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고린도전서 1:23-24
제목 : 우리가 전하는 예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반갑습니다.
우리 주안장로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소문이 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장 23절~24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전하는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다 함께 따라 해 볼까요..
"우리가 전하는 예수"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시다"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상징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바로 뭐지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사람을 죽이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가 있지요.
자객을 보내서 암살을 할 수도 있고, 스데반처럼 돌로 때려 죽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유대 지도자들은 저렇게 '십자가', '십자가' 하고 외쳤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22절~23절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여러분,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다.'
여러분, 십자가는 뭡니까? 나무지요.
그러니까 이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걸로 끝내지 않고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매장을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이 성경 말씀을 살리는 말씀으로 쓰지 않고, 누군가를 죽이고 매장하는 그런 말씀으로 썼던 겁니다. 정말 악랄한 것이지요.
또 다른 사진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1800년 된 낙서입니다.
이 낙서가, 1800년 전에 로마 사람이 이태리 팔라티노 언덕에다가 벽에 새긴 낙서인데, 이게 지금 발굴이 된 것입니다.
이 탁본을 보시면, 이런 모습입니다. 저기 보면, 헬라어로 '알렉사메노스 세베테세온' 이렇게 쓰여 있어요.
그 뜻이 뭐냐면, '알렉사메노스'는 '신을 예배하고 있다' 그런 뜻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조롱하는 낙서입니다.
저 '알렉사메노스' 저 녀석이 지금 신이라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보란 말이예요.
어떻게 돼 있습니까? -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요.
그런데 그 머리가 어떻습니까? -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당나귀의 머리로 그리고 있어요.
아니 전능하고 정의로운 신이라고 한다면, 악한 사람 다 물리치고 승리해야지
어떻게 저렇게 허무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거를 신이라고 저 알렉사메노스 그 앞에서 예배하고 있다니, 저 한심한 놈' 하면서 조롱하는 낙서를 쓴 거예요.
그러니까, 이방인이 봐도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잘 납득이 되지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이 십자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런데 십자가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고린도전서 1장 23절~24절에 오늘 이런 실존적인 고백을 하는 거지요.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 유대인들은 '어, 그거 나무 저주의 상징인데',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소리라는 거예요.(아까 낙서 보셨지요)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 혜니라"
아, 이게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질 않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그거에 반응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고요? -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
※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이렇게 나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이 부르심을 받은 그 증거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그래서 이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십자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데,
여러분 십자가를 한번 다시 보여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십자가는 그러면 전능함입니까? 무능함입니까?
그렇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꼼짝없이 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무능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저기에 달리신 분은 누구지요? -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 전능함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는, 기독교의 십자가는 무능함과 이 전능함의 역설이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역설이 아멘이 되십니까?
제가 예를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를 44세에 낳으셨어요.
그러니까 이 어린 녀석이 얼마나 귀여웠겠어요. 제가 좀 귀엽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삐빅삐빅' 이렇게 도어락을 누르고 들어오는데,
옛날에는 밖에서 '띵동'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사람이 나가 문을 열어줬어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늘 아버지 퇴근하시면 그 문을 열어드리는 역할을 했거든요.
어느 날은 아버지가 신발을 벗어 신장에 딱 넣으시더니요,
제 허리춤을 딱 붙잡고 막 흔드는 거예요. 뭐 하자는 거죠? 씨름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제가 워낙에 효자라서 '아이고~ 아이고~ 아버지' 하면서 제가 져드리나요?
아니지요. 이때 한번 아버지 꺾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막 달려들잖아요.
그러면 그런 아들을 보고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뭐야? 이 자식이..' 번쩍 들어서 땅에 태기를 치고,
'이게 너와 나와의 능력의 차이야' 그러면서 자기의 전능함을 증명하는 아버지 있어요? 없지요..
아들이 안간힘을 쓰면서 달려들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게 되어 있습니까? -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져 주게 돼 있어요.
