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라는 주제가 보통 사람들은 대개 가끔씩 관심을 가질 정도이지
그에 관한 무슨 글을 쓸 정도는 아닙니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이런 카페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고요.
그래서 영시에 관한 대화는 드문드문 이어지는 형편입니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하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여기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혹시 일반인들에게 열려 있는
인터넷의 다른 곳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연유로 우선 느긋하게 생각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어 삼행시... 재미있는 시도입니다. 실제 항상 삼행시는 아니고
행수는 제시되는 단어의 글자수 길이만큼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것에 대한 영어 명칭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pun의 종류가 있지만 이런 식의 pun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영어 삼행시라 지칭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느낌은 가급적 제시되는 단어를 주제로 해야 좋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단어는 많아서 제시되는 단어의
글자들을 이용해서 어떤 시상도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시되는 단어가 그 시의 제목이 될 터인데 그 단어의
뜻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면 제목과 시 내용이 따로 놀 것입니다.
물론 다른 제목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요.
생각해 보면 앞에 언급한 대로 영어를 재미있게 공부하자는 목적으로
하기에는 효과적일 거라 느껴집니다. 누구나 영어를 잘 하고 영시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간혹 무슨 회사의 영문 슬로건이나 모토 같은 것을 삼행시의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를 간혹 봅니다. 머리글자를 따면 그럴 듯한 짧은
단어가 나오도록 미리 궁리해서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영어를 배우려 알파벳이나 문장 만들기를 하고 지나가듯이
그냥 흘려버리고 말 것이 아니라면 문학적인 접근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글은 영어 보다 훨씬 삼행시라는 것에 잘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글 삼행시가 대단한 유행을 탔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떤 문학 장르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더 심하겠지요. 저는 여전히 정형시의 일정한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조보다 좀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한글 시를 고안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일본의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로서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고 문학으로서도
훌륭하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문학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저로서는 영어 삼행시보다는 영어
하이쿠 같은 짧은 영시를 지어보는 편이 주어진 같은 노력, 시간에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짧은 영시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긴 영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고, 그렇다고 반드시 우리말에
국한해서 시를 짓는 것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짧은 영시 짓기를 생각한 것입니다.
시란 자기가 하나 써 보면 다 이해하는 것이고 써 본 적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시를 읽는다 해도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그래서 영어 하이쿠를 소개했었고 "이어서 영시짓기"를 시도해 보았었습니다.
누군가 적당한 주제로 짧은 영시를 지으면 다른 사람이 같은 제목이나
주제를 가지고 혹은 그 시 안에 있는 내용 혹은 특정 단어/구절을 따서
또 다른 시를 계속 이어서 짓는 것이지요.
짧은 영시짓기에서 하이쿠가 좋은 모델이긴 하고 서양인들 중에도 영시
하이쿠를 짓는 이들도 있지만 구태여 그 형태를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2행~4행 정도의 길이에, 가급적 couplet이나 aab, aba, aab, baa,
aabb, abba 등의 각운을 따르는 것을 권했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미지즘의
시들처럼 가급적 제목에 관한 명확한 묘사를 해내는 것을 하기를 권고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언어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지요. 저는 "Painting with Words"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짧은 시의 느낌이 약화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짧은 몇 마디 구절로 어떤 주제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묘사해 낼 수 있다면
멋질 것입니다. 하이쿠에서 계어라고 해서 계절적인 내용이 들어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 이것을 좀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본 것이었습니다.
하이쿠뿐만 아니라 에밀리 디킨슨도 좋은 예입니다. 그녀는 사전을 좋아해서
마치 사전에 있는 단어를 자신의 깊은 성찰을 반영하여 자신이 새로 정의하는
듯한 짧은 시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 감수성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더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하고 글로 쓴 적도 많은데 그것들을 다 언급할
자리는 아닌 듯해서 지금은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썼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전에 제가 지었던 명작(^^) 하나만 소개해 드릴게요.
A Fish Dish
- Juwhan Ryu
Were you crucified for me, you poor fish
With murky eyes wide open on a dish?
What would you say I even hold you spite
Especially when Mom forces me to bite!
아무리 봐도 어디 교과서에 실릴 만한 명작입니다. 하하... ^^
쉬운 주제와 심오한 주제가 여러 레벨로 들어가 있어 의미심장하죠,
뉘앙스 묘하죠, 재미있지요, aabb의 각운 등의 운율도 풍부하지요...
이 시에 어울리게 명태인지 멸치인지 잘 모를 물고기가 접시
위에 올라가 있는 그림도 그렸었어요. (참고: 제목의 dish는 요리의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시 삼행시는 참 좋은 시도입니다. 충분히
재미있고 사람들에게 시도를 유도하기 쉬운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나아가서 짓기 쉽게 짧은 형태를
간직하면서도 감정을 더 깊숙이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짧은 영시를
지어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드려 보았습니다. 혹시
이런 것에 관심이 가신다면 일본 하이쿠와 영시 하이쿠에 대해 좀
자세하게 공부를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에즈라 파운드 등의
이미지스트들과 몇몇 여류 시인들 등과 하이쿠의 관계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올리신 "Love 삼행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를 보고 내게 느껴지는
것이 크다 적다는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고치거나 비평 내지는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Love 삼행시"에서는 삼행시에 대한 작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견을 물으셨으니 주제넘지만 제 생각을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리듬의 느낌 측면에서는 역시 무척 딱딱합니다. 운율이 없으면
행이 나누어져 있다 해도 시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삼행시'의 경우에도
운율을 살리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삼행'시'라
부르지 말고 다른 명칭을 쓰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3행에서 complaining이 --ing 형태라서 앞의 네 단어와
느낌이 흐트러집니다. complaint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또 한 가지는 우리말로 '삼행시'라고 하면 제시되는 단어의 글자수에
따라 행수가 달라지는 것도 기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어 명칭은
없기 때문에 이것을 'three line poem'이라는 consensus를 이루지
못한 영어 명칭을 쓰면 꼭 세 줄이 되며, 그렇다면 그게 뭐지? 하는 의문이
일게 됩니다. 곧 지금 대로는 의미 전달이 되지 못합니다. 한국 사람들만
(그게 뭐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어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왕 활동하시는 다른 카페에서 영어 삼행시라는 것을
시작했다고 하면 서로들 노력해서 정확하거나 혹은 원용이라도 할 수 있는
명칭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새로 명칭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영어 삼행시가 어떤 식일까 생각해 보다가 같은 제목으로 저도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Love
- Juwhan Ryu
Lucifer, a bluffer then, once came and bowed down to utter,
"Oh, you Great One, I'll bless you with the life everlasting!"
"Very indeed," I retorted, "but since a jealous God is watching,
Ere He smothers me, I'd let Phoenix reincarnate from cinder."
사랑은 생명을 낳는 행위이며 에너지이고, "생명이란 성적으로 전달되는
병"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영생은 한 개체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후손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그게 유전자일 수도 있지만,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한 개체는 사라지고 다음 개체가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자신이 불 탄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불사조처럼 말이지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저 짧은 시에 복잡하게 넣어 보았습니다. 너무 심각한 것 같긴 하네요. ^^
앞으로 카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멤버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 은밤
첫댓글 은밤님 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감사드립니다. 그림같은시, 짧은 영시의 시도, 제목과 내용의 일치,하이쿠형태, 문학성의 천착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