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문의 후예 2부 3권
- 사랑은 눈을 멀게 하나 끝내 이루고야 마는구나.
차 례
제 1 장 소림의 고민
제 2 장 공야의 아픈 기억
제 3 장 소경 금천백
제 4 장 수난당하는 무겁문
제 5 장 한밤의 기묘한 대결
제 6 장 마곡의 음모
제 7 장 금천백, 눈을 뜨다
제 8 장 청하의 소식
제 9 장 떠오르는 목소리
제 10장 나는 만선문의 후예, 하영에게로 간다.
제 1 장 소림의 고민
봄이 다가오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잇는 만물은
겨울의 차디찬 기운을 떨쳘내려하고 더불어 따뜻한 햇살
을 받아 생명들을 틔워내려 한다. 겨울은 힘을 모으고 정성
을 기울이며 깊은 고요를 틈타 명상에 몰입해 만물을 가만
히 충만케 한 이후에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봄은 봇물 터
지듯 안으로 깊이 갈무리 해 두었던 기운을 일시에 터뜨릴
기세다. 그건 마치 겨울에 깊이 잠들어 있던 개구리가 깨어
나 온몸을 일깨우며 두 다리를 잔뜩 움츠린 채 일시에 뛰어
오르려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기는 늦겨울과 초봄의 중간에 와있다.
이 지점에서 온 천지는 그런 알수 없는 기이하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기운은 보통 사람들
이라면 알아 챌 수 없을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자나 자연과 합일하여 무도의 길을 가는 이라면 풀
한포기 스치는 바람, 벌레의 작은 울음소리 속에서도 그 폭발
적인 기운을 느낄수 있는 것이다. 자연은 말이 없으되 사실은
아주 큰 소리로 천지를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온다. 봄이 온다.' 고 말이다.
지금 이곳은 사천성의 명산인 점창산이다. 점창산은 산세가
빼어나 그 광경이, 멀리서 보노라면 호리호리한 검객을 연상
케 한다. 가끔 기이하게 뻗은 바위들의 형태는 고수가 창을
뻗어내는 듯, 검을 찌르는 듯, 혹은 서로 대련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산세의 영행 탓인지 이곳 점창산에 위치한
점창파는 그 검법이 가볍고 표홀하기 그지 없었는데 찌르고
휘두르는 움직임이 마치 구름이 바람에 흩날렸다가 다시 모여
드는 듯 했다. 그중 사일검법은 더욱 뛰어나 상호의 일절이라
고 부르기에 어느 누구도 망설임이 없는 무공으로 해가 그
빛살을 뿌려 사방으로 흩뿌릴 때 그 빛을 쏘아 떨어뜨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검법의 위력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기세를 간직하고 있는 점창산은 다른 날과는 달리 상당히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무림맹의 회의가 이곳에서 임
시로 소집되었기 때문이다. 따로 무림맹 총단이 있으나 굳이
모임 장소를 점창파로 정한 것은 전대 무림맹주인 천해검선
조경운에 대한 예우차원이었다. 조경운은 천해검선이라는 별호
보다는 덕성이라는 칭호로 더욱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는 인자함과 덕망을 고루 갖추어 구파일방 중에 뒤로
처져 있던 점창파를 가장 빛낸 자이며 정도의 영웅으로 무림을
영도해 왔으나 남궁무결, 즉 과일색마사건에 휘말려 남궁가의
안주인인 당정랑과 원치 않은 정사를 치르게 됨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퇴한 상태였다. 하지만 강호의 모든 이들은
그저 그가 알수 없는 독에 당해 오른팔을 절단한 후 지친 마음을
쉬려고 하는 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점창파의 내원, 긴 탁자 위엔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있었
는데 찻잔 표면에 그려진, 날아오르는 학의 그림은 운치를
더해 주었다. 그 주위로 무림맹의 수뇌들, 즉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사대세가, 즉 제갈 세가, 독고 세가, 하북 팽
가, 진주 언가의 가주들이 자리했다. 원래 세가는 오대 세
가가 모여야하나 남궁 세가는 남궁무결의 패악으로 인해
지금으로서는 몰락해 버린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기 때문
에 사대 세가만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중에는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도 있었고 이웃에서 늘 볼수 있을 것
같이 평범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이라 함
은 정말 보잘것없는 인물이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너
무 평범하여 도리어 그것이 더욱 비범해 보이는 고수들만
의 기세였다. 이런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와 같고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는 사실 충만해 있는 자라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무림맹
의 맹주 소림방장 공승대사가 긴 탁자의 제일 윗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점창산에서 뭇 영웅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
니다. 또한 전 맹주셨던 조대인의 수고로운 뜻을 기려 점창
파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여겨집니다."
