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온천탕을 한번 하고.. 호텔 조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대개 5시반이나 6시쯤에 새벽탕이 시작하는데.. 그 때 들어가면 훨씬 나이든 분들이 많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노인들이 아침잠이 없다.ㅎ
개인적으로 한식 백반처럼 일본의 저런식의 가정식 백반을 좋아하는 편이라.. 굳이 나가서 먹는 일이 잘 없다. 시간도 아깝고.
특히 미소시루, 계란말이(혹은 찜),야채조림, 생선구이, 두부와 낫또.. 이런 거 아주 좋아한다. ^^
일본의 맛집 그런 덴 이제 별로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런 게 특별히 맛있나..? 웬만한 건 다 먹어 봤으니 이젠 굳이..
처음엔 나도 찾아가고 그랬는데, 자꾸 가서 먹게 되니까, 거의 달고 짠 거라 그저 그렇다. 일본음식이 생각보다 많이 짜다.
맛집보다는 지역의 특산음식 같은 건 먹어보는 편. 관광객 상대로 이름난 맛집 따위는 거의 믿지 않는 편이다.
가시하라에서 나름 긴테츠와 JR이 다 서는 곳인데.. 한국 기준으론 그리 번화하지 않다.
삐까뻔쩍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장점은 저런 지방도시들이 다 경제적으로 살아 있고 인구도 유지되고 있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말로만 지방소멸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지방을 살리자고 하는데.. 그런 정치인들부터 다들 서울 강남 살고.. 관심도 없다.
긴테츠전철을 갈아타고 간 '아스카(비조)역'. 짧은 거리지만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개찰구 두개짜리 아주 작은 시골역이다. 역무원은 보이지도 않고.. 여기서 내리는 사람도 나랑 일본인 중년 여성 한분 뿐이었다.
그래도 아주 무인역은 아니다. 언젠가 오카야마 여행할 때 내렸던 기비쓰역은 아예 무인역이고 개찰구도 없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역앞 싸이클 렌털샵에서 대여한 전기자전거. PAS방식으로 아주 좋았다. 그날 하루 나의 애마가 되어주었다. ^^
역에서 같이 내린 일본인 여성도 여기서 봤는데..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인듯, 여기서 싸이클을 빌렸다.
하루 1200엔인가 정도 되었던 거 같다. 인터넷 쿠폰으로 할인도 받았다. ㅋ 한국돈 만원 정도. ㅎ
오래 전 여기 왔을 때 '다카마쓰고분'엔 들어가봐서.. 일단 '기토라고분'부터 가보기로 했다.
'기토라고분'. 겉으론 별 거 없다. 둥그렇게 흙을 쌓아 덮고 그 위에 또 반구형으로 쌓은 이중토분인데.. 직접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바로 옆에 '사신의관'이 있는데.. 일종의 내부 안내관이다.
벽면의 '사신도'와 천장의 '천문도', 그리고 특히 '십이지도'가 있는 게 기토라고분의 특징이라 한다.
천문도가 제법 상세하다. 아마 당시의 별자리일 것이다.
실제가 아닌 내부를 똑같이 재현한 모형이다. 정면에 사신도의 현무가 보인다. 좌우벽면은 백호도와 청룡도이다.
늘 생각해온 것이지만 저 백호는 정말 호랑이가 맞나 싶다. 뿔 달린 호랑이가 어디 있나.. 당시 중국의 해태나 기린이 아니었을 지..
일본 역사시대의 기원은 역시 이곳 나라현 중남부의 '아스카'일 것이다.
아마도 일본에서 최초의 국가체계가 성립된 것이 아스카 지역이 아닌가 싶다. 그게 소위 야마토정권이겠지만.
역사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고분시대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오래 전 나라에 갔을 때 들러보았던 다카마쓰고분도 그랬지만..
이번에 갔던 기토라고분도 천장에 천문도 및 사방에 사신도와 십이지도가 그려진 석실고분의 형태를 하고 있다.
다만 석실분의 형태는 횡구식석실분으로 이는 가야나 신라에서 유행했던 양식이며..
십이지신 역시 신라계의 특징이지만, 중국에서 건너간 양식으로 볼 수도 있겠다.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순 없겠지만, 암튼 중국에서 시작 삼국시대 한반도를 통해 이런 형태가 전래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나와서 이동하다가 만난 유적인 '가메이시(귀석)'.. 거북이처럼 보이나..? 내가보기엔.. 뭔가 두꺼비 같다. ^^
오래된 고찰인 '다치바나데라'. 쇼토쿠대자가 태어난 별궁 터에 지은 절이라고 한다.
