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로 강경, 목포에 이어 세번째 답사여행입니다.
군산은 오래전부터 자주 찾던 곳이라 여행을 떠날때 드는 작은 흥분도 없는 동네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곳인지라 가볍게 옆동네 마실가는 기분입니다..
근대문화유산도 대부분 한 번이상 가본 곳이라 벚꽂구경이라는 구실로 마나님을 꼬셔서 동행을 합니다.
강경이나 목포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도보로 이동을 하였는데
군산행 비둘기호가 폐지되고 시내에 있던 군산역이 외곽지역으로 이전해버려 기차여행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전군도로와 은파공원 벚꽃구경도 할겸 차를 가지고 다녀왔습니다.
군산시청 홈페이지에 군산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목포시와 비교하면 군산시가 얼마나 근대문화유산에 예산을 투입하고 홍보하면서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군산여행을 시작합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맨 처음 찾은 곳은 춘포역입니다...
춘포역은 행정구역상 익산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길에 문득 떠올라 들리게 됩니다.
2005년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삼례와 익산사이 만경강가에 위치한 춘포역은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된 곳입니다.
춘포에는 춘포역사와 호소카와 농장 가옥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 두 곳은 다음 익산편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합니다.
춘포역과 호소카와 농장 가옥을 들린 후 만경강 뚝방길로 임피역까지 갑니다.
길 양쪽에 가로수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생각보다 꽃이 피어있지를 않습니다..
뚝방길로 들어서자 마자 오늘 제대로 된 벚꽃구경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사진 날짜을 보니 일주일정도 빨리 나섰더군요.
집 주변에 피어있던 꽃을 보고 판단했던 것이라 착오였습니다..
블러그에 올린 사진 날짜만 확인했더라도 피할 수 있었는데 충동적으로 나선 여행이라 챙기지 못했습니다.
내심 마음속으로 꽃구경은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이 있었던 듯 싶습니다.
만경강은 완주군 동상면에서 발원하여 소양천, 고산천,전주천, 익산천, 탑천등의 지류와 합하여
서해로 흘러가는 길이 80km의 하천입니다.
동진강과 더불어 드넓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젖줄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 바로 근처에 아중천이 흐르는데 이 아중천이 소양천과 합류하여 만경강으로 흘러갑니다.
배낭을 메고 집에서 출발하여 만경강 끝자락인 심포항까지 함 걸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은 합니다.
이러다 언젠가는 배낭을 메고 출발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만경교입니다....
왼쪽 난간 정면에 단기 4261년 2월 준공이라는 표식이 있습니다...
1928년에 개통되었으며 전군도로와 익산시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 길이는 550m정도이고
차량은 통행을 못하게 막고 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다닐 수 있습니다.
곳곳에 난간이 허물어지고 떨어져 나가 있는데 1990년 신만경교가 개통될때까지
62년간 전주 , 익산, 군산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활을 한 다리입니다...
세월의 흐름을 못이기고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모습이 처량하기만 합니다.
만경강 뜩방길을 따라 가다가 탑천을 만나 국도 26번인 전군도로로 들어섭니다.....
지금은 전주에서 군산까지 국도 21번인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 교통량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국도26번 전군도로는 1908년에 조선에서 처음으로 포장된 신작로인데
길이 40km로 도로 양쪽에 벚꽃나무가 심어져 벚꽃백리길로 불리어졌습니다..
전용도로가 생기기전 교통량도 많고 사고도 많은 악명높은 도로였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한적합니다..
봄에는 벚꽃구경으로 복잡했고 여름에는 포도장사로 시끌벅적한 도로였습니다.
임피면 술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2005년 등록문화재 제 208호로 지정된 임피역사입니다...
원래는 임피면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했으나 읍내리의 양반들이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반대하여
노선을 술산리를 경유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양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예전 비둘기호를 타고 군산을 갈때 거쳐가던 역인데 그 당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그때도 조용하고 한적한 역이었지만 그 고요함을 즐길 여력은 없었을겁니다...
지금이야 이런 적요한 풍경을 애써 찾아다니며 즐기지만...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속하였다가 2008년부터 장항선에 편입되었습니다.....
