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모 싸이트에 올린 글인데, 내용이 괜찮은(?) 것 같아 올린다...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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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6년여에 걸쳐 한국,일본의 주간 만화잡지에 연재해 그야말로 '신화'를 창조해낸 '슬램덩크'. 스포츠만화라는 장르적인 한계(정교한 동작에 치중하다보면 스토리나 인물설정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일반적 현상)를 멋지게 극복, 오히려 왠만한 만화를 능가하는 탄탄한 인물묘사와 스토리 전개로 연재가 끝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열풍과 향수가 식지 않고 있다. 여담으로, 필자는 고교 때 슬램덩크를 접했는데(처음엔 동네 이발관에서 보았었는데, 그 재미에 빠진 나는 고2 말 무렵부터 용돈과 세뱃돈(그땐 학생이었으니까 내 수입은 없었다.)을 몽땅 털어 한권당 2000원 하는 단행본을 그 당시 나왔던 25권 무렵까지 몽땅 사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고 3때 약 1달 반 간격으로 나왔던(나오는 날은 토요일이었다.) 단행본을 꼬박꼬박 사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리 가지만 사람 많은 버스를 타지 않고 일부러 사람 없고 빙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앉아서 버스 안에서 만화책에 빠진 기억도 있다. 또 마지막 단행본이었던 31권은 96년 11월 초에 나왔는데, 수능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고 3이었던 난 반에서 제일 먼저 사서 반 친구들이 내 만화책을 돌려보기도 했다. 나같은 열성 매니아는 아니더라도 슬램덩크 캐릭터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해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이렇게 '신드롬'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열풍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작가가 처음 슬램덩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에서는 농구만화란 장르는 금기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초반부에는 아무래도 학교내 제일의 불량아 강백호의 코믹한 기행(?)에 초점이 맞춰졌고, 독자는 '생소한' 농구만화를 부담없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강백호가 채소연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의 권유로 농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농구부에 가입하지만, 사사껀껀 부딪치는 수퍼루키 서태웅, 엄격하고 강직한 주장 채치수, '여자에게 잘 보일려고'농구부에 가입했다는 공감대를 가진 송태섭, 중학 MVP출신으로 한때 방황했다가 컴백한 정대만 등과 어울려 차츰 농구와 팀플레이, 그리고 우정을 배워나가는 줄거리인 이 만화의 가장 큰 강점은 모든 캐릭터가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져, 각자만의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 이노우에에게 막대한 돈을 벌게 해준 것이 만화 자체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 바로 정상의 위치에서 결말을 맺었다는 것이다. 전국제패를 목표삼아 진군했던 북산 농구부를 주 스토리라인으로 비추었지만 전국대회 2회전에서 전국최강 산왕을 맞아 사투끝에 승리하고, 이어진 3회전에서 맥없이 무너진다는 스토리로 만화는 끝이 난다. 전국제패를 만화속의 북산농구부와 더불어 기대했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작가의 결정이었을수도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포츠만화란 장르에서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움직임 묘사 등 세부적인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는 한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작가는(전국대회 2회전 산왕과의 경기는 책으로 무려 6권이다. 그나마 전반은 1권이며, 치열한 사투를 중점적으로 묘사한 후반 20분을 5권이란 분량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었으니.) 과감히 독자의 열망을 저버리고(?) 작품을 종결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정이 아쉬움이 남지 않는건 아니지만, 큰 여운을 남김으로써 '슬램덩크'가 1회성 열풍이 아닌 스테디 셀러로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이라고 본다. 동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볼'과 비교했을 때 이런 점은 두드러진다. 드래곤볼의 경우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계속되는 드래곤볼 열풍과 독자의 성화에 못이겨 상당히 오랫동안 그려나갔지만, 그러다보니 스토리 고갈과 캐릭터 창조의 한계,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 등의 부작용을 보이며 막판에는 거의 잊혀지고 만 작품이 되어버렸다.(필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드래곤볼은 후리자와의 승부에서 끝났어야 한다고 본다.) 그와 비교해서 슬램덩크는 다소 무리한 감은 없지 않았지만(이것도 필자를 비롯한 전국제패가 아쉬운 독자의 생각이며, 작가는 중반에 나왔던 체육관에서의 백호와 태웅의 1:1 승부 결과를 산왕전에 보여준 걸로 봐서 산왕전을 마지막으로 생각한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토리상 큰 무리가 없다.) 최고의 위치에서 과감히 끝내버린 점은 놀라우면서도 대단하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몇가지 엉성한 점(그림의 좌우가 바뀐다든지-일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만화책을 넘기고 한국은 반대이다-, 같은 인물이 스토리 도중 이름이 바뀐다든지, 그림에 칼자국(?)이 생겼다든지, 번역의 어색함-토너먼트방식의 전국대회에서 31권 말미에 나오는 '북산은 남은 3회전을 마치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란 말은 틀린 말이다, 옳은 번역은 '북산은 그후 3회전(스토리상 대 지학전)에서 마치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로 고쳐야 한다- 등등) 이 발견되는 점도 있지만, 국산 만화도(스포츠만화든 아니든) 이 정도의 작품성을 가진 작품은 아직 없다고 단언한다. 얼마전 공윤에서 이현세 작품(제목을 까먹었음..--;) 에 대해 음란만화라고 딱지를 붙였는데,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심의가 지속되는 한 우리 만화는 일본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어쨌든, 31권 맨 끝에서 '끝'이 아닌 '1부 끝'이라고 써서 묘한 여운을 남겼던 '슬램덩크'. 작가는 현재 2부를 그릴 생각은 없는 듯 하지만, 언젠가 2부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모든 팬들은 1부가 끝난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작품성을 가진 만화는 과연 언제쯤이나 나오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