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사도행전 1:8, 2:16-21
제목 : 특별한 능력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아침에 우리를 말씀 앞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열 때 우리 마음 열리게 하시고, 우리 마음 열 때 하늘이 열려 주의 뜻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용기가 필요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회개가 필요한 자들에게 찔림을 주시고,
절망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늘의 꿈과 희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아침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온 모든 가정마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가득 넘치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한번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한번 지어 볼까요.. 네, 썩소 안 됩니다.
우리 미소 짓고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살 맛이 납니다."
네, 민낯이라도 네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주변에 있는 자녀들 한 번 축복할까요..
우리 아들 딸들을 보면서, 어 저는 부산에서 왔기 때문에 부산 스타일로 한번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니 얼굴 보니 살 맛 난다!" 이렇게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우리 모두가 살 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저희 아이들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에겐 세 자녀가 있습니다. 첫째가 아들, 둘째가 아들, 셋째가 딸입니다.
누가 제일 이쁠까요? 딸이 기가 막히게 이쁩니다.
두 아들은 조금 컸다고 이제 인사도 잘 안 하더라고요. 이제 집에 들어가도 자기들 할 거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야, 인사 안 해?' 이러면 고개 한번 쳐다보고 고개 까딱거립니다.
아 제 마음에 결심했습니다. 두 아들은 선교사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셋째는 딸인데 너무 이쁩니다. 달려와서 껴안고 뽀뽀해주고 난리도 아닙니다.
세 명 중에 이제 저희 첫째 아들이 지금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우리 첫째 아들이 6살 때 굉장히 좋아했던 만화가 있었습니다.
여기 유치원 아이들도 알겠지만, 아이들은 보통 좋아하는 만화 하면 남자아이들은 딱 이것을 이야기합니다. 카봇
아이들이 카봇을 보면서 아이들의 은혜를 많이 받거든요.
적을 물리치고, 이렇게 이겨내는 승리자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도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 결심하고 결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도 카봇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부모들은 카봇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만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꼭 로보트도 이렇게 같이 만들어서 팔기 때문이지요.
이 로보트 하나가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에 한 8만 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저희 첫째 아들이 그 카봇을 보면서 은혜 받고 저에게 로보트 장난감 사 달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거 얼마인지 보고 제가 안 된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아들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너는 대체 뭐하냐? 이렇게 하길래, 제가 1년 동안 10개 사 줬습니다.
80만 원치를 좌우에 날선 카드로 긁어서 저희 아이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참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것 보면서 이제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느 날 제가 쓰레기통을 봤는데 카봇 장난감 하나가 버려져 있는 거예요.
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로 불렀습니다. 저희 첫째 아들 이름이 한결인데, 제가 이렇게 불렀어요.
'한결아, 욜로(이리) 와 봐' 그랬더니, 저희 아들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야, 이거 왜 여기에 버려져 있어? 이거 버리면 안 돼' 그랬더니,
저희 아들이 '아빠, 저거 버려야 됩니다. 저거는 팔 한쪽이 부서져서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야, 팔 한 쪽이면 2만 5000원어친데, 아직 한쪽 팔 남았고 양다리 남았지 않냐' 그러니까
'목이 날아갈 때까지 가지고 놀아야지' 그랬더니,
'팔 한쪽 부서진 건 나에게 너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맞아요.'
제가 그 순간 얘를 쓰레기통에 버릴 뻔 했습니다.
그 때, 묵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묵상했냐면 이 카봇 장난감 하나
저희 아들은 6살 때 공의를 알지도 못하고 정의도 모릅니다. 아이의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겁니다.
그냥 보면서 가지고 놀고 그냥 그거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이 전부일 겁니다.
그런데 팔 한쪽 부서진 것 때문에 이 아이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묵상할 거리가 있더라고요.