전에는 장항선이 장항에서 시작하여 천안까지였는데 지금은 익산에서 천안까지로 바뀌었더군요.
1936년 군산선의 역사로 건립되어 일제시대에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의 역활를 하였습니다.
1995년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5년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으며.2008년부터 여객 취급도 중지되었습니다..
여객 취급이 중지되자 임피역 주변은 급속하게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작년 봄에는 한창 공사중이여 어지러웠는데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 깔끔해졌습니다.
역사 왼쪽편에 오래된 전시용 기차도 가져다 놓았고 잠시 쉬어 갈 수 있을 정도의 공원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임피역사를 찾아주신 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습니다.
임피역에서 호원대학교를 지나면 동네에서는 나름 알려진 소머리국밥집이 있습니다...
길가에 콘테이너박스로 허름하게 지어진 식당이지만 육회와 국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난 집입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에는 차가 줄지어 있고 문을 열고 식당안으로 들어가니
빈 테이블이 한두군데 있을뿐 손님으로 만원입니다....
그런데 일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여자는 한 분도 없고 시꺼먼 아자씨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뻘쭘하게 여자손님이라고는 마나님 혼자입니다...여자분들 국밥 별로 좋아하지 않나 싶더군요...
울 마나님 데리고 다니면서 내 좋아하는 순대국밥이나 찐빵 , 붕어빵, 호떡이나 먹인다고 핀잔을 줍니다...
어떡합니까...생각나는 것도 없고 지나가는 길인데.....^^
식사를 끝내고 임피면 읍내리를 거쳐 군산시내로 들어 갑니다......
임피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은 백릉 채만식선생입니다.. 생각나는 다른 한 분은 맥코이성님이 아닐지...^^
읍내리 안쪽으로 선생의 생가터를 이리저리 찾던중 임피 채만식도서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채만식선생은 임피군 동상리에서 태어났고 채만식도서관 오른쪽에 있는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 1922년 은선홍과 결혼을 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합니다.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가 장기 결석으로 퇴학을 당합니다.
춘원 이광수의 도움으로 동아일보에 입사하고 조선일보, 개벽등 기자로 전전하다 전업작가로 나섭니다.
채만식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도서관으로 그리 크지 않은 곳이지만
임피 인구에 비하면 도서관이 있다는 자체로 인상적인 곳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도서관이 일요일과 공휴일은 정기휴관일이라는 점. 도서관 운영치고는 특이합니다..
공무원들도 일요일에는 쉬어야죠....
유리로 된 케이스 안에는 선생의 졸업장들과 탁류, 태평천하 , 레디메이드등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채만식도서관 윗쪽으로 임피향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향교 오른쪽에는 대성중학교가 있습니다...
1403년 태종때 세워지고 1706년 숙종때 현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이 향교와 노성당 보니 임피지역 유림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임피역사가 현재의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임피향교는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인 공자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인 명륜당, 그리고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삭월과 망일에 분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대성전은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증자, 자사, 맹자, 주자, 정명도, 정이천, 주희(주자)를 배향하고 있습니다..
정통 성리학의 중심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네요...
동,서벽에는 한국의 18현, 동벽에는 설총,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쪽 벽에는 최치원,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 각각 배향하고 있습니다...
명륜당 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 갑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봄날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게 해줍니다.
대나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날라옵니다.
마치 학동들의 천자문 읽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도서관과 향교, 임피초등학교 앞에 인공적으로 연못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연못 중앙에 기와를 올린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수령 백년 이상인 느티나무들이 화려하면서 묵직한 풍경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잎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인데 푸른 잎이 나오는 여름에는 어떤 풍경일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오른쪽 낮은 흙돌담 안쪽으로 매화꽃 활짝 피어 있는 곳은 노성당이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임피유생들이 역대 수령들의 위패를 배향하고 1년에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1855년 철종때 세워진 곳인데 임피 유생들이 모여 풍류와 시가를 즐기기도 했고
조선 말기에는 임피지역의 행정업무를 보던 이방청 건물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노인들의 쉼터인 경로당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임피구경을 마치고 군산으로 가는 길, 금강하구둑 근처에 있는 채만식문학관이 생각납니다..
