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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כִּי תִשָּׂא 키 티싸" : 2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4
출30:11-34:35(To), 왕상18:1-39(Haft), 고후3:1-18(Brit), 마21:1-23:39(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내 손으로 너를 덮어 >
매일매일의 이벤트, 관계, 일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고 토라를 적용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오늘부터는 토라포션인 바야크헬, 페쿠데이가 시작된다. 쿠웨이트 중동 비전교회의 생일 토라포션이기도 하다. 아보트가 세우신 교회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담긴 토라포션이다. 그전에 반드시 키 티싸라는 토라포션을 지나야만, 바야크헬, 교회로 모으시고, 페쿠데이, 주님의 임무를 주실 수 있는, 물목을 정하는 이야기가 출애굽기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아달월이 끝나가고 있다.
כי תשׁא 키 티싸
출30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절에는 반 세겔이 나오는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내가 반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할 단 한 가지가 야훼인 이유는 내가 반쪽이기 때문이고, 그분이 반이시기 때문이다. 반은 반과 결합할 목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겔9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1-2)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무심코 읽지만, 손에 죽이는 무기를 들고 나아왔다.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있던 성막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시고 사람을 부르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보자. (4-6) 계시록이 아니라 에스겔서에 이미 하나님은 이마에 표 있는 자를 구별하시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7) 시체로 모든 성전의 뜰을 채우라고 하신다.
이런 모든 재앙 속에서 하나님은 키 티싸에서도 금송아지 재앙이 나오는데, 그때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가 나오는데,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다. 에스겔서에서도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부르시고, 그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금송아지 사건 때도 하나님이 모세라는 사람을 세우는데, 그 사람들의 특징이 주님 앞에 이마의 표를 받지 못하는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죽어갈 수 밖에 없는 백성을 위하여 엎드려 부르짖는다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오늘 키 티싸 말씀을 아주 무겁게 시작했는데, 결국에 하나님이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교회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토라를 맡기셨고, 토라를 위하여 여러분들을 선택하셨다. 여러분들은 허리에 먹 통을 찬 서기관들인데, 오늘 무슨 말씀을 하실지 주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오늘 제목을 내 손으로 너를 덮어라고 정해봤다. 그곳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겔9장을 보면, 주님의 성전 뜰이 시체로 채워진다. 마지막 때 심판은 세상이 아니라, 성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놀랍고,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봐야하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성읍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고, 이 표를 받은 사람을 주님은 구별하신다. 이 표 때문에 온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2월말에 이것이 666표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로 논란이 되는 일이 있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이 일을 냈다. 인간의 뇌에 칩을 수술하는데 성공을 했다는 발표가 크게 났다.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폰을 조작하는 일들이 이제 현실화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interface 개발의 이정표가 될 사건이라고 했고, 이분의 회사 이름이 뉴럴 링크인데, 첫 제품이 텔레파시라는 이름을 가졌다. 생각만으로, 의식만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참 이분의 목표가 뭐냐면, 인간으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되어있었다. 지금 교계에서, 세상에서, 이것이 666인지, 아닌지 많은 논란이 있고, 많은 두려움이 임하는 일이 일어났다
에스겔서에 이미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주님은 이마의 표를 그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자에게 표를 그리라고 하시냐면,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이다. 우리에게 이런 탄식함과 애통함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표를 주심으로 우리를 이 재앙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1부 예배, 상번제 시간에 우리에게 이 탄식함이 있고, 애통함이 임하기 원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표는 타브이다. 바로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너희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히브리어의 마지막 글자, 완성을 뜻하는 글자인 십자가를 뜻하는 글자,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심이 되는 문자이다. 기독교는 이 키 티싸의 금송아지, 하나님의 기복신앙으로 믿는, 그리고 내 질병을 낫게하기 위해서 믿고,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 믿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도를 배우기가 정말 쉽지 않다.
저희가 교회를 알아보러 다닐 때, 서초동에서도, 목감에서도, 다닐 때마다 부동산이 건물을 소개해주시면서, 건물의 많은 이웃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회에게 세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기독교는 십자가라는 이름을 금송아지로 바꾸는 사람에 개독교가 되어버렸다. 높은 곳에서 십자가가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혀를 끌끌 차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다. 정말 이 십자가, 타브, 우리가 이마에 받아야 할 표가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그런 표시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슬픈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토라가 시작되는 시작점을 이 키 티싸라고 한다.
