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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29) 난관을 돌파하며 <상편>
이튼날 아침, 관우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동령관(東嶺關)에 이르렀다.
이곳의 파관장(把關將)은 조조의 심복 부하인 공수(孔秀)였다.
손건이 관우에게 말한다.
"장군 ! 이곳 수장 공수의 무예가 제법이랍니다."
"예를 갖추고 지나도록 하세."
관우가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러자 손건은 굳게 닫힌 동령관 성루를 향해 소리쳤다.
"공 장군 계시오 ? 한수정후 관우가 좀 지나가겠소 !"
그러자 파관장 공수가 성루 한복판 위에서 대꾸한다.
"내가 공수요 ! 관 장군은 어디로 가시는 중이오 ?"
하고, 묻는다. 그러자 관우가 대답한다.
"조승상의 허가로 하북에 형님을 뵈러 가니, 좀 지나가게 해 주시오."
그러자 공수가 묻는다.
"하북의 원소는 승상의 적인데, 그곳에 가신다면 승상의 통행증은 있겠지요 ?"
"급히 오느라고 통행증이 없으니 양해해 주시오."
하고, 관우가 대답하자 성루의 공수는 느닷없이 웃는다.
"하하하하 ! 관 장군 ! 한 마디만 묻겠소. 장군이 안량, 문추를 죽인 건 천하가 다 아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무슨 통행증이 필요하겠소 ?"
"아니오 ! 모두 조승상 덕분이오. 그럼, 공장군 ! 지나가도 되겠소 ?"
"물론이오 ! 잠시 기다리시오. 다음 관문도 잘 지나도록 통행증을 써주겠소."
"고맙소 ! 그럼 기다리겠소."
공수는 통행증을 써 준다는 말을 해놓고, 자신의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중으로 들어가며,
"통행증도 없이 오다니, 승상을 배반한 것이 틀림없어,"
하고, 말하며, 부하들에게,
"듣거라 ! 속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성문 앞으로 집결하라. 관우를 잡아 승상께 공을 세우자 !"
하고, 말하자, 부하 장수 하나가 말한다.
"장군 ! 관우는 월등히 용맹하오, 원소의 수장 안량과 문추를 연이어 베었다고 하지 않소 ?"
그러나 공수는 별 것 아니란 듯이 대꾸한다.
"관우는 용맹하나 그래봐야 달랑 한 놈이고, 우리 군사는 오백인데 뭐가 두렵겠나 !"
그러자 나머지 부하들이 일제히 복명한다.
"알겠습니다 !"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공수를 필두로 오백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한거번에 쏟아져 나왔다.
공수가 관우를 향하여 외친다.
"관우 ! 어서 항복하고 승상을 뵈러 가자 !"
손건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관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공격대형을 모두 갖추자,
"공수 ! 자네는 교활하지만 죽이고 싶진 않네 ! 그러니, 어서 길을 터 놓도록 하라 !"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공수는,
"그럼 내가 너를 죽여 공을 세우마 !" 공격 !"
하고, 다자고짜 관우에게 창 끝을 겨누고 앞장서 달려왔다.
"죽여라 !"
"따가닥 따가닥 !..."
"휘~잉 !"
공수의 외침과 그의 말발굽 소리가 불과 몇 발짝 들리지도 않고서, 공수의 말이 허공을 향하여 발버둥 쳐 댔다. 그 순간 관우는 어느 틈에 청룡 언월도를 휘둘렀는지,이미 그의 칼 날에는 흥건한 피가 흐르고있었다.
공수와 함께 관우를 공격을 하려던 그의 부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장 공수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그만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관우가 이들을 보고 말한다.
"부득이 공수를 죽였으나 너희들은 무관하다. 속히 길을 열고, 승상께 고해, 다신 날 곤란케 말라고 각 관문에 알려라 ! "
"알겠습니다 !"
공수의 부하들은 그때부터 두 말 하지 아니하고 길을 비켰다.
관우가 동령관의 수장 공수를 베고 낙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낙양 태수 한복(韓福)은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수하 장수들과 대책을 상의하니, 휘하 장수 맹탄(孟坦)이 말한다.
"관우가 통행증도 없이 왔다는 것은 도망을 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냥 보냈다가는 나중에 승상에게 크게 죄책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우리가 무슨 재주로 관우를 당한단 말인가 ?"
"힘으로 싸워서는 당할 수가 없으니 계교를 써야 합니다."
"무슨 계교를 ?"
"제가 먼저 나가 싸우다가 못 견디는 척하고 성안으로 쫒겨 들어오겠습니다. 그러면 관우는 분명히 성안으로 쫒아 들어올 것이니, 태수께서는 궁사를 배치해 놓았다가 관우를 활로 쏘아 말에서 떨어뜨리십시오. 그러면 죽이지 아니하고 사로잡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 참 좋은 계교일세 !"
의론이 결정되었을 때, 수하 한 명이 달려오며 관우 일행이 이미 관문앞에 당도하였다고 알린다.
한복은 곧 군사 일천을 거느리고 나와, 곳곳에 매복시키고, 마상에 높이 올라 앉은 채 관우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묻는다.
"관문을 통과하려는 사람은 누군가 ?"
"나는 한수정후 관운장이오. 하북으로 형님을 뵈러 가는 중이오."
"승상의 통과증을 보이시오."
"길이 바빠서 통과증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소."
"승상의 허락도 없이 떠나왔다면 이는 도망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나의 책임상 보낼 수가 없소 !"
관우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동령관의 공수도 그러다가 내 손에 죽었소. 태수는 공연히 분란을 일으키려 하지 말고 그냥 통과시켜 주시오."