저는 한 번 가봤지만 마나님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넓직한 주차장에 차라고는 관광버스 딱 한 대 있습니다..
천안여고 학생들이 소풍을 왔다고 합니다.
채만식 작품이 근대 문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나 학력고사 시험볼때 항상 언급되던 작가였던 것 같습니다.
울 마나님 어릴적 기차길 옆에서 자라서 그런지 기차길만 보면 좋아합니다...^^
문학관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데스크에 문화해설사 분이 계십니다.
나이 지긋한 여성 해설사분에게 방금 임피에서 오는 길인데 생가터를 찾지 못햇다고 하니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길가에 있는 표지석이 적어 찾기 힘들었을거라 하면서 군산시에서 이 땅을 매입할려고 하는데 땅주인이 알박기를 하고 있답니다.
만나서 매도 요청을 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군산시청 홈페이지에 생가 복원 요구하는 글을 올리면 좀 더 빨리 이루어질거예요."합니다.
제가 "그리 비싸게 땅을 매입해서 생가 복원하면 별로인 것 같은데요" 하며 웃으면서 지나갑니다.
백릉 채만식은 190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하였으니 그리 길지 않은 삶입니다.
선생의 생애는 폐결핵으로 사망할때까지
항상 질병이 가까이 있었고 은선홍과 초혼의 실패로 고통받았으며 고독과 가난에 시달린 지난한 삶이였습니다.
까뮈도 축구를 좋아했는데 선생도 축구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고등학교시절 축구선수였으며 대학에서는 학교대표선수를 맡을 정도로.
군산 여행, 특히 근대문화유산에 눈길이 가신다면 탁류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채만식문학관을 관람하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태평양전쟁 말기 친일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살아 남기 위한 소극적 친일이라고 하지만 선생 본인도 해방후 47년에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변명했습니다.. 본인의 친일행위를 최초로 인정한 작가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관을 나서는데 선생의 작품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태평천하중 윤진사가 울부짖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하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하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채만식문학관에서 군산 시내로 가다보면 이마트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마트 맞은 편에 경암동 철길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찍는 분들의 출사지로 유명세를 탓던 곳이지요.
철길마을의 형성된 내력을 보면 원래 경암동은 바다였는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매립해 방직공장을 세우면서 육지로 변하게 됩니다.
해방 후 황무지나 다름없는 매립지라 땅주인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갈 곳 없던 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철길이 놓인 것은 1944년으로 군산시 조촌동에 있던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철길입니다.
철길의 정식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이였고 공장과 군산역을 잇는 선로입니다.
총 연장 2.5km의 노선이고 이 가운데 철길마을을 통과하는 부분은 1.1km정도 됩니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2008년부터 기차가 다니지 않는데 기차가 운행할 당시에는 시속 10km정도의 느린 속도로 운행하였습니다.
5-10량 정도의 컨테이너를 실은 객차를 디젤기관차가 끌고 오전에만 두 번 정도 다녔다고 합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역무원 세명이 기차 앞에 타고 호루라기를 불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고
이 소리에 주민들은 선로에 있던 물건을 치우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비록 느린 속도지만 철길에 워낙 붙어 있다보니 집들이 무너질듯 흔들렸고 요즘 기차와 다르게 소음도 굉장했다고 합니다.
2009년 웅포캠핑때 오팔형과 함께 철길마을을 다녀간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철길 마을 풍경이 지금보다 더 퇴색되어 있었고 어지럽다는 인상이 강하였습니다.
지금은 4년전보다 더욱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활기까지는 아니지만 무언지 모를 밝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밝은 기운의 정체가 행정기관의 손일 수도 있고 따사로운 햇빛과 공기의 영향일 수도 있다 싶었습니다.
앞으로 3,4년후의 철길마을 풍경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꼭 찾아가서 확인해보고 싶어집니다.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군산항으로 가다보면 구군산역 뒷편에 3대 70년 전통이라는 중동호떡집이 있습니다..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맛집입니다..
호떡 먹을려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집이 한국에 이 집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계산을 하고 있는 주인장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일하시는 분만 여섯분이나 됩니다...
