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러 가자
맑은 샘
영화보러 가자
그래 그래 영화를 보러가자
제들만 만들더냐
우리도 만들어 보러가자
재미와 말초신경만 추구하는
썩어빠진 생각, 얼굴들 화끈하게 치워버리고
진짜진짜 영화, 우리 영화를 보러가자
곪아터진 붉은 거대자본 썩은 배급사,
골빈 싸구려 뒷골목 얼굴들 걷어 치우고
진짜진짜 배우다운 배우를 만들어 보자
우리들의 영웅을 만들어 보자
영화보러 가자
그래그래 신나게
영화를 보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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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월드컵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2년 6월 29일 서해상 연평도 근해에서 벌어진 해상전투를 다룬 영화가 제작된다. 이름하여 [N.L.L.-연평해전]. 김학순(사진) 감독이 이끄는 ㈜로제타시네마에서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지난 10일 크랭크 인, 오는 8월 개봉을 목표로 대대적인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 취지에 공감한 양미경, 정석원 등 유명 스타들이 노개런티, 혹은 재능기부로 참여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N.L.L.-연평해전]은 '대국민 클라우드펀딩(이하 국민모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다. 제작 전부터 '주적' 북한군의 공격으로 산화한 젊은 장병들의 처절한 사투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색깔론 시비에 휘말린 [N.L.L.-연평해전]은 변변한 대형투자배급사 없이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과 일부 투자자들의 투자 만으로 간신히 닻을 올린 상태. 총제작비가 60억원 규모로 알려진 [N.L.L.-연평해전]은 내달 중순까지 15억원을 조성하지 못할 경우, 향후 제작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투자사들로부터 정치색이 짙다는 이유로 홀대 받고, 톱스타들로부터 개런티가 적다고 외면 받은 영화 [N.L.L.-연평해전].
이 영화는 그 날 서해상에서 벌어졌던 '대형 참사'를, 한낱 노인들이 지어낸 '무용담' 쯤으로 치부하는 요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하다. 외국 같으면 영웅으로 추대받아 마땅한 순국 장병들이지만, 노부모들이 전사한 아들에 대해 설명하려면 몇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현실. 평화로운 2002년 월드컵때 그런 전쟁이 있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
이들에게 연평해전은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수년 전 우리 서해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사실'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힘없는 '작은' 감독이 분연히 일어섰다. 오늘도 국민모금·영화 홍보에 여념이 없는 ㈜로제타시네마 관계자를 만나, 영화 제작에 얽힌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 제작사 측에서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투자금을 모으시는 걸로 아는데요. 현재 어느 정도 모금이 됐나요?
이번 영화를 제대로 만들려면 60억 정도가 소요됩니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10억원을 지원받았구요.
영화 제작 취지에 공감하신 여러분께서 큰 도움의 손길을 주고 계십니다.
또한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5천만원 정도가 추가로 조성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영화가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려면, 2월 중순까지는 최소 15억원 정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 근자에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투자사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언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영화 [N.L.L.-연평해전]이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오해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톱스타가 캐스팅 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투자사들은 철저한 사업가들입니다.
제일 먼저 해당 영화에 타이틀롤을 누가 맡았는지를 봅니다.
따라서 티켓파워를 지닌 인기 스타를 영입하지 못하면 투자를 받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무리가 따르더라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스타들을 붙잡으려 하는 것이죠.
- 어쩌면 이번 영화가 정치색 논란을 빚고 있는 점이 배우나 투자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뭐가 이들을 망설이게 하는 걸까요?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죠. 애당초 충분한 제작비가 투자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다보니 배우들이 원하는 개런티가 안 나오고….
톱스타를 캐스팅 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일각에선 우리 영화를 두고,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하더라구요.
전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닌데, 다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면 젊은 청춘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젊은이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코드를 많이 담았는데, 자꾸만 편협된 눈으로 바라보는 분들 때문에 저희가 적잖은 오해를 받고 있어요.
- 요즘 투자사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만나고 계실텐데, 대기업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전쟁 영화는 흔히들 블록버스터급이라고 말하죠.
따라서 작게 투자를 받아서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된 퀄리티가 나오기 위해선 대형 투자·배급회사들의 참여가 급선무입니다.
요즘도 저희 쪽에서 주요 투자사 관계자 분들과 연일 미팅을 갖고 있는데요.
그때마다 저희 영화에 투자사를 '유혹'할 수 있는 상업적 요소가 매우 적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져요.
부디 순국 장병들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명작'이 나올 수 있도록, 기업들의 아낌없는 협조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이번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주신다면?
저희가 다룰 6명의 장병들 얘기가 너무나 드라마틱해요.
