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샬롬! 7월의 세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입니다. 여름 무더위 잘 극복하시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주 돌하르방은 두 손을 배에 대고 있습니다. 왼손이 올라가 있으면 칼을 잡는 무사, 오른손이 위쪽에 자리하면 글을 쓰는 문관이라고 합니다. 왼손은 칼집을 쥐는 손, 오른손은 붓을 잡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바로 눈앞에 있는 글씨도 희미해서 잘 볼 수 없습니다. 책을 많이 보는데도 시력 하나는 끄떡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제 몸의 기능도 낡아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런 현상이니, 감사할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적당히 보고, 대충 못 본 척도 하면서 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안경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밝고 또렷하게 보여주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경이 더러우면 예수님도 더럽게 보일 것 같아서 ‘깨끗한 안경’이 되고자 애썼습니다. 어느 날, 안경을 깨끗이 하려고 닦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안경은 그냥 안경일 뿐 안경 스스로가 깨끗이 할 수 없다는 것, 고로 제가 아무리 예수를 잘 보여주는 안경이 되고 싶어도 ‘주인이 저를 깨끗케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 저는 ‘나를 깨끗이 해야 한다’는 바리새적인 생각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너는 안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안경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너는 너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처; 들꽃편지, 최용우)
그러나 돋보기가 필요한 사람 그 자신이 눈을 감아버리면, 아무리 좋은 안경도 전혀 소용이 없게 됩니다. 진리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을 갖거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깨닫고 겸손하게 되면, 비록 안경이 좋지 않아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밝히 볼 수 있을 겁니다.(물맷돌)
[마음에 근심하는 사람에게 일러주어라.(중간생략) 하나님이 오셔서 너희를 구해주실 것이다. 그 때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시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다시 들을 것이다.(사35:4,쉬운성경)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이들은 앞 못 보는 인도자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보지 못하는 사람을 안내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15:14)]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샬롬! 오늘은 72번째로 맞이하는 제헌절입니다. 요즘은 해가 일찍 뜨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국기게양부터 했습니다. 미국 작가 ‘제임스 클리어’가 어느 유명한 역도 코치에게 ‘가장 뛰어난 선수의 특징’을 물었습니다. 이에, 그 코치는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훈련의 지루함, 하고 또 하는 것의 지겨움, 최고의 선수들은 그걸 잘 견뎌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괴로운 법./ 모든 것이 순간이고 모든 것이 지나가리니/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우리.’ 예전엔 푸시킨 시가 너무 평범하고 산문적이라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살고 보니,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짜이고 진리입니다. 저 역시, 어린 사람(삶) 앞에 서면 지나간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또 행여 그 삶이 꺾일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학생들과 시를 읽을 때면, 그들이 헤쳐가야 할 고통이 걱정되어 예방약이라도 발라주고 싶어집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현대사의 증언입니다. 해방기에 처음 소개되어, 개발연대기를 거치면서 ‘잘살아보겠다’는 희망의 깃대였습니다. 공장작업대에, 만원버스 문짝에, 고시생 책상머리에, 누구 시(詩)인지도 모른 채 붙어 있었습니다. 삶은 언제 누구에게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고달픔’은 ‘과거의 역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전엔 미래를 향하여 달리느라 괴로웠는데,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며 괴로워합니다. 미래를 향한 마음이 없으면, 현재를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푸시킨의 시를 다시 읽습니다. 현실이 차단해버린 ‘희망의 불씨’를 시(노래)로써 되살리며 낙심한 서로를 위로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치유 없는 시대’를 치유해가는 것입니다.(출처; 자작나무숲, 김진영)
‘삶이 우리를 속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우리의 기대치가 자신의 그릇보다 너무 높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 사랑해서 베푸시기를 원하는 ‘축복’이 어긋나기 때문에 ‘삶이 우리를 속인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저도 순간순간 하나님께 대하여 섭섭하게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나이에 내리게 결론은 ‘하나님의 방법(처사)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주께서 일러주시는 방법대로 살아가시길 권면합니다. 그러면, 분명 후회가 적을 겁니다.(물맷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살전4:7) 이 진리는, 믿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입니다.(딛1:2)]