네 분은 밀가루를 밀고 잘라서 흑설탕을 넣고 동그랗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두 분은 호떡 굽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사먹는 풍경에 익숙한 저는 이 낮선 풍경에 충격을 받습니다...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나님을 굳이 떠밀어 호떡집 풍경을 한 번 보고 오라고 합니다..
3개에 이천원인 중동호떡입니다.....
겉표면에 기름기는 거의 없습니다...기름에 튀기는 방식이 아니고 구워 나옵니다..
속은 흑설탕을 사용하는데 먹음직스럽다고 마음껏 베어 물면 곤혹을 치를겁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설탕 녹은 물이 줄줄 흐르니 먹을때 주의하셔야 합니다.
기름에 튀기는 호떡보다는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째보선창에서 바라본 군산항 모습.
커다란 함정이 있는 곳이 진포해양공원이고 오른쪽 중앙에 군산시 해망동에서 장항읍 원수리까지
연결해 주는 군장대교 공사현장이 보입니다.
째보선창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유래는 옛날 이곳 선창에 째보라고 불리는 객주가 있었는데
그가 이곳 포구의 상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기에 째보선창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목포에서는 포구의 모습이 안쪽으로 째진 모습이 마치 째보처럼
생겼다고 하여 째보선창으로 불리웠다고 하네요.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 건지는 아마 누구도 모릅겁니다...전설의 고향 이야기와 비슷한 소리죠.
군산내항에 있는 일명 뜬다리라고 불리우는 부잔교입니다.
부잔교는 부두에서 폰톤(물에 뜨도록 만든 상자형의 부채)을 물에 뛰우고 그 위에 철근콘크리트,강판, 목재로 바닥을 깔아
여객의 승하선, 화물의 적양에 편하도록 만든 구조물의 간이부두인데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곳에서 많이 이용하는 시설입니다.
군산내항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으로 고려대는 진성창이 자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칠읍해창이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 역활을 한 포구였습니다.
일본은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1905년 1차 축항공사를 시작으로 1921년까지 많은 공사를 통해 연 80만톤에 달하는 수출입화물하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잔교는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부두라고도 하며
1918-1921년, 1933년 준공되었다고 합니다.
3000톤급 기선 6척을 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군산 내항에 자리 잡고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입니다.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해군함정과 장갑차, 전투기등 퇴역 군장비로 채워져 있습니다..전부 미국산이네요..
진포대첩과 퇴역무기들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될까요...공짜로 받았는지는 몰라도 상상력의 빈곤을 느낍니다.
현재 군산내항은 토사가 쌓여 수심이 얕은 관계로 소형 어선들이 주로 사용하고 중대형 선박들은 외항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내항 주위로 상당히 넓은 공간이 비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빈공간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어 보기 좋았는데 지금은 황토흙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황량함 그 자체입니다...이곳에 유채꽃이 피어 있다면 그림이 달라졌을텐데 역시 돈이 문제인가요.
진포해양테마공원 앞에 위치하고 있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입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23년 나카무라 요시헤이(국내에 남아 있는 작품이 천도교 중앙대교당, 덕수궁박물관과 서울 중앙고등학교 동관과 서관이 있슴)의
설계로 지은 벽돌조 건물로서 건평 313.5평의 2층 건물인데 실제로는 4층 높이정도 됩니다.
구 군산세관건물과 나가사키18은행과 더불어 군산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서
그 당시 경성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건축물이였다고 합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초봉이 첫번째 남편 태수의 직장이 조선은행이였습니다.
작년 봄만 해도 가림막을 쳐놓고 공사중이였는데 지금은 주변 조경공사까지 완공단계에 있습니다..
혹시나하고 문을 열어봤더니 열리더군요...신나냄새로 가득한 내부는 내장공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깥에서 볼때보다 더욱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면에 돌출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으며.
외벽 중간 보머리를 상징하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붕은 우진각형식(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를 짓고 있는 지붕형식으로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모양이며 측면에서는 삼각형모양을 함)으로
함석판 잇기로 마감하였으며 물매를 매우 급하게 처리해 장중한 느낌이 드는 건축물입니다.