כי תשׁא 키 티싸
타브, 십자가를 나싸, 드는 것이다. 토라의 모든 것은 이 십자가,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 높이 드는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는 것을 이마의 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이마에 표를 주시는데, 사탄도 그 이마에 표를 준다는 것이다.
지금 일론 머스크가 낸 일 때문에, 영생이니, 표를 받네, 안 받네라는 논란이 걷세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님이 키 티싸를 가르치기 원하신다. 너희가 정말 받으려고 하는 이 표는 무엇이냐? 그것을 높이 한번 들어보자.
키는 표를 받아야 하는 이유, 사탄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탄의 표를 받지 말고, 그분의 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아시는가? 그것에 대해서 명확한 해석을 받고 가길 원한다.
키 티싸에서는 두 가지 인물이 나온다. 첫 번째로는 금송아지이고, 두 번째는 베짤엘이다.
1. 금송아지 2. 베짤엘
עגל הזהב 에겔 하자하브 = 122 = בצל 베짤
키 티싸에서 금송아지를 주님이 베짤엘로 변혁시키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금송아지를 인간이 지은 가장 큰 죄, the greatest sin이라고 한다. 하타 그돌라라고 한다. 죄가 가돌, 성장한 것이다. 성장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인데, 죄가 성장해서 하타 그돌라가 된 것을 금송아지의 죄라고 한다
금송아지 죄는 죄를 한두가지 찌질하게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성장하게 한 것이다. 정원이가 문정원 섹션을 맡은 죄 형제라고 했다. 정원이가 지은 찌질한 죄 때문에 감동받은 것이 아니라, 정원이가 죄 섹션을 통해서 성장한 죄의 끝판왕,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지 않고, 죄의 본질을 알 때까지 성장한 죄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죄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 때까지이다
자신이 제일 싫을 때가, 똑같은 죄를 수십년 동안 계속 짓는 것이 제일 짜증나고 찌질한 모습이다. 죄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 때까지, 금송아지 죄까지, 우리 죄가 찬 곳까지 파헤쳐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음 포션, 교회를 이루고, 주님의 미션을 받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금송아지 죄를 파헤치지 못한다면, 교회를 만져보지도 못하는, 건물에 다니기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כח המדמה 코아흐 하메다메 = 122
이 에너지는 코아흐는 힘인데, 파워, 권력이란 뜻이다. 메다메는 의식이란 뜻이다. 일론 머스크는 그냥 인간이 아니라, 의식이 가지는 파워를 안 사람이다.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조작하고, 움직이고, 가능케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을 열어낼 수 있는 코아흐 하메다메의 파워를 안 사람이었다.
재미난 것이, 이분이 영생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보는데, 마지막에 자막 누구누구, 앵커 누군구, 이름이 나오는데, 앵커 이름이 AI라고 하더라. 그 뉴스도 AI 앵커가 한 것이었다. 이 세상은 코아흐 하메다메의 파워로 가득 차 있다. 생각의 힘이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망상이라고 번역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망상하는 모든 것의 기초는 우리가 육신이라는 것에 있다. 일론 머스크가 영생을 꿈꾼다고 하는데, 그분께서 영원히 살도록 하는 육신, 영혼에는 관심이 없다. 육신을 영원토록, 또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선천적으로 못 걷는 사람을 걷게하는 세상, 육신에 기반한 것을 코아흐 하메다메라고 한다. 그래서 이 칩을 넣었는데, 이 칩은 메모리이다. 모든 기억을 다 집합해서 기억이 담긴 칩이라고 한다. 육신에 기반했던 모든 기억들, 생각을 집약해서 넣는 것이다. 동전만하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스마트 워치가 머리에 달려있다고도 하는데, 육신에 기반한 모든 기억 정보를 넣는 것이다.
최범호 집사님께서 샤밭 나눔 때 어떻게 보면 우리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moment를 이룬 나눔을 하셨다. 서울의 봄 영화를 안 봤는데, 내가 경험한 것, 그것이 너무 아플까봐 말이다. 최범호 집사님의 육신이 경험한 것이 절대였던 사람이 그런 상상을 한 것이다. 그런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99%는 다 맞는데, 1%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의식, 아버지와 같은 의식, 그것은 무엇일까? 처음으로 그것에 대해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나는 좌측인데, 아버지와 같은 관점이 되어보자. 좌측인데 우측이고, 우측인데 좌측이 되는, 바람과도 같은 존재를 저는 그때 보았다.
