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집 제 1권 제 246수 중 60번째 시(詩) ]
내가 소싯적에 일찍이 〈유자한식사선묘시(柳子寒食思先墓詩)〉를 지었는데, 당시에는 철이 없고 어려서 과정(科程)의 규범(規範)에만 맞추기를 힘쓰고 시의(詩意)는 깊이 연구(硏究)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금년 봄에 나그네로 월성(月城)에 우거(寓居)하면서 존몰(存歿)을 슬피 생각하고 인(因)하여 좋은 때를 감상(感想)해 보니, 이제야 비로소 고인(古人)의 일음 일영(一吟一詠)이 모두 정취(情趣)와 경치(景致)가 다 같이 도저(到底)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연히 자미(子美)의 칠가(七歌)를 읊으면서 그 운(韻)을 뒤따라 사용(使用)하여 짓는 바이다.
인(因)하여 그윽이 스스로 상심(傷心)하건대, 나는 타고난 운명(運命)이 기박(奇薄)하고 고독(孤獨)하며 또한 좋지 못한 때에 태어나서, 겨우 9세가 되었을 적에 엄부(嚴父)를 여의었고, 겨우 15세가 지나서는 자모(慈母)가 이어 돌아가셨다. 영근(靈根)이 이미 넘어지고 형제(兄弟)들이 각각 동서(東西)로 헤어지고 나서는,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혼자서 외짝 그림자를 이끌고 의지(意志)할 곳이 없어, 남으로부터 급여(給與)를 받아먹고 지냈었다. 그리하여 어려서는 문정(門庭)의 교훈(敎訓)을 받지 못했고, 자라서는 사우(師友)들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미친 듯이 제멋대로 분주(奔走)하면서 짐승처럼 절로 자랐다. 그러다가 요행(僥倖)히 일찍 과거(科擧) 급제(及第)를 하여 시배(時輩)들을 대단히 기만(奇巒)함으로써, 벼슬은 날로 승진(陞進)되고 봉록(俸祿)은 날로 많아지며, 얼굴은 더욱 뻔뻔스러워지고 마음은 더욱 걱정스러웠다.
추후(追後)하여 생각하건대, 소시(小廝)에는 다만 홀로되신 모친(母親)을 의지(依支)하여 살았는데, 모친(母親)은 백발(白髮)의 나이로 근심(謹審)과 상심(傷心) 속에 곤군(困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풍수(風樹)는 마구 흔들리고 정화(菁華)는 점차로 몰락(沒落)되어서, 아이의 키가 문지방에 닿기도 전에 어버이의 수명(壽命)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하늘이 내린 가혹(苛酷)함으로 마침내 대벌(大罰)을 만나게 될 줄을 어찌 기약(期約)하였겠는가. 하늘이여, 신명(神明)이여! 차마 이런 꼴을 보면서 때를 넘기고 해를 바꾸어 오늘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또 완둔(頑鈍)하게 홀로 살아남아 죽지 못하는 자(者)는 또한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매양(每樣) 한 번씩 꿈 속에서 뵐 적에도 의형(儀形)과 경해(警咳)를 열에 하나도 기억(記憶)하지 못하여, 아직껏 그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아, 천지(天地)는 다함이 있어도 이 한(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봉록이 아무리 많아서 풍성(豊盛)하고 보드랍고 맛 좋은 음식(飮食)들이 날로 내 앞에 진열(陳列)되고, 의관(衣冠)을 갖추고 호창(呼唱)하는 영화(榮華)가 날로 마을에 빛날지라도, 문을 들어와 당(堂)에 오르면 누가 나를 위해 기뻐해 주며 장차 누구에게 효도(孝道)를 한단 말인가. 하늘에 물을 수가 있으랴. 아, 슬프도다.