그는 잠시 말을 중단했다. 좌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주제를
바꾸기 위함이다.
"오늘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무림명숙이신
남해신니의 제자와 무겁문 소문주의 혼인 때문입니다. 사실
혼인 문제로 이렇듯 어려운 걸음을 요구한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남해신니께서는 강호의 배분을
보더라도 여기 모인 우리들과 비교할 바가 아닌 데다가 그 분의
속가 제자인 셋째 혜경이라는 아이는 무당파와도 연관이 있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무겁문에서는
흑도의 인물들을 여럿 초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우리 정파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우리로서도 그에 상응하는
인사들이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고견은 어
떠신지요?"
공승대사로서는 무림맹주로 있다해도 공식적으로 남해신니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은 아니었던 터라혼자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초청이 없었다고 해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무겁문에서 흑도 계열의 무리들을 어떤
식으로 초청할지 모르는 일이라 마땅히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고 여긴것이다. 곤륜파의 장문인 선학기협 운이경이 찻잔을 내려놓
으며 말했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심각해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현재
강호는 그 어느 때보다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비록 정사가
나누어져 있다고는 하나 지난 마교 사건을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지요. 그리고 이제 그 일도 잘 해결 되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참가하여 축하해 주면 될것 같습니다. 실제로 무겁문에서
흑도의 비중있는 인사를 초대하건 안하건 간에 우리는 개의치 않고
소신껏 참여하면 되겠지요. 무슨일이든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지고 간단히 핵심을 바라보면 사실 아주 쉬운일이 되지 않겠
습니까?"
운이경의목소리는 5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맑고 낭랑했다.
그의 별호가 선학기협이라 불리는 것도 풍모와 목소리에서 신선같은
청아함이 느껴지기 떄문이다. 그의 말에 모두는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뒤이어 개방방주 혼일제패 단석천의 말이 이어졌다.
"이 거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오. 비록 남해신니께서 우리를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그 분의 성격이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 짐을 지운다 여기셨기에 따로 서신을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가면 그 분은 은연중에 기뻐하실 것이외다.
그러니 그저 편하게 바람 쐬러간다는 마음으로 가면 되지 않겠소이까.
하하. 특히나 잔칫집에는 먹을 것이 풍성할 것이니 이 거지로서는
꼭 참석해야만 되겠소이다. 하하."
단석천이 말하자 약간 경직되어있던 분위기가 풀어져 모두들 환하게
웃음 지였다. 단석천은 지금 꼬질꼬질한 얼굴에 다 헤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
이었다. 예전의 그는 깨끗한 비단옷을 누더기인양 흉내만 내어 입고
다녔었고 용모도 단정했었다. 하지만 낙양의 왕거지파로부터 거지란
무엇인가를 본 후로는 이렇듯 거지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였다. 내전에 있는 모두는 그런 변화의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의 무공이 예전보다 훨씬 더 나아졌음을 알고 있었다. 단석천은
거지 본연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다보니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어
진전을 얻은 것이었다. 단석천의 말에 이어 좌중은 각기 참가 할 수
있음을 말했다. 모두 아무 이의 없이 동조하자 공승대사는 마음이
편안해 졌다.