그게 뭐였냐면,
하나님 앞에서 난 무엇인가, 나의 모습은 팔 한 쪽의 모습 문제가 아니라 나의 모습은 모든 전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기로 결정하시고 결단하시면, 나는 정말 아무 말 못 하고 난 버림받기에 당연한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레고 장난감 좋아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밟으면 아프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레고 장난감에서 이 상품을 출시할 때는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무게를 쟀을 때 0.1그램 이상 차이 나면 이 레고는 불량품으로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에 폐기처분을 해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0.1그람의 문제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0.1그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몸무게 86킬로그램인데, 86킬로그램 전체가 하나님을 대항하고 불순종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지요.
기준도 낮은 저의 아들이 팔 한 쪽의 문제 때문에 장난감을 버리고,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에서는 0.1그램 차이 때문에 상품을 폐기 처분하는 것을 봤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셨을 때는 금방이라도 버리실 것 같습니다.
제가 목사다워서 목사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 다워서 그리스도인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돼서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15년 동안 청소년, 청년 사역을 했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문자를 보내면 항상 ㅋㅋ ㅎㅎ를 붙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저희 교회에 한 어르신이 오셨고, 그 집사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집례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와서 문자 하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집사님과 그리고 집사님 가정에 충만하기를, 가득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냥 보냈으면 됐는데 뒤에 ㅋㅋㅋ를 붙여버린 거예요.
'아, 하나님이 일찍 개척시키더니 일찍 망하게 하시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실수를 하고, 주일에 이제 집사님이 교회에 왔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장례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러고 그냥 지나가시면 되는데, 그 말씀 뒤에 크크크 이러고 지나가시는 거예요.
만약에 그 집사님이 이 문제를 크게 걸었다면, 저는 큰 문제를 일으킨 목사가 됐을 겁니다.
이렇게 모친상을 가진 집사님에게 ㅋㅋㅋ을 붙인,
이 안 좋은 습관을 가진 목사답지 못한 모습, 진작에 폐기처분 당해야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은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고쳐서 쓰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 보면, 우리 어른들이 봤을 때 부족하고 연약해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어떻게 이야기하냐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계실 때
부모들이 아이들을 안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을 축복해 달라고...
그때 제자들이 완벽하게 역학의 노키즈존을 만들려고 합니다.
'다가오지 마세요. 우리 예수님께 당신들은 다가오면 안 됩니다.' 혹시 아이들이 예수님의 수염이라도 당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혼을 냅니다. '베드로, 머리 박아' 그리고 예수님이 설명합니다.
보통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이어령 교수처럼,
너희들은 대통령처럼 이렇게 좋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그것을 뒤집어서 어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저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서 배워야 된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아이들을 향해서 어른들이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저 아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완벽한 '키즈존'으로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안수하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들이 완벽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 아이들의 미래를, 이 아이들의 인생을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어른들도 다 부족합니다. 저도 너무 연약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거나 폐기처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붙들고 고쳐서 쓰시는 분이시지요.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다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쳐서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이, 하나님의 고쳐서 쓰심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서 쓰실 때 어떻게 쓰실까요?
오늘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을 주시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권능을 받습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이 권능을 헬라어로 '두나미스'라는 단어를 쓰고, '두나미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가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시시하지 않고, 다이너마이트처럼 파괴력이 있습니다.
삶을 뒤집어 버리고 새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이 다이너마이트 같은 능력으로 우리를 바꿔 쓰시는지 고쳐 쓰시는지 두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붙들고 오늘 기도할 때,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운데 불어올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권능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복음의 확신을 가지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이 두 가지 진리의 말씀을 우리 함께 붙들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우리 한번 말씀 같이 볼까요? 사도행전 2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아멘!
성령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경험이 없는 자녀들에게도 임합니다.
그리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에게도 늙은이들에게도 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는 남종과 여종, 종들에게도 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목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모두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에 보니까 자녀, 그리고 젊은이, 그리고 늙은이, 이렇게 이 세 세대에게 성령 하나님이 부어집니다.
그런데 현상이 있습니다. 그 현상은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러분, 이 세 가지 단어에 한번 집중해 보십시오.
[예언, 환상, 꿈] 이 단어는 과거와 관련된 단어입니까? 미래와 관련된 단어입니까? 미래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미래의 영이시지요.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비전과 소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인생 가운데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는 순간, 미래를 기대하게 하고 소망하게 합니다.
