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만 천천히 왔어도, 한 걸음 아니 반걸음만 옆으로 걸었어도 한 사람의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7급 공무원. 대한민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주무관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전남 곡성군청 홍보팀에서 일하는 양대진(39)씨는 5월 들어 한층 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관객 수 600만을 넘어 700만에 도전하는 상반기 흥행작 영화 ‘곡성’이 개봉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곡성군이 함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영화 내용은 잔혹 스릴러였지만 곡성군은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내 ‘범죄 없는 마을, 곡성’을 알리는 호기로 삼았다.
5월의 마지막 날. 야근을 마치고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광주광역시행 9시 막차를 탄 양 주무관은 마침 마중 나온 가족과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던 중 위에서 떨어진 사람과 충돌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는 공무원이 꿈이었다. 어려운 생활 속 열등감에 시달려 온 그는 “나는 쉽게 얻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남들은 왜 쉽게 행복할까…”란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도 아닌 어느 아파트 20층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남편을 마중 나온 임신 8개월 만삭의 아내와 ‘우리 집 갑(甲)’이라며 귀여워 어쩔 줄 몰랐던 아들의 눈 앞에서 공무원 양씨는 공무원을 지망했던 대학생과 함께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그것도 10년이 넘도록 다른 나라에 자리를 내주지 않고 압도적 1위를 달린다.
그러다보니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국가적 재난 상태였던 경제위기 땐 아이 셋을 내던지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까지 던져버린 엄마로 인해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 투신자살은 내 집, 남의 집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경찰과 119구급대가 출동해 시신을 수습해 가고 나면 사후처리는 직원들 몫으로 남는다. 관리직원과 경비원, 미화원들은 대부분 투신사고를 수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사람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비눗물로 수십 번을 청소하고 락스를 통째로 뿌려 봐도 피비린내는 오래 머무른다. 청소를 마친 직원들의 코에선 비린내가 가시지 않고, 처참한 시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아 며칠간은 밥맛을 잃기도 한다.
모 아파트에서 기전과장으로 근무하는 A씨는 건물 바로 옆 화단에 들어갈 때면 늘 안전모를 착용한다. 몇 해 전 화단 청소를 위해 들어갔다가 바로 뒤에 음료수 병이 떨어지는 아찔한 경험을 겪은 이후 생긴 습관이다. 병이 떨어진 직후 위를 올려다봤지만 수십 층 그 어느 발코니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여름에도 안전모를 챙겨 쓰는 A과장을 보며 동료들은 ‘오버’한다고 웃지만 그에겐 작은 트라우마가 생긴 셈이다.
아파트 화단에 떨어진 물건들을 모아보면 별의 별것들이 다 있다. 휴지나 비닐 등의 쓰레기는 물론이고 장난감과 화장품에 화분과 벽돌까지 떨어져 있어 아찔한 느낌을 준다.
B관리사무소장은 몇 년 전 옥상을 순찰하다가 깜짝 놀랐다. 전날 몰아친 태풍으로 인해 벤틸레이터가 떨어져 난간에 걸쳐 있었던 것. 벤틸레이터는 각 가구의 환기구가 이어진 옥상 끝에 빗물 침입을 차단하고, 상부의 흡인 효과를 늘려 공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육중한 철 구조물이다. 사람 키보다 크고 직경이 1m에 육박해 한 사람의 힘으론 들기도 버거운 그 구조물이 만에 하나 27층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 후 각 동 옥상 벤틸레이터를 비롯해 난간 등의 구조물을 체크하는 건 B소장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장마와 태풍이 예보될 때면 더욱 가슴을 졸이며 대비하고, 사고 없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건축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한민국 아파트가 키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 해운대나 인천 송도신도시를 가보면 어마어마한 마천루가 눈 앞에 펼쳐진다. 업무용 첨단빌딩처럼 보이는 그 건물들은 모두 주거시설이다.
얼마 전까지 10층만 넘어도 ‘고층’ 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50~60층 아파트를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80층 아파트가 등장했으니 승강기 버튼을 누르기 위해선 지하까지 80개가 넘는 단추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정도다.
그러나 하늘로 치솟는 건축기술에 비해 안전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위에서 떨어지는 낙하물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그나마 화단과 녹지 조경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오래된 아파트는 건물 바로 옆이 인도나 주차장으로 돼 있어 사람의 접근이 용이해 낙하물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형 창문과 탁트인 생활을 선호하는 탓에 이불을 털던 주부가 중심을 잃고 추락사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현재로선 별 대책이 없다. 어린이를 포함해 고층생활에 대한 입주민들의 안전의식만이라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몸을 던진 대학생의 가족이 양 주무관 가족을 찾아 백배사죄했다. 양씨 가족은 “두 가족 모두 피해자”라며 용서했다. 양 주무관에 대한 ‘공무상 사망’이 인정돼 유족 보상금 지급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이어 곡성군은 보훈처에 후속절차인 순직신청을 할 예정이고, 유근기 곡성군수는 부인을 계약직으로 채용할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등 다각적인 유가족 지원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가족에게 남은 상처는 너무 크고 아프다. 여섯 살 아들과 만삭의 엄마는 사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파트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