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의 결혼식
1년간 700만원의 투자금이 묶기는 것과
두 달 뒤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딱한 사정 앞에서
난 또 결정을 해야 한다.
일용직 근로자로 남자 혼자 사는데, 결혼을 앞둔 딸이 있다.
가지고 있는 돈이 결혼비용으로 다 들어가서 보증금을 올릴 수가 없다고 한다.
사업하다 망해서 대출도 안 된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아버지의 눈을 보고 말았다.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혼식 얘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들어버렸다.
아버지의 그 흔들리는 눈빛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 명도할 때 세입자의 눈을 보지 말아야 하나...
1000만원을 가지고 경매를 시작한 나로선 700만원이란 투자금을 1년간 묶어둔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런데 이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그냥 내보내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 같다. 하루 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그냥 재계약하는 게 낫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1년간이다. 1년만 여유를 드리자. 나도 여유가 없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1년 뒤에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추자고 얘기해봐서 그때도 형편이 안 되면 이사를 권유해야겠다.
세입자도 2년보다 1년 계약을 선호하는 걸로 봐서 1년 뒤에 고민하는 걸로~'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 세입자와 첫 번째 통화
법원 사건기록에서 세입자 연락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어요.
이제 세입자에게 전화하는 것도 편안해졌답니다. 전액 배당받는 세입자가 살고 있고,
경매절차도 익숙해졌으니까요. 50대 중반의 세입자는 목소리가 젊고 좋아 보였어요.
주로 지방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온다고 하더라구요.
일요일 늦은 아침에 방문하기로 하고 통화종료.
* 세입자와 첫 만남
세입자가 씻고 있네요. 주말 아침에는 늦잠을 잔다고 하더라구요. 집 안을 둘러봤는데,
도배, 장판 상태 좋고, 누수도 없어 보였어요. 남자 혼자 사는 집답지 않게 아주 깨끗하고 깔끔했어요.
정리정돈도 잘 되어 있구요.
세입자와 어색한 첫 대면. 제가 사가지고 간 음료수를 마시며 얘기를 시작했죠.
일용직 근로자라 1년에 반은 지방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 화장실 수도가 동파해서 본인이 수리했다고도 하고, 번호키(도어락)도 본인이 달았다고 하시네요.
앞집에서 공용 배수관 동파 예방 차원에서 돈을 걷어 수리하자는 안내문을 보셨는지 여쭤봤는데,
세입자는 모르더라구요. 계속 사실 의향이 있는지 여쭤보니, 가능하면 계속 살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현재 1000/30에 살고 있는데, 저는 재계약을 하면 1500/35 또는 2000/30으로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힘들다고 하시네요. 두 달 뒤에 결혼하는 딸이 있는데, 결혼 비용에 돈이 다 들어가서
보증금을 올리기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참~ 아버지란~'
월세 1500/33까지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역시나 힘들다고 하시네요.
사업하다 잘 안 돼서 워크아웃(Work Out)까지 갔고, 현재는 대출이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1000/40은 괜찮다고 하셔서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대출 자서를 하고 잔금 날짜가 정해져서 세입자에게 전화를 했어요.
전화를 받지 않아 아래 문자를 보냈죠.
'안녕하세요. 낙찰자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잔금을 납부할 예정이며, 잔금을 납부하면 소유자가
됩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1000만원/40만원으로 월세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 세입자와 두 번째 통화
어제 문자는 봤는데, 핸드폰을 집에 두고 갔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일이 잘되려고 그러는지 세입자의 돈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어요. 이사 간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다행이다~'
현재 살고 있는 임대료 수준으로 집을 얻을 수 있고, 이미 봐 둔 집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명도확인서와 인감증명서를 드리려면 시간 약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전화 달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어요.
* 세입자와 세 번째 통화
세입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잔금납부일 다음날 이사 간다고 하시네요^^
12시에 만나기로 하고 통화종료.
* 명도 당일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이삿짐을 빼고 있더라구요. 공과금을 정리하고, 배당절차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그냥 서 있기 어색해서 이사를 도와주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네요. 아는 동생이 이사를
도와주기로 했는데, 아직 안 왔다고 하더라구요. 잠시 뒤 아는 동생이 와서 이삿짐을 다 싣고 명도 완료.