“너희 엄마는 그릇의 안쪽을 닦는 사람이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무더위 잘 이기시고 건강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가 참으로 신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두 손주 중 큰아이는 영국에서 살다가 캐나다에 가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영상으로 과외공부를 받고 있고, 작은아이는 영국에 있는 친구와 영상으로 통화하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혼하고 맞벌이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집안일과 직장 일을 병행하기란 만만치 않았습니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친정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기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퇴근 후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집안일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울 여유도 없이,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끼는 길밖에 없어 애들에게 ‘절약’을 강조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과 입고 싶은 옷이 있더라도 자제시키고, 유명브랜드보다는 실용적인 것이 좋다고 일러줬습니다. 제가 쓰는 돈은 더 아꼈습니다. ‘괜찮은 옷 좀 사 입으라.’는 남편 말에 “난 날씬해서 남들이 못 입겠다고 주는 옷으로도 충분해요”라면서 위안했습니다. 알뜰살뜰 사는 동안, 두 딸은 잘 자라 독립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없을 때에 딸들에게 남편이 했다는 말을 작은딸한테서 전해들었습니다. “엄마는 그릇의 안쪽을 닦는 사람이다.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바깥을 닦는 사람도 있지만, 엄마는 실용적으로 안쪽을 닦는 사람이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남편에게서 인정받은 느낌,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이 헛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행복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송규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행복감을 갖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신 후에 그 즉시 한 마디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수고로 인하여 수십 배의 결실을 분명히 얻게 될 것입니다.(물맷돌)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대대로 오고 오는 세대에 영원토록 기억될 것입니다.(시106:31)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행동 하십시오.(롬12:17)]
엄마 때문에 다 망쳤어요!
샬롬! 새아침에 인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말하기를 “아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알아야 사랑을 하게 되는데, 어설프게 알기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미워한다.”는 겁니다. “상대를 바로 알고 이해하면 반드시 사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역시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일 억지로 공부를 시켰더라면, 우리 둘째가 우등생이 되었을까요? 그랬을 것 같지 않습니다. 큰애는 시켜도 안 시켜도 잘했을 아이이고, 둘째는 원래 공부와는 거리가 있는 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엄마가 시켰든 안 시켰든지 간에 공부 못했을 아이’였습니다. 반면에, 제 언니는 어찌했던지 공부를 잘했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릇이 큰 애들은 누구 탓도 안 합니다. 그릇이 작으니까, 엄마 탓을 하는 겁니다. 엄마밖에 맘껏 탓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엄마 노릇’이란, ‘아이의 작은 그릇에 차고 넘치는 원망과 반항을 끝없이 닦아내고 치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일이 수십 년 걸리든, 평생 안 끝나든…. “그래. 엄마 생각이 짧았나 보다. 그래도 너 이렇게 버릇없이 굴면 안 되지. 후회가 되면, 지금이라도 같이 한번 해보자! 나도 같이 공부할게.” “싫어. 이제는 늦었어요. 엄마 때문에 다 망쳤어요. 다시는 공부 안 해요.”(출처; 별별다방, 홍여사)
예수께서는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껄, 껄, 껄”하고 죽는다죠? 그러니까, “~했으면 좋았을 걸(껄)”하고 후회하면서 일생을 마친다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되도록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살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몸부림쳐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옳지 않은 일’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물맷돌)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상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으로부터 짐승과 땅에 기어다니는 생물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만든 것이 정말 후회가 되는구나!(창6:7)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드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후 고개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요19:30)]
저의 작은 행동이 그들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샬롬! 7월 14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더위 잘 이기시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요즘, 딸네가 와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 둘째는 외할머니 따라 외출 나가고, 첫째는 엄마와 함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눈다고 집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둘째(10)가 ‘엄마와 맛있는 것 사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라’고 언니에게 2만원을 주고 갔습니다.