'난 끝났어' 이럴 때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면 그 끝난 것이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되고,
새로운 도전이 되고 그것이 바로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 사실은 자녀들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6살짜리 아이가 과거를 이야기하면 얼마나 웃기겠습니다.
'아빠, 내가 옛날에'
'니한테 옛날이 어디 있냐?'
6살짜리가 '아빠, 내가 두 살 때 그때 젖병 원샷하고 소화 잘 됐는데, 이제 나 유치원 들어가니까 소화가 잘 안 된다 아빠.'
여러분, 6살짜리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어울립니다. '아빠, 내 꿈은 목사야. 내 꿈은 뭐야, 뭐여..' 이게 참 잘 어울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고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저에게도 세 자녀가 있다고 했지요.
저희 첫째에 대해서 제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저희 아내가 임신했을 때, '아,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까' 정말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기도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 기도 제목 중에 진짜 중요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안경을 한번 벗어보겠습니다. 눈이 큽니까? 작습니까? 예, 작아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눈 작은 것이 콤플렉스였습니다. 얼굴은 크고 코는 큰데 눈이 작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생 때 막 쌍커플 테이프도 붙여보고, 그리고 부모님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했지만 눈이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마다 아내의 배를 잡고 눈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 눈 주신 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희 아이 눈은 신경 한번 써주십시오.'
10개월 동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배 잡고 주님 '눈', 계속 '눈 눈' 거리면서 기도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하나님 응답하셨겠지요.
물론 하나님의 응답 방식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Yes, 두 번째 No, 세 번째 웨이트(Wait)입니다.
예스는 뭐냐면, '그래 종화야, 너에게 그 눈 주고 진짜 미안했다. 니 아들 눈은 내가 신경 쓸 게' 이게 예스입니다.
노는 뭐겠습니까? '야, 눈은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보기 위해서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 눈 작아도 넓은 하늘 다 보잖아. 괜찮아. 네 아들도 니 눈처럼 돼도' 이게 노입니다.
웨이트(Wait)는 뭘까요? '야, 진작 기도하지. 늦었어. 둘째 때 신경 쓸게' 이게 웨이트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예스일까요? 노일까요? 웨이트일까요?
교회 가니까, 어떤 권사님은 이 사진 보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야노~' 이러시더라고요. 눈이 엉망진창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태어났지만, 아버지 눈에는 아빠 눈에는 너무 이뻐 보였고, 너무 잘생겨 보였습니다.
6개월이 되었습니다. 6개월이 됐을 때 이렇게 누워 있다가 한 번 이렇게 뒤집었습니다.
애가 공중에 떠서 두 바퀴 돌고 뒤집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 번 뒤집었는데 그게 그렇게 이뻐 보였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 세 걸음 걷고 자빠졌습니다. 너무 이뻤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지요. 그거 별 거 아닙니다. 내 아이 세 걸음 걷는 것이 훨씬 더 이쁩니다.
여기 우리 자녀들 와 있는데, 우리 자녀들 보면서 그런 생각들 하지 않습니까?
'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꿈을 비전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우리 부모의 입장일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아이들의 꿈과 비전이 주눅 들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습니다. 교회는 아이들에게는 항상 키즈존이 됩니다.
여기 보니까, 아이들이 이 새벽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이 쉽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간중간 떠드는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누가 강의할 때 아이들이 떠들어 보십시오. 바로 퇴장입니다. '시끄러워, 조용히 안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야, 우리 민수 떠드네. 괜찮아. 예배 때 떠드는 건 목사밖에 없는데, 니는 예배 때 떠드는 거 보니까 나중에 커서 목사가 되겠구나.'
하면서 미래를 마음껏 축복해 주지요.
교회에서 아이들 뛰어다니면 어른들이 그렇게 혼내지 않습니다. 마음껏 뛰어다닐 때, 어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에너지 좋네. 이렇게 뛰어다니는 거 보니까 너는 나중에 열방을 뛰어다니는 선교사가 되겠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미래를 축복해 주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지요.