이 주변엔 대륙에서 가져다 심은 귤나무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다치바나(귤)데라(절)인 듯.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쇼토쿠타이시(성덕태자)'가 지은 절이다.
주변엔 귤이 많았다고 하고(지금도 많다), 그가 태어난 곳이 이곳에 위치했던 별궁이었으며, 이 자리에 절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 논밭 한가운데 있어서 정말 생뚱맞은 위치인데.. 천년도 넘은 고찰인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
7,8세기 정도였을 것이니.. 1300년은 되었겠지..
쇼토쿠 태자는 천황은 아니었으나, 실제로는 그게 맞먹는 정치권력을 가졌던 인물로, 일본인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인데..
불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고, 율령을 반포했으며, 주변국들과 활발히 교류하여 일본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 역사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와 세종대왕을 합친 정도 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나라나 교토 인근의 고적들을 여행하다보면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이 보이고 그의 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걸 보면 거의 성인, 거의 부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절의 본당인 태자당엔 본존불이 아닌 태자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를 봐도 쇼토쿠태자가 성불한 부처나 보살로 받아들여졌나보다.
본전 앞의 동상은 태자가 타고다니던 흑마라고 한다.
간사이와 주고쿠지방 일부를 여행하면서 많은 사찰들을 봤지만, 이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은 쇼토쿠태자와 쿠카이대사(공해대사, 코보다이시(홍법대사)라고도 한다) 정도인 거 같다.
지금도 현대 일본인들에게 존경받는 역사 인물 순위에 항상 끼는 분이다.
쿠카이스님은 시코쿠 88개 사찰을 일주하는 '오헨로', 순례길인 이른바 헨로미치의 '동행이인'으로 유명한 분이다.
여담이지만 역사인물 1위는 대개 쎈고쿠(전국)시대를 끝낸 무장 '오다 노부나가'인 게 대부분.. 이후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늘 상위권이고..
막부정치의 시조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10위권 안에는 들었던 거 같다. 이 일본 3대무장들이 다 들어가는 거 보면 신기.. ^^
그 외에도 전국시대의 무장으로는 '풍림화산'으로 유명한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라던가..
히데요시의 무장이자 책사였던 '구로다 칸베에' 같은 인물도 해당 지역에선 널리 알려져있는 것 같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역사적으로도 흥미롭고 매력적인 시기라.. 언젠가 세키가하라에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반히데요리파인 동군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와 일본천하를 놓고 결전을 벌였던 전쟁..
불과 반나절 만에 천하가 결판났다고 하니.. 역사란 참..
왕생전 가는 길엔 사쿠라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역시 겹사쿠라다.
입구에 잠시 누워 쉬면서 생각에 잠겨보라는 말이 적혀 있어서 들어가봤는데.. 다다미가 깔린 넓은 거실구조.
일본인들은 아무도 안하던데.. 체면불구하고 진짜로 다다미에 등을 대고 누워보았다. 난 한국인 관광객이니까.. ㅋㅋ
감탄스럽게도.. 천장에 온통 꽃그림이다. 이게 여기 다 핀다고 하네. ^^
'이시부타이(석무대)고분'.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마 당시에 큰 권력자의 무덤이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아랫부분은 네모낳게 쌓았고.. 그 위에 돌더미(석실)가 노출된 상태.
뒤쪽에 입구가 있는데.. 아래로 들어가는 석실구조다. 이것도 횡구식인가..? 나도 무덤구조 전문가는 아니라서리. ^^
이미 다 털린 무덤이라.. 들어가보면 이렇게 휑하다.
아마 원래는 이 돌더미를 완전히 흙으로 쌓아올려 덮었을 것이라 하는데..
그러니까 네모난(방형) 흙기단에 석실을 넣고 그 위를 반구형 봉분으로 덮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카데라'. '오카'는 언덕이니, 마을 언덕위에 있는 절이라 해서 그냥 오카데라다. 이름 참 멋도 없이 지었다. ^^
하긴 이 부근 마을 이름이 '오카'마을이긴 하다. 지명을 딴 듯.
그리고 실제로도 오카데라의 위치는 상당히 높다. 전동 자전거로도 다 올라가기 어려울 정도라 일부는 끌고간다. ㅠ
이 절은 원래 '류가이지(용개사)'라고도 알려져 있다. 용을 덮은 절이란 뜻인데.. 그 이유는 용에 대한 전설 때문이다.
여기도 화원이 좋은데.. 본당 올라가는 길가에는 꽃들이 만발.. ^^ 사진엔 없지만 화단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곳이 전설의 '류가이이케(용개지)'이다. 용을 덮은 연못이란 뜻.