'굿펀딩' 사이트에 들어오셔서 한 번이라도 이 분들의 사연을 읽어보신다면 다들 공감하실거예요.
저희 영화에 대해 잘 모르셨던 분들도 여기에 올려진 소개글들을 보시곤 '가슴이 울컥했다' '마음이 바뀌었다'는 말들을 많이 하세요.
괜한 선입견으로 보지 마시구요. 한 번 와서 보세요.
그럼 달라지실 겁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구요.
우리 주위 이웃들이 직접 겪었던 일이에요.
어쩌면 내가, 우리 가족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이죠.
- 아직도 소액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다면?
현재 공익모금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께서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저희 취지가 잘 전달돼 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현재 소액투자를 하려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은데요.
이런 긍정적인 기운들이 모여서 큰 힘으로 모아지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국민들의 더 많은 호응을 해 주신다면 얼어붙은 투자사들의 마음도 바뀌리라 봅니다.
결코 잊어선 안될 그 날의 참극이 역사적 교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부디 힘을 보태주세요.
영화 [N.L.L.-연평해전] 국민모금은 굿펀딩(www.goodfunding.net)을 통해 진행되며 최소 5,000원부터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펀딩 금액에 따라 시사회초대권과 DVD 및 원작소설, 엔딩크레딧에 후원자 이름 게재, 제작진들이 함께하는 감사 모임 초대 등의 보상이 제공된다. 한국 최초 3D 전쟁영화인 [N.L.L.-연평해전]은 주연인 故윤영하 소령 역에 정석원씨, 故한상국 중사 역에 오태경씨, 故박동혁 병장 역에 노영학씨 등이 캐스팅된 상태. 대국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비가 확충되는 대로 4월말까지 진해 로케이션을 끝낸 후 CG 등 후반작업을 거쳐 올 8월 개봉될 예정이다.
"전사자 6인과 생존자들 이야기" ■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357호 이끈 윤영하 소령 참수리급 357 고속정의 정장인 윤영하 소령은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었습니다. 2002년 6월14일 월드컵 열기가 하늘을 찌를 때 윤영하 소령은 뉴스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해군들의 열띤 월드컵 응원 현장을 알리는 뉴스였습니다. 당시 윤 소령은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늠름하게 전했습니다. 윤영하 소령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부대원들을 통솔했던 윤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는 움직임은 그의 모교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 침몰해서도 조타키를 놓지 않은 조타장 한상국 중사 한상국 중사는 조타장으로서 책임감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북한은 핵심이 되는 조타실을 먼저 공격했습니다. 인양된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에 있는 커다란 구멍이 당시의 처참함을 보여줍니다. 내장이 다 나오는 상황에서도 한상국 중사는 조타키를 놓지 않았습니다. 조타실 포격 후 흔히 있는 급선회나 흔들림 없이 전사자와 부상자를 무사히 다 실어나를 수 있었던 것은 한상국 중사의 공입니다. 40여일 후 심해에서 발견된 357호는 반듯이 서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키를 잡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닷속에서도 357호의 태극기는 빠른 조류에 펄럭이고 있었고 한상국 중사 시신은 조타키를 움켜쥔 채 발견됐습니다. ■ 함포 방아쇠 당기다 백일된 딸 두고 산화한 조천형 중사 조천형 중사는 20M 함포 방아쇠를 당기다 산화한 해군의 인재였습니다. 키 183cm가 넘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체육교사가 꿈이었으나 집안을 돌보기위해 해군에 입대해 의장대 의장병을 거쳐 참수리 357호 병기장이 됐습니다. 누구보다 훤칠한 외모가 그를 해군의 상징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당시 조천형 중사에게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젊은 아내와 백일이 채 안된 딸 시은이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있기 전날 조천형 중사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화로 전했습니다. 매일 여러 번 전화 하는 남편이지만 그날따라 그 말이 가슴 아프고 오싹했다고 후에 조천형 중사 부인 강정순씨는 말합니다. 남편의 사랑 한다는 말에 “나도”라는 한마디를 못한 게 평생 후회스럽다고 합니다. ■ 포탄이 머리를 관통했어도 방아쇠 꼭 쥔 채 전사한 황도현 중사 황도현 중사는 훤칠한 외모에 재기발랄한 만능 스포츠맨이자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소년이었습니다. 숭실대 기계공학과 재학중 해군에 입대한 황도현 중사는 함상에서 행사가 열리면 사회를 도맡는 밝고 활기찬 사람이었다고 동료들은 말합니다. 참수리 357호정의 22mm 벌컨포 사수였던 황도현 중사는 북한의 포탄이 머리를 관통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하얀색 운동화로 황도현 중사임을 알아본 동료 해군들은 방아쇠를 꼭 쥔 채 전사한 황 중사 앞에서 오열을 터뜨렸습니다. 