향한다. 가끔은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사색을 즐기며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그래서 이 길을 명상 길이라고 명명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오르면 능선에 올라선다. 이제부터는 한북정맥 마룻금을 따라 걷게 된다. 아니 한북정맥 도봉지맥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의정부시의 서북쪽에 있는 한강봉에서 능선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남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주능선을 한북정맥 도봉지맥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챌봉과 사패산을 지나 도봉산에 이른 이 능선은 우이령을 지나 상장봉(효자동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 인수봉과 마주보는 봉)에 이르면 방향을 서쪽으로 튼다. 이어서 솔고개에서 숨을 고르고 359.6m봉을 들어 올린 다음에는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1.3km 지점에다 노고산(老姑山)을 빚어놓는다. 이후로도 능선은 325m봉에 이르러 방향을 북서쪽으로 튼 다음 현달산과 고봉산, 장명산을 넘어 한강으로 스며든다. 이 가운데 일부(노고산 구간)를 오늘 걷게 되는 것이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군에서 설치한 시설들이 널려있다시피 한다. 길가에 윤형철조망(輪形鐵條網)을 설치해 일반인의 통행을 막고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사격훈련 시 도비탄의 위험이 있으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경고판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그렇다. ‘노고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예비군훈련장이다. 북한 정찰국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968년의 ‘1·21사태때 무장공비들의 침투로 및 도주로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노고산이다. 그해 122일 노고산에서 도주 중인 무장공비 3명을 발견한 뒤 노고산 일대를 포위하고 공비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에서는 1사단 15연대장이었던 이익수 준장(당시 대령)이 전사하기도 했다. 1·21사태를 계기로 예비군이 창설되었고 서울 북서부지역 예비군 훈련장으로 노고산 일원이 선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길은 일단 곱다. 황톳길만 해도 보드랍기 그지없는데 그 위에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이다보니 흡사 폭신폭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기분이다. 거기다 경사까지도 완만한 편이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길다보니 서둘러서 고도(高度)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노고산을 일러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참고로 이 능선은 북서쪽 양주시 장흥면과 남동쪽인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의 경계를 따른다.



능선을 따라 15분쯤 진행했을까 사거리가 나타난다. 금바위저수지와 심막골이 좌우로 나뉘는데 누군가 이정표(노고산 정상 1.8/ 심막골/ 금바위저수지 1.3)의 심막골 방향에다 흥국사라고 적어놓았다. 우리처럼 흥국사의 경내로 들어서지 않고 주차장 앞에서 들머리를 찾았을 경우 이곳으로 연결된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10분 정도를 더 걷자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다. ‘북한산이 가장 잘 바라보이는 곳이라는 노고산의 별명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원효봉에서 염초봉을 지나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의 북서면은 분명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 북한산의 위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언젠가 TV에서 저리도 아름다운 산들을 곁에 두고 사는 서울시민이 부럽다는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의 인터뷰를 본 일이 있었는데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잠시 후 또 다른 조망대를 만난다. 이번에는 북한산에서 도봉산을 거쳐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야에 잡힌다. ! 이정표(노고산 정상 1.3/ 금바위저수지 1.8)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부근에서 금바위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또 하나 나뉠 것이다.




작은 봉우리들(325m·337,7m·425m봉이라고 적는 이들도 있지만 고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다)을 오르내리는 이후의 코스는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풍경은 나타나지 않는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고운 자태가 심심찮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까 보았던 그림에는 훨씬 못 미친다. 주변의 나무들이 그 일부분을 잘라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을의 진수라는 단풍이 아까보다 훨씬 더 짙어졌기 때문이다. ‘가을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단풍이니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핏빛에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





그렇게 35분 정도를 걸으면 드디어 정상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1시간이 걸렸다. 정상은 둥그스름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대개 노고산이나 할미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들은 노년기 산의 전형적인 모양새, 즉 저렇게 둥그스름하게 생긴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정상표지석은 정상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 세워져 있다. 뒤에 보이는 본래의 정상을 군부대에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사람산 산악회에서 정상표지석이라도 세워놓은 것은 천만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상을 대신할만한 곳조차 찾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노고산은 옛날 이곳에서 노고할머니에게 치성을 드린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노고산은 19세기 초기의 문헌인 동국여도(東國輿圖)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한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는 노고산의 한자를 노고(老姑)가 아닌 노고(老古)로 적고 있다. 또한 노고산은 한미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노고산에 자리한 흥국사와 관련된 기록에는 한미산 흥국사(漢美山 興國寺)라는 내용이 전해진단다.




정상 쪽으로 제법 큰 바위가 보인다. 노고산에서 만난 유일한 바위였을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노고산이 전형적인 육산(肉山)임을 감안할 때 의외라 할 수 있겠다. 헬기장으로 조성된 덕분에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일절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을 군부대에 빼앗긴 것은 서운하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 빼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에 딱 어울리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헬기장에 서면 인수봉과 숨은벽 암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밤골계곡 위 원효봉과 함께 우람찬 풍광으로 다가온다. 노적봉 오른쪽으로는 시계방향으로 북한산성계곡과 함께 의상봉 능선, 문수봉, 보현봉, 승가봉, 비봉, 향로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그 왼편에는 한강봉에서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너머 멀리로 운악산 방면 한북정맥이 너울거린다. 사패산의 오른쪽으로는 도봉산 오봉과 상장봉이 하늘금을 이룬다. 상장봉 오른쪽 육모정 고개 너머로는 양평 방면 용문산과 백운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대편으로는 고양시 일원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곳곳에 시가지가 들어앉은 풍경이 시야 전체를 암봉들로 채우고 있는 오른편과는 천양지차의 모양새이다.



