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상은 점점 분별하지 않으면 미혹받기 쉬운 때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감동과 감정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좀 더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선지자의 심장을 가진 사람과 사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드로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사환은 파수꾼의
심장과 동일하다 말씀드렸습니다.
파수꾼은 시대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보는 환경, 경험이 곧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린 것도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쟁을 할때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파수꾼이 들판에서 누군가 오고 있다고
말하고 누구의 모습과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히마아스에 관해 평가하며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삼하18장20~ 참조) 파수군(watch man)은 파수군일 뿐입니다. 해석은 다윗이 합니다.
파수꾼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꾸 선지자처럼 말하는 것을 볼때 우려가 됩니다.
환경을 보는 사람은 환경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요즘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전쟁에 관한 예언이 회자되는 것을 압니다.
저도 사역자들에게 급하게 온 소식을 접하고 7월 6일 성복교회(이태희 목사님)에 참여했었습니다.
잘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사역자이건, 시한부 전쟁을 말한다고 하든, 예언이 맞을 것이라고 말하든
오워박사가 말한 지금의 한국교회 현실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회복과 돌이킴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번영신학이나, 세상의 끝만 말하는 종말론이나 둘다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회복은 회개를 통해서만 옵니다. 그 회복은 성장과 축복을 가져옵니다.
아사의 때가 그랬고, 여호사밧의 때나 히스기야때나 모두 돌이켜 하나님앞에 바로 섰을때
회복과 축복이 있었습니다.
회복이 없는 성장은 축복이 아닙니다. 더 큰 타락이 될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이 나쁜것이 아니지만 진정한 종말론적 신앙은 나 하나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회복시키려는 삶을 사는 자들이 갖는 신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모두 휴거를 말하고, 종말론을 말하며 준비되는 자신에게는 관심있지만
온 인류가 회복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무너진 틈 사이에서 중보하는 종말론적
신앙인이 적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분별하여 세상을 바로 알 때이고, 무너져가고 있는 신앙의 틈사이에서 중보해야 하는
때입니다.
어떻게 세상을 분별하며 서 있어야 합니까?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 왕하2장15~18절
3가지 잘못된 분별
맞은편에서 지켜본 제자들 - “엘리야와 함께하신 성령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나름 분별하는 듯하다.
“그에게 나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엘리야를 찾으러 용감한 자 50명을 보낸다.”
분별하는 것 : 무언가를 알아채는 것이 아니다.
이적을 통해 아는 것인가?
만일 그들이 분별하는 사람들이라면 왜 엘리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추종하는가?
분별은 감정과 이성으로 무언가를 알아채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바른 분별을 했다면 엘리사에게 엎드리어 경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낸다고 하여도 사람을 추종하지는 않는다.
분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분별을 통해 영광을 받는 분도 하나님이어야 한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분별은 옳은 것인가?
단지 엘리사에게 엘리야처럼 동일한 능력이 임한 사건을 보고 판단한 것을 분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분별은 상황을 통해서 나오는 것도, 경험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마귀도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고 나타날 수 있다.
보이는 현상을 통해 분별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의 분별없는 행동
1.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함 - 줄서기 2. 엘리야를 찾게 해 달라 - 과잉충성
= 줄서기와 과잉충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분별할 수 있을까?
온전한 분별을 위해 첫째, 있어야 할 것은 썩어져 가는 이 세대의 삶을 본받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롬12:2) 말한다.
둘째,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 왕상3:9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욥34:3절
마음이 닫히며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지혜롭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말313~18절
넷째, 성령께서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 고전2:13,14절
마지막으로 분별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 이다.”
환경과 사람과 경험이 아닌 말씀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주님을 경외하므로, 굳은 마음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시대에 물들지 않고 이 시대와 사람과 때를 분별하십시오.
우리의 분별이 시대를 감당케 할 것입니다.
두서없이 올려서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모든 분들께 함께 하시기를 샬롬!
첫댓글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