황도현 중사 부모님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아들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작은 컨테이너에 황 중사의 군복과 생전에 사용한 물건들을 모아 기념관을 만들어 분향하십니다. 아들의 음성이 담긴 노래 테이프를 들으며 국민 대다수가 기억 못하는 희생을 부모라도 기억해주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냐고 눈물지으십니다. ■ 전도 유망한 엔지니어, 기관총 응사하다 전사한 서후원 중사 서후원 중사는 대구기능대를 다니며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전산응용가공산업기사, 수치제어밀링기능사 등 자격증을 3개나 가진 전도 유망한 엔지니어였습니다. 고교 졸업때는 상주시장의 표창장을 받기도 한 소문난 효자였다고 합니다. 내연사였던 서 중사는 당시 22세의 패기 넘치는 젋은이였습니다. 기관실에서 근무했더라면 살아있을 수도 있던 그는 전투가 벌어지자 위로 올라가 엄폐물도 없던 M60 기관총 거치대로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서후원 중사의 부모님은 내연사인 아들이 치열한 전투에 응전하다 전사한 것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비통하다고 하십니다.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스러진 젋은이의 희생을 나라와 국민이 수년간 외면했고 추모식이 국가 행사로 격상된 지금도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100여개 넘는 파편 맞고 고통속에 산화한 박동혁 병장 어린 나이에도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박동혁 병장은 동생이 대입을 앞두자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원광보건대 치기공과를 휴학하고 의무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일명 ‘약통’이라고 불리웠던 박병장은 반창고와 소화제 뿐인 약통을 들고 함정 동료들의 건강을 챙겼습니다. 전사자가 속출하고 중한 부상자가 나왔을 때 박병장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소화제뿐인 약통을 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박동혁 병장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함정을 뛰어다니며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에서는 100여개가 넘는 파편이 나왔으며 온 몸이 부서져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다 겪고 84일만에 전사했습니다. 그의 유골에서는 3kg의 쇳덩이가 나왔다고 합니다. 박동혁 병장의 마지막을 진료했던 당시 군의관인 이봉기교수(강원대 의대)는 한마디로 ‘멋진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박동혁 병장은 시대를 초월해서도, 국가를 초월해서도 찾아보기 힘든 책임감 강한 청년이었습니다. 84일간 고통의 시간을 지켜본 박동혁 병장 부모님의 비통함은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 수십개 파편을 몸에 담고 살아가지만 사회에서 거부당했던 부상병들
제2연평해전은 30여분간의 격렬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N.L.L을 넘어온 북한측의 도발에 대응하는 교전수칙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차단기동 후 밀어내기를 할 정도로 두 배가 밀착해 있었다고 합니다. 6명의 전사자 외에도 18명의 부상자는 대부분 중상자들이었습니다. 부상이 없었던 승조원들조차 그 전투상황을 보고 들었으므로 외상후 스트레스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극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지금 대부분 30대 초중반의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 사회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
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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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복
1. 불안과 불만의 대립
體制가 걸린 승부
2013년 벽두부터 대한민국은 은밀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흔히 말하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엄밀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진영과 反대한민국 진영에서 작금의 전투적 대립각은 무척이나 예리하다. 종래 그 어떤 대선에서도 정권을 놓고 투표를 했었지 이번처럼 체제를 놓고 투표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수행평가가 55%로 노무현 당선인(86.6%)나 이명박 당선인(84.7%)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에, 정권을 두고 투표했을 때에는 설사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거후 출범한 인수위에 긍정적 시선을 던질 수 있었다. 이번만은 다르다. 지지층들의 마음읽기를 해 보면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2017년 대선을 걱정하는 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당선자가 못미더워서가 아니다. 5년이라는 재임기간에 비해 정리되어야 할 반체제적 요소가 너무나 막대하다는 사실확인 때문이다.
