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단상입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 그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지냈는지가 아니고) 이야기 보따리 풀고자 접속했습니다. 물론 아무도 기다리시지는 않았겠지만서도요. 10월달에 농장을 들어갔습니다. 두번째 농장생활, 뭐 이제 '까이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죠. 브리즈번에서 된장, 고추장, 다시다, 갈비양념, 신라면 번들판 하나 들고 농장으로 떠났습니다. 3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달려가 백팩에 짐을 풀고 이것저것 정리를 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좋았지요.
<br>
<br>
그러나.
<br>
<br>
백팩 주인 왈 '다음 주면 시즌이 시작됩니다'라는 말에 냅따 달렸는데 일이 없더군요. 지금 전화하면 12월에 시즌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상저온이라나요. 아무튼 초반 8일을 '아무일 없이 흔들리는 백패를 서성였습니다.' 올해 초 네이버 마일리지로 운세를 봤는데 "연말까지 되는 일이 없을거다! 뷁!" 뭐 이 정도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운세를 탓하며 나름대로 재밌게 지냈습니다. 소설책 보고 음악들으면서도. 8일되는날 '떠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하는 중대한 고민을 하는 찰나, 잡메니저가 오더군요. 내일 출근한다고요. 유후~!
<br>
<br>
일을 하러 간 곳은 샐러드용 야채를 수확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버바이저도 천사표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드디어 연말이 가까워 질수록 '내생에 봄날은' 오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8일을 놀면서 2불 50 센트를 찍었던 통장이 어느새 500선을 돌파하고, 목구멍에 기름때가 낄때쯤해서 또한번 시련이 왔습니다. 우박. 이 놈이 절 죽이더군요. 농장 부근에 우박이 20분 정도 떨어졌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없이 내일 먹을 점심을 준비하던 순진한 나. 연락이 왔습니다. 우박에 야채가 다 망가져서 2주간 데이오프라고. 허걱. 이번주만 일하고 브리즈번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 말입니다.
<br>
<br>
다른 농장을 컨택하기도 애매하게 날짜가 남았고 해서 일찍 브리즈번으로 컴백을 했습니다. 제가 일한 농장 주위 풍경이 정말 멋져서 끝나기 며칠전쯤해서 사진좀 찍고 하려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쩝.
<br>
<br>
우푸(Wwoof)이야기.
<br>
<br>
농장에서 한달을 머물고 우프를 가기고 되어있었습니다. 아는 형과 말입니다. 이곳저곳을 컨택해보고 한 곳이 확정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일하던 농장 부근이었습니다. 말이 부근이지 1시간정도 거리였습니다.
<br>
<br>
영국아줌마와 호주아저씨만 조용히 사는 곳이었습니다. 근처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농장만 있는 그런 한적한 시골이었지요. 그곳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도와주며 지냈습니다. 형과 저는 '일'이 중요하다며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저희가 봐도 정말 깔끔하게 일을 했습니다. 저녁때면 아줌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걸 시간으로 계산하면 얼마짜리 수업이냐 했지요. 처음며칠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고 점점 시들해져 방에 들어와 이런저런 공부를 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br>
<br>
8일째 되는 날 아침, 아저씨와 아줌마가 부르더군요. 우프는 '일'이 주가 아니고 '문화교류'가 주된 거라구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결론은 1주일 지냈으니 나가달라는 얘기였습니다. 미안한지 아주머니가 울먹거리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이유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됬는지도 모르고 형과 저는 나왔습니다. 이런저런 기념품같은 것을 주고 나왔지요.
<br>
<br>
브리즈번에 나오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걱정이되서 메일을 보내는거라고 말하면서요.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도 된다. 우리는 즐거웠다는 식으로요. 답장을 받았습니다. 아주머니가 저희를 오해했다고요. 저희가 아주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아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했는데도 바뀌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나가달라고 했다나요. 자기가 생각이 짧았다나요.
<br>
<br>
그때야 이유를 알겠더군요. 혹 우프가시려는 분들은 주인장과 많은 말을 나누고 그러세요. 저도 그래야 겠다고 마음먹고 갔는데 저녁때면 피곤하고 해서 침대에 널부러져 책만 보고 했었습니다. 다음에 우프가면 쉴새없이 떠들려고 맘먹고 있습니다.
<br>
<br>
그러곤 다시 브리즈번으로 나와 1주일을 보냈습니다. 임춘애도 아닌데 라면을 주식으로, 가끔 밥을 먹으면서 말입니다.
<br>
<br>
아마도 주말정도에 농장에 다시 들어갈 생각입니다. 예전에 같이 지내던 사람들도 보고싶고 돈도 떨여졌고(주된 이유지요)해서 들어갑니다.
<br>
<br>
여기까지가 제가 10월 11월 반을 지낸 이야기 입니다. 물론 대략 간단 버젼이지요.
<br>
<br>
다른 분들 다들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br>
<br>
<br>
p.s 1월 말에 한국에 들어가는데 그 전에 이곳저곳 여행을 할려고 합니다. 뭐 1월 초에서 중순까지 죠. 케언즈도 좀 가보고, 시드니도 가보고. 혼자 여행이 재밌기는 해도 가끔 외롭습니다. 결정적으로 사진찍어줄 사람도 없고. 저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찍어달라고 하는데, 호주인들은 사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듯 합니다. 목을 자르고 찍지 않나, 이래저래봐도 어중간한 사진을 만들어놓지 않나.
<br>
<br>
혹 그때 여행하실분 쪽글 달아 주세요. 같이 '니나노~~~'하자구요. 참고로 전 돈이 없어서 비굴하고 지저분하고 거지같이 여행합니다. 이점 유념해주시길~~~
<!-- -->
첫댓글 일 열심히 하다가 우프에서 짤리시다니.....;;;
너무 재밌어요. 글을 너무 재밌게 쓰시네요.ㅋㅋ 우프, 아주 그냥 인상 깊어요.
ㅋㅋ 저 그런 여행 조아해요 ㅋㅋ
우프 이야기 참 교훈적입니다.. 저도 다음달에 우프 생각하고 있는데... 반성과. 희망, 반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위철님도 잘 있어요?
앗... 위시비님 ^^ .... 전 요즘도 취업준비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죠. 위시비님도 잘 지내시나요? 이젠 적응 많이 되셨겠어요.... ^^
저도 혼자다녔는데 사진 찍는게 참 그렇더라구요...찍어달라고 한 사진들은 맘에 안 들고...그래도 자유로워서 좋았던 것도 있네요~담에 우프하실 땐 더 멋지게 하시길~~
글 진짜 재밌게 쓰시네요.^^ 유익하고 정말 박장대소로 읽었네요.. 종종 수기 부탁드려요^^
너무 잼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