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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시상집약
‘시상 집약’ 이란 시상을 하나의 대상, 하나의 단어로 응축해서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보았는지요. 서정적 자아는 고통스럽게 살아온 자기 삶을 회상하고 그 고통을 견디어 나가겠다는 마음을 다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갈매나무” 라는 단어에 집약해 놓았습니다. 김소월의 「초혼」에서는 한(恨)이 되어 남은, 임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돌”로 응축해 놓았습니다.
시를 독일에서는 dichtung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응축(응결)하다, 침전시키다’는 의미를 지닌 dichten의 명사형입니다. 즉시는 말을 극도로 압축한 문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상 집약이야 말로 시의 본질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열매입니다.
22 안분지족*안빈낙도
✔안분지족(安分知足)❘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안빈낙도(安貧樂道)❘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
이 두 가지 태도의 변별적 특징은 물질적 가난함⧸도의 실천입니다. ‘안분지족’에는 만족한다는 의미만 있는 데 비해 ‘안빈낙도’에는 도를 지키는 즐거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몇 가지 작품을 살펴봅시다.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뜻을) 모르는 남들은 웃는다 하지만은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생각에는 내 분수에 맞는가 하노라
윤선도의 「만흥1」입니다. 화자는 풀로 덮은 집(띠집)을 짓고 살겠다고 말합니다. 안분지족하겠다는 자세입니다. 다음을 봅시다.
못난 이 몸이 무슨 소원 있으리오마는 두세 이랑 되는 밭과 논을 다 묵혀 던져 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하노라. 나의 빈천을 싫게 여겨 손을 내친다고 물러가며, 남의 부귀를 부럽게 여겨 손을 친다고 나아오랴? 인간 세상의 어느 일이 운명 밖에 생겼으랴.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음이 어렵다고 하건마는, 내 생활이 이러하되 서러운 뜻은 없노라. 한 도시락의 밥을 먹고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는 어려운 생활을 이것도 만족하게 여기노라. 형생의 한 뜻이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데는 없노라. 태평스런 세상에 충성과 효도를 일을 삼아, 형제 간에 화목하고 벗끼리 신의 있게 사귀는 일을 그르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밖의 나머지 일이야 태어난 대로 살아가려 하노라.
박인로의 가사 「누항사」입니다. 가난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충효, 화목, 신의)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의지, 즉 안빈낙도의 태도가 두드러 집니다.
23 어조
‘어조’는 시에서 제재나 청자,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화자의 언어적 태도, 말투를 가리킵니다. 주로 시적 정서와 관련을 맺으며 언어적인 분위기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조는 시의 분위기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시인의 개성을 드러냅니다. 어조를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결어미 : 의문형, 명령형, 감탄형 등
․시어선택 : 부드러움, 딱딱함
․문체의 선택 : 경어체, 기도체
․감정의 표출 : 남성적, 여성적
24 운율-음수율, 음보율 등
『표준국어대사전』을 열어 보았습니다.
✔운율(韻律)
시문(詩文)의 음성적 형식. 음의 강약, 장단, 고저 또는 동음이나 유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운율에 맞추어 시를 낭송하다.
✔리듬(rhythm)
➀❲음악❳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
➁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움직임을 이르는 말. ‘박자감’, ‘흐름’, ‘흐름새’로 순화.
➂❲미술❳선, 형, 색의 비슷한 반복을 통하여 이루는 통일된 율동감. 즉 농담, 명암 따위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거나 배열된 상태를 가리킨다. ‘율동’으로 순화.
이제부터 운율을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해 볼까요.
운율(韻律)은 ‘운’ (韻)과 ‘율’ (律)을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이중 운(韻, rhythm)은 같은 소리의 반복을 말하는데, 한시나 영시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수업 시간에 읽어 보았을 정지상의 「송인」을 인용합니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라는 것을.
위의 시에서 1, 2, 4행의 끝 글자인 다(多), 가(歌), 파(波)가 운(韻)입니다. 이 중에서 가(歌)는 ‘노래’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한자 눙에는 노래를 뜻하는 글자가 여럿 있습니다. 곡(曲)도 그 중 하나이고요. 그런데도 작가가 곡(曲)대신 가(歌)를 사용한 것은 운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다(多), 가(歌), 파(波), 이 세 글자는 모두 평성입니다. 한시는 단지 의미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성조와 운자를 함께 감안해서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자의 성조까지 깊이 공부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런 원리가 있다는 것 정도만 확인해 두고 지나갑시다.
김소월의 「꿈길」은 압운의 묘를 잘 보여 줍니다. 일부분을 읽어 볼까요.