오카데라는 원래 '류가이지(용개사)'로 불리던 절인데.. 위치한 곳이 아스카의 '오카'라서 '오카데라'라고 불린다.
전설에 당시 아스카지역에서 악행을 저지르던 용이 있어 이를 법력이 높은 스님이 연못 아래에 가두고 돌로 덮어 봉인했다 한다.
그래서 '용개(용을 덮은)사'라 불렸다는 얘기.
지금도 그 용이 이 연못 아래에서 잠들어 있다고 하는데.. 전설의고향이다. ㅋ
암튼 그런 연유로 이 연못이 '류가이이케(용개지)'이고 절 이름은 '류가이지(용개사)'인 것이다. ^^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진언종파의 절이라는데.. 산속에 위치한 절로 풍광이 수려하며 조용하다.
수국이 아주 아름답다는 절인데.. 그걸 보려면 6월 중반 이후(~7월초)에 와야 한다. 우리나라 한여름과 같은 너무 더운 시기다. ㅠ
좀 다른 얘기인데.. 교토 남쪽 '우지'에 가면 '미무로토지'가 있고 이 곳 역시 수국의 명소이다.
교토 가는 이들이 우지에도 더러 가지만 대부분 호오도(봉황당)가 유명한 뵤도인 근처만 가고, 멀어서 나 같은 놈 아니면 찾아가지도 않는 곳. ^^
가는 길에 우지가미신사와 그 유명한 헤이안시대의 소설 '겐지모노가타리'뮤지엄도 있으니 쉬엄쉬엄 갈만은(사실은 한참) 하다.
무더위에 가겠냐만, 언젠가 6월말에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미무로토지와 오카데라를 다시 찾고 싶다.
아는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겐지모노가타리(겐지 이야기)'는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로..
천녀도 넘은 헤이안시대 귀족집안의 딸로 태어나 궁녀로 일하던 여성 '무라사키 시키부'에 의해 씌어진 세계최초의 소설인데..
그 옛날 고대 사회의 여성이 이런 문학작품을 남겼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다.
일본에선 흔한 거지만, 절 안에 신사도 함께 있다.
일본에 불교가 전해질 때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합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데.. 이건 우리도 비슷한 거 같다.
한국도 절 안에 토착 무속신앙이 결합되어 삼신당이 있거나 산신령 혹은 단군을 모시거나 하는 그런 게 많지 않나. ^^
오카데라의 3층목탑. 삼중탑. 형태는 어디가나 비슷비슷하다. 재건한 것인 듯.
흔치않아보이는 겹사쿠라가 있길래 저건 어떤 꽃이냐고 근처 일본인 내방객에게 물어보았다.
인근에 사는 분이라는데.. 무슨 8엽사쿠라 이렇게 알려주셨다. 일본어를 잘 모르니 다는 못알아들었다. ㅋ
이곳은 '아스카데라(비조사)'다.
6세기말 도래인들에 의해 창건했다고 알려지는.. 일본 최초의 사찰(절)이다.
사실 이 마을 명칭인 '아스카무라(촌)'는 한자로 '명일향'이라고 쓰는데.. 이 절 이름에서 '아스카'는 한자로는 '비조(나는 새)'라고 쓴다.
둘의 표기가 다르다는 건 주의할 점이다. ^^ 게다가 '비조'를 '아스카'라고 읽는 경우는 이 경우(아스카문화) 밖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어디서 듣기로 일본의 정신이라는 한자 '대화'를 '야마토'라고 읽는 것도 그 경우 밖에 없다고 들었다. 왜 그런 지는 모르겠다. ㅋ
유명한 '아스카다이부츠(대불)'..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는 창건 당시의 것이라고 한다. 아마 머리와 손 부분이라던가.
역사적으로는 6세기 중반 성왕시절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백제계로 알려져 있는 소가노 일족의 주장으로 불교가 받아들여졌고.. 6세기 말 사찰건물로는 최초로 지어졌다고 한다.
1탑 3금당의 고구려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처음에는 1탑 1금당이었으나 후대에 추가).. 지금은 다 소실되었다.
지금도 본당에 모셔진 아스카대불은 매우 인상적인데, 불상으로는 선이 굵고 당당한 모습이다.
이 불상을 만들 때 '고려국 대흥왕'이 금3백량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고구려는 영양왕, 백제는 무왕, 신라는 진평왕의 시대이나, 고려국 대흥왕이 정확히 누군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아스카데라는 우리나라의 수덕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아스카데라의 서문 밖에는 '을사의변' 사건 때 당시 왕자(이후의 '덴지천황')에 의해 베어진 소가씨 마지막 권력자의 머리가 아스카궁에서부터 날아와 떨어졌다는 머리무덤이 돌탑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을사의변)은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인데..