오늘 이 자리에 자녀들이 많이 와 있는데, 우리 자녀들이 미래의 꿈과 비전이 주눅 들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성령 안에서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비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제는 의사였다가, 오늘은 대통령이었다가, 내일은 또 국회의원이었다가 이렇게 꿈이 자주 바뀌더라도
"괜찮아. 성령 안에서 마음껏 꿈꿔. 엄마 아빠가 너희들이 지지해 줄 거야.
"교회 권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너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어. 마음껏 꿈꿔"라고 말 해줄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우리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젊은이들은 사실은 환상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가지는 것이지요.
사실은 젊은이들에게 청년들에게 '너, 꿈을 가져. 너 비전을 가져' 말하기에는 젊은이들에게는 사치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취업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삶에 문제가 많습니다.
결혼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청년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환상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보는 이유는 스펙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청년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청년들도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청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현실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환상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멋진 비전과 꿈을 가지고 불타오르는 가슴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싶습니다.
저도 청년의 시기를 지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청년같이 생겼지만, 제가 청년 때는 저에게 문제가 많았습니다.
저는 공부도 잘 못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그리고 제 몸에는 아토피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격도 별로였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친구들은 분노조절장애가 다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너무나도 낮기 때문이죠.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피가 가득했습니다.
친구들이 '좀 씻고 다녀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친구들과 바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꿈과 비전을 찾기에는 머리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방금 외웠는데, 공부해 보면 하나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 인생에 환상을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에 새로운 비전과 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야, 이 정도 인생이라면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현실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이 세상 가운데 시도하며 살았습니다.
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고, 그리고 지금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청년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고 마음껏 하나님의 환상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 보니까 늙은이들도 꿈을 꾸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르신들은 사실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르신들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더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저희 외할아버지도 항상 과거를 많이 야기했습니다.
'종화야, 내가 20대 때 얼마나 내가 잘생겼는지 아니, 그때 내가 끝장났다.
너그 할매가 나를 맨날 따라 댕겼잖아, 내가 너무 잘 생겨서 그랬다.'
그러면 저희 할머니가 옆에서 '이 할배가 노망 걸렸냐'면서
'내가 니 언제 쫓아다녔나' 하면서 서로 싸우시는 것을 옆에서 보았습니다.
여러분,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모든 어르신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번역한 것을 보니까, 늙은이하고 꿈이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합니다.
차라리 자녀들은 꿈을 꾸고 늙은이들은 예언할 것이요 이러면 품격이라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에 보니까, 진짜 품격이 떨어질 것처럼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늙은이하고 꿈을 같이 사용합니다.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지요. 차라리 늙은이 하면 '예언', '지혜' 뭐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요.
늙은이하고 꿈은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 오늘 이 말씀에서는 "늙은이들이 꿈을 꾸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르신들도 꿈꾸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어르신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어르신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내일을 꿈꿉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죽는 그 순간에도 내 뒤에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니까 더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도저히 미래지향적일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오지요. 그 사람들은, 남종과 여종들입니다.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종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해야 됩니다. 때리면 맞아야 됩니다.
밥 주면 먹고, 밥 안 주면 못 먹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됩니다.
'주인님, 제 꿈은 대통령입니다.' 그러면 그날 많이 맞을 겁니다. 왜냐하면, 종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에 보니까 종들도 꿈을 꿀 수 있답니다. "남종과 여종들이 예언할 것이요"
남종과 여종들도 미래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를 꿈꾸게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 세상의 종처럼 사는 것 같습니다. 이거 해야 되고, 저거 해야 되고, 안하면 안되고...
우리 부모님들도 다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내가 해야 돼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OECD 국가 중에 자살률 1위, OECD 국가 중에 행복지수 꼴찌,
청소년들이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너무 지쳐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인생은 진짜 남종과 여종처럼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어른 되면 이제 자유인이 될 것 같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종처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꿈 한번 제대로 꿔보지 못하고, 비전 한번 가지지 못하고, 현실에 갇혀서 종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신분이라는 것은 없지만, 종의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살게 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은 종들도 남종과 여종들도 예언할 것이요, 미래를 말할 것이요..
