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12 - 대구 비슬산 억새밭과 암괴계곡을 품은 오밀조밀 등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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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9. 15:20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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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비슬산
억새밭과 암괴계곡을 품은 오밀조밀 등산길
어디로든 훌쩍 떠나라고 유혹하는 가을 분위기에 한없이 싱숭생숭하다. 마음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루 중 마음의 일교차가 상당하다. 이럴 때 처지나 형편 탓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 쓴다면 지는 거다. 이번 달, 다음 달 스케줄을 정리해 보면 하루 정도는 비기 마련. 당일 코스로도 괜찮은 산 여행을 추천한다. 어렵게 낸 시간인데 인파에 치여 가며 여행하기는 싫다면, 한적한 자연의 정취를 맘껏 느끼고 싶다면, 대구의 남부 달성으로 가보자.
경남 청도군 풍각면. 추수 직전의 논밭 너머로 비슬산이 보인다
달성군은 대구시의 약 48%,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을 차지하는 곳이다. 군 단위로는 상당히 넓은 면적에 낙동강이 흐르고 비슬산이 솟아 있다. 대구 남부 달성군에 진입하면 비슬산이 쉽게 눈에 띈다. 남북 방향의 산줄기가 길게 뻗은 것이 특징이며 부드러운 산세는 여성적 풍모를 가졌다. 산행 또한 비교적 편안한 편이다.
비슬산의 유래에는 3가지 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서는 비슬산을 ‘포산(苞山)’이라는 이름으로 발견할 수 있다.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 온 인도의 스님이 이를 ‘비슬’이라 발음하면서 굳어졌다는 설이다. 비슬산 정상에 서면 산을 덮고 있는 수목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설은 세상이 물바다가 됐을 때 물에 잠기지 않은 비슬산의 몇 봉우리에 배를 매었다는 ‘배 바위 전설’을 토대로, 그 바위의 모습이 비둘기 같다 해서 ‘비들산’이라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점차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높은 산이라는 것이 아닐까. 비슬산 최고봉인 대경봉은 해발 1083.6m이다.
마지막으로 [유가사 사적]이라는 기록에서는 거문고를 닮아 ‘비슬산’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아 ‘비슬(琵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더해져, 거문고와 비슬산이 연관이 있다는 설에 힘을 실어 준다.
구슬탑을 지나 유가사에서 출발
비슬산과 거문고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가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이번 여정의 동선은 '유가사~수도암~도통바위~비슬산 정상~암괴류 계곡~유가사' 순으로 구성해 보자. 주차장에서 멀리 비슬산 정상부가 보이는 방향으로 약 300m 이동하면 유가사다. 비슬산 주봉인 대경봉의 아래에 둥지를 튼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에 도성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어 진성여왕 3년에 탄잠선사가 중창을, 고려 문종 1년에 학변선사가, 조선 문종 2년 일행선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유가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는 소속한 암자가 99개, 승려가 3천 명, 전답이 1천 마지기에 이를 정도의 규모였지만 임진왜란으로 크게 소실됐다. 이후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면서 현재 유가사 모습의 틀이 잡혔다.
입구에서 거대한 돌탑들이 소나무와 어울려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냈다. 유가사라는 이름은 옥 유(瑜), 절 가(伽)가 합쳐진 것으로 비슬산 바위가 아름다운 구슬 같으면서 부처의 형상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여기 탑을 이루는 돌 또한 비슬산 일부이니 구슬탑이면서 부처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을 아닐까. 마이산의 탑사처럼 거대한 크기의 탑이 여럿이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공원처럼 편안하다.
유가사 앞 돌탑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작은 공간
일주문을 지나면 비슬산의 넓은 가슴에 파묻힌 유가사의 모습에 마음이 한결 경건해지는 기분이다. 유가사에서 대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나 그 길은 하산길로 이용하도록 하고, 수도암으로 바로 이동한다. 수도암은 유가사의 암자로 역시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을 나서면 도성암 방향 임도를 따라 약 200m 거리의 갈림길에서 대운산 정상 안내판을 따라 등산로 입구로 들어가자.
깊은 골짜기와 완만한 능선, 변화무쌍한 등산길
비슬산은 태백산맥 줄기의 한 부분으로 남과 북으로 이어진 산세를 지녔고 규모 또한 만만하게 볼 코스가 아니지만, 비슬산만의 특성을 고려하면 재미있는 산행을 예상할 수 있다. 높은 만큼 깊은 골짜기를 가졌기에 주능선 가까이 오르기까지는 부분적으로 급경사와 거친 암반을 손으로 디디며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험한 구간은 손에 꼽을 정도며 로프도 마련돼 있다. 그렇게 산 높이의 절반 이상을 넘어서면 시야가 트이면서 경사도 완만해진다.
약 7부 능선에 오르면 정상까지 완만한 평탄면의 산길이다. 깎아내린 절벽 아래 풍경이 아찔하지만 정상 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풍경은 포근하기만 하다. 곧이어 억새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슬산은 봄철에 철쭉과 진달래 군락이 만개한 절경으로 유명하다. 그에 비해 가을철 억새 풍경은 조금 초라한 규모지만, 가을을 만끽하기에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억새를 지나면서 울창한 수림보다 작은 잡목이 많은 숲으로 바뀐다. 대관령 목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평원지대, 이곳에서 목장을 꾸려도 괜찮은 듯한 풍경이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랐다는 느낌이 다른 산에 비해 크지 않다.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지난 길을 살펴보기도 쉬운데, 올라오면서 거쳤던 암봉, 잠시 앉아 쉬었던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낙동강이 흐르고 가야산, 덕유산이 쉽게 조망된다.
억새밭을 지나 바위계곡을 넘어
대견봉을 앞두고 억새가 길을 따라 군락을 이뤘다
대견봉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을 맘껏 들이마시고 유가사로 바로 이어지는 산길로 진입한다. 이 길은 수도암을 경유해 정상에 올랐던 거리보다 짧고, 경사가 높은 편이다.
볼거리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비슬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암괴류'가 그것. 장롱만한 바위들이 골짜기에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대 암괴가 쌓인 골짜기가 2km에 달하는 경이로운 현상에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밀양 만어사 앞의 암괴는 산사와 어우러지며 그에 얽힌 전설도 있지만, 이곳의 암괴류는 국내 최대 규모로 형성되었음에도 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오전 11시에 유가사에서 출발해 오후 2시 약간 못 미쳐서 다시 유가사에 떨어졌다. 당일치기 여행치고는 산, 산사, 억새밭, 천연기념물 등 볼거리를 두루 거쳤다. 물론, 가을의 신선한 정취를 마음껏 담았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다.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
대구 비슬산 - 억새밭과 암괴계곡을 품은 오밀조밀 등산길 (한국관광공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안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