최범호 집사님의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최바람으로 불러주시기 바란다. 성령의 사람은 이러하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데 그 길을 알지 못한다. 좌측의 사람이었는데, 우측으로 가더니, 갑자기 통합되어버린다. 나는 창세 전의 영혼이다. 이것을 그 칩에 담을 수 있을까? 창세 전에 그분과 함께 있었던 그 기억을 그 칩에 담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을 뭐라할게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 육신의 생각, 육체, 몸뚱아리를 나라고 한다. 여기에서 모든 생각과 모든 상상과 모든 행동이 나오고 있다. 주님은 이것을 너희가 성장시킨 가장 큰 죄라고 한다
בצלאל 베짤엘 <-> צלב 쩰레브 : 십자가
이것의 순서를 바꿔보면 쩰레브가 된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출31
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베짤엘의 특징이 우리의 아들,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렀는데,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다고 한다. 육신에 기반한 코아흐 하메다메가 아니라, 영에 기반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자였다. 그렇다면 타브란 무엇인가? 가증한 일에 대해서 애통해할 줄 아는가? 금송아지, 내 육신을 기반으로 한 모든 생각을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 슬퍼하는 자를 베짤엘이라고 한다
요새 너무 슬픈 일이 많다. 의료계 소식도 그렇고, 정치도, 가장 슬픈 소식은 출산률이 0.6대로 떨어진 것에 있었다. 서울은 저희가 이사를 와서 그런지, 저희가 서초동에 있을 때 서초동 출산률이 올라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저희 교회가 이사오는 바람에 서울 출산률이 0.5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2월 27일에 BBC 방송에서 한국 통계청의 출산률 발표에 맞춰서, 한국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라는 보도를 냈다. 그 보도는 27일 오전 중으로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손이 꼽혔다고 한다. 수치스럽고 슬픈 기사이다
BBC는 저출산 정책 기반자들이 정작 여성들의 필요, 청년들의 필요를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져서 전국을 다니면서 취재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네 가지로 분석이 되었다.
독. 단. 교. 주라고 했다
(1) 독박육아 : 여성과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독박 육아에 있었다. 우리 교회는 형제들이 얼마나 많이 도와주는데, 세상 여자들은 독박 육아 때문에 낳기 싫다고 했다고 한다. 이번 년도에 들어서 여성 커리어 우먼이 회사로부터 1억을 받았다고 한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나서, 회사들이 저출산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2) 단절경력 : 이 두 가지는 돈에 관련이 있다. 돈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3) 교육비 (4) 주거비
이 모든 것의 base가 베짤엘의 생각일까, 금송아지의 생각일까? 영에 기반한 것일까, 육에 기반한 것일까? 저는 최바람 집사님을 보면서, 히브리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건너간다는 것, 지나간다는 것, 바람이 지나가버리고, 통과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육신을 통과해서 영혼을 랜딩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얼마나 간과하는지 모른다. 이브리인이 되는 것, 아바르한다는 것은 아들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관점을 가지는 자이다.
내가, 이 육신이 우리의 또 부모들의 육아를 통해서 육신의 일들을 통해서 영혼이 랜딩한다는 것은, 영과 혼의 완벽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건너가지 않는 자들은 자식을 낳음과 동시에, 자식이 내가 되어버린다. 내 소유가 되어버린다.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식이 나의 육을 통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식이 나의 단장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냥 머물게 된다. 육신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게 되고, 지난 주에 이야기했던 군대 귀신이 되어서 끊임없이 우리 가문에 속한 군대 귀신이 우리를 빙의해버리는 그런 일들로, 끊임없는 송아지, 에겔 자하브의 죄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우리 육신이 상처받고, 힘들어지고, 가난에 처하고, 병에 걸릴까봐, 돈이 없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이 가증한 일을 하게 되어있다. 여기에 대해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
사실 육아라는 것과 출산이라는 것은 영과 육이 통일되는 가장 중요한, 마치 성막과도 같은 것이다. 성막 구조를 보시면, 뜰부터 물두멍, 번제단을 지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런데 점점 성소로 들어올수록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것으로 바뀐다. 지성소로 들어오면, 미스테리 24이다. 언약궤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크기는 나와있지만, 지성소와 언약궤 크기를 자세히 보면 아주 애매하게 되어있다. 금향단의 위치, 지성소인지 성소인지, 성경이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성막 자체는 영혼육이 정확하게 통일된 그런 곳이다.