해방이후 조선은행은 한국은행으로 바뀌면서 전주로 이전하였고 이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얼마전까지 플레이보이라는 나이트클럽으로 이용되다가 내부화재가 발생하고 건물훼손이 심해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면서 문화재청이 보수정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구나가사키 18은행 뒷편 부속건물인데 현재는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8은행 주변으로 근대시절 건물들을 새로 건축하여 깔끔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제시대 용도나 기능을 확인할 수 없는 건물인데 지금은 장미갤러리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2호로 지정된 구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입니다.
군산 지역 최초의 은행건물로서 1907년에 건축되었습니다.
나가사키18은행은 일본 지방은행 중 열여덟 번째 생긴 은행으로서 나카사키주하치 은행이라고도 합니다.
일제시대 은행건축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지어 외관이 폐쇄적이며, 부분적으로는 인조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재 은행 본관 정면 출입구와 내부는 많이 개조된 상태이며
수직창 상부의 반원 아치창 부분과 부속건물 2개동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해방후 대한통운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중고가구 매매센터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말끔한 모습이 새로 지은 건물같습니다.
1930년대에 건립되어 무역회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2012년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서 이곳으로 이전 개축하면서
미즈카페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이 일대는 일제시대 쌀 수탈의 거점지역으로 주변에 일본인들의 무역회사와 상업시설들이
즐비하던 거리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답사의 중심 역활을 하는 근대역사박물관입니다.
근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 있는 설립취지를 보면
"전통물류유통 도시로서의 역활를 수행하던 우리시의 정체성 확인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의 비젼을 제시하고,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유산을 소유한 군산시의 문화적 특징을 관광자원으로
홍보하고자 시만의 여망을 모아 2011년 개관하였다."
설립취지대로 홍보를 잘 하기 바랍니다만 전시물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홈페이지를 구경하던중 군산시에서 2019년까지 근대문화도시조성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구군산항역 복원사업, 내항 페철도 활용 레일바이크사업, 일본식 가옥 탐방로 조성사업등이 눈에 뜁니다.
2019년에 가면 군산 구도심이 확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는데 2012년 11월 부터는 입장료를 받습니다.
박물관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물 크기의 어청도 등대입니다...
이 사진은 작년 봄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실물 크기의 어청도등대를 보고 작년에 어청도까지 등대를 보러 배낭메고 간 적이 있습니다.
어청도 등대 실물 모습입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중국 산둥반도와 약 300km정도 거리의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 있는 등대로 1912년에 축조되었습니다.
일년정도 된 어청도 여행이 엊그제 다녀온 듯 머리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역사박물관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건물입니다.
등록문화재가 아니라 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08년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적벽돌을 수입하여 유럽양식으로 건축하였습니다.
건물 앞쪽에 포치를 설치하고 외벽은 낮은 화강암 기단 위에 적벽돌을 쌓았습니다.
창틀은 원래 목재였으나 현재는 알류미늄으로 바뀌었고 연화조동판의 지붕위에 세 개의 바늘탑을 세웠습니다..
전에는 개방을 하였는데 지금은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필요하면 박물관으로 연락하랍니다...연락하면 열어줄까요?.
입구에 들어서면 현관 좌우로 방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오른쪽 복도 중간에 중앙홀로 연결하는 문이 있습니다.
내부의 벽과 천장은 회반죽으로 마감하였으며 창과 문 위쪽에 아치형태의 장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양식의 건물로는 서울역사와 한국은행 본관 건물이 있습니다.
군산항이 개항 된 것이 1899년 5월인데 개항과 더불어 조계조약이 체결되고 개항장이 설치되면서
군산에서는 옥구감리서외에 일본 목포영사관 군산분관이 설치되었고, 도한 경무서와 세관이 설치되었습니다.
해관에서는 세관업무와 밀수출입 행위를 방지하고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역활까지 했습니다.
당시 군산해관은 인천 세관의 관할입니다. 1906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청사건립을 계획하였는데,
이 건물은 탁지부 건축소 산하 임시세관공사부의 계획에 의하여 준공되었습니다.
앞면보다 뒷면이 더 아름답습니다...