"모든 분께서 이렇듯 편하게 이야기해 주시니 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더욱이 이번일을 계기로 사파에 속한 이들과도
나름대로의 친목을 다진다면 강호평화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될 듯도
하니 앞으로 무림에도 큰 복이 아닐 수가 없을 겁니다. 4월 초 하룻날
이라고 하니 그떄 함께 축하해 주도록 합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작은 목소리로 가볍게 염불을 외운후 말을 이었다.
"음, 말씀드리기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만 외람됨을 무릅쓰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이번 혼인 행사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불제자와 혼인 자리와는 왠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분위기를 깨뜨리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 말은 모두에게 의외였다. 무림맹 수뇌부들이 간다고는 하지만
정작 맹주가 빠진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내용을
모르고 공승대사가 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해신니는 불제자이시면서도 남해도
에서 혼인함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제자의 혼인을 주관할 정도
이지 않습니까? 아마도 맹주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상당히 섭섭해
하실 것이오."
화산파 장문인이자 양정의 부친인 양소천이 껄껄거리며 말하자
너도나도 함께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아마도 남해신니께서는 맹주가 오지 않는다면 혼자만불심이 깊은 척
한다고 오해할 것이외다."
여러 사람이 주장해 보았지만 공승대사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얇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부디 신니께는 여러분들께서 잘 말씀드려 주시길 바랍니다."
연거푸 사양하는 모습을 보고서 여러 장문일들과 가주들은 더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불제자이기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 소림에 긴히 처리해야 할일이 있기 때문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자리에서 그것을 캐물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때 이제껏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미파의 여장문인 명경사태가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어려운 말씀을 드려야 하겠군요. 제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문내에 있어서 그 날짜에 갈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들겠습
니다. 모두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는 억지로 가자고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음을 알았기에 그저
잔잔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강호에 피바람이 불어 정사대전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혼인이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
모인 모두가 다 그렇듯 현명한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무공은 높되 말의 실수가 많은 공동파 장문인 철권상산
동파영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이렇게 되면 구파일방 중 불문에 속한 두 파만이 빠지게
되는 것이구려. 하하하하, 이거 잘못하다간 두 분이 사귄다고
소문나겠소이다."
순간 모두의시선이 의아함과 곤혹스러움을 가득 담은 채 일제히
동파영에게로 향했다. 농담치고는 도무지 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닌 무림을 영도하는
소림사 방장과 아미파 여장문이 아닌가. 그들이 대상이라면 있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아무리 그가 말실수가 많은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이건 지나친 것이었다. 동파영의 말에 아미파 장문 명경
사태는 표정이 얼음장처럼 변하여 기분이 상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
냈다. 동파영. 그의 별호는 철권상산으로 한 주먹에 산을 상케한다는
조금은 과장된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별호보다 강호상
에서는 암암리에 '걸어다니는 봄 날씨' 라고 불렸다. 봄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다가는 따뜻해지고 바람이 크게 부는가 하면 한산하게
불기도 하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대책없는 말실수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본인 나름대로는 기분 좋은 농담을 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매번 분위기 파악을 못해 상황을 이상하게 몰아가곤
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내전안에는 찬 기운이 모두의 머리 위를 휩쓸
고 지나다니는 듯했다. 좌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동파영은
헛기침을 사정없이 하면서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험험험. 저는 그냥 뭐, 누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나 해서....
험험. 아니,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두 분이 결혼 하실 것도
아니잖습니까? 험험."
이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명경사태는 탁자를 두 손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면 저는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흥, 그리고
철권상산의 말은 두고두고 잊지 않겠소이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말을 내뱉고 명경사태는 대전을 나가버렸다.
모두는 말려야 했지만 특별히 수습할 대책이 없어 애매하게 그저
바라볼 뿐이었는데 동파영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인물이 장문인이 될수 있었는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군.'
