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선 할머니(76)만난 건 12월 16일, 성북동에서 대학로 혜화역으로 걸어 내려가는 길이었지요. 겨울바람에 휜 억새처럼 90도로 허리가 휜 할머니가 손수레를 끄시며 앞에 가시더군요. 잠시 수레를 세우더니 거리에 놓여있는 폐지들을 담는데, 조금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차마 지나칠 수 없어 도와드렸지요.
폐지들이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게 고무끈을 꽉 잡아 당겨야 했지요. 꽉 잡아만 당겼지 어떻게 묶어야 할지 머뭇거리자 할머니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주시네요. 도와줘서 고맙다며 폐지를 또 구하러 가시네요. 다음 약속까지는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지요. 잠깐이지만 할머니를 돕겠다고 수레를 대신 끌었지요.
어느 5층 건물 앞에 섰어요. 같이 맨 위층으로 올라갔지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상자들이 쌓여있더군요. 할머니와 같이 상자들을 납작하게 폈지요. 그리고 한 층씩 내려오면서 사무실을 들렸지요. 사무실마다 할머니가 오자 지난 잡지나 상자들을 주더군요.
치과에 들렸더니 상자와 함께 할머니에게 사은품을 주더군요. 수건이었는데 할머니는 무척 좋아하시네요. 수건은 가방에 넣으시고 그 곽은 폐지에 넣으셨죠. 가마니에 들어가는 게 점점 많아지더니 상당히 무거워지더군요.
수건을 받고 좋아하시는 할머니
그 가마니를 수레에 얹고 거리에 쌓인 폐지들과 상자들을 올려놓자 수레가 꽤 찼습니다. 그 수레의 무게는,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더군요. 낑낑대며 끌고 갔습니다. 앞을 보면서 수레를 끌면, 할머니처럼 자연스럽게 90도로 허리를 꺾이게 되더군요. 허리가 하도 아파서 뒤돌아서서 뒤로 걸으며 잡아 당겼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한가득 실리자 할머니는 이제 됐다며 고물상으로 가자십니다. 휴, 다행이다 싶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혜화동 원형교차로에서 삼선교로 넘어가는 언덕이 있습니다. 그냥 걸어 올라갈 때는 작은 언덕이었지만 수레를 끌면서 쳐다보니 히말라야처럼 느껴지더군요. 그 언덕을 올라가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팔이 후들후들 떨리고 이를 악 무는데 미칠 것 같았습니다.
100kg수레를 끌고 ‘끔찍한 고개’를 넘다
전생에 무슨 업을 이렇게 지었기에 이런 무게를 짊어지나 괜한 전생 탓도 하면서 끌고 갔습니다. 어디가 끝이야? 제발.... 고물상을 애타게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언덕은 올라갈수록 가팔라졌습니다. 용을 쓰는데도 수레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땀은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지요.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수레
허우적대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가톨릭 대학에서 폐지를 갖고 나오신 할머니는 자신이 앞에서 끌겠으니 뒤에서 밀라고 하시네요. 부끄럽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둘이 힘을 모아 간신히 언덕을 넘었습니다. 휴~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오더군요. 조금 더 가자 고물상이 보였습니다. 속으로 기뻤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느낌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고물상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이 폐지들을 분류하고 무게를 재었습니다. 저는 땀을 닦으며 구경했지요. 할머니는 3,700원을 받으셨습니다. 할머니에게 평소에 얼마나 받는지 물었지요.
이번에는 다행히 무게가 많이 나가 돈을 많이 받으신 거래요. 예전에는 100kg에 14,000원까지 하던 것이 지금은 3,000원으로 줄었지요. 신문은 가격을 조금 더 높게 쳐주지만, 100kg에 24,000원 하는 것이 7,000원으로 내리기는 마찬가지지요. 지하철을 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그렇게 무가지를 모으셨는지 알 수 있었지요.
가격이 내린 이유는 고물값 폭락 때문이에요. 경기 침체로 제지·철강 공장 등이 생산을 크게 줄이면서 고물 수요가 줄어 시세가 3~4개월 전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폐지와 고철 등 고물을 모아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지요. 제 까매진 손과 팔은 여전히 후들후들 떨리더군요. 100kg 넘는 무게를 싣고 와서 3,700원이라니, 마음도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인스턴트커피로 끼니를 때우시는 할머니
할머니에게 식사를 대접해드리겠다고 했지요. 점심 잡수러 가자고 하니까 고개를 저으시네요. 자신은 점심을 안 드신대요. 배고파도 할 수 없대요. 철물점 앞에는 인스턴트 커피를 타 먹을 수 있게 갖춰놓았더군요. 거기서 하루에 커피 3~4잔을 드시며 끼니를 대신하신대요. 저에게 커피마시자고 권하더니 그 자리에서 2잔을 드십니다.
점심을 같이 드시자고 말씀을 드려도 안 드시겠다고 하여 저도 그냥 할머니 옆에 앉았습니다. 철물상 앞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할머니 얘기를 글로 써도 되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나에게 지장 있는 거 아니니?’ 하면서 측은한 눈빛을 저에게 보내시네요. 그럴 리가 있겠냐며 사람들 관심과 격려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자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하시네요.
"이게 내 점심이야." 그자리에서 커피2잔을 드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얼마나 폐지 줍는 일을 하셨나요?
“18년 넘었어요. 요즘 사람은 많고 물건은 없고 가격은 내리고, 거기다 몸은 아프고...”
-몸도 아프신데, 하루에 얼마나 일하세요?
“몸이 아파서 아침 일찍은 못나오고, 11시에 나와서 저녁 8시까지 일해요. 토요일은 물건이 없어서 1번만 하고 일요일은 쉬어요. 몸 아파 죽겠어. 그래도 난 술 담배는 안 해요.”