어떤 자매가 그러더라. 이 수치에 대해서 계속 배우고 있는데, 전 무엇을 해도 수치스러운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듭니다. 단지 나의 행위가 수치스러운 것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나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러운데, 이 수치스러운 내가 그렇게 시기질투를 한다고 하더라. 사랑을 너가 받으면, 내가 못 받게 되는 것이 육신의 특징이다. 육신은 분명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그게 바람처럼, 저 사람이 나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나의 사랑을 뺏기게 되는 것이다. 독박육아, 나의 경력이 뺏길까봐 두려워서 슬프고 가증한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자매는, 나는 늘 수치스럽다고 하더라. 이것은 거의 수치 귀신이 붙은 것이다. 수치 빙의라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아야 할 때도,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을 수치 군대귀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때도, 불안해하지 않아야 할 때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면 두려움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애통해하는 자이다. 영혼을 통과하게 할 수 있는 자, 기꺼이 임신과 육아, 출산의 고통,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용기를 내는 자를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이 성막을 미쉬칸이라고 하는데, 조하르에 성막이라는 미쉬칸은 이동하는 이동식 천막이었다. 굉장히 바람과 같은 존재인데, 그 다음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른바 무지라는 특성을 첫 번쨰로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견고하게 고정되어있지만 지속적인 진행과정동안 개방적이고, 가볍고, 일시적이다. 이것은 아달월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납달리들의 특성은 웃음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는데, 그 웃음이 미소라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다.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몸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미쉬칸에 반영된다
주님이 신약 성경에서 너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한다고 되어있다. 내일 일을 내가 염려해야지, 내일을 내일로 염려하게 하라고 하신다. 자녀를 낳기 힘든 이유는, 그 자녀의 미래를 내가 염려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자녀들의 내일은 그 자녀들의 내일이 걱정하게 하라. 여기에 대해서 불안과 의심, 아말렉과 끝까지 전투하겠다고 하시는 주님을 본받아서, 정책을 바꾸셨다. 출산을 장려하고 명령하는 지경으로 바뀌셨다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 임신이 안되는데, 꿈에도 소원은 임신. 우리의 소원은 임신인데 말이다. 저는 아이들 세명을 키울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사역도 같이 하면서 그 어떤 사역보다, 어떤 일보다 위대한 것은, 우리가 어딜 가서 하빈이처럼 예쁜 애를 낳을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내 육신을 그냥 통과했을 뿐인데, 이 위대한 일에 더 힘쓰게 되기를 원한다.
이 금송아지 죄, 나를 육신으로 생각하고, 육으로 치우쳐버려서 통일되지 않는 죄가 왜 가장 큰 죄인가? 내가 나를 육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의 영과 혼이 통일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까지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가장 큰 죄이다.
우리가 좌와 우가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의 정치적 성향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그것을 왜 주님은 통일하라고 이야기하실까? 왜 성막은 우리에게 통일을 보여줄까? 우리의 고통과 쾌락은 왜 자꾸 통일이 되어야 할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통일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젊은 세대들은 이 노래를 모르더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남북만이 아니라 좌우가 통일되고, 내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통일되고, 영과 육이 통일되고, 고통과 아픔과 즐거움이 통일되는 것이 우리의 꿈에도 소원이 통일이 되길 바란다.
통일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단장품이라고 한다. 단장품은 내가 좋은 것을 덕지덕지 나에게 붙이는 것이다.