명도를 끝내고,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수리 상담을 받았죠.
수리를 진행하면서 피터팬 등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에 월세를 올렸는데, 연락이 오질 않더라구요.
조회 수는 많은데, 문자 한 통 오지 않더라구요.
'월세를 너무 높게 내놨나? 아직 수리 전 사진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했어요.
'월세 시세가 1000/35 ~ 40인데 2000/30으로 내놨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며칠 뒤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니, 2000/30은 조금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이번엔 수익을 좀 줄여야 하나? 아니면 기다리더라도 처음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하나?'
일단 부동산에는 2000/25로 내놓고, '부동산보다는 인터넷 직거래로 세입자 한 명만 찾자'라는 심정으로
기다렸어요. 잔금도 빨리 냈고, 세입자도 이사를 빨리 했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그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월세를 찾는 세입자와 같이 집에 가봤는데, 집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이사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음... 어떻게 하지? 그냥 2000/25로 임대를 놔야 하나? 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수리를 다 하면 2000/30도 가능할 거 같은데~'
그런데 들어올 세입자가 좀 급한 거 같더라구요.
'아~ 이번엔 수익을 좀 줄여야겠다. 이것도 인연(?)인 것을~'
아직 도배, 장판도 안 된 상황이라 3일 안에 작업이 마무리되는지 인테리어 업체에 물어봤어요.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3일 안에는 힘들고, 4일 안에는 된다고 하더라구요.
부동산에 상황을 설명하니, 세입자가 수리된 다음날 이사 오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바로 계약금을 보낼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잠시 뒤 계약금 200만원을 송금받고, 입주하는 날 계약서 쓰고 잔금을 받기로 했죠.
며칠 뒤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쓰고, 잔금과 월세를 받으면서 임대 완료~
잔금납부하고 바로 다음 날 명도, 그리고 11일 만에 임대를 놨네요^^
처음 생각했던 월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임대가 빨리 나간 것에 만족하기로 했답니다.
초콜렛처럼 달콤한 경매 이야기. 이리콩~ 저리콩~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여름날 산과 들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게 되는 까닭은
아주 작은 풀잎 하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장이 푸르름을 손 안에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날 눈 덮인 들판이 따뜻한 이불처럼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눈송이들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는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름답고 거대한 풍경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2012년. 도어즈)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조금 연약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아주 작은 풀잎 하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장이 푸르름을 손 안에 움켜쥐듯,
아주 작은 눈송이들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대듯,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이 있어
그 딸의 결혼식은...
푸르름으로 가득 찬 산과 들이 있는
따뜻한 눈이 덮인 들판이 있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화가 될 거라 믿습니다.
이 글의 낙찰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도편수는 주모를 사랑한 거 같은데, 그럼 주모는? (1-2) (부제 : 다섯 번째 낙찰 이야기)를
클릭해보아요.
첫댓글 벌써 다섯번째네요.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옷장사님 글에서 많을 걸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잔잔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잔잔하고 편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댓글도 감사드려요^^
性情이 차분하고 침착하신 분인가 봅니다.
또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런 글 잘 보았습니다. ^^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백억님의 글도 아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글 많이 부탁드려요.
댓글도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감사드려요~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따뜻하고 편안함이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댓글 감사합니다^^
여자?남자? 고수? 잘 읽었습니다
저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라면, 저는 남자이고, 아직 초보입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와우.. 명도도 잘되고 바로 세입자도 구하시고 축하드려요 ㅋ. 좋은 정보 감사합니당~ ^^
한판더해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축하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분들이 정말 글을 잘 쓰시는것 같습니다.
글이 치우침도 없고 차분하고 일목요연하고,,
표현이 이정도면 실제업무는 얼마나 차분하게 잘 하실까 예상이 되네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페 회원님 중에 일백억님 글도 재밌고 좋아요.
화이투엔그린님...오랜만입니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경매..명도에 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네요
^^_
네~ 오랜만이네요. 주록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