왜요? -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 십자가에 달려 있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 역설의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역설이 아멘이 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멘!
여러분, 그럼 제가 한번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큽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큽니까?
아, 여러분 답을 되게 잘 하세요. 그렇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크지요.
그런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하면 아는지 아십니까? - 여러분들이 자랑하는 걸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가치 있다라고 생각하는 걸 자랑해요.
그래서 복음을, 은혜를 싸구려 취급하는 사람은
예수는 그냥 천국 가기 위해서 이름 한번 불러주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 예수 믿고도 예수 자랑하지 않아요.
자기 집 자랑, 돈 자랑,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자기 스펙 자랑 하는데,
예수 믿는데, 예수 자랑을 하지 않아요..
여러분, 지난 한 달 동안 여러분이 무엇을 자랑했는가 그걸 한번 헤아려 보세요. 그 가운데 진짜 예수가 있었는가?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랑하는 그것을 보면, 솔직히 나의 영적 상태를 알 수가 있는 거예요.
제가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끔씩 어렸을 때 뭔가 충격적인 사건을 평생 기억하는 경우가 있지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되게 충격적인 일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막 프로야구가 시작이 될 때였거든요. 여러분, 기억 나십니까?
그 때는 OB베어스 그렇게 불렀어요. OB베어스 하면 윤동균, 그리고 MBC청룡 하면 김재박,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 하면 김봉현,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는 누구였습니까? 이만수
오! 어떻게 아시네요.. 저랑 연배가 비슷하신 분이 앉아 계십니다.
그 홈런 타자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탁 들어서면요..
그때는 TV 채널이 MBC하고 KBS 두 개 밖에 없었어요. 아, 넋을 잃고 그것을 쳐다 봤습니다.
저희 동네에 부잣집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잠실 야구장에 갔다 오더니 OB베어스 유소년 클럽에 가입을 한 거예요.
그래서 OB베어스 유니폼을 쫙 빼 입고 나타났는데, 등에 자기 이름까지 새겨졌더라고요.
OB베어스 로고가 박힌 야구공, 야구 배트, 포수 기어까지..
아, 그거를 주렁주렁 들고 나왔는데, 얼마나 그게 멋져 보이고 부럽던지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한테 '아빠, 저도 빠따 하나만 사 주세요.'
저희 아버지가 목사거든요.
'야, 너 그거 막 휘둘렀다가 누구 이마라도 까면 목사 자식이 사람 잡는다고 욕해. 안돼'
'아, 그러면 야구공이라도...'
'야, 그것도 딱딱해. 던져서 맞으면 눈알 나와. 안돼' (본래 목사의 자식이 안 되는 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타협을 한 게, 플라스틱 공입니다. 던지면 바람에 휙휙 날아가는..
그래도 그게 짜장면 500원 할 때 200원짜리였어요.
그래서 열심히 아버지 구두를 닦아 가지고, 빨주노초파남보 7개의 색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그 플라스틱 공이 뭐라고 막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 상범이가 '어, 이 빨간 공 이거 내 건데' 그래 가지고, 대판 싸움이 붙은 거예요.
그 집 할머니가 유명한 동네 욕쟁이 할머니였어요. 저희 집에 와서 '목사 자식이 사람 잡는다.'고... 욕을 막 한 바가지 해요.
그 할머니의 까만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아, 목사 자식이라고 이렇게 괄시를 받아야 되나요?
그래서 제가 기도 제목이 평생 처음으로 생겼어요.
'하나님, 저에게 야구공 하나 선물해 주세요. 하나님 내 아버지잖아요.'
그러고 얼마 뒤에 유치원에 갔는데요. 집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어머니가 '야 태섭아, 너 지금 빨리 집에 와 봐야겠다.'
아,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만수 선수가 지금 우리 집에 와 있어!'
아, 진짜냐고, '진짜다'
그래 가지고 제가 한숨에 막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집에 현관을 탁 열었더니요.