출33: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단장하다라는 에드에 탐닉, 집착하다라는 뜻이 있다. 통일, 균형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좌는 좋고 우는 싫은 것, 영적인 것은 좋고 육은 싫은 것, 말씀듣긴 좋고 육아는 싫은 것, 힘든 것은 싫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것이다
도파민 네이션이라는 책에, 소크라테스가 그 오래 전에 쾌락과 고통은 동전의 한면과도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쾌락을 느끼면서, 웃으면서 슬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즐거움을 누리면서 동시에 고통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독박육아를 하면 반드시 나는 외로워지고, 경력은 단절된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보면, 우리는 도파민의 분비를 통해서 기쁨과 쾌락을 느끼게 되는데, 뇌에는 적응이라는 과정이 있어서, 항상 똑같은 양의 기쁨을 똑같은 자극으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는 한번 빠지게되면, 점점 더 많은 마약을 하고 깊이 빠져드는 이유가 똑같은 자극으로 똑같은 반응을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치, 채워야 하는 양이 점점 높아진다. 그래서 이 애나라는 과학자는 더 좋은 것, 많은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고통을 선택해라. 이것이 지속적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도파민에 절여진 뇌를 리셋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세상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독박육아와 돈 때문에 내가 힘든 고통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사그러져 가는 슬픈 현실 가운데, 과학자들도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를 잘 관찰해보자. 나는 어디에 치우쳐있는가? 어떤 생각, 즐거움, 어떤 쾌락에 탐닉하며 단장품으로 나를 단장하는가? 스스로 일부러 고통을 선택할 줄 아는, 우리 선조들은 그래서 나는 고통을 미치도록 사모한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하는 질문이 있다. 행복해지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할까? 아니면 잘하는 것을 해야할까? 좋아하는데 잘하면 제일 좋겠지만, 뭘 선택해야할까? 이 질문을 바꿔보도록 하자. 나는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일을 선택해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고통이 올지라도, 이 길을 쭉 가겠다고 하는 것, 자괴감도 들고, 부족함도 들지라도, 이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한다.
이런 독박교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일을 해보리라. 이 위대한 제자들이 있는 우리 교회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행복한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의 글귀이다. 키 티싸, 십자가에서 높이 들리셨는데 행복했다고 한다. 그만큼의 고통을, 십자가의 고통까지도 감내할만큼 사랑하는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있었을 때, 살아남은 증언자들 중에 아주 특이한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부였는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쓰나미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꽃이 어떻게 되고, 자연 증상도 있는데, 그것을 보자 그들이 기억했던 한마디가 있었다. 자신의 선배 어부들이 했던 말, 쓰나미가 덮칠 때는 해안가로 가지 말아라. 그 고통, 고난, 해일을 일으키는 중심으로 들어가면 너희는 살 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을 들어가고, 해안가가 아니라 바닷가쪽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몇몇의 증언자들이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통일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죽은 자는 살 수 있는 역설의 통일이다. 금송아지는 이런 통일이 소원이 아니다. 금송아지는 내가 좋은 것, 편한 것만 하고, 나는 사랑만 받겠다
엊그제 종욱 형제가 자기 옛날 별명이 용가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냈다고 한다. 아내고 나발이고, 갑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거래처에서도, 집에서도 화를 냈다고 한다. 하나님은 영의 토라를 배우고 제자도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테스트하신다. 너는 정녕 고통을 소망하느냐? 그러나 우리는 한쪽으로, 사랑으로 치우치기 좋아한다. 미움을 받을 때 갑이고 나발이고 화를 내는 금송아지 죄를 범하고 있다
키 티싸, 타브를 높이 들라, 너희들의 이마에 표를 찍으라. 이것은 내가 영에 기반한 생각을 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육이 아니라 영이다. 육신을 통하여 영을 통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관계에 의해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토탈 비전이 단 하나의 비전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영이라는 이 생각은 반드시 관계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 최범호 집사님이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시는데, 64년생이 78년생에게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영의 세계에서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는 육신의 나이를 논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우리 교회에서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이 말이 얼마나 영적 세계에 지진을 일으키는 말인지 모른다. 너희들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선포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장 실제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제가 만들고자 하는 교재 중에, 나중에 정말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하면 꼭 출판 사업을 할텐데, 그때 만들 교재가 LTG 교재를 만들고 싶다. 각 주별로 토라포션을 만들고, 거기에 따른 말씀, 어떻게 적용해야할지, 그 주에 불러야 할 찬양은 무엇이고, 그때 읽어야 하는 도서는 무엇이고, 그때 봐야 할 영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말이다