물구슬의 봄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붉읏한 잎 위의 길
실 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운은 놓이는 자리에 따라 시행의 앞에 오는 두운(頭韻 ❲머리 두, 운 운 ❳), 중간 부분에 놓이는 요운(腰韻 ❲허리 요, 운 운❳), 끝자리에 사용되는 각운(脚韻 ❲다리 각, 운 운❳)으로 구분합니다. 위 작품은 각운 ‘길’, ‘숲’을 이용하여 음악적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율(律)을 설명할게요.
율(律, meter, metre)은 소리의 고저(高低), 장단(長短), 강약(强弱) 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됨으로써 형성됩니다. 장단은 말의 길고 짧음을 말합니다. 말의 길이 차이를 이용하는 것도 율격을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소리의 높낮이를 이용한 음성률(音聲律), 일정한 위치에서 특정한 운이 반복되는 음위율(音位律), 글자수가 반복되는 음수율(音數律), 한 번 호흡할 동안 띄어 읽는 횟수가 반복되는 음보율(音步律) 등이 있습니다. 이 역시 서양의 시에 주로 나타나지만, 우리말도 장단을 구별하지요.
꿩꿩꿩서방 무얼 먹고 사나. 꿩꿩꿩서방 콩을 먹고 살지.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일정한 율격이 없는 것만 같네요? 그런데 “꿩”을 길게 읽어 보세요. 즉『꾸엉』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사나”와 “살지”도 길게 읽어서 『사아나아』와『사아알지』로 발음해 보세요. 그러면 다음과 같이 읽힙니다.
❲꾸엉꾸엉 / 꾸엉서방 / 무얼 먹고 / 사아나아. 꾸엉꾸엉/ 꾸엉서방 / 콩을 먹고 / 사아알지.❳
그런데 우리 문학에서는 음의 장단보다는 음의 숫자 즉 자수를 반복함으로써 율적 특성을 드러내는 음수율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몇 가지 작품을 볼까요.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청산별곡」3․3․2조
원순문 인노시 공로사륙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 「한림별곡」3․3․4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3․3․4조
7․5조, 4․3조 등 ‘~조’ 는 글자수를 이용한 음수율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부른 노래를 다시 불러 볼까요.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모두 7․5조입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이렇게 7자 / 5자로 나뉩니다. 이 7․5조는 개화기 이후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흉내낸 것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 비판을 받아들인다면 7․5조를 민요조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음수율이 근대 이후에 우리나라 시에서 널리 사용되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시간의 운율을 공부할 때 가장 자주 보이는 게 음보율입니다. 음보(音步〔소리 음, 걸을 보〕)는 시 작품을 읽을 때 적용되는 개념으로 소리의 등장성(等張性〔길이가 같은 특성〕)을 말합니다. 머릿속에 악보를 떠올려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악보는 ‘마디’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각 마디마다 연주할 때 걸리는 시간이 같아요. 이런 특성이 언어에서는 음보로 나타납니다.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차근차근 접근해 볼까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작품은 흔히 3음보 율격으로 읽습니다. 그러니까 [나 보기가 / 역겨워 / 가실 때에는]으로 읽습니다. 각 마디를 읽는 시간이 같다면 당연히 “역겨워”보다는 “가실 때에는”을 좀 더 빠른 속도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죽어도 / 아니 눈물 / 흘리오리다]처럼 읽으면 한 연을 모두 읽게 됩니다. 이런 것이 3음보 율격입니다. 3음보 시는 세 개의 음보를 읽고 한 번 쉬는 식으로 읽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에 음보 개념을 적용해 볼까요.
대동강 / 너븐디 / 몰라셔 //
배내여 / 노한다 / 샤공아 //
고려가요「서경별곡」3음보
보리밥 / 풋나물을 / 알마초 / 머근 후에 //
바희긋 / 물가의 / 실컷 / 노니노라. //
그나믄 / 녀나믄 일이야 / 부럴 줄이 / 있으랴. //
시조「만흥2」4음보
남들은 / 자유를 / 사랑한다지마는 // 나는 / 복종을 / 좋아하여요. //
자유를 / 모를는 것은 / 아니지마는 // 당신에게는 / 복종만 / 하고 싶어요. //
「복종」3음보
지금은 /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 봄은 오는가. //
나는 / 온몸에 / 햇살을 / 받고 //
푸른 하늘 / 푸른 들이 / 맞붙은 / 곳으로 //
가르마 같은 / 논길을 따라 / 꿈 속을 가듯 / 걸어만 간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4음보
해야 솟아라. / 해야 솟아라. // 말갛게 씻은 얼굴 / 고운 해야 솟아라. /
/ 산넘어 / 산 넘어서 // 어둠을 / 살라 먹고 // 산 넘어 / 밤새도록 // 어둠을 / 살라 먹고 // 이글이글 / 앳된 얼굴 // 고운 해야 / 솟아라. //
「해」4음보 혹은 2음보의 중첩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볼게요. ‘4․4조 4음보’는 무엇일까요? 네 글자 네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같은 길이로 네 마디씩 읽으면 내용이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고전문학 작품은 3․4(4․3)조, 4음보로 된 작품이 많습니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관동별곡」),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상춘곡」),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정몽주의 시조)가 그 예입니다.
