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기-18차시 합평작(6월 19일 용)
수필창작 실기
1. 아버지의 선물 /김도형
(1) ‘지구 생명체에겐 죽음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다’라는 글귀를 10여 년 전 책에서 접한 이래로 나는 지금까지 가슴깊이 담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죽음이 없다면 이 지구는 과연 생존이 가능할까? 병들어 있는 사람, 동물, 식물이 죽지 않는다면 세상은 정말 끔직한 것이다. 죽음이 있어야 새 생명이 있고, 발전이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도 나에겐 큰 은혜이자 선물이 되었다.
(2) 몇 해 전 추석 성묘를 다녀오니 아버지께서 곡기를 끊고 자리보전하셨다. 10여년 투병 중이던 폐섬유증이 악화되고 기력이 극도로 쇠약한 탓이었다. 그 해 연 초부터 더욱 심해진 기침은 70kg넘던 몸무게가 20kg 이상 빠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아버지 몸 속 진을 다 빼놓았다. 아버지는 “매일아침 눈을 뜨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라고 하소연을 자주 하시더니, 가족들이 모두 성묘간 사이 곡기를 끊음으로써 죽음을 선택하였다. 그 흔한 링거는 고사하고 물조차 드시지 않고, 대신에 젖은 수건으로 입술을 축이는 정도로 마지막 삶을 견디셨다.
곡기를 끊으신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는데, 자리보전한 아버지는 명을 다하실 때까지 자식, 며느리, 손자손녀들에게 물수건으로 당신 몸을 닦으라 하셨다.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드리고 이야기 나누면서 각자 살아오면서 쌓였던 아버지와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함께 살던 맏며느리와의 갈등도, 떨어져 살면서 가졌던 다른 며느리들의 서운함도, 멀게 만 느껴졌던 손자손녀들과의 거리감도 자리보전하며 이별하는 과정에서 다 풀어 주셨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는 필기도구를 가져오라 하여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는 글을 남기시자, 아버지 병구완하던 가족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자식들은 그 글귀를 묘비명으로 새겨놓고 살아생전 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리고 있다.
(3) 깡촌 시골출신에 운동으로 다져진 강골이었고, 문중 일과 직장·지역사회에 열정과 헌신을 다했던 아버지는 죽음에 있어서도 헌신을 미루지 않으셨다. 타고난 건강체임에도 폐가 안 좋아 일찍 죽는 것이 억울해서 장기기증 서약을 미리 해두었고, 사후에는 아버지의 뜻을 헤아린 남은 가족들에 의해 팔·다리 뼈 등 조직기증으로 생명 나눔을 실천하시게 되었다.
(4)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나는 노후준비강사로 건강분야 강의를 주로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격은 이후로는 웰다잉 강의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기계장치에 의존한 채 외로이 맞는 죽음과 연명치료 대신 남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이별과정을 겪은 아버지의 죽음을 비교하면서 수강자분들과 함께 나누었다.
사는 동안에는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사후에는 조직기증을 통한 생명 나눔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아버지의 조직기증 사례가 신문을 통해 홍보되고, 라디오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면서 전국에 전파되기도 하였다.
(5)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죽음관련 책을 읽고, 웰다잉 강의를 하고, 퇴직을 하면 시신을 수습하는 염습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경험사례가 깊어지고 전문성을 더했을 때 죽음관련 책을 쓰고 싶다는 꿈도 꾸었다.
그 꿈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정년퇴직하자마자 장례지도사 자격과정을 찾아서 마친 뒤, 죽은 자를 통해 산자와 연결하는 장례지도 일을 업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체험하고, 공부하고, 강의를 통해 공유한 죽음을 글로 남기기 위해 수필공부도 시작하였다.
죽음을 통한 아버지의 선물이 새로운 직업이 되고,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 꼴 /이정열
1 통성명은 없다. 수많은 당신들은 나를 보지도 않고 말을 건넨다. 당신의 얼굴이 말한다. 나는 듣는 쪽이다. 대각선 맞은편의 아저씨부터 시작한다. 바로 맞은편보다는 이쪽이 낫다. 높낮이를 비교하려면 옆도 아니고 정면도 아닌 게 좋다. 이 아저씨의 코는 낮지만 광대와 턱 이마가 같은 높이로 봉긋 솟아있다.
‘이 아저씨는 눕혀놓고 얼굴 위에 바둑판을 올려놓아도 되겠는데?’
2 본인은 크게 잘 나지 않았을지라도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귀인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 다니는 좋은 직장도 주변인의 추천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내내 회사고 집이고 몰고 다니는 6기통 엔진을 단 차는 법인 명의 일 거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지만 능력 있는 후임들이 그를 많이 따른다. 그를 중심으로 뭉친 팀은 그의 격려로 항상 좋은 성과를 낸다. 축재(蓄財)에 서툴러 은행에서 좋은 금리로 원하는 금액을 대출받지 못하더라도 전화 한 통에 흔쾌히 돈을 빌려줄 친구가 연락처에 꽤나 있을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팔자주름이 깊고 눈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쳐져 있다. 자주 웃었다는 증거다. 눈에 띄게 높은 곳 없이 솜사탕처럼 울퉁불퉁한 그 얼굴이 실룩거린다. 배시시 웃는다. 그와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두 엄지가 스텝 밟는 모습을 보니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모양이다. 몸도 둥그스름하니 성격이 서글서글하여 모나지 않을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도 친구들과 주말 약속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3 그 옆의 할머니로 옮긴다. 이 분의 이마는 예전 할머니 집 마루만큼 넓고 또 높다. 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은 방금 매단 빨랫줄 같다.