이로부터 이후(以後)로 전후(前後) 10여 년 동안에 쇠(衰)한 가문(家門)에 재앙(災殃)은 많고 하늘은 도와 주지 않아서, 여러 누님(姉)과 형(兄)이 서로 이어서 죽었다. 만년(晩年)에는 계씨(季氏)와 함께 외로이 고생(苦生)하면서 서로 의지(依支)하여 명(命)으로 삼아, 횃대를 함께 쓰고 한 솥에 밥을 같이 지어 먹고 지내면서 아무쪼록 후사(後嗣)가 폐(廢)해지지 않기를 희망(希望)했었다. 그런데 불행(不幸)히도 난리(亂離)를 만나서, 형(兄)은 적(賊)을 만나 물에 빠져 죽고, 그 해 12월에는 딸아이가 역질(疫疾)에 걸려 강도(江都)에서 죽었는데, 딸아이는 죽음에 임박(臨迫)해서도 오히려 억지로 괴로움을 참고 눈을 떠서 아비를 부르면서 보고 싶다는 말을 세 차례나 하고 죽었다 하니, 아, 아비가 된 사람으로서 차마 이 말을 들을 수가 있겠는가.
지난해 7월에는 찬빈(贊儐)으로 남쪽에 내려가 있었는데, 일을 마칠 기약(期約)은 없고 고향(故鄕) 소식(消息)은 날로 나빠져서, 소식(消息)이 올 적마다 두려운 일이었다. 동당(同堂)의 친질(親姪)들까지 서로 이어서 죽고 나니, 온 집안을 통틀어 헤아려도 세상(世上)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데, 선묘(先墓)의 곁을 돌아보니, 줄줄이 연(連)하여 서로 바라보고 있는 묵은 무덤과 새 무덤들은 자최(齊衰)ㆍ참최(斬衰)의 자리가 아니면 기복(期服)ㆍ공복(功服)의 자리이다. 죽어서도 앎이 있다면 혹 서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니, 구중(九重)의 저승길은 바로 나의 낙토(樂土)인 만큼, 어느 날 내가 죽으면 장차 토중(土中)에서 눈을 닦고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들으니, 사생(死生)은 명(命)에 달렸다 하는데, 다행(多幸)히 죽음에 이르기 전에 있어서는 그 죽은 이는 이미 멀어져서 미쳐갈 수 없으니, 오직 추원(追遠)의 일에 정성(精誠)을 다할 뿐이다. 다행히 묘(墓)는 있어 춘하추동(春夏秋冬) 네 계절(季節)마다 성묘(省墓)를 하고 외로이 전(奠)을 받들고는 있으나, 아무리 돌아보아도 달리 서로 도와 줄 형제(兄弟)들이 없으니, 내가 죽은 뒤에는 이 일이 마침내 폐(廢)해져서 향화(香火)가 끊어지면 쓸쓸한 하나의 구허(丘墟)가 되고 말 것이 항상(恒常) 염려(念慮)되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내가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그 동안 성묘(省墓)를 폐(廢)한 것이 또 6년이나 되었으니, 속담(俗談)에 ‘자식을 낳아서 착하지 못하면 자식 없이 사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 하겠다.
난리를 겪은 이후(以後)로는 이웃들이 다 흩어져 없어져서 묘역(墓域)을 간수(看守)할 사람이 없으므로, 송추(松楸)가 훼상(毁傷)되고 추목(蒭牧)도 금(禁)하지 못하였다. 또 지난 해에는 야화(野火)를 경계(警戒)하지 못하여 묘지(墓地)의 풀에까지 타들어가서, 평상시(平常時)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또한 모두 훼상되었으니, 누가 후손(後孫)이 있는 묘(墓)가 이 지경(地境)에 이르리라고 여기겠는가.
바로 지금은 꽃다운 봄 날씨 따뜻하고 절서(節序)는 불을 금(禁)하는 한식(寒食)에 이르렀으므로, 우로(雨露)가 이미 축축하게 내리어 마음에 슬픈 생각이 든다. 더구나 남쪽 사람들의 풍속(風俗)은 제사(祭祀)의 예(禮)를 중(重)히 여긴다. 그리하여 동린 서사(東隣西舍)가 모두 밥과 고기를 싸고서 아이는 앞에 서고 개는 뒤에 따른 채, 어리석은 백성(百姓)이나 천(賤)한 노예(奴隸)들까지도 각각 자기 부모(父母)의 묘(墓)에 올라가서 추원(追遠)의 뜻을 부침으로써, 구귀 신혼(舊鬼新魂)이 모두가 감동(感動)을 받고 멀리 강림(降臨)하여 자손(子孫)들의 성의(誠意)를 흠향(歆饗)하는 터이다. 그런데 나는 유독(惟獨) 어떤 사람이기에 태연(泰然)하게 앉고 눕고 하면서 오히려 말하고 밥 먹고 평지(平地)의 위를 밟아 다니며 스스로 인수(人數)의 가운데 끼여 있단 말인가.