성령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의 인생을 미래를 보게 합니다.
내가 연약해도, 내가 부족해도,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여도, 내가 특별하지 않아도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그려주시는 분이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셔서
그 누구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꿈이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실제로 종 수준의 예언을 한 것이 아닙니다.
"너는 종이니까, 종 수준의 예언을 해. 주인에게 안 맞을 정도의 미래를 꿈꿔." 이 정도의 예언이 아닙니다.
21절 한번 보시겠습니까? 21절에 이 꿈과 비전의 규모가 나옵니다.
공간적 크기와 시간적 길이가 나옵니다. 어떤 단어일까요? [누구든지]입니다.
'너는 종이니까, 종 수준의 미래를 이야기해'가 아니라 [누구든지]에 대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이 "누구든지" 안에는 지구촌이 다 들어져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누구든지'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 동남아에 있는 사람들, 호주에 있는 사람들, 일본에 있는 사람들...
이 세상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비전과 이 꿈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꿈, 이 수준의 꿈을 꾸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골방에서도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지 않겠습니까?
골방에 앉아 있어도, 우리는 온 지구를 품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열방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 비전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두 번째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이 주신 두 번째 능력은 바로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21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비전이 있고, 소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죄인인 인생이,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갈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그 복음의 확신은 우리 인생에 너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확신을 가지니까 우리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 한 번 보십시오. 사람을 함부로 대합니다.
예를 들면, 무속인들을 한번 보십시오. 자기들은 신하고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점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혹시 점 보러 가본 적 있으세요? 회개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점을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점 보는 건 뻔합니다.
점 보러 가보면 이렇습니다. 딱 들어가는 순간 이 무속인들은 바로 반말로 이야기합니다.
'왜 왔어?'
아니, 왜 왔는지 자기가 맞춰야죠..
그리고 앉으면, 이렇게 뭐 쌀 던지고 젓가락 돌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점괘가 나왔어'
뭡니까? 그러면 참 희한한 말 합니다. 이런 말 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물가에 가까이 가지마. 빠져 죽어 죽을 수도 있어'
아니, 이 말은 저도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중에 불 가까이 가지 마세요. 데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것과 똑같은 말이지 않겠습니까?
이 무속인들은 사람을 함부로 대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신하고 가깝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래도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들은 목사들입니다.
목사님들이 여러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새가족이 왔는데, 위임 목사님께서 '왜 왔어?' 이런 적 있습니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누가 오든지 간에 따뜻하게 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에 대해서 복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지요.
장애인이 오든지, 또 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오든지,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이 오든지 상관없이
누구든지 교회 오면 존중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우리가 인간적인 성격을 가져서가 아니라
복음이 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교회는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아이들이 참여했는데, 아이들이 느끼기에 따뜻한 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 이 아이들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소년원 사역을 15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물론 교회를 개척한 이유는 제가 원해서가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이 저에게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안 된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담임 목사님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야, 이찬수 봐봐. 옥한흠 목사님이 개척하라고 하니까 저렇게 잘 되잖아. 니도 해봐'
그래서 제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찬수가 아닙니다.' 그랬더니,
이제 담임 목사님이 '그래도 너 다른 데 가서 다른 목사들 괴롭히지 말고, 너, 너무 말 안 듣는다. 너 그립감도 별로 안 좋고,
너 교회 개척해. 그런데 교회 개척해도 나 안 도와줄 거야. 왜냐하면, 도와줘 보니까 열심히 안 해서 니는 니 알아서 해 봐'
그래서 제가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내,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라는데 어떻게 할까?' 했더니, 저희 아내가 집에서 나가라 하더라고요.
왜 집에서 나가라 했냐면, 저희 아내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다 문을 닫으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고생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개척하기 싫어했던 겁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를 설득하셨습니다.
제가 소년원 사역을 했는데, 이 소년원은 주일 오후 두 시에 예배가 있는데, 이 두 시에 교사들이 올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이 전부 다 자기 교회 예배를 드려야 되니까 오지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아, 교회를 개척해야 되겠다' 싶어서
아내를 설득하고 장인어른을 설득하고 그리고 교회를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이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성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년원 아이들 5명을 데리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이 5명 전부 다 정말 꼴통이에요.