고려가요에서는 3․3․2조 3음보가 자주 나타납니다. [살어리 / 살어리 / 랏다 // 청산에 / 살어리 / 랏다]나 [가시리 / 가시리 / 잇고 // 버리고 / 가시리 / 잇고] 등으로 읽히지요. 이처럼 우리 시가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해 온 율격을 ‘전통적 율격’ 혹은 ‘민요조의 운율’이라고 합니다.
25 원형적 심상, 문화적 심상
1_원형적 심상
‘원형’(原型, archetype)의 사전적 의미는 ‘근본적인 형태’입니다. 오늘날 이 말은 인류가 무의식 속에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용물을 뜻합니다.
심층심리학을 주장한 융(Carl Gustav Jung)에 따르면 원형이란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유전되는 것, 문학 작품 및 신화, 종교, 꿈, 그리고 개인의 몽상 안에 표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형은 시간과 공간,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반복적으로 혹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입니다. 예컨대 저승세계를 색깔로 나타낸다면 아마도 검은색이겠지요?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나라TV 프로그램에서 저승사자는 검은색 도포를 입고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그대를 남겨둔 채 저 쓸쓸한 어둠 속으로 나는 가야 하나요.”라고 슬퍼하는 서양시에도 죽음의 세계가 “쓸쓸한 어둠”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동서양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태양’은 정열의 표상으로, ‘계모’는 나쁜 여자로 나타납니다. 이런 것을 ‘원형’이라 하고, 이들이 갖는 심상을 ‘원형적 심상’이라고 합니다.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도 일종의 원형입니다. 이것은 동서양 신화에서 영웅은 항상 비정상적으로 출생한다는 사실과 일치 합니다.
2_문화적 심상
문화적 심상은 어떤 심상이 특정한 문화권 안에서만 지니는 의미입니다.
서정주의 「귀촉도」에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하는 표현이 보입니다. 이 시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서양 사람들이 “흰 옷”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까요? 우리문화에서는 ‘흰 옷’이 장례 의식을 의미하지만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문화적 심상이라고 합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국화’를 보고 장례의식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 중에서도 서구적인 관념을 지닌 이들은 국화를 보고 ‘죽음’을 먼저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동양 문화권에서 국화는 ‘절개’를 나타냅니다. 이것 역시 문화적 심상의 한 예입니다.
26 이미지
‘이미지’(image)는 영어이고, 한자어로는 ‘심상’(心象)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입니다. 말이 조금 어렵나요? 좀 더 쉽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학생은 ‘바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 이런 생각이 나겠지요?
㉠ 파란 물, 흰 파도, 갈매기, 배
㉡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 바다 냄새
사람들은 같은 ‘바다’를 생각하면서도 각각 다른 것을 연상합니다. 그 중에서도 위의 ㉠은 눈으로 보는 것, ㉡은 귀로 듣는 것, ㉢은 코로 냄새 맡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은 시각적 심상, ㉡은 청각적 심상, ㉢은 후각적 심상입니다. 이런 심상들을 정신적 이미지, 또는 감각적 이미지라고 합니다. 이미지를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에는 비유와 상징이 있습니다.
1_비유적 이미지
비유 등의 수사적 표현이나 유추에 의해 표현되는 심상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심상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은유나 직유, 활유, 제유, 환유 등의 여러 가지 비유법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김춘수의「나의 하나님」에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 늙은 비애다 /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라는 은유법이 보입니다.
2_상징적 이미지
상징적 표현에 의해 드러나는 심상입니다. 비유적 심상보다 폭과 깊이가 넓고 깊으며, 대체로 한 작품 속에서 몇 번 반복되면서 시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이상화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봄”은 광복을 상징합니다.
이미지는 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합니다. 아래 자료를 잘 읽어 가면서 공부를 더 해 보길 권합니다.
이 용어는 문학 작품에서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시키도록 자극하는 말을 뜻한다. 따라서 이것은 감각적 요소를 되도록 배제하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상력에 호소하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상은 추상적 내용에 대한 장식이나 설명이 아니라 작품의 형성에 참여하는 본질적 요소로서 인정되어 현대 비평에서 매우 중시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이 용어는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쓰이는데,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가장 넓은 의미로서, 문학 작품에서 축어적 묘사나 비유의 보조관념들에 의해서 언급된 감각적 지각의 모든 대상과 그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좁은 의미로 생생하고 상세한 시각적 대상이나 장면들의 묘사만을 가리키는 경우다.
