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것들 / 小珍 박기옥
“그러니까 네 말은 ~”
밥숟갈 위에 김치를 찢어 얹으며 상희가 말한다.
“내가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전화를 몇 번이나 해도 통화가 되다 말고 끊어진 것이 휴대폰이 오래 돼서 그런 것이라고? 그럼 새 걸로 바꾸면 되지 하니까 바꾸다가 혹시라도 내장된 연락처들이 잘못될까 봐 알아보는 중이라고?”
사실이었다. 친구 중 하나가 휴대폰을 바꾸는 중 중요한 번호 몇 개가 날아가 버렸다고 낭패해 하는 것을 본 나는 결심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상희에게 딱 걸려든 것이었다.
상희는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과는 작년에 사별했고, 아들은 혼인하여 따로 살았다.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겁도 나고 마음도 산란하여 간절히 나를 찾았던 것이었는데, 때 맞춰 휴대폰이 말썽을 부려 민망한 입장이 되었다. 지금은 수술이 끝나 집에 와 있었다. 며느리가 끓여온 곰국으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얘 ~”
상희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깍두기를 집다 말고 상희를 바라보았다.
“너, 나한테 무슨 비밀 있니?”
비밀이라니? 우리는 무려 50년이나 된 친구였다. 부모도, 형제도 모르는 일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내가 너무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 게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상희가 나의 휴대폰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안에 든 하찮은 연락처들 때문에 휴대폰을 안 바꾸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말이지. 네가 무슨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
하찮은 것. 상희의 말이 옳았다.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국정원이나 청와대 민정실에 근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이 사회에 있으나마나한 소시민으로서 퇴직 후의 여생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언제부터 휴대폰의 연락처가 소중해졌을까. 어떡하다 내가 ‘하찮은 것’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젊은 날의 일이 생각났다. 시어머님이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계획하실 때 고교 동창 모임을 애써 챙기시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동창 모임이란 건 형편에 따라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무슨 학생이 학교 가듯이 여행 날짜까지 조절해 가며 챙기시는지? 내 말을 들은 남편이 복잡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외로우신 게지, 뭐. 외로우신 거야.”
자식이 부모를 가족이 아닌 한 인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말이 옳았다. 남편은 그때 이미 어머님에게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고교 동창 모임이 ‘하찮은 것’이 아님을 이해했던 것이었다.
어머님이 팔순에 이르러 치매 검사를 받았을 때였다. 의사가 그림을 보여 주며 이것저것 질문했다. 어머님은 심드렁하니 바르게, 또는 틀리게 대답하셨다. 의사가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하찮은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그것이 어머님을 벌떡 일으켰다. 학교는 어디를 나오셨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팔순의 어머님은 큰 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하셨다.
“경북여자고등학교! 경북 걸스 하이 스쿨!”
점심 식사를 마치고 상희와 나는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다. 나는 애써 상희의 가슴 쪽으로는 시선을 피했지만 상희는 직접 옷을 벗어 수술 부위를 보여 주었다. 유방 두 개가 절제된 가슴은 폐허와도 같았다. 나는 얼굴을 돌렸다.
“약물 치료로는 어려웠던 모양이지?”
“말도 마라. 수술 안 하려고 내가 얼마나 뻗대었게?”
아들이 마침 유방 외과 전문의였다. 수술 들어가기 전 그 아들과 침 튀는 설전을 벌였는데, 상희가 유방 절제만은 피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사진을 보여 주며 유방암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지금 유방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전이될 수 있음을 어머니에게 이해시키려 애썼다. 그래도 상희는 고집을 부렸다. 유방만은 꼭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에게 있어 유방은 무엇인가. 여자의 근본이고,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자부심이 아니던가. 드디어 그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아들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머니. 지금 어머니한테 유방이 무에 필요합니까? 하찮은 것에 집착하여 수술을 거부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연락처도, 유방도 하찮은 것이 된 우리는 커피를 마주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겨울의 짧은 햇빛이 창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해가 지면 창틈으로는 찬 공기가 밀려들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물기 걷힌 메마른 얼굴이 사막처럼 거기 있었다. 외로웠다. 쓸쓸했다. 우리 자신이 갑자기 하찮아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이 소란스러우면서 아들네 식구가 들어섰다.
“할머니이 ~”
손주가 달려와 상희에게 안기려 하자 며느리가 얼른 아이를 말렸다.
“할머니 안 돼. 편찮으셔.”
“어머니 좀 어떠세요? 약 드셨어요?”
부산하게 인사를 나누는 틈을 타서 나는 얼른 찻상을 부엌으로 들고 갔다. 식어버린 커피를 조용히 개수대에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