솔고개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 올라앉은 군부대를 바라보며 잠깐 오르면 산길은 군부대의 철망을 왼편에 끼고 우회(迂廻)를 한다. 하산 길 초입, 가을의 전령(傳令)이라는 억새가 무성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하늘거리는 억새밭에서 일상의 여유와 가을의 정취를 흠씬 느껴보는 것도 가을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정상을 우회하자 군부대의 정문이 나온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때는 사용하지 않는 시설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임도(林道), 아니 군용도로(軍用道路)를 따른다. 사패산과 도봉산을 바라보며 걷게 되는 멋진 코스이다.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들도 이 구간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붉게 물든 산하를 눈에 담으며 걷기를 30분 여, 길가에 사격장 지역이라서 탐방객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능선에다 오솔길을 내놓았다. 거리상으로 보아 솔고개로 내려가는 길로 보이는데 군부대가 통행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이다.



능선으로 들어서서 5분쯤 진행하자 철조망이 나타난다. 노고산 자락 동쪽 면의 절반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탐방로는 이 군부대에서 쳐놓은 철조망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그물망처럼 생긴 군부대 울타리가 오히려 다정한 길잡이가 돼준다고 보면 되겠다. 철조망만 따르면 되니 길을 잃을 염려 또한 없다.



가끔은 길을 우회시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군부대의 사격장과 인접하여 사고발생의 위험이 있으니 돌아가라는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이는 따르고 보는 것이 좋겠다. 고집을 피워봤자 경사가 너무 심해서 철조망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군부대에서 탐방객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시설의 보호까지를 염두에 두고 길을 돌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은 놀이터로 변하기도 한다.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최군()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끌어주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눈썰매장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진행하자 ‘U형으로 패인 안부가 나온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솔고개·교현리 1.8/ 청룡사 0.4, 일영유원지 1.7/ 노고산 정상 2.1)가 솔고개로 가고 싶으면 맞은편 능선을 타라고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맞은편에는 길이 나있지 않다. 오른편에 보이는 군부대의 문 가까이에서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U형으로 움푹 파이다보니 길을 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긴 철조망 가까이에서도 난간삼아 설치해 놓은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위로 오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후로도 산길은 철조망을 따라 이어진다. 중간에 이곳이 한북정맥임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기고 한다. 바닥에는 노고산이 2남았다는 방향표지판이 떨어져 있다. 이곳이 청룡사 입구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



5분 후 산길은 철조망과 헤어진다. 이어서 능선길을 따라 12분 정도를 더 걸으면 안부에서 희미하긴 하지만 사거리를 만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솔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아니 아까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는 게 옳았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내려가는 길을 놓친 우리는 꽤나 긴 거리를 더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안부를 지난 산길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이어서 10분쯤 후에는 널따란 헬기장에 올라선다. ()의 시설물인데 정비가 잘되어 있는 게 요즘도 활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삼각점(서울 420)도 설치되어 있다. 지적상으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젠 진짜로 하산이다. 100m 남짓 내려오다가 오른편 지능선으로 내려선다. 교현리(오른쪽)와 부곡리(왼쪽)가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길이 또렷한데다 흙길이어서 내려서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저 곱게 물든 산하를 눈에 담으면서 느긋하게 내려오면 될 일이다. ! 주능선을 계속 따를 경우 어디로 연결되는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신흥레저타운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뒷산에 장인과 장모님이 함께 잠들어 계시므로 성묘도 할 겸해서 계속 직진해도 됐을 것을 그랬다.



이곳에도 역시 벙커나 참호 등 예비군 훈련시설들이 널려있다. 나에게는 아픈 추억들이다.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에서 복무를 마친 내가 현역 군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훈련을 받던 동원예비군에 소집되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군장(軍裝)을 꾸리는 것은 물론이고 총기 수입(총기의 청소 및 점검)‘ 등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다. 3년 동안 훈련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은 고문관(顧問官). 고문관이란 미군정(美軍政) 때 한국어를 모르는 미군 고문관들이 어수룩하게 행동한데서 유래된 말로서 어수룩한 군인들을 놀릴 때 쓰는 비속어(卑俗語)이다. 요즘으로 치면 관심 사병이라고나 할까? 그나마 같이 소집된 분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틸 수는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남에게 놀림감이 조금 되면 어떻겠는가. 약간의 부족함 쯤은 금방 채워버릴 수 있는 게 젊음이 아니겠는가.



힘들었던 예비군 생각은 자연스레 현역생활로 연결된다. 낯선 이방인들의 세계로 들어선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영어회화 서적(English 900)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영문타자기를 자격증 소지자들보다도 더 빨리 칠 수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때 배운 영어가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달콤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걷다보니 어느덧 교현리이다. 높이가 9m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가 터줏대감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1995년에는 보호수(양주 33)로까지 지정되었단다. 헬기장에서 이곳까지는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산행날머리는 72보병사단 앞 버스정류장(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231-7)

탐방로는 보호수 앞에 놓인 장포교를 건너 외곽순환도로 교각 아래를 지난다. ’교현리 마을회관(1.25지점)‘ 방향이다. 이어서 도로변을 따라 200m쯤 걸으면 72보병사단(올림픽부대)‘ 앞에 만들어진 버스정류장이 나타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4시간 30분이 걸렸다. 하지만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1시간을 쉬었으니 실제로는 3시간 30분을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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