하지만 무공방면을 제외하고 사람에 대한 이치에는 둔하기 그지없는
동파영은 명경사태가 마지막으로 던지고 간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을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니. 무슨 말일까? 나는 분명
두 사람이 사귄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말이 마음에 들은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저렇게 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맞아.
정말 둘은 사귀는 것이 분명해. 으음, 참내, 이젠 중들도 결혼하는가
보군. 말세야 말세.'
동파영 때문에 분위기가 약간 이상해져 버려 각자는 준비된 식사를
대충 마치고 각 문파로 돌아갔다. 소림 장문인 공승 또한 숭산을
향했다. 그는 가다가 문득 멈춰 서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늘
을 바라 보았다.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 번져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물었다.
"원학에 대한 소식은 있느냐?"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원천은 대답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장문인은 똑같은 질문을
오늘만 다섯 차례나 하고 계신 것이다. 분명 다른 연락책이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건 질문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원학사제의 일에 얼마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음, 더 힘을 내서 찾아보도록 하여라."
"네."
공승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겼다. 그가 이토록
근심에 쌓인 이유는 그의 제자인 원학 때문이었다. 원학의
문제는 대소림으로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소림의
금계 중 가장 큰 것은 여색에 대한 문제다.속가 제자가 아니
고서는 결코 그런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문제였
다. 하지만 원학이 그것을 어긴 것이다. 바로 방장인 공승
자신의 직계 제자가 말이다. 이 일은 처음에는 소림의지도층
들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본보기로 삼기 위해 일반 승려
들까지 알게 했다. 그러면서도 이일을 외부로 발설한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 일이 강
호에 새어나간다면 천추의 한을 남기는 것이니 말이다.
'이 일이 밖으로 누설된다면 소림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무슨 낯으로 역대소림의 조상님들을 뵐 수
있겠는가, 휴~'
원학은 계율을 어긴 죄로 대심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몰래 소림을 탈출했고 근 1년 여 가까이 종적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사실 소림의 절지인 대심옥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한당의 지하를 깊이 뚫고서 만든 대심옥은
소림의 율법을 어긴 이들을 감금해 놓는 곳으로 한 번 같히면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색계를 범한 원학이 탈출할수있었던 것은 방각장로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방각은 소림방장인 공승대사의 사숙으로 마음이
넓고 굳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처음부터
원학을 대심옥에 가두는 것을 반대하여 자유롭게 떠나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송승방장은 소림의명예를 상케해서는
안된다는 명분으로 사숙의 권유를 무시하고 끝내 대심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공승은 유별나게 규율과 형식을 중히 여기는
자로 방각과는 달리 법을 어긴자는 용서치 않는 성격이었다.
그로서는 색계를 범한 자를 처리함에 있어서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반드시 제 2의원학, 제 3의 원학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법을 초월한 꺠달음을 얻은 방각대사는 원학을 몰래
빼돌렸고 그로인해 소림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해 보였으나 내부적
으로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이다. 공승은 급기야 원학을
빼돌린 죄를 물어 방각사숙을 대심옥에 가두었다. 그로서도 사숙
을 습기가 가득한 차갑고 어두운 옥에 가둔다는 것이 마음 아팠지
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는 대소림의 기강이 바로 설수 없다 여
기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만큼 공승의 머리는 철저히 규율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혼인 잔치에 갈 수 없다고 한 것도 바로 이일 때문이었다.
소림으로서는 한없이 시간만 끌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 속히
원학을 잡아들이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닥도 급했던 것이다. 특히나
원학과 연정에 빠진 여인은 다름 아닌 아미파의 여제자이므로 그
파급은 더욱 클 것이었다. 점창산에서 명경사태의 얼굴이 밝지
않았음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 였다.그녀 또한 공승의 마음과 같이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 종적이 묘연해서 어디에서
도 원학을 찾지 못하고 있는 소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