그리고 셋째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경우로서, 독자의 감각적 재생을 만들어 주는 주된 언어적 표현인 비유의 보조관념을 의미한다. 이런 용법은 신비평에서 심상을 시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그리고 시의 의미와 구조, 효과들을 파악하는 주요 단서로서 강조한 것에서 연유한다.
27 ‘임’ * ‘님’
임과 님은 어떤 차이가 있는 말일까요?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봅시다.
✔님
(사람의 성이나 이름 다음에 쓰여)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홍길동 님 / 길동 님 / 홍 님
✔님
➀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높 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사장님 / 총장님
➁ (사람이 아닌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대상을 인격 화하여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달님 / 별님 / 토끼님 / 해님
✔님
➀ ‘임1’의 옛말.
➁ ‘주인’(主人)1의 옛말.
이번에는 ‘임’을 찾아볼까요?
✔임
사모하는 사람.
임을 그리는 마음 / 임을 기다리다. / 임을 못 잊다. / 임과 이별하다.
위 사전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랑하는 사람은 ‘임’이라고 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님’은 ‘임’의 옛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용운 시인이 쓴 「님의 침묵」은 작품 제목, 즉 고유명사입니다. 이럴 때는「님의 침묵」이라고 쓰는 것도 허용됩니다.
28 장별 배행 시조, 구별 배행 시조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시조는 위와 같이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을 한행으로 삼습니다. 즉 “오백 년~ 돌아드니”가 초장입니다. 이렇게 한 장을 한 행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장별 배행 시조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현대시조는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목메어 흐느끼면
꽃잎도 떨리는데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이렇게 표현하는 기법을 쓰기도 합니다. 이때는 한 구(句)가 한 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별 배행 시조라고 합니다. 구 2개가 모여 한 장이 됩니다. 위의 작품을 장별 배행 시조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목메어 흐느끼면 꽃잎도 떨리는데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29 점층 * 점강
‘점층’은 시상이 전개 과정에서 점점 넓어지고, 커지고, 강해지는 표현 방식입니다. 그러한 구조를 ‘점층적 확장 구조’라고 부릅니다. 점층적 확장 구조는 간단한 문장을 앞에 제시하고, 시상을 전개해 가면서 문장을 점차 확장해 나갑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좋겠네요. 김수영의「눈」의 첫 연을 볼까요.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3행으로 되어 있네요. 1행을 보면 ‘주어 + 서술어’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2행은 수식어 “떨어진”이 붙어 문장이 확대되었고, 3행은 “마당 위에”가 덧붙어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점층적 확장 구조입니다.
점층적으로 시상을 강조하는 작품을 하나 더 볼까요. 김지하의「타는 목마름으로」의 두 번째 연을 인용합니다.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라든가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그리고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와 같이 점층적인 표현을 이용하여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민주주의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절망하게 되는 것도 이 표현 기법이 내는 효과입니다.
점강법은 점층법과 반대로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도련님 가시는 것을 바라보니 가는 대로 적게 뵌다. 이만큼 보이다가 저만큼 보이다가 달만큼 별만큼 나비만큼 불티만큼 망중고개 넘어 아주 깜박 사라지니 그림자도 안 뵈네그려. (「춘향가」)
30 중의법
‘중의적’ 표현을 설명합니다. 먼저, 시조를 한 수 보아 주세요.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한하노라.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먹었다는 것인가.
비록 풀일지라도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생겨났는가.
성삼문이 지었다는 시조입니다. 시인은 중국 사람들이 지조를 지킨 인물이라고 자랑하는 “백이와 숙제”마저도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매서운 기개를 보여 줍니다. 수양산은 백이와 숙제가 부당한 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살지 않겠다며 들어가 은둔했던 산입니다. 그런데 이 시조의 “수양산”은 그 산의 이름이자, 단종을 폐위시킨 수양대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한 단어가 두 개 이상의 의미로 사용될 때 이를 중의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 간들 엇더리.
초장의 “벽계수”는 푸른 시냇물을 뜻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배경 설화에 등장하는 남자를 가리킵니다. 또 종장의 “명월”은 밝은 달인 동시에, 이 작품을 쓴 황진이의 기명(妓名〔기생 기, 이름 명〕)입니다.
이 작품을 사전적인 의미로만 이해하면, “푸른 시냇물은 한번 바다로 흘러가면 산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니 보름달이 밝은 때 한번 쉬었다가 흘러갑시다.” 이런 뜻이 됩니다. 반면에 중의적인 표현으로 해석하면 “이봐요 벽계수 씨, 사람은 한번 늙으면 다시 젊어지지 못하는 법이니 나 명월이가 여기 있을 때 쉬어 간들 어떻겠어요.” 이렇게 풀이 됩니다. 화자인 황진이는 중의법을 사용하여 청자인 벽계수를 절묘하게 조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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