-허리가 많이 휘셨는데, 어떠세요?
“말도 못해. 잠을 못 잘 정도예요. 자다 보면 끊어질 것 같이 아파.”
-수레 옆으로 차가 씽씽 다니는데 위험하지 않으세요?
“교통사고도 여러 번 당했어. 그런데 어떡해, 할 수 없지.”
-언덕 혼자서 어떻게 넘으세요? 너무 힘들던데.
“전에는 차가 와서 가져갔는데 이제는 그렇게 도와주는 분이 힘들다고 안 해서 이렇게 직접 끌고 와야 해. 아저씨처럼 이렇게 사람들이 밀어줘요. 오늘처럼 도와주지. 사람들이 돈도 줘. 2만원도 주고 그러더라고. 고마운 분들이지.”
-저 수레는 고물상에서 빌려주는 건가요?
“아니야, 구루마(수레)는 내가 5만원인가, 4만 5천원인가 주고 산거야.”
100kg에 3,000원, 몸이 아프지만 끌어야 하는 수레
-100kg에 3,000원은 너무 적게 주는 것 같아요.
“물건 적으면 1번 올 때 1,000원 받기도 하고 1,500원 받기도 해. 올랐다가 내려갔다 해. 주는 대로 받아요. 묻기도 싫어, 몸이 아파, 난 쓸 말만 하지. 쓸데없는 말, 남 헐뜯는 말 안 해. 내가 좋은 일 하는 사람이었어요. 남 도와주고 좋은 일 하였지요.”
일본3년, 조선3년 공부하셨다는 이순선 할머니, 배움이 적지만 열심히 사셨다는 할머니, 세상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듯이 저를 손주 보듯 이것저것 물으시네요. 결혼했는지, 부모는 잘 있는지,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다정하게 물으시더군요. 그러시면서 자신의 생애를 두런두런 늘어놓으시네요. 할머니 생애를 잠시 들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웃어주실래요?라고 여쭙자, 알았어, 하시며 웃으신 표정입니다.
-할아버지는 잘 지내세요?
“할아버지, 병원 들어갔어, 당뇨 합병증에 중풍이 들었지. 곧 돌아가실 거야. 내가 이틀 동안 많이 울었어. 영감 생각이 나서......................................... 병원비는...어떡할는지 몰라..”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오르시더니 눈물을 훔치시네요.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죄송하더군요.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커피 한잔을 더 타서 드시네요.
-할머니, 올해도 이렇게 저무는데, 내년 바람이나 꿈 있으세요?
“많은데, 건강이 제일이야. 제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속은 괜찮아, 밀가루 음식 먹어도 괜찮아. 그런데 무거운 거 하도 들어서 몸이 상했나봐. 허리도 많이 아프고.”
할머니 대신 구루마(수레)를 끌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할머니는 모처럼 허리를 피시고 걸어 내려오시네요. ㄱ → l 로 몸이 펴지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손을 허리에 대시더군요. 그러면서 같이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할머니는 버려진 깡통도 지나치지 않으시더군요. ‘보물이야 보물’ 이러면서 여기저기에 모여 있는 상자들도 챙기셨지요. 할머니를 위해 주유소 직원은 신문지 보따리도 주더군요.
다시 수레를 끌고가는 할머니 뒷 모습
어느덧 시간이 다해 할머니에게 더 도와드리지 못하고 가보겠다고 인사를 드렸지요. 할머니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하시며 다시 수레를 저에게서 받아들고 l → ㄱ 이 되시며 끌고 가시네요. 그 뒷모습을 사진 찍는데 마음이 찡합니다. 몸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사시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저 언덕을 넘으실 거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립니다.
100kg끄는 수레 할머니, 나라에서 4만원 받는다
현재 어르신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모두 거치면서 한국이 이만큼 살게끔 땀 흘리신 분들이죠. 자녀들 뒷바라지하며 헌신했지만 정작 본인들의 노후대비는 미처 하지 못하셨죠. 어르신들을 살펴보면 경제형편이 안 되는 분들이 많지요. 여전히 고되게 일을 하시며 어렵사리 겨우 살아가는 분들이 셀 수 없습니다. 부양하는 자녀들의 부담도 큰 편이죠.
따라서 기초노령연금이 마련되었지요.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매월 연금을 드려서 노후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는데 제도지요. 65세 이상 전체노인 가운데 소득과 재산이 적은 하위 70%를 선정하여 돈을 지급합니다. 돈을 얼마나 주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꼭 필요한 복지제도지요.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액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게 걸리네요. 할머니께 기초노령연금을 얼마나 받으시냐고 여쭤보니 4만원을 받으신답니다. 할머니 ‘소득인정액’이 105만 원정도 평가를 받는 듯싶네요. '소득인정액’이란 노인가구의 월소득과 재산에 연리 5%로 계산한 월액을 합한 금액이지요. 할머니는 잠깐 누워 고통스럽게 자는 집이라는 ‘재산’이 있어서 많이 받지도 못하시네요.
할아버지는 병원에 누워계신 상황에서 정부는 4만원을 주고 할머니는 수입이 없으니 아픈 몸을 다독이며 밖으로 나와 수레를 끕니다. 그렇게 일하셔도 하루에 많아야 10,000원이 안 되는 돈을 손에 쥐시는 할머니, 돈이 없어 오랫동안 점심을 인스턴트커피로 때우시는 할머니, 한국 빈곤층의 가슴시린 모습입니다. 고작 1시간 일했다고 손이 까매졌습니다. 18년 동안 무거운 수레를 끈 할머니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타버렸을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