첫 번째 아이는, 애가 생각이 없으니까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들 사랑하셔"
이러면 얘는 바로 맞받아칩니다. '돌아가신 하나님' 이런 식으로..
그리고 두 번째 아이는, 카톨릭 신자예요. 어머니가 카톨릭을 다니니까 자기도 카톨릭을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하면 항상 이러고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아이는, 아버지가 파키스탄 사람예요. 다문화 가정인데 이 아이는 항상 교회 오면 아랍어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야, 너 교회 와도 돼?" 이러면 "목사님, 저희 아빠가 하나님 믿으면 괜찮대요"
그래서 제가 "야, 우리는 예수님도 믿는데"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얘가 '아, 위험한데' 이러더라고요.
네 번째 아이는, 운동을 하는 애라서 그런지 목사에게 이제 의리를 지켜준다고 아멘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말씀 중에 계속 '아멘, 아멘' 제가 설교 진도가 안 나갑니다.
그리고 5번째 아이가 이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이 아이는 전과가 2범인데 없는 포크레인을 1억 2천만원에 사기를 쳐서 팔았어요. 여러분, 대단하지 않습니까?
제가 얘한테 '니, 이거 재능이다.' 그랬더니, 얘가 문자가 왔어요. '목사님, 급전 필요할 때 연락 주십시오.'
얘는 일수를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100만원 빌려주면 다음 주에 50% 이자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답장 보냅니다. '니한테는 돈 안 빌린다'
그런데 제가 이 친구의 어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정말 제가 속상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식사하다가 갑자기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우리 애가 선교사가 되면 좋겠어요.'
제가 사실은 이 집사님한테 기분도 별로 안 좋았어요.
왜냐하면, 이 아이를 저희 교회만 맡기고 자신은 다른 교회 다니시는 거예요.
그래서 '집사님, 같이 와서 같이 케어해야 됩니다.' 이랬더니,
집사님이 '아, 목사님 그러면 제가 저희 교회 다녀야죠'
'그러면 집사님, 이 아이 데리고 가서 그쪽 교회 담임 목사님하고 같이 케어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제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목사님 케어해 주세요.'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는데, 갑자기 애가 선교사 되면 좋겠다 하길래 제가 바로 숟가락 딱 내려놓고 한마디 했어요.
"집사님, 선교사 우습게 봅니까? 지금 애가 없는 포크레인 1억 2천만 원에 팔고,
목사한테 급전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하고, 예배 때마다 계속 욕하고 이렇게 하는데 얘가 지금 선교사 되면 좋겠다고요?
집사님, 자꾸 철야기도 한다고 해서 교회 가서 앉아있지 말고 애 위해서 된장찌개 끓여 주고,
일수 땡긴 돈 가지고 십일조 내라고 협박하지 말고, 제발 집사님 정신 좀 차리라"고 제가 막 퍼부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약간 삐지셨는지 그냥 아무 말씀도 안 하고 식사를 계속하시더라고요.
그 저도 이제 삐졌으니까 저도 따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다 하고 제가 결재하고 이제 딱 헤어지는데, 집사님이 가시면서 한마디 딱 하시는 거예요.
'아, 목사님, 그래도 저는 저희 애가 선교사가 될 것 같아요.' 이러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안 될걸...'
그리고 이제 집에 와서 성경을 딱 폈는데, 이 말씀을 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저는 어느 순간에 [누구든지]에서 이 아이를 제외시켰던 것입니다.
제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았지요. 다른 사람은 다 되는데 얘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어머니는 어머니라서 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그 어머니는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이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한 사람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든지]에서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제외시키지 않아야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어려움들과 힘든 일들이 있을 겁니다. 실패를 경험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자녀들이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내 안에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비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정말 소망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자녀들에게 이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를 다니고, 제가 여러 가지 나쁜 습관들이 있었는데 다 끊었고,
제가 교회에서 여러가지 배운 이야기들 중에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냐면, 저를 맡았던 전도사님이 저만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
'아이고,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
친구들하고 싸우는데도 이렇게 이야기해요. '아이고,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
친구들하고 싸웠는데, '괜찮아 괜찮아, 그 에너지 가지고 나중에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하면 돼'
제가 예배 때 자다가 졸다가 전도사님하고 눈이 딱 마주쳐요. 그리고 예배 끝나면 전도사님이 이렇게 저한테 이야기해요.
