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정말 봄이다. 집 앞에 벚꽃이 만개했다. 햇살도 따뜻했고, 심지어는 반팔만 입고 다녀도 될 것 같은 날이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이다. 여행은 내년에 가는 걸로 하고, 난 학원으로 우직하게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유튜브로 <무한도전> 중 '신들의 전쟁'이라는 짧은 영상들을 보았다. 거기서 예능인팀과 배우팀으로 나뉘었는데, 곽도원 배우님, 정우성 배우님, 주지훈 배우님, 황정민 배우님, 정만식 배우님 그리고 김원해 배우님까지 출연하셨다. 처음엔 재미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볼수록 배우분들의 집중력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예능인팀에서 배우팀에게 대본을 주고, 즉흥적으로 상황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배우분들은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상황에 빠져드는 시간과 집중력은 정말 빠르고 정확했다. 특히 두 명이서 호흡을 맞추면서 연기할 때의 집중도는 더욱 리얼했다. 어찌보면 배우들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것이다. 갑작스럽게 제안을 했던 것이고, 예능인들과는 다르게 즉흥연기를 할 때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엄청났을 것이다. 확실히 기본이 되어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그리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원에 도착해서 작은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원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 학원 앞에는 상담을 위해서 서성거리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 분께 자연스럽게 용무를 묻고, 원장실로 안내를 했다. 별거는 아닌데, 학원이 전에 비해 많이 편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리고 괜히 뿌듯하기까지 했다. 안내를 마치고, 작은 연습실에서 액션신을 연습했다. 상대방을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17명을 본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한 명씩 보는 것을 연습했다. 살아있음에 있어서 이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액션신을 연습하면서 내가 스핀을 돌면서 상대를 망치로 때릴 때의 명확한 위치, 혹은 왜 벽을 등지고 싸운는지 깨달았다. 적은 나보다 훨씬 많다. 즉 사방이 개방되면 공격이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많아진다. 반면 벽을 이용한다면, 후면은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앞과 옆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리고 이게 본능인지 모르겠는데, 한 명을 때리면 몸이 뒤로 물러난다. 목적만 생각한다면 전진해야 하는데, 상대방과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는 내 몸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신우희 선생님 연기수업에서 립싱크 과제를 발표했다. 솔직히 '립싱크'라는 것은 겉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해왔던, 영화의 명장면, 혼자있기, 액션신까지 너무 겉모습에만 치중했다. 즉 '내가 그 인물이라면'이 아닌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를 따라했던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도전과 실패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준비할 때, 무대영상을 끊임없이 보고, '내가 만약 콜드플레이가 섰던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어떻게 움직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접근했다. 그리고 그 상상 속의 상황 속에서 살아있어보고 싶었다. 외면적으로만 봤을 때는 고3 친구들의 준비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발표를 마무리하고, 너무 후련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 난 날것을 정말 잘한다. 손질되지 않은 본능이 뛰어나다. 솔직히 이게 자만일 수도 있지만, 난 날것에 자신있다. 이제 날것을 어떻게 조리할 지 생각할 단계다. 신우희 선생님 말씀대로 무대 위에서 여유가 있으려면 기본이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본으로 인한 방해없이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하다. 매우 공감한다.
쓰러지고 일어나고 반복하는 훈련했다. 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꽤 여유로운 편이다. 그리고 필요없는 동작이 무엇인지 인지했다. 그래서 중립상태를 유지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배우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으로 깊게 빠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일상으로 빠져나오는 행위도 매우 중요하다. 즉 중립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 몸의 중심도 이전에 비해 덜 흔들리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하체훈련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플라잉 스쿼트 더 하자!
1인으로 '정서'에 맞게 상상하고 강도를 올리는 훈련이었다. '정서'를 끝까지 표출하는 게 정말 힘들다. 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래서 배우들이 체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이런 상태를 2시간씩 이끌고 가야하며, 하루에 두 번 이상의 공연을 해야 한다. 몸이 더 알 수 있도록 표출을 많이 시도하자.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 표현을 할 때 가장 기억남는다. 난 연애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주변에 이성은 아무도 없었고, 재수를 할 때는 연애에 신경쓰지 않았으며, 대학에서 잠깐 만난 것을 제외하면 정말 없다. 그래서 처음엔 고민을 좀 했던 것 같다. '사랑'이란 것이 꼭 연애만 있는 것인가? 편견이다. 그래서 다른 생각에 빠졌다. 쭈그리고 앉아서 앞에 있는 한 점을 계속 응시했다. 생각을 끊임없이 돌렸다. '사랑'에 대한 감정은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20살 성인이 되고, 아버지와 목욕탕을 한 번 간 기억이 났다. 어렸을 적에 갔을 때는 아버지 등이 정말 넓었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보니까 왜 이리 왜소하지? 그 순간 목욕탕 속으로 쭉 빨려들어갔다. 쭈그려서 앉은 상태로 아버지 등을 향해 조금씩 걸어갔다. 정말 보이진 않지만, 머리 속에서는 그림이 확실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항상 행복하고, 신나고,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고, 표현 자체는 오열했다. 즉 감정이라는 것은 내가 억지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명확한 생각을 하고, 정확하게 상대를 바라봐라. 그리고 숨을 쉬고 몸으로 느껴라. 그러면 따라와준다. 물론 이 지점까지 오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아픈 기억, 접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까지도 피하지 말자. 직면하고 나의 무기로 사용하자.
<오늘의 요약>
더 많이 표현하는 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