힘겹게 눈을 깜빡이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하여 손을 까딱였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간호사 괴롭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5분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상하다’며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의 심장박동 수가 점점 느려졌습니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가족들 못지않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방금까지 나랑 이야기했는데…. 혈압, 맥박 다 괜찮았는데….’ 마치 제 잘못인 것처럼 그 순간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듯하여 구석에서 혼자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며칠이 흘렀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간호사님, 우리 할아버지 가는 길에 울어줘서, 같이 있는 동안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손녀딸처럼 불러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할아버지가 우리 얼굴 보고 가신 것 같아요.” 환자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눈을 맞추고 이야기 건넸을 뿐인데, 일이 힘들다고 볼멘소리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저의 작은 행동이 그들 마음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갔다니, 저로서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임미희)
이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호스피스나 양로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야말로 가장 귀한 일을 담당하고 있잖나 싶습니다. 그 일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가야 하는 마지막 길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모세는 120 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두워지지 않았고, 그때까지도 기력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신34:7) 예수님 바로 앞에 서 있던 백부장(사형집행관)이,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조건이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림 하나가 떠오릅니다. 수많은 사람이 큰길에서 한 방향으로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그 목적지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가니까, 나도 따라간다.”고만 대답합니다. 옆 사람을 제치면 좋아하고, 뒤처지면 속상해하면서, 잠시도 쉬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옆 사람을 살피면서 쓰러질 때까지 달릴 뿐입니다. 목적지를 알아보거나, 속도를 늦춰서 주변의 지형을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이런 그림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외적으로는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전쟁과 폭력의 위험성도 줄었지만, 사람들의 내면은 이전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어떻게 찾을지 깨닫지 못한 채, 오직 겉으로 보기에 분주하게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렇듯 위태롭게 하는 이 시대의 정신은, 결코 진리도 아니고,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며, 일시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정신은 삶의 근본 원리와 맞지 않기 때문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과 허무감의 대부분이 이런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변호사 윤재윤)
유행가 중에 ‘정처 없는 나그네’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노래가 더러 있습니다. 목적 없이 떠도는 인생을 말합니다. 심히 슬프고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물맷돌)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히11:13) 여러분은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영혼에 싸움을 걸어오는 세상의 악한 쾌락을 멀리하십시오.(벧전2:11)]
거리 두기
사회 곳곳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교회도 좌석에 표시를 하고 친교실에 노란 선을 바닥에 표시해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벽돌 쌓기는 벽돌 사이의 정확한 거리를 맞추는 것이 핵심 기술입니다. 수평과 수직을 유지하도록 다림줄을 내리고 수시로 수평계를 사용해 맞춥니다. 눈대중으로 하는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그 간격이 일정합니다.
이제 적당한 거리 두기는 일상 속에 꼭 적용해야 할 덕목이 됐습니다.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너무 멀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벽돌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심을 믿고 배려와 중보로 더 견고한 관계가 돼야겠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이성준 목사(인천수정성결교회)
영혼의 숨비소리
제주 해안의 올레길을 산책하다 보면 바다 쪽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소리는 해녀들이 물 위에 솟을 때마다 “호오이” 하면서 막혔던 숨을 몰아쉬는 ‘숨비소리’입니다. 해녀는 기량 숙달 정도에 따라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으로 나뉘는데 상군 해녀는 오랜 경험으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 2~3분간 물질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군은 물속에 오래 있을 수 없어 1~2분 후면 물 밖으로 나옵니다. 만약 해녀가 숨을 쉬러 물 밖으로 나와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영적 세계에도 있습니다. 믿음이 큰 분들은 영적 호흡이 길어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지 않더라도 믿음이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은 분들은 영적 호흡이 짧아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면 믿음이 죽거나 연약해집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온라인예배 장기화로 영적 위기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 온라인예배로 마음껏 발산하지 못했던 찬송과 기도 소리를 예배당에 나와 내야 할 때입니다. 해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막혔던 숨을 숨비소리로 내듯 신자들도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영혼의 숨비소리를 내야 합니다.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무대 위에서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 등의 수많은 연주자가 함께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한곡 한곡 멋진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아무래도 전체 구성원 중 현악기가 제일 많아서 현악기 소리가 제일 많이 들렸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무대 뒤에 자리했던 심벌즈, 팀파니, 튜바 같은 악기들이었습니다.