키 티싸에 꼭 보셔야 할 영화가 벤허이다. 총 3부작으로 이루어진 영화인데, 벤허는 한번씩은 보셨겠지만, 전차 경기만 기억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기에 예수님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벤허의 주인공의 이름이 유다인데, 벤허 유다이다. 이 벤허는 유대인인데 어렸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기 적으로 돌아오고 자신을 배신하고 노예로 팔아버린다. 노예로 팔렸을 때 예수님을 한번 만난다. 지나가던 그분이 노예여서 물도 마시지 못하는 자기에게 물을 건네시는 주님을 한번 보고 나중에 이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분을 다시 한번 만나면서, 이 유다가 자신의 원수를 어떻게 용서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이야기이다
벤허라는 말이 בן חור 벤 후르이다. 금송아지를 만들 때, 이 에레브 라브가 아론에게는 만들어내라고 했고 훌은 죽였다. 금송아지 사건에서 만들어진 순교자였다. 이 훌의 벤, 아들이다. 훌을 교정하기 위해서 등장시킨 인물이 벤허의 유다였다. 금송아지 죄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벤허의 증오심과 원수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할 때가,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서 원수가 했던 짓에 대해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가두는데, 격리를 시킨다. 문둥병에 걸렸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한다. 그리고 벤허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 에스테르였는데, 이 에스테르가 복음을 전한다. 내가 예수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젊은 랍비인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을 듣고 자기가 로마를 용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영화의 끝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실제로 지진이 나오고 휘장이 위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죽은 많은 자들이 살아났다고 할 때, 문둥병에 걸렸던 유다의 어머니와 동생이 치유함을 받는다. 그리고 키 티싸,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젊은 랍비, 자신에게 물을 주었던 예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음성을 듣는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합니다. 벤허는 이 소리를 듣고 모든 증오, 평생 자기가 살아왔던 복수의 칼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성막의 위치와 구조를 보면, 들어가다가 성소에서 좌우 대칭을 이룬다. 한쪽은 떡상과 한쪽은 향단이 있다. 그런데 지성소로 들어가면서 언약궤로 통일된다.
카도쉬 하카도쉼 : 언약궤, 거룩 중에서도 거룩한 곳
지성소에 언약궤가 들어있는데, 밑에는 궤로 되어있고, 그 위를 덮는 뚜껑이 있는데, 뚜껑의 이름이 케쓰 하라하밈, 속죄소이고, 그 위에 천사, 그룹이 덮고 있다
출30:6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이런 신비스러운 육적인 물건이 영적인 공간에 놓여있고 통일을 이룬다. 지성소 안에 들은 속죄소, 언약궤는 하나님과 인간이 통일되는 곳이다. 영적 존재와 육을 입은 존재가 통일되는 곳이다. 좌우가 통일되는 곳이며, 성소의 모든 대칭이 통일되는 곳이고, 남북, 영육이 통일되는 곳이다. 속죄소 밑의 궤 안에는 율법이 들어있었다.
율법 앞에서 좌우가 서로 싸울 명제가 아주 분명하다. 우리는 너무나 분명한 선악으로, 지금도 싸우고 있다. 의사들과 정부가 지금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속죄소, 케쓰 하라하밈, 갚을 수 없는 은혜, 자궁의 사랑으로 덮고 있다. 분명한 율법을 주님이 덮고 계신다. 속죄소라는 뜻은 또한 화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키 티싸에 우리 교회 가운데 진정한 속죄, 덮어줌의 역사, 화해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덮어주심의 은혜 없이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들이 계신가? 누가복음에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깬다. 많은 분별하는 자들이 그 돈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낫지 않냐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신다. 많이 용서받은 자는 많이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마치 지성소가 없는 성막과도 같다. 우리 교회는 지성소가 있을까? 이 덮어주는 은혜 없는 성막, 지성소 없는 성막이 가능할까? 하나님과 우리가 통일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우리가 거기서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껍데기일 뿐인 성막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은 지성소가 있으신가? 여러분의 부부 관계에는 덮어주는 은혜가 있으실까? 우리 땅은 학생과 스승이 덮어주기보다는 까발리기 바쁘고, 자녀와 부모가 덮어주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따지기 바쁘고, 좌와 우, 유대인과 이방인, 친구와 친구들은 서로 배신하기 바쁘다. 그렇게 우리는 단장품으로 나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가기 있다.
이제 단장품을 뗄 때가 왔다. 이제 우리의 단장품을 떼어내고, 이 속죄소, 은혜의 보좌 가운데로 나아갈 때가 우리에게 왔다. 여러분은 용서함 받으신 기억이 있으신가?