바람을 인(因)하여 목을 길게 빼고 서쪽을 바라보며 길이 호곡(號哭)하면서 발을 들어 땅을 구르며 슬픔을 노래에 발설(發說)하노니, 노래는 소리를 이루지 못하나 이 세상 끝까지 가서 그칠 것이다.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有父有父先趾美 / 유부유부선지미 / 아버지여 아버지여 옛 행적 훌륭했는데
兒生九齡父死耳 / 아생구령부사이 / 아이 태어나 아홉 살에 아버지 돌아가시니
兒時癡弱不耐絰 / 아시치약부내질 / 아이는 철없고 약하여 상복을 감당 못한지라.
只得從母啼閨裏 / 지득종모제규리 / 어머니 따라 방 안에서 울기만 했을 뿐이네.
諸兄相逝獨孑然 / 제형상서독혈연 / 여러 형들 서로 죽고 나만 외로이 남아서
三十三年頑未死 / 삼십삽년완미사 / 삼십삼 년 동안을 완둔하게 죽지 못했네.
嗚呼一歌兮聲悲哀/오호일가혜성비애 / 아 한 번 노래하매 소리가 매우 슬퍼라.
昊天罔極魂不來 / 호천망극혼부래 / 하늘 같은 부모님의 넋은 오시지 않누나.
그 두번째
有母有母親刀柄 / 유모유모친도병 / 어머니여 어머니여 칼자루를 친히 잡고서
半世孤燈賦薄命 / 반세고등부박명 / 반세동안 외로운 등잔 아래 기박한 운명 겪었네.
有子不肖不得力 / 유자불초부득력 / 자식이 불초하여 힘을 얻지 못했는지라.
布裙懸鶉露兩脛 / 포군현순로양경 / 해진 무명 치마에 두 다리가 다 나왔었지.
流光荏苒不相待 / 유광임염불상대 / 흐르는 세월은 서로 기다려 주지 않았기에
身後宗姻式貞靜 / 신후종인식정정 / 사후에는 종족과 인척이 정숙함을 본받았네.
嗚呼二歌兮哭聲放/오호이가혜곡성방 / 아 두 번 노래하면서 방성대곡을 하노니
行路爲之喟然悵 / 행로위지위연창 / 길 가는 이도 나를 위해 한숨 쉬며 탄식하누나.
그 세번째
有兄有兄性義方 / 유형유형성의방 / 형이여 형이여 성품이 의롭고 단정하여
當亂樹立猶屈强 / 당란수립유굴강 / 난리를 당해서도 꿋꿋한 의지 수립하였네.
弟隨龍馭狩龍灣 / 제수룡어수룡만 / 아우는 용만에 행행하는 대가를 따라가서
引領相望號聲長 / 인령상망호성장 /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며 길이 통곡했다오.
山氓傳呼有寇至 / 산맹전호유구지 / 산중 백성들이 도적이 온다고 서로 외쳤는데
兄獨不屈死路傍 / 형독불굴사로방 / 형만은 유독 굴하지 않고 길 곁에서 죽었네.
嗚呼三歌兮情激發/오호삼가혜정격발 / 아 세 번을 노래하매 정이 격발하여라
三年僅得收遺骨 / 삼년근득수유골 / 삼 년 뒤에야 겨우 유골을 거둘 수 있었네.
