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맨 뒤가 14만원, 4층이 7만원? 뮤지컬 가격 정책 이대로 괜찮을까?

[KSP원장]

1층 맨 뒤가 14만원, 4층이 7만원? 뮤지컬 가격 정책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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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개막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가 2018년 4월 24일부터 티켓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화·수·목요일과 금·토·일요일 티켓 가격을 다르게 책정한 점이 눈에 띕니다. 화·수·목요일은 R석 14만 원, S석 12만 원, A석 8만 원, B석 6만 원으로 기존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 가격과 비슷한 선에서 매겨진 반면 금·토·일요일 가격은 1만 원씩 추가된 R석 15만 원, S석 13만 원, A석 9만 원, B석 7만 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박효신, 수호가 출연하는 <웃는 남자> 컨셉 사진｜EMK

지금까지 내한 공연이 아닌 라이선스 대극장 뮤지컬에선 최고가 좌석을 14만 원으로 책정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이를 깨고 주말 최고가 좌석을 15만 원으로 정한 것인데요. 이는 <웃는 남자>가 박효신, 엑소 수호 등 스타가 대거 출연하는 화제작 초연이라는 점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이 비싸도 볼 사람은 본다'는 것이죠. 실제로도 <웃는 남자>는 4월 24일 있었던 1차 티켓오픈에서 박효신과 수호가 출연하는 회차가 전석 매진되었습니다. <웃는 남자>의 제작사인 EMK는 2012년에도 김준수, 옥주현, 류정한 등이 출연한 <엘리자벳> 초연 공연에서 1층 100여 석을 VIP석보다 더 비싼 ‘다이아몬드석’으로 지정해 15만 원에 판매한 바 있는데요. 최근 CGV를 비롯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도 블록버스터 대작 <어벤져스 3> 개봉을 앞두고 일제히 관람 가격을 인상해 논란이 되고 있죠.
 
그런데 사실 최고가 15만 원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은 아닙니다. 10년 전인 2008년 대극장 라이선스 공연의 VIP석은 대체로 11~12만 원 선에서 책정되었습니다. 통계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화폐가치계산을 이용해 2008년의 11~12만 원을 2018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3만 3천 원~14만 5천 원이 나오니,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웃는 남자>를 비롯한 뮤지컬 공연들의 VIP석의 좌석 수가 최근 몇 년 사이 현저히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같은 극장에서도 전에는 R석이었던 자리가 지금은 VIP석이 되어 있다는 뜻인데요.

2013년 <맘마미아!> 내한 공연 좌석 배치도(왼쪽)와 2018년 <맨 오브 라만차> 좌석 배치도

한 예로 2013년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된 <맘마미아!> 내한 공연 좌석배치도와 2018년 현재 같은 공연장에서 공연 중인 <맨 오브 라만차> 좌석 배치도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맘마미아!>의 경우 1층 3열부터 20열까지를 VIP석으로, 1층이라도 벽과 가까운 사이드 좌석은 S석으로 책정했습니다. 반면 <맨 오브 라만차>는 1층 1열부터 맨 뒷열까지 VIP석으로 책정했습니다. 블루스퀘어는 무대 끝부터 1층 객석 맨 뒤까지의 거리가 약 27m라고 하는데요. 27m나 떨어진 두 좌석이 같은 값인 가격 정책,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12년 뮤지컬 <모차르트!> 좌석 배치도(왼쪽)와 2018년 뮤지컬 <명성황후> 좌석 배치도

다른 극장, 다른 기획사에서 올라온 공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경우 1층 중앙 3열부터 14열까지를 VIP로 책정한 반면, 2018년 같은 공연장에서 올라온 <명성황후>는 1층 중앙 1열부터 맨 뒤 18열까지를 VIP석으로 책정했습니다.

