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의해 무너지는 우리의 꿈]
어렸을 때, 내가 어려봤자 얼마나 더 어리겠지만은, 학교에서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꼭 장래희망을 덧붙여 자신을 소개해야 했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대통령, 변호사, 판사, 플루티스트, 선생님 등을 대었던 것 같다. 누구는 자신의 장래희망이 경찰이라고 했고 누구는 퇴마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꿈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
성장소설 <침몰선>은 한 소년 ‘진’이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상황을 바라보며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진의 마을 앞바다에는 어느날 부터인가 침몰선이 존재한다. 진은 침몰선이 있어 좋았고 침몰선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그러다 어른들의 침몰선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좌절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바랬던 자신의 장래희망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자신의 꿈을 간직해 나가는 과정에서 냉정한 현실과 어른들의 엇갈리는 평가에 흔들려 본 경험도 아마 다들 한 번씩은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누구는 희망을 가지고 꿈을 위해 노력해 보라 하지만 되려 누구는 터무니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현실적인 꿈을 가져보라 조언한다.
아직 확실한 건 없기에, 우리는 어른들의 평가에 의해, 주변의 시선에 의해 흔들린다. 그들이 하는 평가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도, 어른들도 사실 잘 모른다. 그들이 우리에 대해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들도 그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어른들도 우리처럼 주관적이다.
침몰선은 보는 사람에 따라 보잘 것 없는 고물 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많은 무기를 싣고 싸울 수 있는 굉장한 배가 되기도 했다. 침몰선이 언젠가는 꼭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진과는 달리 어른들은 침몰선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침몰선이 어떻게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침몰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꿈을 지키고 계속 그 꿈을 향해 노력할 것이냐 또는 현실에 안주해 버릴 것이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침몰선을 버리고 또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냐 또는 계속 침몰선을 고집할 것이냐도 우리에게 달려있다. 좋고 나쁜 선택은 없지만, 단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는 것과 한 번 선택한 이상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우리의 선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결국 침몰선의 존재는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그냥 침몰선 뿐임을 소년 진은 알아차렸다. 동심이라는 콩깍지가 벗겨진 후 침몰선의 실체를 소년은 결국 알아차리게 되었다. 침몰선은 단지 침몰선 뿐임을 소년이 인식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소년은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인식해 나가는 과정 속 소년은 꽤나 마음 고생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우리 모두가 공주님, 왕자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반 친구들 모두가 자신의 남친 또는 여친인 줄 알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세상을 16년 동안 살다보니 나는 그냥 ‘애’일 뿐이었다. 인어공주 애리얼과 알라딘의 쟈스민 공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줄 알았던 나는 전주의 학생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는 보다 우리를 객관적으로 인식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큰 성장통을 겪었고, 겪고 있고, 또다시 겪을 것이다. 그 과정 속 남들이 우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자비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남들은 생각보다 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의 성장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현실에 의해 우리의 꿈과 소망을 지키지 못하는 날들은 앞으로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어릴 때는 내가 내 꿈을 통해 이루게 될 행복한 모습만을 바라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점점 더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몸 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말자. 생각보다 갈 길은 멀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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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를 읽고 (출판사:열림원)