불안과 불만의 충돌이 보여줄 사상·문화 전쟁
이번 대선기간을 통해 국민 모두가 체험할 수 있었던 종북성(從北性)의 심화구조는 우리 사회에 퍼진 암세포가 3기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과연 5년 내에 대한민국이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선거이후 더욱 깊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국민의 절반이 불안감을 안고 있는 데 그 반대편의 심중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만감으로 가득 차 있다. 성공한 자에 대한 불만, 가진 자에 대한 불만, 강자에 대한 불만들이 인격살인에 준하는 비정상적인 청문회, 무조건적인 재벌과 대기업 때리기, 국가가 망하더라도 우선은 무상복지 관철 등의 심리적 근간이 된다. 동시에 이 불만의 핵심부는 체제에 대한 불만과 反대한민국, 親북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불안과 불만의 양대 세력은 선거를 통해 서로를 확인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승자인 불안세력의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겨우 확인되는 언어가 ‘다행이다’ 거나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의 정도이다.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다. 패배한 불만세력은 부정선거 캠페인 같은 이벤트로 역습을 시도 중이다. 그래서 불안과 불만의 양대 세력은 여전히 대립중이며 전쟁과도 같은 전투모드를 풀지 못하는 중이다. 단언컨대 이 불안과 불만의 대립은 향후 우리 사회에서 사상·문화전쟁으로 전개될 것이다.
2. 제2연평해전 映畵化는 문화전쟁의 한 단면
3류 반공영화가 친북 영화판 키웠다 오늘(1월23일자) 뉴데일리는 연평해전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학순 감독의 인터뷰를 실었다. 문화전쟁의 한 단면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문화전쟁을 해 왔던가. 동족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 그리고 종전도 아닌 휴전이었다. 전후복구시대의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도 북한 공산 집단에 대한 적개심은 잊지 않으려 애썼다. 교과서에 반공교육이 강화된 것은 1968년 11월 울진 삼척으로 침투한 공비들에 의해 李承福군과 그 가족들이 참살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전국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李承福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는 李承福군 동상이 사라지고 없다. 교과서의 내용도 형편없이 축소됐다. 조작사건에 휘말린 이후 10 수년 뒤 조작이 아님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으나 동상들은 이미 철거된 뒤였다. 누구도 교과서 내용을 복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화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반공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예술성을 살려낸 秀作들이 제법 있었다. 2012년에 제작, 상영된, 초대형 블록버스터였으나 흥행실패를 겪었던 영화 알투비(R to B)를 반공영화에 포함시킨다면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총 200여 편에 달하는 반공영화 대부분은 아쉽게도 내용이나 형식미에서 졸렬에 가까웠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제작된 반공영화들은 정권의 입맛까지 고려해 상납용으로 제작되다시피 하면서 철저하게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단순히 영화제작자들의 흥행참패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당한 반공영화나 국가존립을 위해 필수적인 반공문화 전체를 외면하는 풍토를 몰고 왔다. 악덕업주 몇 사람에 의해 반체제 노조가 양산되듯이 삼류 반공영화 몇 편으로 친북좌익 영화판을 우리가 키워준 셈이었다.
事實의 미사일로 정확히 타격해 주기를
그리고 오늘 우리는 체제를 걸고 투표에서 승리한 18대 대선을 끝내고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사상·문화 전쟁을 논하는 자리에 서 있다. 김학순 감독에게 결론부터 말하겠다. 부디 만들려면 잘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만들지를 말라. 엉터리 삼류 반공영화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머리 위로 대포를 쏘는 것과 같다. 그 포탄은 결국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진다는 것이 한국 반공영화의 역사가 잘 말해주지 않던가. 누구나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감동적으로 제작하려면 진실을 본질적인 부분부터 캐고 들어가는 시나리오가 필수다. 팩트로서 감동을 살려내는 일은 고난도 작업이다. 그러나 그래야만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3D로 제작하겠다는 데, 부디 볼거리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거대한 명분에 걸맞게 거대한 제작비가 거론되고 대국민 모금에 나서는 모양새로는 걸작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25분에 걸친 艦上 전투장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대한민국 권력 심장부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으며 2함대 사령부에서는 어떤 결정들이 이루어졌는지를 취재해서 재구성해야 이 영화가 살아날 수 있다. 선제공격을 못 하게하고 선미추돌(船尾追突) 대응만 하라는 김대중 대통령 지시에 속수무책으로 북한군에게 당해야만 했던 전투를 어줍잖은 상상력과 일천한 정치감각으로 요리조리 빠지지 말고 사실에 근거한 정직한 디테일 묘사를 화면에 옮기는 것이 이 영화의 생명선이다. 탈북자들을 취재하면 생생한 북한 해군의 모습도 살려낼 수 있다. 그 속에는 해군 작전장교들의 인간적 고뇌, 진급에 눈이 멀어 무조건 청와대에 굽신거린 장교도 있을 수 있다. 상상하지 말고 취재해서 조합해서 예술성을 살려내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 돈 퍼붓는 3D가 아니어도 좋은 것이다.
문화전쟁에서는 事實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부디 事實의 뇌관을 장착한 영화의 미사일로 우리 사회를 포박한 세력에게 정확한 타격을 가해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