지붕 뒷면 한가운데에 벽난로 굴뚝이 있습니다..뒷문 위쪽에 캐노피가 있고 이를 받치는 부분은 꽃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이 건물의 주요 특징은 지붕의 다양한 처리에 있습니다.
천연슬레이트와 동판으로 마감된 지붕은 우진각형태와 박공지붕이 혼합한 형태입니다.
전면 현관 상부는 완만한 곡선의 아치를 만들고 뒤쪽에
다시 박공벽을 구성하여 높은 지붕면과 박공면이 조화를 이루어 입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후면은 전면과 같이 좌우측 끝에 낮은 박공지붕을 만들었으나 그 옆에 돌출된 포치를 구성하였습니다.
에세랄 카메라와 필름카메라를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 아가씨 겁도 없습니다.
필림카메라 셔터소리가 상쾌하더군요.
오른쪽에 있는 강아지가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달려들면서 사납게 짖는데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서서 강아지만 무심히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세차게 짖던 강아지가 먼저 꼬리를 내립니다....보통 강심장이 아닙니다...
근대역사박물관 오른쪽 지붕 밑에 임피면 축산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석관묘와 옹관묘를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군산시장님이 직원들과 이곳으로 오시면서 손을 내밀며 어디에서 오셨냐고 물어보십니다.
전주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오른손을 쭉 뻗어 내밀고 악수를 나눕니다...
시장님이 박물관에 관심이 많나 봅니다.....^^
진포해양공원이나 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고 박물관 주변과 해망굴을 지나 월명공원, 히로쓰가옥, 동국사까지
걸어다니면서 답사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역시 걸어다녀야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군산해망굴은 해신동에 있는 터널로서 2005년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일제시대 군산항의 제3차 항구 구축공사 기간이었던 1926년 구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현재 해신동으로 통합)을 연결하고자 만든 높이 4.5미터, 길이 131미터인 반월형 터널입니다.
얼마전까지 차량도 통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차는 금지이고 사람만 통행가능 합니다.
굴 입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총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 자리한 인민군 부대 지휘소에 연합군이 공격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굴을 걸어가는데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군데군데 나무벤치가 있더군요..여름피서지로 인기가 좋은가 봅니다...
비둘기만 자기 집인양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군산 감리교회 모습.
월명굴 주변은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촬영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한석규가 친구와 노상방뇨를 하던 감리교회 담벼락과 심은하가 친구와 햄버거를 먹었던 흥천사 앞 나무난간,
초원사진관,한석규가 심은하와 달리기 장면을 회상하면서 앉았던 서초등학교 고무 타이어 의자등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좋아하셨던 분들은 어렴풋이 떠오를겁니다..
흥천사 앞을 지나 가볍게 발길을 옮기다보면 월명공원에 도착합니다.,
혹시 벚꽃이 피었나 찾아 보는데 며칠은 더 기다려야 꽃구경을 할 수 있는 상태더군요..
미리 포기했는데도 실망스러운 기분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공원답게 공원 곳곳에 전망대와 바다조각공원,
수시탑, 삼일운동 기념비, 개항35주년기념탑, 생각하는 시민상, 채만식문학비등이 있습니다..
벚나무와 동백나무, 등나무등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군산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는 공원입니다.
벚꽃이 만개하면 야간 꽃구경하러 많은 시민이 모여 든답니다.
저 어릴적에는 시멘트로 만든 벤치가 곧 잘 눈에 띠었는데 요즘에는 구경하기 힘들지요...
월명공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입니다.
웬만한 공원에서는 지저분하다고 철거해버려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은 비둘기집도 이곳에서 보게 됩니다...
월명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으니 해망동 산동네 철거지구가 나옵니다...
해망동은 월명산자락을 기대고 있는 동네입니다...해망동, 바다를 바라보는 동네라는 뜻이지요.
축대붕괴의 위험으로 철거지구로 지정된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주하였고 갈 곳 없는 소수의 노인분들만 거주하고 있습니다..
해망동 주민들을 위하여 인근 월명터널 주변에 해망동 보금자리주택사업으로 483세대 규모의 장기공공 임대주택을 건립중입니다.