그 네번째
有女有女生別離 / 유여유여생별이 / 딸아이여 딸아이여 생이별을 하였노니
時當乳下弱而癡 / 시당유하약이치 / 때는 막 젖먹이라서 약하고 철없었지
父執母手撫女語 / 부집모수무여어 / 아비가 어미 손 잡고 딸아이 만지며 이르길
未死重逢會有時 / 미사중봉회유시 / 죽기 전에 거듭 만날 때가 있으리라 했는데
人傳將死尙呼爺 / 인전장사상호야 / 남이 전하길 죽을 적에도 아비를 불렀다 하니
老淚默洒中兵旗 / 노누묵쇄중병기 / 늙은 눈물 묵묵히 뿌려 병기를 적시누나
嗚呼四歌兮不忍奏/오호사가혜불인주 / 아 네 번 노래하매 차마 연주를 못하겠네
至今孤魂哭朝晝 / 지금고혼곡조주 / 지금도 외로운 넋은 조주에 통곡을 하리
그 다섯번째
有姪有姪遭亂急 / 유질유질조난급 / 조카여 조카여 난리의 급한 때를 만나
立別門前涕沾濕 / 입별문전체첨습 / 문전에 서서 이별하니 눈물이 옷깃 적셨네
亂後生逢如夢寐 / 난후생봉여몽매 / 난리 뒤에 살아 만남은 꿈 속과도 같아라
甥得加冠女成立 / 생득가관녀성립 / 생질은 관을 쓰고 생질녀는 성인이 되었네
甥今逢盜死途中 / 생금봉도사도중 / 그런데 생질은 지금 도적을 만나 길에서 죽고
女又夭折悲慟集 / 녀우요절비통집 / 생질녀 또한 요절하여 비통함이 겹치누나
嗚呼五歌兮川路長/오호오가혜천로장 / 아 다섯 번 노래하니 뱃길은 멀기만 한데
魂其念我來殊鄕 / 혼기념아래수향 / 영혼은 나를 생각해 타향에서 오리로다
그 여섯번째
我家丘壠臨東湫 / 아가구롱임동추 / 우리 집의 선산은 동추를 임해 있는데
別來墓木皆成樛 / 별래묘목개성규 / 이별한 이래 묘목 가지가 다 굽어 늘어졌네
六年不歸棄如遺 / 육년불귀기여유 / 육 년을 돌아가지 않아 잊은 듯이 버렸는데
先靈夜夜空來遊 / 선영야야공래유 / 선령은 밤마다 부질없이 와서 노닐도다
去歲野火燒白楊 / 거세야화소백양 / 지난해엔 들불이 나서 백양목을 태웠는데
隣人撲滅僅得休 / 인인박멸근득휴 / 이웃 사람이 두드리어 겨우 불을 끌 수 있었네
嗚呼六歌兮道逶迤/오호육가혜도위이 / 아 여섯 번 노래하노니 길은 구불구불한데
東雲入望猶含姿 / 동운입망유함자 / 시야에 든 동쪽 구름은 자태를 머금었구려
그 일곱 번째
年年寒食松楸老 / 년년한식송추노 / 해마다 한식을 지나며 송추는 늙어가는데
香火寥寥古墓道 / 향화요요고묘도 / 고묘의 길에 향화는 적적하기만 하여라
家家追遠競是日 / 가가추원경시일 / 집집마다 이 날을 다투어 제사를 지내되
悽愴焄蒿爭及早 / 처창훈호쟁급조 / 영혼을 향사하는 정성 서로 일찍 서두르누나
遊子天涯哭向西 / 유자천애곡향서 / 천애의 나그네가 서쪽을 향해 통곡하노니
舊山無人樹連抱 / 구산무인수련포 / 옛 산엔 사람 없고 나무는 아름드리 되었네
嗚呼哀歌兮終七曲/오호애가혜종칠곡 / 아 슬피 노래하여 일곱 곡조를 마치면서
感念公私傷運速 / 감념공사상운속 / 공사간에 쇠퇴한 운수가 빠름을 느끼노라
♣ 자미(子美)의 칠가(七歌) : 두보(杜甫)의 건원 중 우거 동곡현 작가 칠수 시(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詩)를 가리키는데, 여기 저자(著者)는 그 중 1수(首)의 운(韻)을 사용하지 않았다. 《杜小陵集 卷8》
♣ 영근(靈根) : 조고(祖考)를 비유한 말이다.
♣ 풍수(風樹)는 마구 흔들리고 : 이미 돌아간 부모(父母)를 효도(孝道)를 다하지 못한 통한(痛恨)을 뜻한다. 고어(皐魚)의 말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奉養)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정화(菁華) : 훌륭한 재덕(才德)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 말이다.
♣ 그 다섯 번째 : 이 시(詩)는 전후(前後)의 간본(刊本)에 모두 빠졌으므로, 뒤에 수초(手草)를 찾아서 추보(追補)하였다.
첫댓글 백사공의 통한의 7수 시 군요
나랏일 하시느라 선묘를 제때 돌보지 못 함과
세월이 흘러 가는 과정 난리를 만난 고로운 여정이
단어마다 절실 합니다
고귀한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