저는 제가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아들로 입양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손양원 목사님처럼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꼭 1년 전에 우즈벡에 갔는데 청천벽력같은 소문이 들려왔다. 육신의 아들이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저는 철저하게 부서진 것 같다. 내가 지성소로 나아갈 때구나. 나는 그동안 내가 용서해줘야하는 손양원 목사님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용서함 받아야하는 자리에 딱 서니까, 그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속상하고, 죽고 싶은지 몰랐다. 그때 알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용서해줘야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내가 용서해줘야하고,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언니도, 그동안 나를 배신한 수많은 제자들도 내가 용서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나는 그동안 덮어주시는 은혜로 살았고, 지금도 그 덮어주시는 은혜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우리를 덮어주는 많은 아들 딸들의 사랑 가운데서 어려운 시기를 건너온 기억들이 난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를 끊임없이 덮어주시는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우리를 속죄소가 있는 그곳으로 끊임없이 초청하시는, 그래서 지성소의 휘장이 주님이 돌아가셨을 때, 키 티싸, 높이 들리셨을 때 찢어지는데, 지진이 일어나면 아래에서 위로 찢어져야 하는데, 성경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한다. 휘장은 주님이 찢으셨다. 하나님이 찢으시면서 들어오라. 은혜의 보좌 가운데로, 그 속죄소 앞으로 들어오라.
출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임마누엘, 그분은 태어나자마자 그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우리가 출산을 왜 안 하냐면, 애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아빠들보고 애들을 보라고 하면 정말 보고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 임마누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모세가 원했던 단 한 가지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 마음 가운데 쉼이 오지 않는다
옛날에 우리 에스더가 이름을 제주도에서 받았는데, 그때 순애 집사님과 저와 에스더 셋이 있었는데, TDI가 세워지기 전이었다. 여자 세명이 얼마나 남자에게 뺏겼다고, 뺏어야 한다는 선두주자가 에스더였는데, 그때 숙희와 샤밭을 하면서 목사님이 손을 얹자마자 이름을 주시는 것이다. 평생 남자에게 뺏겼기 때문에 뺏기 위해서 살았고, 그래서 쉼이 없었던 딸을 에스더라 칭하면서 반쪽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었다. 아버지가 안아주시려고 하면, 엉덩이를 쭉 빼고 포옹을 했다. 절대 남자에게 나의 힘을 빼고 안기면 나의 모든 것을 뺏길 것 같아서 절대로 힘을 빼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힘을 줄까? 덮어주시는 그분이 우리를 덮어주시려고해도, 그 품으로 안아주시려고 해도 힘을 줄까?
첫 번째는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워서 우리는 힘을 뺄 수가 없다. 힘을 뺐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까봐 말이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단과 벧엘에 놓았던 여러보암이라는 왕이 있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성경에서는 그런 말씀을 한다. 왕상12장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힘을 잔뜩 줬던 여러보암이라는 왕은 에프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사는데, 망상을 한다.
왕상12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백성의 마음이 유다쪽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코아흐 하메다메에 빠져버린 것이다. 여러보암은 내 백성을 뺏길까봐 두려워서 힘을 빼지 못했다.
힘을 빼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가 뭘까? 뭘 배울 때, 선생님이 그렇게 힘을 빼라고 하는데 못 빼는 이유가 있다. 안 해봐서 말이다. 힘을 안 빼봤기 때문에 못한다. 우리 가운데 있는 두려움은 힘을 빼지 못하게하고, 안 해봤기 때문에 힘을 빼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한번 해보자. 힘을 빼보자. 한번 우파를 사랑해보자.
요새 우리나라의 저출산률이 증가하면서 굉장한 일이 일어나는데, 많은 지역적 사건들도 일어나지만, 폐교가 그렇게 많아졌다고 한다. 또 짝짓기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이 올라갔는데, 결혼률은 줄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예능으로만 보겠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결혼을 하는 위험은 감수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지켜보겠다. 혹시 우리가 제자도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너희가 하는거 지켜보겠다. 토탈 비전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들을 한번 지켜보겠다. 그게 아니라 한번 해보게 하소서. 용기를 가지고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우리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좌우의 통일, 남북의 통일, 아버지와 아들의 통일, 영과 혼의 통일, 영과 육의 통일은 아주 위험한 짓이다. 언제 우리가 취약함에 빠질지 모르고, 실패할지 모르고, 언제 내 시간을 뺏기고, 언제 내 감정이 상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라. 쉬게 하리라고 하신다.
