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은 어느 산의 산신일까?최치원이 지었다는 한시가 있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제목이 '秋夜雨中(추야우중)'이다. 토종말로 옮기면 '비 내리는 가을밤에' 쯤이 되겠다. 가을 바람에 외롭게 읊으니(秋風惟孤吟)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적구나(世路少知音)한밤중 창밖에 비가 내리고(窓外三更雨)등불 앞 마음은 만리를 달려가네(燈前萬里心)자기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는 데서 오는 쓸쓸함이랄까 씁쓸함이 짙게 깔려 있다.실제로 그랬던 모양이다. <삼국사기>의 다음 대목은 '추야우중'의 정서와 바로 통한다."치원이 서쪽으로 가서 당나라에 벼슬하다가 동쪽 고국으로 돌아오니, 모두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운수가 막혀 움직이면 문득 허물을 얻게 되었으므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다시 벼슬할 뜻을 품지 않았다. 마음대로 유유히 생활하며, 산림 아래와 강과 바닷가에 누각과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를 심고 책 속에 파묻혀 풍월을 읊었다."이어 그가 노닌 데가 나온다. 경주 남산, 강주 빙산(剛州氷山=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동), 합주(경남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현(창원의 옛 마산 바닷가)의 별서(別墅). 그런 다음에 "가장 나중에는 가족을 거느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살았는데, 스님 현준, 정현과 도우를 맺고 한가히 지내면서 노년을 마쳤다"고 했다.이런 최치원이 신선이 됐다는 장소로 주로 두 곳이 꼽힌다.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전나무(천연기념물 제541호)는 장경판전 옆에 있다. 학사대는 최치원이 해인사 대적광전 옆에 지은 정자다. 최치원이 지팡이를 꽂았는데 여기서 싹이 터서 전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가야산 해인사 홍류동 골짜기에는 농산정(籠山亭,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72호)도 있는데 이 일대를 두고 최치원이 지은 한시가 있다. "첩첩 바위 사이 미친 듯 내달려 겹겹 쌓인 산을 울리니(狂奔疊石吼重巒)/ 지척 사람 말조차 구분하기 어려워라(人語難分咫尺間)/ 시비 소리 귀 닿을까 늘 두려워(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로 산을 통째 두르고 말았다네(高敎流水盡籠山)". 고운이 여기에 갓과 신발을 벗어두고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게다가 해인사에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표현한 고운 영정(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6호)도 있었다. 지금 경북 청도 각남면 일곡리 경주최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래는 해인사 나한상 가운데 섞여 있었는데 일본군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옮겨놓았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얘기가 있는 장소는 이밖에도 아주 많다. 부산 해운대와 마산 월영대는 물론 경남 합천 자필암, 경남 양산 임경대·경파대, 경북 문경 야유암, 경북 봉화 치원봉·고운대 등도 있다.
출처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