TV에서만 보던 이만수 선수가 저희 집 소파에 앉아있는 거예요.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구' 알고 봤더니요. 이만수 선수의 어머니 장삼순 권사님이 아주 믿음이 좋은 분이예요.
이 권사님이 서울로 이사를 와서 어느 교회를 등록해야 되나 하다가
마침 벽돌 공장 옆에 있는 작은 교회,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게 된 거예요.
이만수 선수가 아내하고 결혼을 해서 서울에 있는 부모님 댁에 인사를 하러 왔다가
어머니가 돌아가는 길에 "나 다니는 교회 담임 목사님 한번 뵙고 인사드리고 가라"
그래 가지고 이만수 선수가 아내하고 케이크 하나 사 들고 저희 집에 온 거예요.
30분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제 몸 안에 있었는지 제 몸 밖에 있었는지...
예수님이 오시면 이런 기분일까?
여러분, 손흥민이 여러분 집에 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가려고 일어서는데,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서 저한테 주는 겁니다.
싸인볼을, 자기가 직접 사인한 야구공을 저한테 주는 겁니다. 제가 그거를 보고 눈알이 나올 뻔했어요.
그거를 들고요. 그날 동네를 다니면서 이만수 선수가 우리 집에 왔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 친구들이 저희 집에 성지순례를 왔어요. 아, 그 공 한번 만져보겠다고... 저희 집이 동네 야구의 성지가 됐는데,
그날 이후에 플라스틱 공들 어떻게 됐을까요? 옆집 상범이 다 줘 버렸어요. 아버지가 주자 그래서요..
여러분, 그거 왜 그런 거예요?
- 내가 그 플라스틱 공, 그거 얻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하고, 내가 그거 빼앗기지 않고 움켜쥐기 위해서 그렇게 싸웠던 건데,
왜 내려놓게 되는 겁니까?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귀한 것이 내게 있기 때문에...
여러분, 제가 이 말씀 왜 드리는지 아시지요..
여러분, 세상이 큽니까? 예수가 큽니까?
그렇지요. 세상에 그 어떤 좋은 것보다, 세상의 그 어떤 문제보다 크신 그 예수님이 내 안에 있게 되니까,
이제는 세상이 작게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신앙의 원리입니다.
내 안에서 예수가 커져가면 커져갈수록 세상은 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그 크신 예수님을 붙들고 세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담대함이 우리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비싼 사기그릇도 그 안에 똥오줌이 가득해요. 그러면 그게 뭐가 되지요? - 그냥 요강이에요. 비싼 변기라구요.
그런데 투박한 질그릇도 그 가운데 금덩어리가 있으면 뭐가 되는 겁니까? - 보물단지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나니"
"세상보다 크신 그 보배로운 예수가 질그릇 같은 내 안에 있다!"
사도바울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적으로 봤을 땐 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 안에 세상보다 크신 그 예수가 있는 까닭에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러분, 이런 신앙의 역설이 아멘이 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보다 크신 그 예수가 내 안에 있는 까닭에
이제 나의 자랑은 '누구 누구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 나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아멘!
"이제 나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새 생명 축제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전도가 다른 게 아니에요. 전도는 그냥 내가 만난 예수를 자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자식 자랑하는데 두 시간 세 시간 힘들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면 할수록 막 힘이 납니다.
여러분, 전도는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주안장로교회를 통해서 세상보다 크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예수 그리스도 너도 만나보라!]
사람들 앞에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소문을 내는
거룩한 인생, 거룩한 가정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시다.]
둘째는,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합시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제 십자가를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2천년 전에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예수님만이 아니었어요.
수만 명이 로마에서 십자가라고 하는 방식으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실 때도 좌우편에 누가 있었지요? 십자가 사형수들이 있었어요.
그럼 왜 예수님의 십자가만 의미가 있어요? 왜 예수님의 십자가만 능력이 되는 겁니까? 왜 그런 거지요?.
예수님만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에서 끝나는 종교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사도 바울도 본래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만 처음에 알았어요. 그때는 어떻게 반응했지요?