"아이고,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 예배 때 잘 자더라.
괜찮다. 자서 그 에너지 가지고 나중에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하면 된다."
제가 인사하다 담배가 떨어졌어요. 전도사님이 그 담배 주워주면서 이렇게 얘기해요.
"아이고,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 괘않다, 담배 피워.
괘않다. 예수 믿으면서 담배 펴도 천국 간다. 그런데 일찍 간대이.." 이러면서 주워 주셨어요.
전도사님이 맨날 그 이야기를 해 주니까 '아, 왜 자꾸 그런 이야기하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기도실에서 기도하는데 그 생각이 났습니다.
"아,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라고 했는데, 난 어떤 큰일을 할까..
그리고 그때부터 이제 찾아봤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제일 큰 교회가 어디냐 찾아보니까,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교회더라고요.
그 교회 성도가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그 당시에 70만 명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큰일 찾았습니다. 저는 80만 명 목회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80만 명은 무슨 8명 모으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이제 혼자 지쳐 있다가, 하나님께 계속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언제 80만명 목회할 수 있지요? 하나님, 저는 언제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수 있지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도에 저희 교회에 한 50대 어르신이 등록을 했습니다.
이 어르신이 등록을 하고, 이 어르신이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셨습니다.
어느 날 집사님께서 자기 사업장에서 예배를 좀 드려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업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업을 하시는지 궁금한 상태에서 이제 들렸습니다.
그런데 갔는데 저는 직원을 둔 사업장인 줄 알았는데, 미싱을 하시더라고요.
1인 사업장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설교를 하고, 이제 기도 제목을 여쭤봤습니다.
"집사님, 기도 제목이 뭡니까?" 물어봤더니,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세요.
"아이고 목사님, 이거 제가 팔 다친 사람들 거치하는 거,
이거 하나 미싱하는데 10원인데, 10원에서 20원으로 오르는 게 제 기도제목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이 재봉틀 잡고 펑펑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거 하나에 10원인데 20원으로 올려 주십시오. 100개 하면 1000원, 천 개 하면 만 원, 너무 작습니다.
20원으로 올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기도했습니다.
아, 너무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축도하고, 집사님과 인사하고 나오는데,
그 때, 제 마음에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했던 고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 큰일 찾았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큰일은 80만명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10원에서 20원 오르는 것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하나님 위해서 큰일 할 우리 종아!"라고
그 이야기를 해 주고 몇십 년이 지나서 이제서야 그 큰일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났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화요일에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 집사님, 웬일이세요?"
자, 집사님의 말투 그대로 해 보겠습니다. "목사님, 올랐대이.. 20원으로.."
"집사님, 진짜입니까? 와! 축하드립니다. 야! 집사님 너무 잘 됐습니다. 와! 10원에서 20원으로, 이제는 천 개 하면 2만원이네요.
와! 너무 축하드립니다. 식사 함께 하죠. 제가 식사 함 쏠게요."
"목사님, 됐습니다. 제가 올랐으니까 콩나물국밥 대접하겠습니다. 빨리 오소!"
그래서 제가 바로 가서 콩나물국밥 같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나오면서 제가 집사님한테 그렇게 한마디 툭 던졌어요. "집사님, 이제 30원입니데이.."
여러분,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인생에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을 위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정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이곳에 다음 세대들이 있습니다. 이 다음 세대들과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줄 수 있는 어른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이 아이들을 이 교회에 더욱더 신뢰하고 맡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 아이들이 이곳에 뛰어다니고 이곳에 지낼 때, 우리 온 성도들이 이 아이들을 복음의 확신을 가지도록
마음껏 지지해 주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줄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