우리 백제계 권력집단이었던 소가혈족의 몰락으로 집권하게 되는 덴지천황이, 천황을 중심으로 강한 왕권을 확립하게 되는 이른바 '타이카개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후 그를 뒤를 잇는 '덴무천황'(덴지의 동생으로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됨)에 이르러서는 제법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되는 거 같다.
왕을 '천황'이라고 부르고 국호를 '닛폰(일본)'이라고 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 부터이다.
'일본서기'가 편찬되고, 일본 창조신화인 아마테라스신화가 확립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아스카에서 나라의 헤이조교로 천도한 후에, 아스카데라는 지금이 나라시로 옮겨지는데.. 그곳이 '간고지(원흥사)'이다.
간고지를 짓는 데 사용된 기와 등 일부 자재들이 아스카데라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천삼백년도 넘은 것이다. ^^
현재 간고지는 나라역 동쪽 '고후쿠지' 바로 남쪽에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초대천황이라는 '진무(신무)천황'을 모신 '가시하라진구'에 가보고 싶어져서 서둘러 나왔다.
배가 고파서 동네 식당에서 우동을. ㅎ
우동과 함게 나온 '카키노하스시(감잎스시)'. 사진은 '고등어스시'(사바즈시)이다.
아마도 저렇게 감잎으로 싸서 스시의 보존성을 더 높이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는데.. 진위는 모른다. ^^
가시하라진구(신궁)로 가는 길에 있는 이나리신사. 나가야마이나리신사라고 씌어 있었다.
왜 이나리신사에는 유독 저런 줄지어 선 도리이가 있는 것인 지 의문이다.
규모도 작고 뭐 그리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 거 같다.
이 곳이 진무천황을 주신으로 하는 신사인 '가시하라신궁'.
가시하라신궁의 위치는 진무천황이 즉위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가시하라의 우네비산 아래이다.
실존했는 지 의문이지만, 일본에선 신화적으로 받들어지는 천황으로 보인다.
가시하라신궁의 본궁이고.. 저기엔 일반인은 못들어간다. 저길 걸어 들어가고 나오는 거 보니 무녀인 듯.
주변 회랑 벽에는 진무천황의 일생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만 아는 글자로 읽어보니 내용이 무슨 신선같다.
가시하라신궁의 참도와 그 입구와 중간에 있는 '도리이'.
확실히 여긴 건물이고 도리이고.. 시뻘건 칠을 하지 않아 진짜 신사의 느낌, 옛 전통의 느낌이 많이 난다. ^^
사실 일본의 유서깊은 신사 신궁들을 보면 대부분 이렇더라. 교토의 신사들은 왜 죄다 그렇게 해놨는 지 원.. ㅠ
그 다음은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나라역으로.
늦었지만 술파는 데를 찾아.. '유초(유장)주조'의 '카제노모리 알파2'와 '치요(천대)주조'의 '쿠지라' 준마이긴죠를 한병씩 샀다.
전날 샀던 '이마니시(금서)주조'의 '미무로스기'와 더불어, 이 동네 '하루시카주조'의 초카라구치 준마이슈를 작은병으로 하나 더 샀었다.
이건 내가 마실라고. 엄청나게 높은 주도로 맛이 아주 '쨍'한게 강력크하다. 이게 진정한 남자의 맛이지.. ㅋㅋ
귀국할 때 3병이니.. 관세신고를 해야한다. ㅠ 젤 싼 거 기준으로 세금 내면 되지 뭐..
얘네들은 다들 흔히 쓰는 주조미로 알려진 '야마다니시키'로 만든 게 아니라, 지역에서 자기들이 직접 재배한 지역쌀로 만든 술이다.
카제노모리(풍림) 알파2는 정미보합이 22%로 흔히들 사가는 닷사이23(23%)보다 더 우수한(?) 고급술. ^^ 그러나 더 싸다. ㅋ
오사카 고베 교토를 다니면서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 니혼슈들이었는데.. 역시 지역에 오면 지자케를 살 수 있을 때 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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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개인적인 경험과 출처불명의 사실들이 있어 혹시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ㅎㅎ
첫댓글 사진만 봐도 좋군요
도시보딘 시골이
찐
일본을
느낄수 있는거 같군요
그래서 저는 대한독립만세..
아무래도 나라는 교토보다 더 지방도시이고.. 아스카는 완전 시골동네니까요. ^^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아시는대로 고구려 승려 혜자 선사이고, 또 백제의 혜총 역시 같은시기 호코사(法興寺)에서 태자를 가르쳤다니, 고구려와ㅡ백제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암튼 정치적으로 꽤 대단한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사후 저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도 드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