이완하시기 바란다. 힘을 빼시고 지성소로 담대히 들어가시기 바란다. 덮으시는 은혜 가운데 우리 힘을 빼고 완전히 안기기 원한다. 이것을 지성소라고 한다.
이제 이 고리를 좀 끊었으면 좋겠다. 미움의 고리, 치우치는 순환들, 덮어주기 싫어하는 이 고집들을 좀 치웠으면 좋겠다. 여야가 통일되고, 좌우, 남북, 동서, 유대인과 아랍, 한국과 일본이 통일되기 바란다
3.1절에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주 좋은 일이다. 일본 땅을 많이 밟아주시기 바란다. 남편과 아내가 통일되고, 더 이상 지성소 없는 성막으로 살지 않도록,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피해를 받았으니, 그래도 내가 용서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 우리에게는 수많은 덮어줌의 은혜가 있었고, 내가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덮어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이 키 티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문장이 있었다. 생명의 속전을 내야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카운트하시려면, 너는 생명의 속전을 내야하는데, 이 말이 이쉬 코페르 나프쇼였다. 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의 이름이 코페르, 덮어주는 한 남자였다. 그때 우리는 평안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찬양할 노래는 케쓰 하라하밈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노래이다. 주님의 많은 이름들이 나오고 있다. 엘 깁보르, 싸르 샬롬, 아비아드, 펠레 요에쯔. 강하신 우리 주님, 평안의 왕자, 영원하신 아버지, 놀라운 상담자이신 그분이 지성소 안에서 통합되신다. 예슈아, 우리의 생명이 속전되신 당신만을 높이 듭니다. 천사와 스랍들이 머리를 숙이며 얼굴을 가린다. 보좌 오른편에 계신 이와 어린 양에 찬송과 영광과 능력이 영원히. 우리가 통일되고 화해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찬송과 영광과 능력이 내가 아니라 그분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은혜의 보좌, merci seat, 케쓰 하라하밈,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분께 나아가서 나의 얼굴을 내고 경배하기 바란다. 코데쉬 하코다쉼, 이것을 지성소라고 한다. 지성소 없이 살았던 빈껍데기인 우리 가운데 지성소 안에서 주님을 보는 역사가 있게되길 원한다.
* 기도
지성소로 담대히 들어가자.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그동안 덮어주셨던 하나님, 나를 덮어주셨던 우리의 많은 가족들과 이웃들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동안 단장품으로 나를 치장할 수 밖에 없었던 수치와 두려움 가운데, 금송아지를 세우며 살았습니다. 나의 시간이 나의 것인 줄 알고, 나의 감정이 나의 것인 줄 알고, 나의 자식이 나의 것인 줄 알고 단장품을 떼어내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탐닉과 더 많은 기쁨이 있어야만, 더 많은 인정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금송아지의 죄의 본질까지 차올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군대 귀신에 빙의되어서, 수치가 아닌데도 수치스러워하고, 두려워할 상황이 아닌데 두려워하고, 미워할 상황이 아닌데도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성소가 없었던 껍데기 같은 성막이 지성소 앞으로, 물 케쓰 하라하밈으로 나아갑니다. 그동안 서있었던 분별, 미움, 쾌락의 자리에서 속죄소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덮고 사랑하고 화해하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 땅은 좌와 우가, 의사와 정부가, 백성과 정부가 대치하며 서로 뺏기지 않겠다고 그렇게 복수하며 용서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가증한 일에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훌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균형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화해를 몰랐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임마누엘을 몰랐습니다. 함께함을 몰랐습니다. 나의 욕심 때문에 영혼을 나에게 통과시키지 못하고, 나의 이기심 때문에, 돈 때문에, 단장품 때문에, 절대로 너에게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하는 이기심으로 이 나라는 물들어있습니다.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 나라에게 지성소를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가 통일과 화해와 사랑과 헌신, 용서가 있을 수 있도록, 이 나라에 지성소를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그곳을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카도쉬 하카도쉼을 회복하여 주소서.
당신은 이 나라를 당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이 교회를 하나님은 당신의 피로 덮어주셨습니다. 우리를 덮어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당신의 긍휼의 보좌 가운데로 나아가노니, 우리로 하여금 덮어주며, 사랑하며, 헌신하며, 그렇게 임마누엘하며 살 수 있는 나라, 그런 Nation, 교회 될 수 있도록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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