그 악기 연주자들은 전체 연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지휘자의 그 떨리는 손을 주목하며 자기가 연주해야 할 바로 그곳에서 최선의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악보와 같습니다. 악보가 아름답게 연주되기 위해서는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지휘자 하나님의 손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비록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도 오늘 내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악기를 최선을 다해 연주해야 합니다.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양 치는 막대기의 사사 삼갈처럼, 오병이어를 두 손에 들고 감사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아름다운 연주가 될 것입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하나님의 돌덩이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인 ‘돌덩이’란 곡이 인기입니다.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테니까/ 거세게 때려봐/ 네 손만 다칠 테니까… 똑똑히 봐/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힘을 주는 가사입니다. 가사는 드라마 원작에 나오는 ‘나는 돌덩이’란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시인은 끝머리에 돌덩이가 다이아몬드라고 밝힙니다. 다이아몬드도 진가를 모르면 그냥 돌덩이로 여기게 됩니다.
다이아몬드는 연필심을 만드는 흑연처럼 탄소로만 이뤄진 광물입니다. 흑연은 탄소가 판 구조로 연결된 반면, 다이아몬드는 입체적으로 연결됐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고온과 고압의 조건을 갖춘 땅속 깊은 곳 가운데 흑연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우리도 흑연같이 연약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마그마 같은 사랑으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존재가 됐습니다.
이 노래 끝 소절처럼 “나는 돌덩이, 바로 하나님의 다이아몬드다”라고 외칩시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 끝에서 목놓아 울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도록, 꿋꿋이 버티며 달려갑시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상식의 배반
“상식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한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던컨 와츠의 책 ‘상식의 배반’ 중 한 구절입니다. 상식이라는 말은 안정적이며 합리적입니다. 상식적인 사람만 돼도 반(半) 이상의 사람은 됩니다. 회의(會議)를 가리켜 ‘상식에로의 접근’이라고 합니다. 상식적 합의만 해도 성공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상식이 가장 큰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식의 배반입니다. 상식의 선에서만 생각하고 결정할 때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은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첫 시작부터 상식을 완전히 넘어서는 선언이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상식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상식’이 우리를 배신해 ‘식상’이 되고, 우리를 칭칭 동여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상식에 매이지 않고 상식을 넘어섭니다.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무거울수록 좋은 것
오래전 목회할 때 마을 할머니에게 들은 말입니다.
“옛날 옛적 한 여자가 시집을 왔는데 도대체 말이 없는 거야. 새댁이 말을 안 해도 너무 안 하니까 장애가 있다고 소문이 났지. 화가 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친정에 데려다주려고 길을 나섰어. 산을 넘던 중 고개에서 잠시 쉬는데, 가마 옆에서 꿩이 푸드덕 날았지 뭐야.
그때 새댁이 ‘이 가슴 저 가슴 된 가슴은 시아버님 드리고, 요 주둥이 저 주둥이 놀리는 주둥이는 시누님 드리고, 이 날개 저 날개 덮는 날개는 서방님을 드리고’라며 탄식하더라는 거야. 깜짝 놀란 시아버지가 왜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제가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농 속에 돌멩이를 하나 넣어주면서 ‘이 돌멩이가 말을 할 때까지는 말을 하지 말아라’고 했답니다’라고 하더라는 거지. 그제야 시아버지는 훌륭한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했다면서 발걸음을 되돌렸대.”
입이 가벼워 문제이지 무거워 문제는 없습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세상, 무거울수록 좋은 것 중에 입이 있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랜선 신앙
랜선은 PC나 노트북을 인터넷 공유기에 연결할 때 쓰는 케이블을 말합니다. 근거리 통신망을 뜻하는 랜(LAN)과 선이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먼 거리라서 자주 만날 수 없는 연인 사이의 애틋함을 ‘랜선 연애’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랜선 공연, 랜선 응원, 랜선 라이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제는 온갖 사회활동에 랜선이라는 단어가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앙생활에도 랜선 신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터넷 예배, 언택트 문화를 경험하면서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 삶의 자리에서 예배에 접속해도 별문제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 랜선 예배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직접 교회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를 대치할 순 없습니다. ‘라이브’ 티켓이 있는데, 집에서 CD를 틀고 만족할 수 없듯 말입니다.