‘집안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겠군. 저 나이에 대학은 물론이고 다른 학위도 있겠다.’
옷차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방금 세탁소에서 배달 온 옷처럼 깔끔하고 구김이 없다. 자연스러운 옷의 윤기는 합성섬유의 요란한 광택이 아니다. 하지만 코가 낮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지도 못할 만큼 코끝과 양 콧볼이 오미자만하다. 입술은 얇다. ‘아, 이러면 본인은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눈코입이 조금 구겨지더니 하품을 한다. 인감도장만 한 입술이 벌어지는데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대왕 고래가 플랑크톤 먹는 장면을 보는 줄 알았다. 주먹 두 개도 들어갈 만큼 크다.
4 ‘이야, 이 할머니는 돈도 많이 벌었겠고, 번 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겠다. 다만 씀씀이는 크지 않아 주변 사람에게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겠네.’
대중교통을 타는 이유도 차량 구매에 따른 감가상각과 제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일 거다. 집에 있는 단 한대의 차도 초록색 번호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선산을 비롯한 부동산, 과장 좀 보태면 장롱 깊숙한 곳에 갱지로 싸여있을 가장 믿음직스러운 현금.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고지식할지라도 실속을 잘 챙기고 어려울 때 무덤덤한 그런 사람이겠다. 이마와 턱도 튼실하니 직사각형이다. 부모 자식이 위아래로 자신을 잘 붙들고 받치고 있어 과거에도 미래에도 큰 걱정이 없을 사람이다.
5 그 옆을 보니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작게 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얼굴 인증 잠금도 헷갈릴 만큼 닮았다. 모자 둘 다 조각칼로 길게 파놓은 듯한 인중의 평행선이 또렷하다. 다만 아들 쪽이 좀 더 신제품이라 베일 듯한 인중이 돋보인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장수할 상이다. 이 아이의 눈썹은 기다랗게 늘어져 눈(目)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 충분한 처마다. 입술은 위아래 둘 다 두툼하여 살이 꽉 찬 홍합 같다. 공부를 잘하고 또 즐겨 할 아이일 거다. 읽고 싶은 책을 샀는지 손에 서점 종이봉투가 들려있다. 지하철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공중에 덜렁거릴 만큼 어리지만 산만하지 않고 차분히 잘 앉아있다. 밖에 나가자거나 특별히 부모를 보채지 않아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처럼 보인다. 더 어릴 적에는 부모가 신발 한 짝을 찾으러 뒤로 돈 적조차 없겠다. 그의 엄마는 비록 그를 승용차에 태워 다니지는 못하지만 아들은 이른 나이에 그녀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할 수 있겠다.
6 이제 다시, 지하철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소리 없는 대화의 일상이 돌아왔다.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얼굴을 훔쳐봐도 괜찮다. 버스는 많이 흔들리고 아그리파와 비너스의 뒤통수만 본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빨리 지나쳐간다.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를 건네는 문화가 없어진 요즘은 응시하고 있으면 시비를 거는 줄 알 거다. 그래서 지하철이 딱이다. 별일은 아니다. 도서관 봉사활동 틈틈이 앉아 보던 허영만 화백의 ‘꼴’이라는 만화에서 본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이다. 그들의 얼굴은 항상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또 어떤 가정사, 과거사를 들을지 궁금하다.
3. 임신서기석 /금우동
1. 수성못 상화동산의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갈대를 바라본다. 시간의 쓸쓸함과 고독과 허망함의 상념에 빠지다가 불현듯 임신서기석을 생각한다.
2. 경주 박물관 유물 전시실에 가면 길이 약 30cm 정도의 길쭉하고 못생긴 돌멩이가 하나 있다. 그 돌의 명칭이 ‘임신서기석’이다. 임신년(서기 6~7세기경) 화랑? 2명이 유교경전을 습득하고 실행할 것을 맹세했다. 이를 신라의 이두문자로 기록한 돌이다.
3. 젊은 날 친구들 간에 혹은 선생님에게나 부모님 또는 자신에게 어떤 맹세를 했을까. 잊어버린 숱한 각오와 다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름대로 보이지 않게 삶의 과정 안에서 절망과 희망, 그리고 좌절과 재기의 순간에 다양한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잊어버린 약속과 맹세,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고 그리운 사람도 있다. 임신서기석은 아련한 추억의 망각 저 너머의 순간들을 불현듯 반추하게 한다.
4. 울울탕탕 질풍노도의 십 대에 만났던 학교 친구도 잊어간다. 좌절과 울분과 절망의 30대를 함께했던 동료와 함께 굽이굽이 인생길을 지나면서 만나고 헤어졌던 아픔도 아련하다. 보람들과 기쁨들, 그때의 열정, 그때의 절절함, 그때의 안타까움도 함께 모두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아쉬움만 남았다.
5. 봄꽃과 수성못 수면을 스치는 바람과 안개비처럼 그렇게 지나간 순간들을 조용히 되새김해 본다. 서쪽으로 대책 없이 사라지는 저녁해를 바라본다. 달이 떳다. 그리운 고향, 어린 시절의 친구들, 그 순백의 진솔한 정이 그리워 진다. 표백된 추억의 순결함에 부끄러워지는 임신서기석이다. 벤치엔 휑하니 빈자리가 늘어난다. 이젠 나도 집에 가야겠다. 그리움을, 허허로운 서글픔을, 알 수 없는 간절함을 그만 잊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