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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시리아는 서부에서 동부까지 지리적으로 연안지대, 산악지대, 시리아 사막의 3개 주요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터키와 레바논 사이에 있는 연안지대는 길이가 남북으로 불과 180km에 지나지 않으며 너비는 북쪽의 약 3km에서 남쪽 끝의 19k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많은 샘과 지하수 공급을 통해 1년 내내 집약농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리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주거지역이다. 산악지대는 해안과 평행하게 늘어선 2개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2개 산맥은 평균고도가 해발 600∼900m에 이르는 북서부 지역의 안누사이리야(알라위테) 산맥과 평균고도가 1,800∼2,100m에 이르는 남서부의 앗샤르키(안티레바논) 산맥이다.
시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남서부에 있는 헤르몬 산이다. 산악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강은 오른테스 강으로 안누사이리야 산맥 동쪽에 64km로 펼쳐진 열곡인 가브 저지(低地)를 통과해 북쪽으로 흐른다. 산맥 동쪽 나머지 지역에는 시리아 사막의 기복이 심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사막 지대는 중동부에 있는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평균고도 300∼ 500m)와, 남쪽 끝의 두루즈 산을 포함한 시리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루즈 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현무암 노두(露頭) 가운데 하나(3만 3,700㎢)이다. 북서쪽에서 남동쪽까지 동부를 가로지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水源)이자 배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강으로, 북쪽의 유프라테스 댐 같은 관개공사를 통해 강변을 따라 상당한 양의 목화·곡물·과일을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
주요인종집단은 아랍인이다. 소수인종으로 쿠르드족·아르메니아인·투르크인·체르케스인·아시리아인이 있다.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며 프랑스어·쿠르드어·아르메니아어·영어도 사용한다. 이슬람교도(수니파·알라위테파·드루즈파)가 인구 가운데 거의 9/10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도는 1/10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의 경우 높은 출생율과 빈번한 출산으로 전체적인 가정복지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또한 사망률도 높으며 평균수명은 남성이 63세, 여성이 67세이다. 인구 가운데 거의 절반이 15세 미만이다. 특히 사막 스텝 지대는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인구 가운데 거의 절반이 도시지역에 거주한다.
경제
시리아는 농업·무역·광업·제조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민간부문이 농업, 소매업, 일부 경공업의 중심을 이루는 반면 그밖의 대부분의 경제부문을 정부에서 관리한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의 속도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1인당 GNP는 개발도상국들의 평균수준이다.
농업은 GNP 가운데 거의 1/4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약 1/3을 고용한다. 1963년에 시작된 토지개혁에 따라 지주의 경우 관개시설이 되어 있는 토지는 50ha까지, 관개가 불가능한 토지는 80ha까지 소유할 수 있으며 소작농도 경작조건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경작지는 지중해 연안과, 오론테스·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집중되어 있으며 농업 생산량은 강우량의 변화에 따라 해마다 매우 심한 차이를 보인다. 관개농지를 늘리기 위해 야르무크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끌어온다. 환금작물은 주요 외환수입원인 면화·사탕무·담배이며 주요작물은 밀·보리이다. 토지 가운데 2/3 이상을 차지하는 목초지에서 양·염소와 그밖의 다른 가축들을 기른다. 정부에서 주요농산물 판매를 관리하며 농민보다 도시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농산물 생산량이 낮다. 많은 양의 우유·고기·계란을 수입에 의존한다.
1956년 미국의 한 회사에 의해 시리아의 석유 매장량이 상업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9년 석유산업이 국유화되었으며 1968년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는 중앙석유기구(General Petroleum Authority)를 통해 국가에서 대부분의 석유 탐사 및 생산을 관리한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이 설치되었으나 시리아는 1982년 이라크산 석유를 폐쇄시켰다. 시리아는 또한 상당 양의 인산 비료를 생산하기도 한다. 광업을 포함한 제조업은 GNP의 약 1/8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거의 1/7을 고용한다. 1958∼65년에 여러 중공업부문이 국유화되었으나 1970년 이후 개인투자를 장려해오고 있다. 주요공산품으로는 직물·밀가루·시멘트·신발·냉장고 등이 손꼽힌다. 전력은 주로 석유로 생산하며 생산량 가운데 약 2/5는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정치와 사회
시리아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중동 여러 나라에 조직을 둔 아랍 바트('부흥'이라는 뜻) 사회당의 시리아 지역 지도자가 다스린다. 1973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행정권은 7년 임기로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내각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며 내각은 총리가 이끈다. 또한 대통령은 군총사령관, 시리아 바트당 총서기, 바트당과 다른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조직인 국민진보전선(National Progressive Front) 의장을 겸임한다. 입법권은 단원제인 인민회의에 있다. 인민회의는 바트당의 통치기구로서, 임기 4년에 직접 선출되는 195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진다. 사법제도는 부분적으로 프랑스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대부분 이슬람 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고 사법권은 고등헌법재판소에 부여되어 있다.
역사
최초의 시리아 거주민은 BC 10000년경의 수렵채집민인 나투피아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카드의 사르곤 1세 시대(BC 2334∼2279)에 아카드 문명이 나타났으나 BC 2000∼1800년경 아모리족이라는 사막 유목민족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BC 16∼15세기에는 이집트인들과 미탄니가 이끄는 후리안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싸웠다. BC 14세기에 히타이트의 지배 아래 들어간 이곳은 그뒤를 이어 BC 12세기에도 여러 히타이트 신왕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BC 8세기에 마침내 아시리아에 종속되었다. BC 7세기에 아시리아에 있는 바빌로니아 속국이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곧이어 BC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이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리아와 페르시아 제국은 BC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손에 무너졌다. 이어 시리아는 BC 301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자들에게 통치를 받았으며 BC 164년부터는 파르티아인들과 나바테아인에게 분할 점령되었다.
BC 64년 로마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시리아를 하나의 주로 병합했으며 안티오크를 그 수도로 삼았다. 시리아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주에 속했다가 AD 300년경 비잔티움으로 넘어갔다. 비잔티움 시대는 634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시리아의 황금기였다. 877년 시리아는 이집트 툴룬 왕조에 병합되어 6세기 이상 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13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되었다가 1516년 오스만 투르크에게로 넘어갔다. 오스만 투르크는 거의 300년 가까이 시리아를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투르크의 주요군사기지였던 시리아는 아랍군의 도움을 받은 영국군에게 점령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의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다. 1925년 인민당이 결성되어 시리아의 독립과 민족의 단결을 위해 애썼다.
한국관계
시리아는 1966년 7월 북한과 수교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한 반면 한국과는 아직까지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 여러 부문에서 소련·북한 등과 밀착해 있는 친공산권 국가이나 1981년 이래 장관 및 군사관계자들이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한국 민간기업과 전선생산기술협력의정서를 교환했다. 1990년 11월말 현재 대한수입 2,101만 달러, 대한수출 709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