메인 엔진을 고쳤는데, 비상 엔진을 고집해선 안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임하는 예배 현장으로 나올 때입니다.
이성준 목사(인천수정성결교회)
버릴 줄 아는 용기
제주도는 귤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꽃따기 작업이 한창입니다. 꽃따기란 상품성 있는 적당한 크기의 귤을 만들기 위해 나무마다 과실수를 조절하는 일입니다. 꽃을 너무 많이 따면 귤 숫자가 적어져 그 크기가 사과나 배만큼 커지고, 꽃을 적게 따면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귤이 많아 방울토마토처럼 작아집니다. 꽃잎을 땄는데 열매가 많이 열리면 동전 크기 정도가 되기 전에 적당 수량만 남기고 버립니다. 아깝지만 최고로 맛있고 먹음직스러운 귤을 위해 과감히 따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음식 습관을 버리면 위장병에서 해방됩니다. 나쁜 언어 습관을 버리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대인관계가 좋아집니다. 부정적 생각을 버리면 꿈과 소망이 생깁니다. 욕심과 탐욕을 버리면 범사에 감사가 넘칩니다. 근심과 걱정을 십자가 아래에 버리면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경험합니다. 우리 모두 버려야 할 것을 잘 버림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갑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이기주의의 모습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이기주의에 빠지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1. 유별나게 주관적인 사람이 됩니다.
2. 지나친 우월주의에 빠집니다.
3. 자기도취에 빠집니다.
4. 자기애(self-love)에 빠집니다.
5. 세상적인 물질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기주의가 위험한 것은 실제로 자기의 본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 삶을
서서히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도 이런 이기주의가 끼어들면 자칫 껍데기만 거룩한 위선의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기적이고 물질에 집착하는 나의 본 모습을 인정하고, 이 모습마저도 안아주시고 고쳐주시는
주님께 나아감으로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이기주의가 신앙에 끼어들면 영혼이 병들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게 되어 점점 외로워집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내어 놓고 이기적인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는
분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제 잘못된 자아와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님만 나타나게
하소서.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명의 성공
엔디 그로브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인텔사의 최고 경영자입니다. 그는 망해가던 인텔에
혁신을 일으켜 지금과 같은 위치로 성공시켰는데 그가 직접 밝힌 성공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첫째, 미친 듯이 자신의 일에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음과 몸을 젊게 하면서 사업본능을 더욱 뾰족하게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금도 배우고 있다’를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임원들에게 귀를 땅에서 떼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죽기 살기로 충성을 다하기 때문.
●둘째, 영육 간에 강건하기 위해 말씀위에 굳게 살기 때문.
●셋째, 배우는 일에 힘씀으로 믿음을 세우기 때문.
●넷째, 성령님의 음성에 끊임없이 민감하도록 노력하기 때문.
사업의 성공보다 더한 노력으로 우리의 영성을 가꿀 때,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 원리를 실천하며 살아가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저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사명에 제대로 충성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두 개의 눈
일본의 유명한 전략가인 야마모토 간스케의 그릇을 알아보기 위해 다케다 신겐이 찾아갔습니다.신겐은
간스케에게 일본을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간스케는 눈이 왜 두 개인지 생각해보라는
아리송한 말을 할뿐이었습니다. 재차 가르침을 구하자 간스케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눈이 두 개인 것은 하나는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한 쪽 눈만 사용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실력을 가진 인재를 영입할 수 있고 전쟁에 있어서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미끼로 수를 쓴 다음 방심한
틈을 타서 일격에 섬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매료된 신겐은 간스케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과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고, 함께 전국시대를
호령한 위대한 왕과 신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믿는 사람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또 믿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릴 수 있는 눈으로 적합한 때에 복음을 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주소서.