빈집이 대부분이며 문의 경칩까지 다 떼어가고 돈 안되는 물건들만 덩그러이 남아 있습니다...
2006년 천야해일이라는 제목의 공공미술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동네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고 설치미술 작품이 세워졌습니다.
동네주민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작가들이 몇달간 이곳에 머물며
주민들과 소통하여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벽화마을이 전국 곳곳에 있었지만 처음 시작한 곳이 해망동입니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많은 분들이 해망동 벽화 작품을 보기 위해 다녀갔었습니다...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벽화들은 갯바람과 눈비로 흔적만 남았있고 이것도 얼마 안있으면 사라져버리게 생겼습니다.
오래된 동네의 철거 소식을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년의 추억과 풍경, 가난하고 소박했던 삶의 정경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지요.
그분들은 이런 곳을 일상적이며 실존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산동네 누구인들 이곳이 좋아서 살고 있을까요.
이렇게 사라지는 것도 우리네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해망동 산동네에서 내려와 히로쓰가옥을 가는 길에 이성당을 들립니다.
저희 가족이 군산에 가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곳입니다.
이곳 단팥빵을 무척 좋아라 합니다..
단팥빵만큼은 이성당 단팥빵과 그 외 나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ㅎㅎ
지금은 워낙 유명한 빵집이라서 모르시는 분들이 없는 곳이지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단팥빵 나오는 시간에 빵을 살려고 줄서서 기다리는 분들이
도로변까지 줄지어 있습니다...
이곳은 빵사서 계산하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단팥빵은 서양에서 넘어온 빵이 일본화 된 빵의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빵을 발효시키기 위하여 이스트를 사용했던 서양식 대신에
일본술의 누룩를 이용하여 발효시킴으로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었습니다.
1874년 무사계급 출신이었던 기무라 야스베에와 그의 차남 기무라 에이자부로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두 부자는 단팥빵을 만들기위해 수년간 술누룩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였습니다..
질좋은 술누룩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술누룩은 발효력이 약해 발효관리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설탕을 많이 넣으면 발효가 잘 되지 않고, 빵 반죽은 쉬이 풀리고, 잘 구워지지 않거나
너무 딱딱하거나 맛이 시큼한 빵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6년의 세월동안 새로운 빵을 만들기에 몰두하다 쌀누룩종을 사용하는 새로운 발효법을 완성시킵니다.
부드럽고 적당한 일본술 향기가 퍼져 나오고 오래 놔둬도 딱딱하지 않고 당분을 사용해도 왕성한 발효력을 지닌
단팥빵 개발에 성공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단팥빵은 기존의 술진빵이나 중국의 진빵,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서양빵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서민들에게 빵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도쿄 긴자에 기무라야라는 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는데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져 엄청난 판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긴자의 명물이 된 단팥방은 하루 판매량이 1만 5,000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창업 140년의 기무라야 총본점이 긴자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벚꽃잎을 빵 한가운데 박는 것이 기무라야 단팥빵의 상징이라고 하네요.
이성당이 1945년에 개업했으니 아마 일본인 빵집에서 단팥빵을 배워오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혹시 도쿄에 간다면 기무라야를 방문해보고 이성당 단팥빵과 비교를 해보고 싶네요.
예전에는 단팥빵을 한 번 사면 보통 20-30개씩 사가지고 갔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일인 3개, 평일에 7개로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단밭빵과 야채빵이 맛이 있고 여름에는 팥빙수도 불티나게 팔립니다.
구도심을 다니다 보면 이성당 빵봉투를 들고 다니시는 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성당을 나와 들린 곳은 2009년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된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입니다..
보통 히로쓰 가옥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일제시대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스가 건축한 2층의 전통 일본식 목조가옥입니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2채가 있고 두 건물 사이에 일본식 정원이 있습니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대부분이었던 군산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부를 축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 2칸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군산의 가옥 밀집지인 신흥동 지역의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라는 평가입니다...
장군의 아들과 타짜 영화의 촬영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5년에 지어진 일반주거용 주택치고는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습니다...