'어떻게 저렇게 십자가에 죽은 그 사람이 우리의 메시아가 될 수 있느냐 말이에요.'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어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만 알 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나지요?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요.
자기 몸에 구체적으로 그 만난 증거를 갖게 되지요.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덮여서 보이지 않다가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를 하니까 그 비늘이 벗겨집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충격을 받은 거예요.
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느냐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 뒤돌아 십자가를 보니까, 이 십자가의 의미가 뒤집어지는 겁니다.
저주의 사건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신 은혜의 사건으로 뒤집어지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인생이, 예수 때문에 박해 받는 인생으로 뒤집어지는 거예요.
뭐 때문에요? - 부활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이 부활이 되게 중요해요.
여러분,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다.] 여러분, 이거 되게 중요한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지만,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다.]
여러분, 그래서 바로 이 부활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생명이 있다라고 하는 거는 뭐지요? - 생명이 있다는 건 저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없는 널빤지는 어떻게 됩니까? - 그냥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요.
그런데 살아있는 물고기는 어떻게 되지요? - 그 강물을 거슬러서 저항해서 뚫고 올라가는 능력이 있어요.
생명이 있다는 건 저항하는 것이다.
여러분, 초대교회,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신사참배...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 우리 교회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박해를 뚫어내고 저항하고 승리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요즘에 한국 교회가 어렵다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어려움도 뚫어내고 저항하고 승리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됐는데, 여러분, 부흥회 때 설교하기 전에 뭐 하지요?
찬양팀이 앞에 나와서 뜨겁게 박수 치고 찬양합니다.
이 목사님이 연단에 앉아서 이렇게 회중석을 가만히 보니까, 웬 남자가 비실비실 웃으면서 자기 뺨을 막 후려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 교회에도 정신 나간 사람 하나 있구나..'
이제 그러고 나서 설교 말씀을 시작을 하는데,
또 말씀이 시작되니까, 그 사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도 또랑또랑해지더니, 때마침 아멘도 잘해요.
'야, 이 능력의 사자가 설교하니까,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예배가 마쳤습니다.
나가는 성도님들하고 인사를 하는데, 마침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 사모님을 만난 거예요.
사모님이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이 아까 그 남자가 생각이 난 겁니다.
"사모님, 아까 보니까 웬 남자가 자꾸 웃으면서 자기 뺨을 후려치고 있던데,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김 집사님이요.. 우리 교회에서 되게 유명한 분이에요."
그분이 6.25 전쟁에 참전을 했다가 그만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상이용사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교회 일에 그렇게 앞장서서 봉사를 해요.
그리고 박수치고 찬양하는 시간이 되면, 그 박수 소리를 내기 위해서 자기 뺨을 후려친다라는 거예요.
사실은 얼굴이 그렇게 붉어질 정도로 이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 왜 내 한 팔을 가져 가셨습니까?' 하고 남은 한 팔로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원망하기보다
자기 뺨을 치면서 감사와 찬양을 했던 사람...
여러분, 우리도 한번 해 볼까요...
♬ 내게 강 같은 평화~ ~ ♬
여러분, 과연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여러분, 불평하는 사람은 남의 뺨을 치면서도 불평하는 거고요.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뺨을 치면서도 감사하는 거예요.
조금 전에 이 상이용사가 고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기쁨과 감사를 흘려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누에 있지요.
이 누에는 뽕잎을 먹고 다시 뽕잎을 싸나요? 그렇지 않아요.
누에는 뽕잎을 먹고 실크를 뽑아냅니다. 이게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상이용사는 이 고난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를 흘려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흔들릴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예수의 생명은 고난과 맞서 저항하시고 싸우시고 승리하는 우리 주안장로교회 성도님들과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부활하신 예수의 그 능력을 경험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야! 이렇게 좋은 분, 너도 만나보라"
세상 앞에서 당당히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소문을 내는
여러분들의 가정, 그리고 우리 주안장로교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