오늘 생활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영접의 거리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투신자살을 하려고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함께 탄
목사님이 대뜸 “형제님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엘리베이터
안에는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 사람은 “목사님, 저는 지금 천국에서 너무나 먼 거리에 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구원과 천국은 형제님을 위해 언제나 예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남자는“그렇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무슨 노력을 해야 합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품 안에서 성경을 꺼내며 “단지 한 걸음만 다가오시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마음속에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천국이 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형제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살을 하러 가려던 자신의 처지를 목사님에게 설명을 했고, 목사님이 청년을 위해 기도한 뒤에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음을 시인했습니다.
삶의 기로에 서서 결정이 너무나 힘들 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내미는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을 항상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함께 하시는 주님
평양의 어떤 공장에 지하교회가 있었습니다.
여기 성도들은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으므로 극동방송에서 방송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숨어 들으면서 종이쪽지에 적은 성경구절을 돌려가며
읽고는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몰래 예배하고 있는데 노동당 반장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리 없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인상을 쓰며 “동무들, 무얼 하고 있는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대담한 여공이 기지를 발휘해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독보회를 하고 있습네다,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하시려오?” 대답을 듣고 의심쩍게 보던 반장은 한참 앉아 있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시오”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이들은 반장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지켜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 먼저 할 것은 기도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이미 끝나버린 일 같아도 기도할 수 있다면 아직 방법이 있습니다. 사방에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사람이 아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기도를 통해 주님을 체험하여 삶을 강력하게 준비해 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공의 공통분모
‘성공의 법칙’에 대한 책은 그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의 내용들을 분석하면 크게 다음의 10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01.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
02. 열심히 일하면서도 여유를 즐긴다.
03.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잘 관리한다.
04. 경쟁에서 지는 것을 두려워 않고 경쟁을 넘어서 상생을 한다.
05. 고난이 와도 구름 위의 태양을 본다.
06. 문제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장애물을 밝고 올라가 길을 만든다.
07.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존경하며 배울 점을 찾는다.
08.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다.
09. 행동으로 말을 증명한다.
10.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섬기며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춘 세상의
성공기준을 버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여 진정한 성공을 꿈꾸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바르게 충성하게 하소서.
성공에 대한 기준이 주님인지 세상인지 살펴보고 주님께 맞춥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수렁에서 구하시는 주님
영국의 와트 부부가 아프리카의 키쿠유 선교사로 갔을 때, 그곳엔 테러조직에게 용병으로 고용될
정도로 호전적인 마우마우스 종족이 있었습니다.
그 종족들은 끈질기게 와트 부부와 네 자녀들을 위협했습니다. 영국 총독은 선교사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하여 군인들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와트 선교사는 “우리는 끝까지 기도로 견디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신 곳에서 죽겠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활로 무장한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선교사 집을 둘러쌌습니다. 살기등등하여 당장이라도 활을 당길 기세였습니다.
선교사와 그 가족은 무릎을 꿇고 절망적인 위기에서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천둥이 나며 큰 불덩어리가 하늘 위를 지나가더니 이글이글 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심판의 불이 떨어진다고 믿은 원주민들은 놀라 도망갔고 다시는 선교사님의 전도활동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수천 명 보다 기도하는 한 명을 하나님은 더 크게 사용하십니다. 긴급한 것은
긴급한 대로 급하지 않은 것은 때에 맞게 응답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흘려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뜨거운 기도로 기적을 체험해 보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지 말고 때와 시간을 정해 마음을 다해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분별력
진시황은 한비자가 쓴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를 신하로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했을 정도로 한비자의 능력은 출중했습니다.
그 한비자는 관계술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5가지 방법으로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관청법내가 본 것과
들리는 소문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2. 일청법그 사람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들어봐야 한다.
3. 협지법아는 것을 모른 척하며 상대를 시험해 봐야 한다.
4. 도언법뻔한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봐야 한다.
5. 반찰법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시대와 기술은 계속 변했지만 사람의 마음과 관계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기에 2천년 전 나온 한비자의 처세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도 온전히 알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은 이미 감찰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의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이미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주님께는 어떤 변명도 거짓도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미 자세히 나와 있는 관계방법을 배워 하나님을 속이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오직 순전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동역자를 말씀에 따라 잘 분별해 평생 주님의 사역에 함께하게
하소서.
동역자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에 대해 감사하고 동역자에게도 감사를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