한복은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나가서 저놈을 사로잡아 오겠냐 ?"
그러자 계획대로 맹탄이 쌍도를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관우는 수레를 뒤로 물리고 마주 달려나가 싸운다.
맹탄은 두어 합 싸우다가 관우를 유인하려고 짐짓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이 매복한 곳에 미처 다다르기도 전에 맹탄을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도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어느덧 관문 안으로 들어온 관우에게 한복이 소리친다.
"관우 ! 당시은 이미 포위되었으니 순순히 항복하라 !"
관우가 한복의 주위를 둘러보니 산상에 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군사들이 빼곡하였다.
그러나 관우는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한복을 향하여 적토마를 달려갔다.
"공격 !"
한복이 명령을 하자, 산상의 군사들은 관우를 향하여 돌과 통나무를 굴리고 화살을 쏘아대었다.
관우를 태운 적토마는 말 그대로 천하의 명마가 아니던가 ? 적토마는 굴러 떨어지는 돌과 통나무를 이리저리 피하며 낙양 태수 한복 앞으로 달려갔다.
"앗 !"
한복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관우와 적토마의 기세에 눌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관우의 청룡 언월도가 어느틈에 그의 어깨에 꼿혔기 때문이다.
"태수가 죽었다 !"
한복의 휘하 병사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얼어붇은 듯이 제각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대고 있었다.
"듣거라 !"
그와 동시에 관우의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너희들 까지 죽이긴 싫으니 어서 관문을 열어라 !"
"어서 문을 열어 드려라 ! "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치며 모두들 관우의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다.
관우가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손건이 마부에게 명한다.
"어서 장군을 따라 가자 !"
"이랴 !"
관우는 두 형수가 타고 있는 마차를 엄중히 호위하면서 낙양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이리하여 일행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너기를 며칠 만에 이번에는 기수관(沂水關)에 도착하였다.
팔백 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기수관을 지키는 장수의 이름은 변희(卞喜)로, 그는 본래 여포의 수장이었던 자로, 유성추(流星鎚: 긴 쇠줄에 추를 단 무기)를 잘 쓰기로 유명한 조조의 심복이었다.
변희는 관우가 동령관과 낙양관에서 수장을 모두 죽이고, 지금 기수관으로 접근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수관에 있는, 한나라의 명제(明帝)가 세운 유명한 절, 진국사(鎭國寺)에 수하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의논 하였다.
그리하여, 진국사 주위에 이백 여명의 장사들을 매복시켜 놓고, 관우를 절간에 모셔들어 술을 대접하다가, 변희가 술잔을 떨어드리면 매복했던 장사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관우를 죽여 버리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준비를 끝내자 기수관 관문 앞에서 관우의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관우가 마차와 함께 관문앞에 이르자 변희는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예를 표하면서,
"한수정후 관장군 이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렇네 !"
관우가 짧게 답하자 변희는 곧 관우에게 다가와, 땅바닥에 무릅을 꿇고 아뢰듯이 말한다.
"사수관 수장 변희,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마상의 관우는 변희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내 급히 가야하는데 승상의 통행증을 못 받았네."
"알고 있습니다."
"동령관 수장, 낙양관 수장은 통행 문제로 나와 다투다가 모두 죽고 말았네."
"알고 있습니다."
"헌데 어찌 마중을 나왔나 ?"
관우는 변희가 마중나온 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변희는,
"관장군의 충의는 천하가 알며, 저는 진작부터 흠모해 왔습니다. 소장은 본래 여포의 수하로 조승상의 밑으로 들어온 뒤 부터는 중용도 못 되고 배척만 당하여, 이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관우는 여기까지 듣고나서, 문득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청룡도를 가로들고 변희를 향하여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음 ? 그랬던가 ? 그렇다면 나의 절을 받으시게 !"
관우는 기수관 수장 변희를 향하여 절을 하려 하자 변희는 삼가 말리며,
"관장군 ! 가시지요."
하고, 자신이 앞잘서서 관우의 일행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고맙네."
관우는 변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그를 따라 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변희는 관문을 지나 산을 가르키며 말했다.
"장군 ! 보시죠. 저 산을 넘으면 활주이며, 활주 북쪽 삼십 리가 계수 나루터니,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시면 원소의 하북입니다."
관우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으흠 ! .. 이제 형님을 뵈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
그러면서 어서 길을 재촉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고마웠소 ! 이만 가보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변희는,
"장군 ! 그리고 저 산중에 있는 절은 진국사로 명제 때부터 유명한 절입니다. 주지는 득도(得道)한 고승으로 법명은 보정인데, 장군의 명성을 익히 들어 뵙고 싶어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그냥 떠나야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변희는 또 다시,
"장군 ! 두 시각 뒤면 해도 저물 테고, 오늘은 활주까지 가시기 힘들 것이니, 진국사에서 하룻밤 묵어가시죠. 장군은 괜찮아도 형수님들은 힘드실겁니다. 아, 물론 장군 뜻 대로 하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변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 손을 올려 보이며 예 까지 갖춰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관우는 변희의 말을 듣던 중에, 하늘을 한번 쳐다보며 날이 조만간 저물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가운데, 힘들어 할 형수님 애기가 나오자, 차마 그냥 가겠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수백 리 산길에 흔들려서, 두 형수님들도 지치셨을 것이네. 그럼 절에서 하루 묵어 가기로 하겠네."
하고, 변희의 의견에 흡족한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변희는,
"당장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계략이 척척 맞아 떨어짐을 기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