2018년 <웃는 남자> 좌석 배치도

<웃는 남자>의 경우도 지나치게 많은 R석의 좌석 수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웃는 남자>는 1층 OP석부터 22열까지가 R석으로 책정되었는데요. (예술의전당 정책상 VIP라는 좌석 명칭을 사용하지 못해 R석이 최고 등급입니다.) OP석은 원래 오케스트라를 위해 마련된 자리로, 오케스트라가 해당 자리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객석을 배치해 판매하는 자리입니다. 무대와 너무 가까워 고개를 계속 들고 봐야 하며 경우에 따라선 배우들의 발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죠. 2018년 2월까지 같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안나 카레니나>에선 OP석을 R석보다 1만 원 저렴한 13만 원에 판매했습니다. 1층 22열까지가 R석인 것도 문제입니다. 개인의 시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15열을 넘어가면 망원경 없이 배우의 표정을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4층에서 바라본 무대 모습｜예술의전당 홈페이지

최저가 좌석의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높은 점도 문제입니다. <웃는 남자>에서 화·수·목요일 6만 원, 금·토·일요일 7만 원에 판매되는 B석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4층 좌석에 해당합니다. 오페라극장 4층은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면봉석(배우가 면봉 크기로 보인다는 뜻)' '창조주석(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야라는 뜻)'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좌석인데요. 2013년 같은 제작사에서 올린 <엘리자벳> 예술의전당 공연에선 3만 원에 판매되었던 좌석이니, 5년 사이에 같은 좌석 가격이 약 2.3배 인상된 셈입니다.  

사실 뮤지컬 공연들의 최저 등급 가격 책정은 <웃는 남자> 전에도 계속 논란이 되었습니다. 보통 대극장 뮤지컬의 좌석 등급은 VIP, R, S, A의 4등급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획사들이 극장 규모와 상관없이 이 등급과 가격을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뮤지컬 <위키드>의 경우 2013년 초연은 객석 2층 규모인 샤롯데씨어터에서, 2016년 재연은 4층 규모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는데요. 샤롯데씨어터 2층과 예술의전당 4층 좌석이 동일한 등급으로 책정되어 똑같이 6만 원에 판매되었습니다. 같은 작품을 같은 가격을 내고 예매하는데 어느 극장에선 2층에 앉고 다른 극장에서 할 땐 4층에 앉게 된다면 납득이 가시나요.

최저가 좌석은 보통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학생이나 공연을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이 예매하는 좌석입니다. 일본의 3대 극단 중 하나인 시키에선 <알라딘> <라이온킹> 등 인기 작품들도 2층 최저가 좌석을 한화 3만 원 대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저렴한 가격 덕에 학교 단체 관람으로 뮤지컬에 입문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티켓 가격이 한국보다 비싼 영국, 미국에서도 학생 티켓은 50~9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죠. 물론 국내에서도 할인 쿠폰이나 소셜커머스 등을 이용하면 최저가 좌석을 더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지만, 평소 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발품을 팔지 않는 한 가장 싼 자리도 6~7만 원에 봐야 한다면, 뮤지컬 관객의 저변 확대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내셔널 씨어터의 '트래블엑스' 프로그램

<웃는 남자>의 가격 정책은 예술의전당이 국고 지원을 받는 공공극장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문화 복지와 제작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대관 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는데요. 영국 국립극장(내셔널 씨어터)의 경우 기업과 제휴하여 제작 공연의 좌석 50%를 일괄 15파운드(한화 약 2만 2천 원)에 판매하는 '트래블엑스' 프로그램을 실시해 관객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도 2012년부터 만 24세 이하와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당일 공연을 5천~1만 원에 예매할 수 있는 '당일 할인 티켓'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나, <웃는 남자>처럼 민간에서 제작하는 고가의 뮤지컬 공연에서는 시행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기획사들이 이런 가격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티켓 가격은 총제작비, 객석 수, 예상 좌석 점유율 등을 고려해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액수로 책정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연은 영화와 달리 모든 예매 데이터를 집계한 통합전산망이 없다는 점입니다. 누적된 데이터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객석 점유율을 예상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의 기획사는 일단 비싼 좌석을 최대한 많이 만든 다음, 나중에 팔리지 않으면 타임세일, 소셜커머스 등으로 남은 자리를 싸게 파는 판매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선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완전히 정착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올댓아트 인턴 에디터 정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