일본 전통의 무가주택답게 사람이 이동하는 복도 폭이 좁고 2층 올라가는 계단의 폭도 상당히 좁습니다.
마루바닥은 오래되어서인지 처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삐그덕거립니다...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창 공사중이였는데 이번에 보니 완공을 하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근대문화 체험공간이라는 주제로 구 도심 한복판에 숙박체험관, 근린생활시설(식당이나 카페등)
근대역사교육관, 건축재생관을 조성하여 1930년대 근대군산 생활모습을 복원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다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지요......
두리번 거리다 직원인 듯한 분이 계시길래 "시에서 관리하나 봅니다" 하고 물으니 개인이 한다고 하네요..
군산여행시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가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네요.
일제시대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국사 입니다.
군산에 지어진 일본식 사찰 5개중 가장 규모가 큰 절이었다고 합니다.
1913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조동종 사찰인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절로서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으며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 요사채, 종각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방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고
조계종 24교구인 선운사 말사입니다...
전북에서는 금산사와 선운사 두 절이 조계종 교구 본사이고 선운사 말사로는 내장사, 내소사등이 있습니다.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 6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홑처마 형태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이 많고, 처마는 일반적인 한국의 사찰 처마에서 볼 수 있는 단청도 풍경도 없이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에 다른 사찰로소 법당의 내부공간이 바뀌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동국사 대웅전에는 소조석가여래삼존상및 복장유물이라는 보물이 한 점 있습니다.
종각 기단을 둘러 싸고 있는 32관세음석불상과 12지수존본석불상들 입니다.
일본 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우리 절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죠.
하루 종일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더니 해가 질 무렵 파란 하늘을 보여줍니다...
마음까지 상쾌해집니다.
도로 입구에 "동국사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고
올라가는 길 바닥과 담벼락을 가림막등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때 동국사에서 혜초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던 고은 시인의 시 10편을 액자로 만들어
담벼락에 걸어 놓고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이영춘가옥도 들리려고 했는대 시간이 늦어..작년 봄에 찍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이영춘가옥은 개정동 옛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20년경에 군산지역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가 농장 관리를 위해 지은 별장주택이였습니다.
해방후에는 개정병원 원장이었던 이영춘박사가 거주하였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건축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별장처럼 지은 곳으로 유명했으며
군산시에 남아 있는 일제시절 건물중에서 가장 보존아 잘된 건물입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쌍천 이영춘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입니다.
외부형태는 유럽양식을 띄며, 평면구조는 일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난방은 온돌을 깔아 한식,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출발시 예상했던 코스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넘 여유를 부렸나 봅니다.
구 시마타니금고.구 제1수원지 제방 이 두 곳은 등록문화재이고 이영춘가옥은 유형문화재라 꼭 가볼려고 했는데
해가 넘어가버려 포기했습니다.
벚꽃구경을 하지 못한 것은 괜찮은데 계획했던 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어쩔 수없이 다음을 기약해야겠습니다...항상 다음이 문제입니다.....^^
|
금방 책 나올거 같은데요.ㅎㅎ
행님이 열 권정도 사주신다면 당장 만들 수 있어요......ㅎㅎ
목포는 설렁설렁 다녀왔는데 아직도 건물이나 잔혹사가 묻어 있더군요. 군산도 가보고 싶네요.
군산도 여행하기 좋습니다...웅포에 캠핑장도 있구요.....^^
형님...호떡하고 단팥빵만 눈에 들어 옴다~ ㅎㅎ 중동호떡이라굽쇼?? 음...
군산엔 담에 선유도에 함 가볼라구요~
올 연말에 선유도 다리공사가 끝나는 모양이던데 다리 완공되기 전에 다녀 가기를...섬다운 모습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때...^^
여전하군...얼마전에 짬뽕먹으러 함 갔었는데...한 시간정도 줄서서...ㅎㅎ
올만이다 스노우 잘 지내지?
나는 당신 이민간 줄 알았어....ㅎㅎ 항상 좋은 시간 보내시게.....^^
여행 잘하고 갑니다
전주에 살면서도 군산에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새만금 완공되면서 변산쪽과 함께 시너지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여행하기 좋은 곳이라 자주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